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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 떠난 사람
정연원
만남의 열매는 이별이다. 결실의 계절이 오면 나를 떠난 사람이 마음에 여러 색깔을 입히고 절제토록 한다.
아내가 고급스포츠카를 타고 큰 선글라스를 끼고 긴 머플러를 두 갈래로 날리며 멋지게 차려입고 떠난다. 직접 운전을 하며 얼굴표정 없이 떠난다. 차는 황야의 지평선을 달리기 시작하여 점점 작아지더니 먼지 속으로 사라졌다. 먼지 자욱한 황량한 벌판을 멍하니 쳐다보는데 차가운 바람이 불어와 오싹한 기운이 온몸을 휘감아왔다. 춥고 안타깝고 답답하여 눈을 떴다. 낯선 곳인데 말이 나오지 않고 움직일 수도 없었다. 옆에는 출산 후 며칠 전에 간 딸과 사위가 보이고, 무슨 말을 하자 흰 옷을 입은 사람들이 바삐 오고 있었다. 아스라한 심연으로 가라앉았다. 풀과 꽃이 있고 나무가 있는 들판을 한없이 걷다가 물안개 자욱하고 어둑한 곳에서 한없이 헤맸다. 다시 잠시 깨어나서 ‘너의 어머니는...?’ 겨우 물을 수 있었다. 대답은 ‘어머니는 저쪽에 있습니다. 병원... 화재...’라는 말을 듣고 아내가 떠나던 선명한 모습과 함께 으스럼한 속으로 들어섰다.
휠체어에 태워져 간 곳이 병원 영안실이었다. 내가 깨어나지 않아 늦어졌다며 입관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어머니를 잘 보내드리라고 울먹였다. 선명했던 영상이 현실이 되어있었다. 반듯이 누워있는 아내를 만져보니 뻣뻣하고 차가움이 느껴졌으나 꼭 다문 입술만은 따뜻하였다. 저녁을 챙겨주며 내일 행사에 인사말을 봐달라기에 ‘잘 되었고 행사 잘하라’고 격려하며 잠자리에 든 것이 기억났다. 그리고 영원한 이별의 길을 떠나면서 멋지게 차려입을 시간은 있어도 나에게 ‘간다’ 는 말 한마디 없이 떠난 못된 아내.! 떠나지 말라고 만류하며 잡아보지도 못하고 ‘잘가’ 란 말 한마디 없이 멍청이 떠나보낸 바보스런 남편. 관 뚜껑이 닫히는 모습을 그냥 보고만 있었다.
화장장에서는 인부들에게 유골을 곱게 갈아달라고 부탁하며 옆에 앉아 아내의 마지막 온기를 느꼈다. 납골당 안치까지 순식간에 벌어진 일들은 내 의사와는 관계없이 허망하게 끝났다. 허탈하다. 갑자기 갈 곳 없는 신세다... 사위가 공중보건의로 근무하던 병원 사택으로 옮겼다.
아내가 가고 49일 천도제를 마치니 이제 내 할 일이 없어졌다. 삶의 힘이 흐릿해졌다. 몸을 움직일 때는 캄캄한 공간이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엄마를 잃고 병들고 장애가 된 친정아버지를 떠맡은 딸. 그 장인의 주치의가 된 사위 덕분에 살아나기 시작했다. 사위가 제대를 하여 서울로 옮겼다. 하루 종일 클래식 FM 라디오를 들었다. 서울 아산병원 옆 성내천 둑길과 올림픽공원 길을 지팡이에 의지해서 걷기 시작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먹고, 듣고, 걷는 일과는 하루도 빠짐없이 이어갔다. 두어 해가 지나서 시력과 몸이 조금 안정되자 지하철 타기에 도전하였다. 넘어지고 욕먹고 헤매면서 점차 뻔뻔해지며 힘을 얻었다. 무릎과 정강이뼈의 상처는 홀로서기의 훈장이 되었고 무릎부분을 짜깁기한 바지는 무릎보호대가 되었다.
