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어쩌다 일본 여행사진 올리는 사람입니다.
지난번 북큐슈 가라쓰에서 나카쓰까지의 여행기 말미에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의 현장을 가보고 싶다는 말씀을 올리면서 글을 마쳤는데,
지난주 그 여행을 마치고 새로운 글을 써 봅니다.
여행 여러날 중 하루는 도치기현의 닛코, 하루는 니가타현의 에치고유자와를 다녀왔고, 다른 날은 호조 가문의 영지인 오다와라와 도쿄 시내 여기저기를 다녀왔습니다.
그 중 이 글에서는 닛코와 에치고유자와에 관한 내용만 간략히 써 보겠습니다.
매번 직장 동료나 가족과 함께 여행을 다니다 큰 마음 먹고 혼자 여행을 떠났는데, 장단점이 있군요. ^^ 아무튼...
우선 교통편을 간단히 말씀드리면...
JR의 창구에 가면 "도쿄 와이드 패스"라는 것을 살 수 있는데, 이 패스는 단돈 1만엔에 닛코로 가는 도호쿠 신칸센, 에치고 유자와로 가는 조에쓰 신칸센, 그리고 시즈오카현의 이즈반도로 가는 특급 슈퍼뷰 오도리코 등의 값비싼 열차와, 도쿄도와 인근의 전 JR 노선을 3일간 이용할 수 있습니다.
동선을 잘 짜면 3만엔 이상의 효과를 낼 수 있는 매우 유용한 패스입니다.
원래는 역시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이즈의 무희"의 현장인 이즈반도도 가려고 했는데, 일정이 좀 안 맞아 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도쿄 와이드 패스입니다. 일본인은 살 수 없고 여권을 소지한 외국인만 구입 가능합니다.)
== 닛코 여행 ==
저는 2015학년도에 방통대 일본학과 2학년에 편입해서 2학기 "일본어 기초2"를 들으며 닛코를 처음 알게 되었고,
"닛코를 보지 않고 일본의 아름다움을 논하지 말라"는 말도 이때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기회가 되면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아무튼 이제 닛코로 가 보겠습니다.
도쿄역에서 도후쿠 신칸센을 타고 우쓰노미야역에서 닛코행 열차를 갈아타고 JR닛코역에 도착해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위 : 도쿄역에서 우쓰노미야로 가는 도후쿠 신칸센 '나스노'. 아래 : 닛코역에 도착)
닛코에 도착해서 역내의 여행안내소에서 여행 안내 인쇄물들을 챙겨서 본격적인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닛코는 문화유산과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곳이어서 예로부터 일본 사람들, 특히 도쿄 사람들의 여행지로 손꼽히던 곳이었습니다.
린노지, 도쇼구, 후타라산 신사 등의 유적은 닛코 시내에 위치해있고, 게곤 폭포로 유명한 주젠지호는 버스로 40여분 달려가야 있습니다.
우선 역내 매표소에서 주젠지온센 프리패스를 구입했습니다.

(위 : 2천엔짜리 버스 패스, 아래 : 닛코 여행의 시작인 신쿄)
버스를 타고 몇 정류장을 가면 붉은색 다리가 보이는데 여기서부터 닛코 여행을 시작하면 됩니다.
신쿄는 17세기에 건립된 다리인데 지금은 직접 건널 수는 없습니다.

(린노지)
신쿄를 지나 처음 당도하는 곳은 린노지입니다.
린노지는 헤이안 시대에 창건된 사찰로서 천태종의 3대 본산중 하나라고 합니다.
그런데 위 사진을 보시다시피 대대적인 공사가 진행중입니다.
처음엔 절이 보이길래 아무 생각없이 표를 끊으려고 했는데, 자세히 보니 손으로 그린 것이네요. ^^;
내부로 들어가 산부쓰도(三佛堂)을 볼 수는 있지만, 대부분의 시설물들은 관람할 수가 없었습니다.
내년말까지 공사가 진행된다고 합니다.

(상 : 도쇼구 입구, 하 : 신큐 마굿간 외벽 위쪽에 있는 세마리 원숭이 조각)
이제 도쇼구를 들어갔습니다.
닛코 문화유산 중 가장 유명한 곳 중 하나이죠.
요메이몬 가기 전에 신을 섬기는 신마가 있는 장소인 신큐 마굿간이 있습니다. 이 건물의 외벽에 원숭이들이 빙 둘러가며 조각되어 있습니다.
위 사진에 보이는 것이 바로 "보지 않는 원숭이, 말하지 않는 원숭이, 듣지 않는 원숭이"입니다.

