펄펄 눈이 옵니다
바람 타고 눈이 옵니다
하늘나라 선녀님들이
송이송이 하얀 솜을
자꾸자꾸 뿌려 줍니다
자꾸자꾸 뿌려 줍니다
펄펄 눈이 옵니다
하늘에서 눈이 옵니다
하늘나라 선녀님들이
하얀 가루 떡가루를
자꾸자꾸 뿌려 줍니다
자꾸자꾸 뿌려 줍니다
펄펄 눈이 옵니다/눈 동요(이태선 목사 작사/박재훈 작곡)
며칠 전 눈이 내렸습니다. 겨울 중 가장 추운 절기라는 소한(小寒)에 내린 눈입니다. 싸락눈이 함박눈으로 변하면서 듬뿍 내렸습니다. 겨울의 초입 11월 하순에 올겨울 첫눈으로 아주 큰 눈이 내렸는데, 크리스마스는 건너뛰었지만, 새해 벽두에 서설(瑞雪)이 내린 셈입니다. “하늘나라 선녀님들이 송이송이 하얀 솜을... 하얀 가루 떡가루를” 자꾸자꾸 뿌려댔습니다.
어느 호텔 극장에서 마술 공연을 본 적이 있었습니다. 미국의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났다고 말하는 마술가는 어린 시절에 본 알래스카에 내리는 눈이 너무나 신비롭고 아름다웠다고 합니다. 그 후 그는 마술가가 되어 눈 내리는 풍경을 보지 못하고 사는 따뜻한 지역의 사람들에게 눈이 내리는 경이를 보여주기 위해 눈이 내리는 마술을 부린다고 했습니다. 그가 무대를 오가며 머리 위로 손을 올려 비비고 허공을 휘저으면 펑펑 가득 눈이 내렸습니다. 눈 내리는 풍경이 낯설지 않은 나였지만 그것은 동화 속에서 마치 꿈을 꾸는 듯한 장면이었습니다. 얼마나 포근하고 아늑하던지요. 겨울의 눈이 내리는 계절을 가진 세상에서 산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요?
눈이 내리면 강아지가 어찌 그리도 좋아하는지요. 눈 속을 이리저리 쉴 새 없이 돌아칩니다. 눈을 보며 겅중겅중 뛰기도 합니다. 내리는 눈이 땅을 뒤덮고 마른 풀 섶과 나뭇가지, 지붕 위에 쌓이면서 세상은 하얀 눈 나라가 됩니다. 내 앞에 설국(雪國)이 펼쳐집니다.
여행 중 이곳저곳 신령스러운 설경의 장관을 접한 기억이 있습니다. 알래스카로부터 유럽으로 이어지는 하늘길에서 지치도록 길게 이어진 시베리아의 설원, 네팔의 카트만두로부터 뉴델리로 가는 도중 비행기 안에서 바라본 히말라야의 설산 풍경, 알프스의 융프라우와 프랑스의 아랫마을 샤모니로부터 올려다본 몽블랑의 설경, 도쿄 근교 후지산의 눈 덮인 봉우리, 탄자니아 산간 마을 모시에 접근하면서 바라볼 수 있었던 킬리만자로의 만년설, 키르기스스탄의 수도 비슈케크로부터 오시로 가는 하늘길 위에서 내려다보이던 톈산산맥의 거대한 설원...
하지만 내 손에 잡히지 않는 풍경 속의 설경은 그저 눈일 뿐이었습니다. 내 머리 위로 떨어져 내리는 눈송이, 내 발아래 뽀드득 소리가 나며 밟히는 눈은 다릅니다. 이 세상이 열렸을 때 내가 거기에 있었던 것과 같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아득한 태고의 시간 속으로 되돌아가 있는 기분이 듭니다. 어머니의 배 속에 있는 태아가 느끼는 고요함이 이런 것일까? 어찌 이토록 아늑하고 포근한 기분을 느끼게 될까요?
눈이 내리고 난 뒤의 풍경은 사뭇 다릅니다. 지난 11월 말에 내린 올겨울의 첫눈이자 폭설은 며칠 뒤에 모두 녹아버렸습니다. 그리고 새해가 들어 며칠 전 내린 눈은 아직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눈이 그치며 기온이 크게 내려간 탓이지요. 눈이 내리고 난 뒤의 매서운 추위가 바로 오늘과 같은 것입니다. 기온이 영하 15℃까지 뚝 떨어졌습니다. 추위가 살을 에는 듯하고 찬 바람이 뼛속까지 파고듭니다. 산바람이 계곡을 타고 불어 내리면 눈밭의 찬바람이 휘몰아 집니다. 나뭇가지와 풀 섶에 남아 있는 눈이 눈보라를 일으킵니다. 삶의 시련과 풍파와도 같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이렇게 눈은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눈보라
심연수*
바람은 서북풍(西北風)
해 질 무렵 넓은 벌판에
싸르륵 몰려가는 눈가루
칼날보다 날카로운 이빨로
눈 덮인 땅바닥을 갈거간다.
