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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등 인생
2019. 10. 이영란
요실금 방지, 근육량 유지, 관절염을 예방하는 데에는 매일 스쿼트를 하는 것이 가장 손쉽고 효과는 탁월하다는 말에 솔깃하여 스쿼트 동작사진과 ‘하루 5분 스쿼트 실천기록표’를 벽에다 붙였다. 9월 17일부터 9월 30일까지 8일 기록하고 그 뒷 칸부터는 깨끗이 비어있다. ‘오늘은 그냥 건너 뛰자’고 딱 한번 정도 자신과 은밀히 속삭이며 타협했다고 생각했는데, 다음 번에 기록하려고 보면 4~5일, 혹은 일주일이 뭉텅이로 지나가 있었다. 그것은 달잠, 꿀잠 아침잠에 빠져 있는 6시 50분에 성실하게 울린 알람을 듣고 딱 5분만 더~를 외치며 눈을 감았다 떴더니 8시 10분이 되어있는 것과 비슷한 일이었다.
3등을 많이 해 보았다. 여기서 3등은 참가상, 입선, 장려상과 비슷한 말로 쓰인다. 지금이라면 절대 하지않을 수업연구대회에서 3등을 했고(통영초등학교 5학년 4반? 아이들과 1시간을 수업하는 일인데 본선 진출만 하면 기본성적이 3등이었다. 지금은 수업이 대회가 될 수 없다는 신념이 확고하지만, 그때는 승진이란 걸 생각해 보기도 했고, 또 그것이 열심히 사는 일이라 생각했다), 아이들을 지도해서 나가는 과학탐구대회 같은 행사에서는 입선도 못한 적이 많았고, 그 중에서 사물놀이로 가장 많이 입상을 했다. 사물 악기 중 가장 섬세한 멋은 장구가 가지고 있고, 흥은 북이 담당하고, 꽹과리는 자잘한 기예와 주도적인 리듬으로 음악을 이끌어 나가는 악기이다. 징은 점잖고 두리뭉술하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늦바람 난 징이 흥을 뿜어낼라치면 감당하기 어려운 악기가 된다.
대학시절 4년을 붙어다닌 단짝이 풍물동아리 회장이었건만, 정작 나는 대학신문사를 다니느라 풍물에 발도 담그지 못했다. 3년의 백수시절- 정확히 세어보니 9월 발령이었으니 3년 반의 시간이었다. 아무래도 좀 심했다. 동기 중에 아마 나보다 발령이 늦은 사람이 있는지 조사해 보지는 않았지만 군대를 다녀온 남학생 동기를 포함해서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은 한다. 고등학교 때 공부는 그렇게 잘하지도 못하지도 않았는데, 대학 들어가서는 확실하게 못했다. 내가 다닌 대학은 고등학교처럼 내신등급을 나누었는데 전체 10등급 중에 8등급이었는지, 20등급 중에 16등급이었는지 어쨌든 결론은 마찬가지였다. 여학생 중에서는 아마 거의 최하위 대열이었으리라 짐작한다. 3년의 시간을 보내면서는 주로 학원강사를 했다. 확실한 세계에 진입하고 싶어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영어, 국어보다는 나았기 때문에) 중학생 수학을 가르쳤는데 집합, 인수분해, 방정식, 함수, 삼각비까지는 소화가 가능했으나 교과서 후반부 단원인 도형의 증명 같은 부분이 나오면 내 머리 속은 도쿄의 지하철 노선도처럼 엉키고 설켜서 도무지 출구를 찾을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내가 아는 것과 또 전공자처럼 가르치는 것은 차이가 있고, 또 별다른 말 수완도 없어 내 허술한 수학실력은 깐깐한 여자원장의 레이더망에 걸려 공개적인 지탄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임용시험이 다가오는 9월이 되면 부산의 고모집에서 고시학원을 다니기도 했고, 울산에서 교직발령을 받은 친구 집에서 공부하기도 했다. 