이때쯤 왜 하필 나인가? 로 시작된 원망과 억울함이 비등점이 되었다. 아내의 빈자리가 너무 컸고 시력장애의 수용과 적응이 갈수록 힘들고 불편하였다. 모두를 내려놓게 된 박탈감과 허탈감, 무력감과 불확실성 등이 옥죄어왔다. 고독, 고통, 짜증, 분노, 불안, 우울증이 뒤엉켜 마음이 걷잡을 수 없이 들끓었다. 겉봉에 아이들 이름과 전화번호, 발견하면 연락부탁드림을 적고 얼마의 지폐를 넣은 봉투를 몸에 지니고 다녔다. 죽을 결심으로 근처 한강변과 다리 위, 무작정 걸어서 산 속까지 수 없이 시도하였으나 그때마다 방해꾼(?)들로 인해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죽음도 마음대로 못하면 숨이라도 크게 쉬자’ 는 오기가 생겼다. 남은 자식형제의 아버지의 존재와 내 자신을 조절할 수 있는 삶 등 사소한 변명꺼리가 생겨났다. 그러나 죽음에 대한 마음은 여전했다. 어머니가 술 빚을 때 술을 담그고 며칠 지나면 단지 속에서 부글부글 끓다가 점차 술로 익어가듯 나도 모르게 생활과 함께 숙성되고 있었던 것 같다.
여느 새벽처럼 음악을 듣고 있는데 차이코프스키(Pyotr Il'yich Tchaikovsky, 1840~1893) 바이올린 협주곡 라장조 op.35(Violin Concerto D major op.35)에 감싸면서 몸이 붕붕 떠오른다. 서주와 독주가 나온 뒤 오케스트라 전체가 연주하는 강렬한 리듬부분에서 강한 힘이 스며들어 벌떡 일어나 앉았고 곡이 끝날 때까지 온몸에 진동이 일어났다. 우연이지만 나에게는 필연처럼 이어진 곡은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1770~1827) 교향곡 제5번 다단조 op.67(Symphony No.5 C minor op.67)이었다. 소위 ‘운명은 문을 두드린다’ 는 운명의 주제를 통해 절망과 좌절을 딛고 어우러지는 인생의 고비를 지나 3악장에서 쉬지 않고 연주되는 4악장에 들어서자 운명과 싸워 당당하게 승리하여 포효하는 듯한 포르티시모(ff-아주 세게) 부분에서 강력한 힘이 용솟음치기 시작했다. 들끓은 힘의 용출은 마지막 종결부에서 그 절정을 맺었다. 생명의 힘은 절묘하게 이어진 시간과 음악의 긍정성, 오케스트라의 화합력이 조화를 이룬 내 운명의 필연이었다. 두 곡이 연주되는 동안 나는 가장 높은 온도 36.5℃로 돌아왔다.
아내가 떠나던 영상만 되풀이하며 여러 해가 지났다. 시립납골당에 있던 유골을 고향 선산에 마련한 가족묘단에 내 이름과 함께 새긴 표지석 오른쪽 밑에 모셨다. 가족묘단이 완성되고 제사를 올린 날 밤. 제일 먼저 아내가 꿈에 나타났다. 화려한 스포츠카에 앉은 모습이 아니고 무명 치마저고리를 입고 시선을 아래로 내리고 고개를 숙이며 나를 지나 바삐 걸어간다. 아무리 불러도 대답도 없고 돌아보지도 않는다. 꿈에서 깨어나니 처음 떠나던 때처럼 오싹하고 황량한 느낌이 아니다. 왠지 모를 이승과 저승에서 각자 제자리를 잡은 것 같은 편안함이 주위를 따뜻하게 맴돌고 있었다.
풍성한 가을이 오면 나를 두 번 떠난 아내의 애증(愛憎)이 새삼스럽다. 부디 나대신 조상님의 사랑을 듬뿍 받는 나날이 되시기를…….