(사카시타몬의 네무리네코)
사카시타몬(坂下門) 앞에 사람들이 모여 뭔가를 찍고 있길래 자세히 들여다 보니, 바로 그 유명한 잠자는 고양이입니다.
그리 크지 않아서 무심코 지나가면 잘 보이지 않을 정도입니다.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고 합니다.

(상 : 요메이몬, 하 : 도쿠가와 이예야스의 무덤인 오큐사)
도리를 지나면 요메이몬에 당도합니다.
요메이몬은 당시 조각, 금속 장식, 채색 등의 모든 기술이 집약되어 만들어진 건축물로서,
"닛코를 보지 않고 일본의 아름다움을 논하지 말라"는 말이 바로 이 문에서 유래했다고 할만큼 화려함을 자랑합니다.
일본 국보입니다.
이제 삼나무 산길을 조금 올라 에도시대를 연 도쿠가와 이예야스의 무덤인 오큐샤에 당도합니다.
높이 5미터의 청동탑 안에 이예야스의 유골이 안치되어 있습니다.

(상 : 린노지 다이유인, 하 : 유바 소바)
린노지 다이유인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손자이자 3대 쇼군인 도쿠가와 이에미츠의 사당입니다.
역시 곳곳이 공사중이었습니다.
주젠지호로 가기에 앞서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위 음식 사진의 소바 위에 둥그렇게 말려 있는 것을 "유바"라고 합니다.
유바는 콩으로 두부를 만들 때 위에 뜨는 얇은 막인데, 닛코에서는 이것을 둥글게 말아서 찜이나 튀김, 샐러드 등을 만들때 다양하게 이용한다고 합니다.

(상 : 아케치다이라 로프웨이, 중 : 전망대에서 바라본 주젠지호와 게곤 폭포, 하 : 주젠지호)
이제 닛코 시내를 떠나 버스를 타고 주젠지호로 향합니다.
주젠지호로 가기 위해서는 옛 미시령 고개보다 훨씬 심한 고갯길을 한참 올라 가야 합니다.
주젠지호 약간 못미쳐 아케치다이라에서 내려 로프웨이를 타고 해발 1300여미터의 전망대에 오르면 저 멀리 주젠지호와 게곤 폭포가 보입니다.
지금은 눈과 얼음 때문에 풍광이 좀 덜한데, 아마 단풍철에 오면 눈호강을 톡톡이 할 것 같습니다.
== 에치고 유자와 여행 ==
이제 "설국"의 현장인 에치고 유자와로 갑니다.
에치고 유자와는 니가타현의 남단에 위치해 있는 곳으로, 도쿄역에서 조에쓰 신칸센으로 80분 정도 걸립니다.
니가타는 고시히카리로 유명한 쌀의 고장입니다. 그만큼 일본주를 만드는 주조장도 많습니다.
뒤에 쓰겠습니다만, 갖가지 일본주를 쌓아 놓고 파는 곳이 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1.8리터짜리 대형 일본주가 제 손에...
(캐리어에 넣고 오느라 좀 애먹었습니다. ^^;)

(조에쓰 신칸센 MAX とき)
맥스 토키는 2층 열차입니다. 2층은 아무래도 전망이 좋겠죠.
토키는 따오기인데, 니카타의 상징과도 같은 새입니다. 열차에 실제 따오기의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

(유자와마치 역시민속자료관 설국관)
역을 빠져나와 처음으로 향한 곳은 설국관입니다.
총 3층으로 된 건물인데, 1층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장품들과 소설 "설국"의 여주인공 고마코의 방이 있고,
2층은 유자와마치의 생활상을 알 수 있는 생활 필수품, 그리고 3층은 유자와마치 사계절의 생활문화와 역사를 알 수 있는 농사 도구와 눈이 올때 사용했던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신칸센을 타고 에치고유자와에 오면 소설 "설국"의 첫머리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 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의 터널을 직접 경험할 수는 없습니다. 그 터널은 재래선에 있는 터널이라 아주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유자와고원 로프웨이)
니가타가 대개 그렇지만, 특히 에치고 유자와는 눈과 스키로 유명합니다.
실제 에치고 유자와역 다음역이 바로 옆 갈라유자와역인데, 여기는 예전부터 스키장으로 유명했다고 합니다.
유자와고원도 스키장입니다.
로프웨이를 타고 유자와고원에 올라 에치고유자와 시내를 조망해 봅니다.
온통 눈입니다. 눈눈눈~~~

