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과 고구려(高句麗)의 건국(建國)
북부여왕(北扶餘王) 해모수(解慕漱) 일찍 하백(河伯)의 딸 유화(柳花)를 취(娶)하였더니 국인(國人)이 그 불가(不可)함을 말한데 유화(柳花)가 임신(妊娠) 중(中)에 난(亂)을 피(避)하여 동부여(東扶餘)에 있다가 아들을 낳으니 이름은 주몽(朱蒙)(扶餘 말에서 활 쏜다는 뜻)이라.
주몽(朱蒙)이 남에 재주와 용맹이 비범하거늘 동부여왕(東扶餘王) 금와(金蛙)의 아들 7인(人)이 시기하여 주몽(朱蒙)을 해(害)코자 하거늘 주몽(朱蒙)이 조이(鳥伊), 마이(摩離), 협부(陜夫) 등(等)을 거느리고 졸본(卒本)에 이르니
졸본왕(卒本王)이 그 불범(不凡)함을 알고 딸로써 처(妻)하거늘 주몽(朱蒙)이 그 도움을 받아 여러 나라들을 쳐 이기고 나라를 세워 이름을 고구려(高句麗)라 칭(稱)하고 성(姓)을 고(高)로 고치니 이가 동명성왕(東明聖王)이라.
때는 서기전(西紀前) 35년(年) 이러라.
사방(四方)이 주몽(朱蒙)의 재주 있음을 듣고 와서 붙이며 비류(沸流)와 행인(行人)과 옥저(沃沮) 등 여러 나라를 쳐 이기고 유이(類利)로 태자(太子)를 삼다.
유화부인(柳花夫人)이 동부여(東扶餘)에서 죽거늘 동부여왕(東扶餘王)이 예(禮)로써 장사하니 왕(王)이 사자(使者)를 보내어 사례 하니라.
<한글>
제5과 고구려의 건국
북부여왕 해모수는 일찍이 하백의 딸 유화와 혼인하였더니 국인들이 그것이 옳지 않다고 말하였다.
유화가 임신 중에 난리를 피해 동부여로 가서 아들을 낳았는데 이름이 주몽이었다.
주몽이 남달리 재주와 용맹이 있자 동부여왕 금와의 아들 7명이 시기하여 주몽을 해치려 하였다.
주몽이 조이, 마이, 협부 등을 데리고 졸본에 이르렀고, 졸본왕이 주몽의 비범함을 알아보고 딸로 하여금 주몽과 혼인하게 하였다.
주몽은 그들의 도움으로 여러 나라를 격파하고 나라를 세워 고구려라 칭하고 성을 고로 고쳤다. 이것이 동명성왕이다.
때는 기원전 35년이었다.
사방에서 주몽의 재주 있음을 듣고 와서 받들며 비류, 행인, 옥저 등 여러 나라를 격파하고 유리를 태자로 삼았다.
유화부인이 동부여에서 죽자 동부여왕이 예를 갖추어 장사지냈고, 주몽이 사자를 보내 사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