다이아몬드의 밤
정연원
익숙함과 타성에서 일탈의 길은 여행이다. 복잡함과 결별이 필요할 때 여행을 선택한다. ‘나에게 온전하게 집중 못할 때,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내달릴 때, 나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 때’ 여행은 절대 필요하다고 한다. (정은길 『나는 더 이상 여행을 미루지 않기로 했다』 에서)
새롭고 단순함을 선택한 대구시각장애인문화원 회원들을 태운 버스가 파로호 안보전시관에 도착했다. 파로호는 1944년 북한강 협곡을 막아 축조한 화천댐으로 인해 생겨난 인공호수다. 약 10억t의 물을 담을 수 있다. 1951년 5월 6.25 남침 한국동란 때 수력발전을 갖춘 이 댐을 차지하기 위해 중공군 3개연대와 우리 해병 1개연대 장병들이 목숨을 건 격전 끝에 수적인 열세에도 중공군을 모조리 수장시킨 승전 기념으로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파로호(破虜湖)라 명명하며 친히 휘호를 내렸다고 한다. 지금의 파로호는 청정하고 경치가 빼어난다. 당시는 우리의 유일한 수력발전소였다.
굽이굽이 돌아 700고지에 직선으로 1,986m의 해산터널을 지나 평화의 댐 길목에서 하차하였다. 보트(Boat)가 아니면 이 길밖에 없는 오지마을 비수구미(飛水口尾) 가는 길에 들어섰다. 행렬 제일 뒤에서 마무리 하면서 걷는다. 발걸음마다 진한 숲의 향기와 동행하면서 계곡 물소리, 산새소리, 살랑대는 바람소리와 지천으로 널린 개망초, 구절초 등 들꽃들이 함께했다. 내 발자국소리와 숨소리까지 메트로놈처럼 규칙적으로 들리는 내리막길이었다. 중간중간 땀을 식히고 발을 씻는 회원들을 기다리며 사람 발자취가 드문 계곡길을 만끽하였다. 도중에 힘들어 하던 회원들도 끝까지 완주하여 2시간 30여분을 지루함 없이 걸었다. 도착한 곳은 TV 인간극장에도 출연한 장윤일(69), 김영순(53) 부부가 운영하는 비수구미 산장이다. 도착 즉시 4명씩 앉으면 나물반찬 한 상이 나오고 밥은 각자 알맞게 먹을 수 있게 준비되어있다. 나물반찬에 눈이 휘둥글해졌다. 내가 좋아하는 곤드레, 곰치, 취나물, 얼레지, 엄나무순, 참나물, 당귀, 뽕잎 등 장씨가 온 산을 뒤져 장만한 나물반찬의 화려한 모습이 나를 반긴다. 오래 걸은 뒤의 허기가 모처럼 꿈틀대는 뱃속을 나물로 가득 채웠다. 오래간만에 맛본 귀한 진수성찬이다. 저녁식사 후 이장댁을 지나 펜션까지 10명씩 보트를 타고 파로호 물위를 달린다. 물냄새가 향긋한 청정한 파로호 물길 위로 오늘 흘린 땀과 찌든 먼지가 훨훨 날아간다. 펜션에 도착하여 순서대로 샤워를 하였다.
중세의 금욕주의자들이 수행을 하다가 욕정을 못 이겨 이탈하려 할 때 갑자기 얼굴에 발진이 생겨 뜻을 이루지 못하고 새로운 장소로 옮겨가면 감쪽같이 치유되었다고 한다. 이처럼 몸의 욕망에 마음이 수행을 가능하게 작용하여 몸과 마음이 둘이 아님을 나타내는 현상을 ‘성자(聖者)의 병(病)’이라고 한다. 지난 초여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로 인한 온 사회가 서로 의심하고 배척하며 불신의 도가 지나쳐 ‘모두가 모두를 위한 늑대’가 되어 생겨난 마음에 발진들로 가득하였다. 유례없는 가뭄과 무더위로 지친 몸의 짜증과 무력감으로 헝클어진 응어리들이 비수구미펜션의 샤워 한 번에 감촉같이 없어지고 상쾌하고 가뿐한 몸과 마음이 하나로 되돌아왔다.