(다카한 료칸 내 가스미노마)
드디어 오늘 가장 오고 싶어했던 다카한 료칸입니다.
이 료칸은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1934년부터 1937년까지 소설 "설국"을 집필했던 곳입니다.
"설국"은 유자와마을을 배경으로 시마무라와 고마코의 슬픈 사랑을 담은 소설입니다.
조용한 온천마을 유자와를 좋아했던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실제 모델인 마쓰에를 통해 "설국"을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이 료칸은 지금도 상업적 영업을 하는 곳인데, 2층에 문학자료실인 '가스미노마'에 작가가 사용했던 테이블, 화로, 거울 등을 그대로 전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영화 "설국"의 촬영 스틸 사진들도 전시되어 있습니다.
이 료칸에 숙박하는 사람에게는 이 가스미노마가 무료로 개방되어 있고, 숙박객이 아니어도 500엔을 내면 관람을 할 수 있습니다.
혹시 이곳에 와보실 분이라면 소설을 최소한 두 번 이상 읽고 오시면 그 감흥이 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스와진자)
다카한료칸에서 나와 스와진자로 향했습니다.
스와진자는 유자와 마을의 마을신을 모신 신사인데,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설국"을 집필하며 산책을 즐겼던 곳입니다.
그런데, 신사로 향하는 길을 도저히 찾을 수 없네요.
정말 돌고돌고돌아 없는 길을 만들어 신사 앞에까지 가 보니 눈 때문에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네요.
나중에 알아보니 원래 겨울에는 들어갈 수가 없는 곳이라는군요. ^^

(몬도 공원 "설국의 비" 자리)
눈이 정말 많이 오긴 온 모양입니다.
원래 이 자리에 공원이 있어야 하고 "설국의 비"라는 것이 있어야 하는데, 눈이 이만큼 쌓였네요.
카톡으로 지리 전공한 동료에게 사진을 보내주니, "그 동네가 원래 산맥에 북서풍이 부딪치며 동해의 가습으로~~ 어쩌구 저쩌구~~" ^^

(에치고 유자와 역 내 폰슈칸)
유자와 마을을 대략 돌아보고 역으로 돌아왔습니다.
유자와 역내에는 큰 상점이 있습니다.
온갖 토산품과 일본주를 파는 상점들로 흥청거립니다.
그 한 귀퉁이에 "폰슈칸"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간단히 말씀드리면 일본주를 시음할 수 있는 곳입니다. 90여가지의 니가타 지자케를 테스팅하고 구입할 수도 있습니다.
입장하고 500엔을 내면 작은 술잔 하나와 동전 다섯개를 줍니다.
그러면 위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원하는 일본주 자판기 앞에 서서 잔을 놓고 동전을 넣으면 일본주를 마실 수 있습니다.
대개는 동전 하나로 1잔을 마실 수 있는데, 브랜드에 따라 동전 두 개 또는 세 개를 넣어야 하는 것도 있습니다.
시음을 한 뒤 안주격으로 먹을 수 있는 갖가지 소금과 된장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술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꼭 들르시길~~

(일본 TV 방송)
하루 일정을 마치고 호텔에 돌아와서 씻고 정리하는 가운데 무심코 TV를 틀어놨는데,
희한하게도 마치 예약이라도 되어 있었던 것처럼 엔카 한 곡이 나오는데~~
"雪國 ~駒子 その愛~"
悲しい酒が 雪になる
전혀 모르던 노래이지만, 하던 일 멈추고 턱 괴고 TV를 주시하며 한참 생각에 잠겨 있었네요.
고마코의 비애가 절절히 느껴지는 듯합니다.
이런게 바로 여행의 묘미이고 즐거움인가 봅니다. ^^
처음으로 혼자 일본 여행을 오니 장단점이 있습니다.
일행 신경쓰지 않고 내 마음대로 가고 싶은 곳을 갈 수 있는 장점, 더듬거리는 일본어로 교통과 숙박, 일정을 혼자 해결해야 하는 수고로움...
일본어를 더 열심히 공부해서 좀더 수월하게 다닐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다음 여행은 언제 어디를 갈지 아직 계획이 없습니다만, 마나님을 꼬셔서 한번 가 볼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이만 글 마치겠습니다. 긴 글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 혹시 닛코나 에치고유자와 열차여행을 생각하시는 분이 있으시다면 제 경험을 알려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