그 시간은 내 인생도 연애도 미래도 온통 암흑천지였다. 나는 임용시험을 잘 쳐서 합격했다기보다는 1997년의 선발인원이 많아서 운좋게 붙었다. 나는 공부눈치가 없어서 이리저리 말을 꼬아놓은 사지선다형의 객관식문항의 함정에 가장 먼저 빠지는 쉬운 사람이었다. 나는 선발시험에 몹시 취약한 사람이었고 딱히 흥미가 없는 말이나 글로 진행되는 수업은 5분을 넘기지 못하고 수면의 세계로 자동진입해 버리는 사람이었다. 다만 무언가 손으로 치거나 만들거나 혹은 청소나 설거지와 같은 형이하학적인 데 완벽한 믿음을 갖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지금까지의 일생을 갖다바치고서야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오는 그 시절 이야기를 적다보니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여기까지 왔는지 의심하게 된다. 이 이야기를 다음 기회에 더욱 자세하게 풀어써 보겠다.는 말을 하고 싶지만, 정호승의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를 문 앞에 붙여두고, 당연하지 않았던 외로움을 시 하나로 극복해내기에는 역부족이었던 시간과 도무지 올 것 같지 희망을 근근히 붙들고 살았던 시기를 까발려 내는 일에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어쨌든 낮 12시나 1시가 되도록 늦잠을 자고, 하얀 밤을 뒤척이며 새벽 3~4시나 되어 잠들었던 시간, 온 천지에 깔려있고 널려있고 걸려있던 시간은 내게 <까라마조프의 형제들 1,2,3권>까지 읽을 수 있도록 해 주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사람을 분류하는 기준 중의 한 가지 항목으로 <까라마조프의 형제들>을 읽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들었다. 끝없이 널브러진 시간을 어찌할 줄을 몰라 그 재미없고 지루하고 한 등장인물의 이름이 몇 개나 되고, 추상의 추상의 사고로 이어진 그 말들을 따라 가려면 도대체 수백 번은 자불면서 읽어야 하는데, 도중에 책을 삽짝너머로 패대기를 치지 않고 끈기 있게 읽어낸 사람이라면 그 이유가 지적허영이든, 미련함이든, 무슨 말인지조차 모르고 넘기다 넘기다 끝을 본 사람이든(나의 사례가 여기에 포함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묘종의 동질감을 가질만 하다는 데 나 역시 한 표 던진다. 어쨌든 그 시절을 복기하는 일은 나의 거의 모든 치부를 드러내는 일이긴 한데, 내가 16등급으로 깔리는 일은 15등급까지의 사람들에게 평화와 안식을 주는 일이다. 평화롭고 즐거운 세상을 위해 이 몸을 그렇게 바치는 일이 무어 그리 어렵겠는가? -끝에 발령을 받고 나서야 어찌어찌 사물놀이 초급반부터 시작했다.
결혼 전에 많았던 시간을 사물놀이를 열심히 배우는 데 썼으면 좋으련만, 우리는 안다. 시간의 양과 공부의 양이 비례하지 않음을. 첫 발령지였던 거제에서는 교사들 모임에서 배웠고 1년 반동안 근무했던 창원에서는 일반인 동호회 공간에도 기웃거렸다. 2001년 이후에는 통영교사풍물연구회에서 몸담아 왔다. 뭐든지 그닥 열심히 하지 않는 습관은 여전하여서 나의 실력은 제자리 걸음이었는데 어쨌든 중간중간 출현하는 장애물에 걸려 멈추지 않고 걸음을 뛰고 있었다는 데 스스로에게 점수를 준다. 수고했쓰.