잔디밭 야외의 전체시간은 여름밤이 아닌 가을밤 정취 속에서 흥과 신명을 마음껏 발산한 시간이었다. 야외등불이 꺼지자 별을 보라고 탄성들이다. 기다렸다는 듯 초롱초롱한 별빛이 내려다보고 있다.
새벽 2시경 소나기소리에 잠을 깨어 마루에 나가 하늘을 보니 벌써 맑아있었다. 들리느니 계곡물 소리와 풀벌레소리 간지럽히는 바람, 다시 점퍼를 입고 나왔다. 오늘 하루 정지와 멈춤은 적절하였는가? 하루 일과에서 과거로, 존재와 역할에 대한 진지한 성찰 속으로 호흡이 깊어졌다. 생활 속에서 독창과 합창의 역할은 어떠했던가...? 발바닥과 손끝에 서늘한 느낌과 함께 짜릿한 기감(氣感)이 온몸을 휘돌았다. 명료함 속에 한 생각이 스친다. 그 동안 머리에서 가슴까지 가장 길다는 여행을 고집하였지만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슴에서 다시 팔과 다리로 여행하여 행동을 하는 ‘실천’이라는 생각이 번쩍였다. ‘아무도 없는 황야에서 잠을 자다 깨어 별빛 밝은 하늘을 쳐다보다가 깊은 깨달음을 얻은 밤을 다이아몬드(Diamond) 밤’ 이라고 한다. 알음알이를 지혜로 그것을 실천하라는 새로운 생활의 길을 구체적으로 얻은 밤이었다.
새소리와 주위가 조금 소란스러워 눈을 뜨니 벌써 동이 트고 있었다. 보이는 산허리를 안개가 휘감고 파로호 수면에 피어오르는 잔잔한 물안개가 손짓한다. 싱그런 자연의 음악도 함께하는 수채화를 옮겨놓은 종합 예술 영상이다. 잊지 않으려고 오랫동안 담았다.
서울아가씨가 이 펜션에 묵으면서 지금의 경치를 보고 반해 친구를 데려와 펜션주인, 순두부집 노총각과 미팅을 하여 순두부집 총각과 짝이 되었다는 상큼한 시 한편을 들었다. 그 처녀 입장이 되어 다시 보니 평생을 이곳으로 택한 아가씨 안목이 멋지고 아름다웠다.
새벽에 갈아 만든 순두부 아침밥은 지난 저녁 나물과 또 다른 별미다. 서울색시가 ‘마음껏 드세요. 부족하면 말씀하세요.’ 라고 큰소리로 말한다. 넉넉해진 시골인심이 벌써 밴 모양이다. 다시 오기 힘든 세속의 삶을 떠난 단순한 삶, 자연의 삶이 있는 비수구미 마을. 여느 때처럼 짧은 만남과 긴 이별이다. 그러나 이곳에서 얻은 깨달음을 실천하는 생활 속에서는 계속 이어지리다. 비수구미를 떠나는 보트가 우리를 위해 한 바퀴 크게 돌아 선착장을 향한다. 15분여의 시간은 은하철도를 탄 것처럼 환상의 뱃길이었다. 파로호도 아쉬운지 하얀 물보라의 긴 여울을 남겼다. 모두가 환호와 탄성이다. 새로 충전된 힘으로 익숙한 곳을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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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선생님! 사모님은 조상님의사랑 듬뿍 받의시며 행복하실 거예요.존경합니다.
선생님. 이건 드라마라고 해도 너무하네요..이런 고충을 어떻게 이겨냈을까요.사랑하던 사람! 어제까지도 한솥에 밥을 퍼 한상에 식사를 하였는데 이게 왠일입니까?
우리 복음성가에선" 내일일은 난 몰라요. 하루하루 살아요.불행이나 요행함도 제 뜻대로 못해요."하는 성가가 있습니다.그러나 선생님은 이런일을 거뜬히 이겨낸 승리자 입니다.
앞으로는 좋은일만 있을것입니다.행운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