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자족(自足)
빌립보서 4:11
이태원교회(梨院)
看夫聖書自足之源有二, 一智識,二能力也. 人皆欲得智識者何也? 吾等敎子弟費多金, 敎國民又費多金有何意, 欲得能力也. 無能者落伍不能生存, 萬軍疾走之中, 一兵不能徒立, 全世之人皆有能力, 而吾若無能則不能自存也. 故人不可以無能力也. 有知則有能, 不可廢一而存一, 兩者具備而後有自足, 不待外求而能自內得也. 然何爲而得也? 吾等皆不可入學校工夫, 然學于校者皆有知識乎? 不然矣. 余前日看大卒業者, 蓄妾飮酒酗辱長老, 鄕黨皆賤視之, 然則學何用哉? 吾等不可咀呪學問, 而當使子姪務使工夫矣. 然此不過養得生活能力而已, 至於成人未也. 雖有生活能力, 而人格未成, 罪孽深重, 則於何處用之乎? 然則智識云者何也? 先知自己可也. 自己果何如人也? 終無中心, 搖搖不定, 如風着土管, 若無䬬筋則必斷. 人格亦如是, 無中心力則 必仆乃已也. 故先於自己之內有中心乎, 有百折不屈之中心乎, 無則養得可也. 又於自己之內, 有不欺之良心乎, 知酒煙爲養生之害, 而故爲吸取乎, 知不潔之女爲養德之害, 而故爲近之乎, 是皆死亡之靈魂也. 盖知者此等腐敗皆斥而遠之, 可謂知者矣, 於是爲自足者矣. 日日工夫克己, 克之不已, 乃得能力, 於是自足矣. 保羅更言我不處卑賤之地, 人在卑賤之時, 其心易變, 子曰君子固窮, 小人窮則濫矣, 君子與小人之隨在處窮之如何也. 平日有操守自宜則窮時亦自足, 處窮有方法, 不可猝變也. 僉位不見賣餠之露人乎? 此人自露其窮可知, 而一未有窮狀, 常快然自足矣. 幸有信德, 窮不窮在物資而言也. 物資雖窮, 精神自若自足, 知故自足, 能故自足. 自足不外此兩者矣. 又我知在豐備之地, 器小易盈, 人之心狹小, 故智爲滿盈則便生驕傲, 知識有餘則驕, 物資有餘則驕, 地位稍高則驕, 驕實無知, 驕實無能. 今見名料理店, 至月終則歌舞佚蕩, 此何故? 朝鮮之官, 至月終受俸給故也. 至年終尤甚, 此何故也? 受恩金故也. 朝鮮人如此無識, 自足生於何處乎? 故俯首於物資, 俯首於權勢, 至於茶一器金一円, 無不俯首, 甚矣, 朝鮮人之無自足也! 今日之小自由, 爲明日之奴隸, 今日之小足, 爲明日之蕩殘矣. 故保羅曰我知處此豐備之地, 信者當如此, 常學自足可也.
<성서>를 보면 자족의 근원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지식이고, 둘째는 능력입니다.
사람들이 지식을 얻으려고 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우리들은 자식을 가르치는 데 많은 돈을 씁니다. 국민을 가르치는 데는 더 많은 돈을 씁니다. 이것은 무슨 뜻 입니까? 능력을 얻으려고 그렇게 한 것입니다. 무능한 자는 낙오되어 생존할 수 없습니다. 만 명의 군대가 질주하는 중에 한 사람의 병사가 우두커니 서 있을 수 없습니다. 전 세계 사람들이 다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 내가 만일 무능하게 되면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에게 능력이 없으면 안 됩니다. 지식이 있으면 능력이 있습니다. 둘 중에 하나를 폐기시키고, 한 가지만 존재할 수는 없습니다. 두 가지를 다 갖추어야 자족하게 됩니다. 이 두 가지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고 안에서 구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디서 어떻게 구해야 되겠습니까? 우리는 모두가 다 학교에 들어가 공부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학교에서 공부하면 다 지식을 얻을 수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지난 날 보았는데, 대학을 졸업한 사람이 첩을 두고 술을 마시며 나이 많은 어른들에게 술주정을 하여 욕을 보이니, 마을 사람들이 그를 천한 사람으로 취급했습니다. 이렇게 되면 배운 것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우리는 학문을 저주하여 욕할 수는 없습니다. 마땅히 어린 자녀들에게 공부에 힘쓰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는 그저 생활 능력을 기를 뿐이지, 인격을 성취시키는 데는 부족합니다.
