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백제-부여 百済(今扶余) 2
落日扶蘇数点峯
天寒白馬怒濤涵
奈何不用成忠策
却恃江中護国龍
해질 때 扶蘇의 数点峯이여
하늘이 찬 白馬에 怒濤가 汹汹하도다.
어찌 成忠의 策을 쓰지 않고
문득 江中에 護国竜을 恃하였는고.
扶蘇는 扶蘇山이니 扶余 北三里에 在하니 東岑日迎月台요 西岑日送月合이다. 白馬는 白馬江이다.
成忠은 三国史에 義慈王 十六年에 佐平(官名) 成忠이 上書 日臣이 時変을 살펴보니 반드시 兵革이 있을 것이다.
만일 異国兵이 오거든 陸路로는 沈峴을 지내지 못하게 하고 水路로는 岐伐浦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여 険을 拠하여 막은 然後에 피할 것이다.
王이 살피지 못하니 차차 唐兵이 乘勝하여 城에 迫하니 王이 歎하여 말하되 成忠의 言을 쓰지 않음을 뉘우친다 하였다.
護国竜은 鉤竜坮를 말함이니 扶蘇山下에 在하며 江上에 跨하였으니 竜을 잡은 흔적이 있었다.
俗伝에 蘇定方이 百済를 伐할 때 江을 건너고자 하니 風雨가 大作하였다. 白馬를 刑하여 餌를 作하여 一竜을 鉤得하니 조금 있어 風雨가 開霽하니 드디어 師를 渡하므로 江을 白馬라 부르고 岩을 鉤竜坮라 불렀다.
雨冷風凄去国愁
岩花落尽水悠々
泉坮寂寞誰相伴
同是江南帰命侯
雨는 冷하고 風은 悠悠한데 去国의 愁이다.
岩花는 落尽하고 水는 悠々하다.
다 泉坮가 寂寞하구나. 누가 서로 伴할까.
함께 이 江南의 帰命侯이구나.
雨冷風淒는 故都의 風物이 愁惨한 모양이다. 去国愁는 나라를 잃 근심이다.
岩花는 落花岩을 잃음이니 扶余北 一里에 있는데 俗伝에 義慈王이 唐兵의 敗한 바 됨에 宮女들이 奔走하여 此 岩에 올라 스스로 강에 던져 죽은 고로 落花岩이라 불렀다.
泉坮는 地下니 黄泉과 同하였다. 帰命侯는 義慈王을 잃음이니 唐이 蘇空方으로 神邱道行軍 大摠管을 삼아 百済를 범할 때 城山으로부터 海를 건너가니
百済가 熊津을 지키니 定方이 싸워 크게 破하고 潮를 따라 들어와 其城을 빼고 義慈王을 잡아 唐에 보내고 그 나라를 나누어 熊津과 馬韓과 東明과 金漣과 德安 等의 五督府를 두다. 義慈가 病薨하니 帰命侯라 称하였다.
- 한글
해질 무렵 부소산의 몇 개 봉우리여,
하늘이 흐린 백마강에 거친 물결이 휘몰아치는구나.
어찌하여 성충의 계책을 따르지 않고
문득 강 가운데 호국룡을 의지하였는가.
부소산은 부여 북쪽 3리에 있으며, 동쪽 봉우리는 해돋이를 맞이하고 서쪽 봉우리는 해넘이를 맞이한다. 백마강은 백마강이다.
《삼국사》에 따르면 의자왕 16년에 재평 성충이 상서하기를 "신이 시세를 보니 반드시 전쟁이 있을 것입니다. 만약 다른 나라 군대가 오면 육로로는 심현을 지나지 못하게 하고, 수로로는 기파포에 들어오지 못하게 한 뒤 험준한 곳을 의지하여 막으면 그 후에야 피할 수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왕이 주목하지 않자 차차 당나라 군대가 승세를 타고 성에 닿자, 왕이 탄식하며 "성충의 말을 따르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고 말했다.
호국룡은 구룡암을 말하는데, 부소산 아래 강 위를 가로지르고 있으며 용을 잡은 흔적이 있었다.
속전에 따르면 소정방이 백제를 칠 때 강을 건너려 하자 비바람이 크게 일었다. 백마를 잡아 밥을 지어 한 용을 구해내자 잠시 후 비바람이 갠 뒤에야 군대를 건넜으므로, 그 강을 백마강이라 불렀고 그 바위를 구룡암이라 불렀다.
비는 차갑고 바람은 쓸쓸한데 나라를 잃은 근심이로다.
바위의 꽃은 모두 떨어지고 물은 고요하구나.
온통 궁궐이 적막하니 누가 함께할까.
강남의 돌아올 곳 잃은 왕이로다.
비추위와 쓸쓸한 바람은 고국의 풍물이 수심스러운 모습이다. 나라 잃은 근심은 백제를 잃고 슬퍼하는 것이다.
바위꽃은 낙화암을 잃음이니, 부여 북쪽 1리에 있는데 속전에 의자왕이 당군에 패하자 궁녀들이 달려와 이 바위에 올라 강에 몸을 던져 죽었으므로 낙화암이라 불렸다.
석천암은 지하세계를 뜻하는 황천과 같다. 귀명후는 의자왕을 잃음이니, 당나라의 소정방이 신구도행군대총관이 되어 백제를 침략할 때, 성산에서 바다를 건너가니
백제가 웅진을 지키자 정방이 싸워 크게 격파하고 조수를 따라 들어와 그 성을 빼앗고 의자왕을 잡아 당나라에 보냈다. 그 나라를 나누어 웅진, 마한, 동명, 금련, 덕안 등 5개 도독부를 두었다. 의자왕이 병들어 죽자 귀명후라 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