나를 포함한 사람들이 사물놀이를 배우는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사물놀이란 말에 기타, 바이올린, 첼로, 해금, 아쟁, 춤, 피아노, 그림으로 바꾸어도 비슷하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바라보는 정면은 눈으로 확인 가능하고, 늘 타인과 비교되고 뒤처지지 않기 위해 달리고 참아내어야 하는 불편하고 긴장되는 곳이다. 반면 그것들은 나의 뒤에서 존재한다. 내가 이 세상에 있기 전 시원(始元)부터 존재해 온 자연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자유로운 영혼의 소리와 몸짓이었다. 그것을 각기 다른 그릇에 담아 내었을 뿐이다. 예술에 천착하는 사람들은 그 정면의 삶에 능숙하지 못한 사람이 아닐까 생각한다. 생업에 종사하면서 사물놀이를 배우는 사람들은 도무지 생활에 악착같지 못했다. 특히 남자들은 외모에서 두드러지게 보였는데 시커먼 수염을 길렀거나 야무진 몸매라기 보다 어딘가 살집이 자유롭게 붙었거나 혹은 반대로 기형적으로 마르거나. 승진이나 윤택한 생활에 더 깊이 발을 넣고자 하는 사람은 결국 사물놀이활동 쪽에 담긴 발을 빼갔다. 기량이 뛰어난 사람일수록 어수룩하고 후줄근했다. 춤사위가 그리 단정할 수 없는 예인인 우리 사부는 좀 심하게 비약하면 노숙자 비슷하게 보일 때도 있다.
학교는 적나라한 정면이었다. 많은 눈이 여봐라하고 지켜보는 곳이었다. 학생들은 누가 일기를 잘 쓰고, 달리기를 잘하고, 그림을 잘 그리고, 청소를 잘하는 지, 선생님 말에 누가 더 순종하는지 끊임없이 비교당했다. 교사들은 누가 업무를 빨리 잘하는지, 손재주가 좋은지, 대회에서 수업을 잘하는지, 교실을 깨끗이 정리하는지, 아침 일찍 출근해서 성실하게 생활하는지 비교당했다. 스스로도 비교했고, 타인에게도 비교당했다. 강렬하고 선명한 정면을 바라보느라 모든 개인에게 존재하는 뒷면을 바라볼 여력이 없었다.
사물놀이는 학교에서 내가 숨어들 수 있는 공간이었을까? 무언가 소리를 내는 것, 그 속에 담긴 먼 시원(始元)의 소리를 듣고 느끼는 일, 내 기량만큼 얼른 낚아채어가며 빠르게 익혀가는 아이들에게 내 실력은 언제나 공급부족이었지만 몸을 쓰는 그 정직함이 나는 좋았다. 그러나 사물놀이의 특성상 늘 마당에서 보여지기를 원했고, 그곳에 나설만큼 기량이 되지 않았던 나는 어느 해 운동회 때 아이들과 분위기를 돋구는 판굿을 하다가 분위기는 못 올리고, 교장선생님의 부아만 올리는 바람에 흥도 나지 않고 시끄러우니 그만하고 나가라는 말을 전해듣고 얼굴이 벌개진 적도 있었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사물놀이 역시 어쨌든 멈추지 않고 제자리걸음을 계속 뛰었다. 제자리걸음을 뛰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어서 나는 좀 특별한 선생으로 알려졌고 그 제자리걸음이 익숙해져가면서 학교 운동회나 학예회는 물론, 승전고를 울려라와 같은 퀴즈대회 행사공연, 교육청 대회, 진주 개천예술제학생국악경연대회, 대한민국탈춤페스티벌 같은 행사를 나가기도 했다. 성적은 늘 동상, 입선이었는데 아~ 어쩌다가 교육청 대회나 탈춤페스티벌에서는 간혹 어울리지 않는 좋은 결과를 얻기도 했다는 것을 이 글을 쓰면서 상기시키게 되었다. 개천예술제의 경우에는 분명히 동상에 입상했다는 전화확인을 했는데 며칠 뒤에 온 상장은 우수상으로 박혀 있기도 했고, 이전 해에는 동상으로 입상했다가 다음 해에는 입선으로 성적이 미끄러져 부끄럽고 민망한 적도 있었다. 어쨌든 내 정체성은 장려나 동상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이 익숙하다.(사족처럼 덧붙이면 동상은 입상이고 장려나 입선은 참가상과 비슷하여 엄연히 다르지만 내게는 도토리 키재기일 뿐이다.)
나는 어쩌자고 이렇게 중구난방의 글을 쓰고 있는지 스스로 의문이다. 어쨌든 ‘이영란님께 보내신 택배가 정상배송되었습니다’는 CJ택배의 문자를 확인하고 대문을 열어 브라운색의 ‘Love Smile Bear’를 받고 기분이 좋아졌다. 우비소년이 덩치가 작아서 좀 큰 친구로 주문을 했더니 눈망울이 고운 곰인형이 왔다. 좋다. 많이.
