제5회 한말호남의병 추모제 및 어등산 의병의 날 기념식
한말 호남의병추모제가 104년 전 일본군경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호남의병 격전지 현장에서 열린다.
광복회 광주․전남지부와 사단법인 한말호남의병기념사업회는 10월 24일 오전 10시 한말 호남의병의 최대 격전지였던 어등산 박산마을에서 윤장현 광주광역시장, 장휘국 광주광역시교육감, 전홍범 광주지방보훈청장. 민형배 광산구청장 등 각급기관장과 지역출신 국회의원, 지방의원, 한말 호남의병후손, 광복회원 지역주민 학생 등 5백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5회 호남의병추모제 및 어등산 의병의 날 기념식을 거행 한다.
광복회 광주 전남지부가 주최하고, 사단법인 한말호남의병기념사업회, 광산문화원, 박산마을자치위원회가 주관하는 이번 추모제는 광주시립국극단의 추모진혼제, 충의격문 낭독, 윤장현 광주시장 및 각급 기관장의 추모사 순으로 진행된다.
김갑제 광복회 광주전남지부장 이날 추모사에서“임들이 이곳 어등산 등지에서 순국한신지가 벌써 100년이 훌쩍 넘어섰지만 아직까지 제대로 된 추모비 하나 없어 안타까운 마음에 눈물이 솟는다"면서 ”뒤늦게나마 임들이 전투를 벌이셨고, 순국하신 어등산 자락 이곳 유서 깊은 박산마을에서 매년 추모제를 갖게 된 것은 임들의 숭고한 구국의 혼(魂)을 영원히 기리기 위함이다“ 며, 올해 처음으로 임들의 기념사업을 본격 추진하는 기념사업회가 뜻있는 인사들을 중심으로 발족된 것은 호남의병 영령들의 정신을 계승하여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고 평화통일을 이루는 계기를 만들기 위함이다”고 강조 했다.
윤장현 광주광역시장은 추도사에서 “찬란하게 타올랐던 한말 호남의병의 빛나는 항일 정신이 광주 전남지역 3.1운동을 주도했고, 광주학생독립운동으로 이어졌다”며 “5.18광주민주항쟁 등 이 나라 민주화에 큰 획을 그었던 민주화운동 역시 호남의병정신을 계승한 투쟁 이었기에 이 거룩한 정신을 물려주기 위해 호남의병 추모사업 등 민족정기 선양사업에 광주시는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 겠다”고 다짐했다.
국난이 있을 때마다 자발적으로 일어나 나라와 민족을 위해 초개와 같이 목숨을 바친 호남의병은 1907년을 전후한 시기부터 1910년까지 전국의 반일의병투쟁을 주도했으며, 1908년의 경우 전국에서 일본 군경과 1천976회에 달하는 교전 중 호남의병들은 493회나 전투를 벌여 전국의 25%를 차지했고, 전투에 참여한 의병의 숫자도 8만2천767명 중 2만504명이나 돼 전국의병의 24.7%를 차지했다. 다음해인 1909년에는 전국에서 1천738회의 전투가 벌어졌는데, 이중 47.3%인 820회의 전투가 광주를 비롯한 호남지역에서 벌어졌다. 교전의병숫자도 3만8천593명 가운데 2만3천155명이 참여해 전국의병의 60.1%나 차지했다. 타 지역에서는 사그라지고 있던 의병투쟁이 호남지역에서는 '의병전쟁'으로 타올랐던 것이다.
당시 호남을 무대로 활약한 의병장으로는 면암 최익현, 녹천 고광순, 성재 기삼연, 죽봉 김태원(준)·김율 형제, 전해산, 심남일, 안규홍, 조경환, 김원국·김원범 형제, 양진여·양상기 부자, 오성술, 이기손, 오상열, 김동수, 박사화, 이강산, 임창모, 임하중, 장인초, 정기찬, 조정인, 황병학 의병장 등이 대표적으로 꼽히고 있으며, 이 중 김태원 김율 형제 의병장과 조경환의병장 등은 어등산에서 일본군경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다 산화했다.
특히 한말 호남의병들은 1895년 명성황후 시해 이후 1910년 소위 일제의 남한대토벌작전 때까지 20여 년간 끝까지 일제와 전쟁을 벌여 모두 1천 여 명이 일제 군경과 전투 중 전사하거나 사형으로 순국했으며 3천여 명이 체포돼 고초를 격었다.
이에 광주광역시 광산구는 1910년 10월 25일 끝난 호남의병 학살 작전(소위 남한대토벌작전)에 희생된 호남의병의 넋을 영원히 기리고자 2009년 전국 지방자치단체로는 최초로 10월 25일을 ‘한말 어등산 의병의 날’로 조례를 제정했으며, 광복회 광주 전남지부와 광산구는 이날 민 관 합동으로 추모제와 함께 매년 기념식을 거행하고 있다. (올해는 토요일이어서 시민 학생들의 참여기회를 부여 하기 위해 하루 앞당겨 24일 개최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