막막(漠漠)한 설평선(雪平線)
눈물 어는 샛파란 공기( 空氣)
추위를 뿜는 매서운 하늘에
조그만 해ㅅ덩이가
얼어 넘는다.
* 심연수(1918~1945) 강릉에서 태어나 일본 유학 후 만주 지역에서 교사로 활동하다 북간도 용정에서 일본군에게 피살된 것으로 추정됨
눈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는 것들은 외려 모진 추위와 세찬 바람으로부터 피난하고 있습니다. 개가 주둥이로 눈을 파헤친 곳을 살펴보면 파랗게 살아 있는 것들이 보입니다. 눈에 뒤덮여 있는 듯하지만, 눈이 그들을 감싸고 있습니다. 서로가 막상막하의 처지에 있지만, 서로가 부둥켜안고 엄동설한의 추위를 이겨 나갑니다.
어린 시절 초가지붕의 농촌 시골 마을에서 눈이 많았던 겨울을 보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눈 내리는 저녁 집집마다의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나는 풍경은 너무도 평화로웠습니다. 어딘가로 정처 없이 걷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것도 같습니다. 지금은 나의 어린 시절 농촌 마을보다도 더 외진 산촌에서 살고 있습니다. 숲이 사방을 두르고 있어서 눈이 내리면 바깥세상과는 완전히 고립된 느낌마저 드는 곳입니다. 눈이 내리면 마치 속세를 떠난 곳에 있는 느낌이 든다고나할까요. 마냥 편안해집니다.
한 편의 시가 떠오릅니다. 「눈 내리는 저녁 숲 가에 멈춰서」( Stopping by the Woods in a Snowy Evening/ Robert Frost)입니다. 눈이 내리는 외딴 숲길에서 말을 탄 길손이 문득 멈춰서서 눈이 내리는 풍경을 서정적으로 그려낸 시입니다. 주인을 태운 말은 영문도 모른 채 포근한 바람과 폭신한 눈송이를 맞으며 숲과 꽁꽁 언 호수 사이에 멈춰섰습니다. 주인은 일년 중 가장 어둡고 깊은 아름다운 숲에 눈이 내리는 모습을 바라봅니다. 하지만 이내 자신이 그 숲을 떠나서 숲 아래의 마을로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숲속에 사는 나는 눈이 내리더라도 마을로 내려갈 필요가 없습니다. 언제고 그 아름다운 풍경을 지켜볼 수 있습니다. 올겨울 한두 번 더 이렇게 숲속의 나래실아침농원에 가득 눈이 내리는 풍경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2025.1.10.)
눈 내리는 어느 저녁 숲 가에 멈춰서
로버트 프로스트**
숲이 누구의 것인지를 알 것도 같아.
그의 집은 마을에 있지만;
그는 내가 여기 멈춰서 있는 걸 보지 않을 거야
눈으로 가득해지는 그의 숲을 지켜보는 것을.
나의 어린 말은 이상하게 생각할 거야.
가까이에 농가 하나 없는 곳에 멈춘 것을
그 숲과 얼어붙은 호수 사이
일년 중 가장 어두운 저녁에
그는 목줄에 단 종을 한번 흔든다
무슨 잘못이 있는지를 묻기라도 하듯이.
달리 들리는 소리라고는
포근한 바람과 폭신한 눈송이가 스치는 소리.
그 숲은 아름답고 어둡고 깊다.
하지만 나는 지켜야할 약속이 있어.
그리고 내가 잠들기 전에 가야할 길이 있지.
내가 잠들기 전에 가야할 길이 있지.
**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 1874~1963): 미국 뉴햄프셔의 농장에 살며 자연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시를 많이 쓴 20세기 미국의 국민 시인
Stopping by the Woods in a Snowy Evening
Robert Frost
Whose woods these are I think I know.
His house is in the village, though;
He will not see me stopping here
To watch his woods fill up with snow.
My little horse must think it queer.
To stop without a farmhouse near
Between the woods and frozen lake
The darkest evening of the year.
He gives his harness bells a shake
To ask if there is some mistake.
The only other sound’s the sweep
Of easy wind and downy flake.
The woods are lovely, dark and deep.
But I have promises to keep,
And miles to go before I sleep,
And miles to go before I sleep.
첫댓글 장독대를 보니 시골 어머니께서
장독에 간장ㆍ메주등을 듬뿍 담
은 추억이 생각납니다.
순우집이야 말로 작은 설국이지
요.
건강 잘 챙기시길♡
밤새 내린 눈을 아침에 일어나 보면 세상이 바뀐 것처럼 경이롭습니다. 같은 하늘에서 같은 수증기가 떨어져내리는데 눈을 보면 아름답게 느껴지나 비를 보면 그렇지 않은 까닭은 무엇일까요. 아마도 온 세상을 하얗게 변화시킨 게 눈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다시 녹아 없어져버리겠지만 그 순간만큼은 변화된 모습을 보고 싶은 게 기본 욕망인 것 같습니다. 멋진 설경...아늑하고 따사로운 느낌. 포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