그렇게 나는 살아왔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는 아니고 <그렇게 사는 건 줄 알았다>였다. 확실한 것은 수학이나 국어 같은 과목이나 조직 속에 몸 담으면 딸려오는 업무를 척척 해내면서보다는 사물놀이에 기대어 학교를 다니는 것이 내게 더 할 만한 일이었다는 것이다. 나는 늘 거의 모든 사람들이 퇴근한 학교에서 못다한 업무를 미적미적 처리하다가 제일 늦게 나왔다. 그래도 내 제자리걸음에 같이 뛰었던 아이들과 그것을 대견해 하던 학부모님, 혹은 학교를 알릴 도구로 열심히 써먹던 학교관리자들에게도 괜찮은 일이었던 것 같다. 간혹 졸업한 아이들을 만날 때면 ‘국어시간에 문장성분이 주어, 서술어, 목적어, 부사어라는 게 너무 신기했어요. 어떻게 그런 성분이 있을까요?’라든지, ‘분수를 소수로 고치는 일이 조금 복잡하긴 하지만 정확하게 풀고 나면 정말 보람있어요’ 따위의 말은 아무도 하지 않았고, ‘사물놀이 할 때는 진짜 신났는데, 중고등학교에서는 도저히 그걸 할 기회가 없어요’라는 말은 종종 들을 수 있었다. 사물놀이는 학교생활에서 20~30분의 1 정도의 비율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그것만 남아있을까?
그러나 학교는 그 밖의 무수히 많은 일이 존재하는 일어나는 곳이다. 정면에서 비교 당하는 일이나 아이들을 비교하는 일, 또 아이들이 고분고분 비교당하다가 그 일에 지쳐 내게 반항하는 현실에 부닥치는 일, 8시 30분까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학교에 도착해 있어야 하는 어김없음 같은 것들. 어떤 교과수업에도 흥미를 보이지 않는 아이들과 수업을 해야 하는 일들. 정신은 늘 군기를 불어넣고 그래야 한다는 당위로 무장시킬 수 있었으나 생명유지를 책임진 몸은 본능적으로 그걸 거부하고 있었다.
최근에 <잘 그리지도 못하면서>와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내리 읽었다. 뭐 눈엔 뭐만 보인다고 어정쩡한 인생을 ‘어쩌라고!’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흠뻑 빠져있다 나오니 비주류가 주류가 되어버렸다. 어정쩡한 내 인생도 얼마든지 큰소리 쳐도 될뿐더러 큰소리를 치니 유쾌했다. 완벽한 삼겹을 이루는 내 뱃살에도 너그러워진다. 고인의 유골을 우주로 날려 보내는 우주장을 치를 때 비교란 말도 함께 태워 날려보내고 우주에 존재하는 유일한 단독자로서의 삶을 누려볼 것이다. 나 역시 잘 쓰지도 잘 치지도 못하지만 햇빛을 오래오래 쬐며 가을 산을 수놓는 색깔이 몇가지인지 세어보고, 바다에 정박해 있는 배 이름들이 무엇인지 살펴보며, 언덕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집들의 색깔과 불빛들을 관찰해 볼 것이다.
맨날 3등을 해도, 친구들보다 3년 뒤에 발령을 받아도 괜찮다고, 맞춤법을 틀리게 쓰고, 자주 욱하고 성질을 내어도, 책을 읽지 않아도, 책상과 사물함이 지저분해도 괜찮다고 말해 줄 것이다. 나도 맨날 학교 오는 일이 힘들고 수업하는 것도 재미없다고, 뭘 하면서 공부도 하는 것처럼 재밌게 보낼 수 있을지 생각해 보자고. 나는 너를 감시하고 통제하는 사람이 아니고 너처럼 똑같이 잘하고 싶지만 게으르고 계획을 실천하지 못하고, 입선보다 더 아래의 상이 없어서 입선 단골인 사람이라고 말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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