아무리 생활 능력이 있어도 인격이 이루어지지 않고, 범죄의 싹만 크고 무겁게 자라난다면 그 지식을 어디에 쓰겠습니까? 그렇다면, 지식이란 무엇입니까? 먼저 자기를 알아야 됩니다. 자기는 과연 어떤 사람입니까? 끝내 중심이 없어서 이리저리 흔들려 진정되지 못 하면 마치 흙으로 만들어진 기둥이 바람에 부딪쳤을 때 부러지고 맙니다. 인격도 이와 같아서 중심이 없으면 넘어지고 맙니다. 그러므로 먼저 자기 안에 중심이 있는가, 백절불굴의 중심이 있는가.?를 물어보아서, 없다면 길러서 얻는 것이 옳습니다.
또 자기의 안에 자신을 속이지 않는 양심이 있는가? 술이나 담배가 생명에 해로운 줄 알면서도 마시고 피우는가? 불결한 여자로서 덕을 쌓는데 해로움이 되는 줄을 알면서도 가까이 접촉하지는 않았는가? 이것들은 모두 사망에 이르게 하는 영혼들입니다. 이를 아는 자들은 이러한 부패행위를 물리쳐 멀리합니다. 이렇게 하여야 지식을 가진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자족이 있습니다. 날마다 하는 공부는 자기를 이기는 극기(克己)이고, 극기하는 일을 그치지 않아야 능력을 얻게 되고, 마침내 자족하게 됩니다.
바울이 다시 말하기를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안다’고 하였습니다. 공자가 ‘군자는 곤궁한 생활 속에서도 마음이 굳어 편안하게 여기지만, 소인은 곤궁하게 되면 본분에서 벗어난다[군자고궁, 소인 궁즉람의君子固窮, 小人窮則濫矣]’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군자와 소인은 곤궁한 처지를 어떻게 겪어 나가는가 하는 데 있어서 다릅니다. 곧 평상시에 지조를 잘 지키는 사람은 곤궁한 처지를 당하여도 자족(自足)하게 되어 그 방법을 갑자기 변경시키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떡을 파는 러시아 사람을 보지 않았습니까? 이 사람은 러시아에서부터 온 뒤로 곤궁하게 지냈으나, 궁한 모습은 한 번도 나타내지 않고 늘 쾌활한 모습으로 살았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은 다행스럽게도 신앙의 덕을 가졌으니, 곤궁의 여부는 물질에 따라서 하는 말입니다. 물질이 아무리 궁핍하더라도 정신이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면 그것은 자족하는 것입니다. 지식이 있으므로 자족하고, 능력이 있으므로 자족하게 되니, 자족은 이 두 가지 밖에 있지 않습니다.
또 나는 풍부하게 갖추어진 땅에 있음을 압니다. 그런데 그릇이 작으면 넘치게 됩니다. 사람의 마음은 협소하여 지혜가 가득하면 교만이 생깁니다. 지식이 남아도 교만해지고, 물질이 남아도 교만해지고, 지위가 높아도 교만해지니, 교만은 실제로 무지한 것이고, 교만은 실제로 무능한 것입니다.
지금 이름난 요릿집을 볼 때, 매 월말이 되면 노래와 춤으로 떠들썩합니다. 이는 무엇 때문입니까? 조선의 관리들은 월말에 봉급을 받기 때문입니다. 연말에 가면 더욱 심하여지니 이는 무슨 까닭입니까? 상여금[은금恩金]을 받기 때문입니다. 조선 사람이 이렇게 무식하니 자족(自足)이 어디서 생겨나겠습니까?
결국에는 물질에 머리를 조아리고, 권세에 머리를 조아립니다. 심지어는 차(茶) 한 잔, 돈 일 엔에 조아리니, 머리를 조아리지 않는 데가 없습니다. 이로 보면, 조선 사람은 자족할 줄 모름이 너무나 심합니다. 오늘의 작은 자유는 내일의 노예가 됩니다. 오늘 조그마한 만족은 내일의 방탕으로 거덜 나는 생활이 됩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나는 풍족한 데 사는 도리를 안다’고 하였습니다. 신자는 마땅히 이와 같이 하여야 하고, 늘 자족을 배워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