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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함께보는 AIP10기 거문도.백도 유람기
<2009.3.28~29>
AIP10기 봄 나들이로 멀리 남해비경의 섬유람지 거문도.백도를 다녀왔다. 당초 대마도와 울릉도를 놓고 찬반을 겨루다가 최종적으로 거문도 백도를 택하게 되 이라 다시 가기란 망설여지는 여행지였었다. 일정이 마침 주말이라 교통이 좋지 않을 것 이란 점 때문에 왕복 항공편을 택한 점도 탁월한 선택이라 생각된다.
아침 8시 여수행 비행기를 타려고 지하철을 타고 7시20분경 김포공항에 도착하니 이
여수시 가이드는 여수자랑이 대단하다. 여수는 인구가 30만의 아름다운 미항의 도시이다. 종전 여천시,여천군,여수시가 하나의 여수시로 통합되었다. 2007년 11월 26일 파리에서 개최되었던 142차 세계박람회 총회(BIE)에서 2012년 적인 신 해양도시이다. 여수(麗水)는 한자로 풀이되듯이 아름다운 물길이란 뜻을 포함하고 있다. 여 여수가 되었다고 한다. 여수항은 1943년 바다를 메워서 만든 항구이다. 가로수로 타지방에는 잘 볼 수 없는 후박나무가 줄지어 서 있었다. 여수시의 가로수 40%가 후박나무란다. 후박나무는 늘푸른잎으로 사계절 녹색잎의 아름다운 모습에 향 이 진해 진드기,개미 등 벌레가 일체 없다고 하여 인기가 좋다. 그외 가로수로 여수의 꽃인 동백과 벚꽃,그리고 소나무(전국 유일)가 심어져 있었다. 지금은 동백꽃 그리고 벚꽃이 한창 만개하여 우리를 반겨주었다. 자부심이 크다. 그러나 여순사건(이곳 사람들은 여순반란사건을 반란이란 말도 안된 다며 굳이 여순사건으로 통칭한다)의 뼈아픈 역사를 묻은 곳이다.(1948년10월19일 반란군 소탕작전으로 여수,순천 청장년 6천명을 학살하고 관련자들을 연좌제로 묶은 사건)
여수에는 유독 기독교인이 많다. 손양원목사가 순교한 지방이기 때문이다. 손목사는 고 집요한 전향을 반대하면서 "덴꼬(전향)보다 신꼬(신앙)이 중요하다"는 유명한 말을 다. 손양원목사 기념관이 지어져 기독교인의 성지참배지 그리고 관광지로 알려져 있 다. 또 여수는 박노식 백일섭 지성 같은 유명 연예인을 낳은 고장이기도 하다.
여수의 관광지나 명소는 오동도 외에 향일암,돌산대교,여수에서 114.7km 바다에 거 문도와 백도가 있다. 2012년 세계박람회가 열리며 동백꽃,후박나무,대나무가 많이 자라는 곳이다. 비교적 교통이 좋지 않았으나 세계박람회를 계기로 KTX가 개통될 예 정이다. 특산물로는 멸치,갈치,쥐포 그리고 갓김치가 유명하다.
오동도관광 버스에서 내리자 곧 오동도로 걸어 들어갔다. 오동도는 천혜의 미항, 여수시 수정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토끼 모양의 작은 섬이었으 나 현재는 긴 방파제로 육지와 연결되어 있다. 대부분 걸어가면서 아름다운 바다와 여수항을 구경을 하지만 걷기가 불편한 노약자는 동백열차(길이27m,108명탑승)를 이 용할 수도 있다.
오동도에는 오동나무 그리고 동백에 얽힌 전설이 있다. 고려 공민왕때 신돈이 봉황새가 오동도에 날아드는 꿈을 꾸었다. 봉황새는 오동나무 열매만 먹고 산다는 상상의 새이다. 봉황새가 날아드는 것은 곧 새임금이 나신다는 것 을 의미한다. 이에 왕명으로 오동도에 있던 나무를 모두 베어버리고 단지 7그루만 남 았다고 한다. 많은 세월이 흐른 뒤 오동도에는 아릿다운 한 여인과 어부가 살았다. 창파에 몸을 던졌다. 나중에 이를 안 남편 어부는 너무나 슬퍼하면서 아내를 고이 묻 어 주었다. 북풍한설이 내리치는 그해 겨울 하얀 눈이 쌓인 무덤가에는 여인의 붉은 순정이 동백꽃으로 피어났다.
긴방파제로 오동도에 연결된다. 도보 또는 동백열차를 이용하기도--
용굴과 등대 가는 길
빨간 동백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즐거운 기분으로 산책에 나섰다.
일행은 동백섬 관광을 위해 용굴과 등대가 있는 산책길로 접어 들었다. 위에서 내려다 보이는 방파제 그리고 여수 신항의 그림같은 아름다운 풍경이 마음을 설레게 하였다. 그 유명한 동백숲길이 나왔다. 지금 동백꽃이 한창 만개하여 그 숲길 터널 속으로 걸어가는 일행 모두는 너무나 행복감에 젖어들었다. 동백은 성장이 더딘 나무이다. 동백군락지에는 50~100년된 동백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서 있었다. 군락지 에만도 700~800본이 자라고 있다.
용굴을 보기 위해 나무계단 을 걸어 내려간다.
용굴
조금 올라가니 나무계단으로 아래쪽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고 그 아래에 용굴이 있었다. 용이 살았다는 용굴까지 걸어서 내려가 보았다. 용굴을 비롯한 주변의 코끼리바위등 기 암절벽이 시선을 내내 바다쪽으로 향하게 한다. 드디어 오동도 등대가 나왔다.
전망대까지 꽤나 높은 곳을 엘리베이터로 오르니 유리로 사방을 확 틔워놓은 전망대가 있었다. 동서남북 돌면서 바다구경을 하고, 내려올 때는 빙글빙글 도는 계단을 따라 걸어 서 내려왔다. 옆 벽면에 수중 어군의 사진이 그려져 있었다. 좀 어두운 것이 흠이었지만 신기한 물고기도 있었다.
전망대 안내
전망대 계단길에 전시된 바닷속 물고기 그림
이곳의 일출은 유명하다. 일출을 보기 위해서는 계단을 내려가 넓다란 바위에 앉아서--
동백차 마시는 테이블의 동백꽃 장식
현지 가이드가 오동도,동백에 얽힌 전설 그리고 신우대(대나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충무공이 활에 쓰는 화살재료로 신우대(신이대)를 집중 심었다고--
보기 힘든 백동백(白冬柏)이 있었다.
등대에서 산책로를 가면서 일출을 보는 곳도 내려가 보았다. 어느 곳이나 일출관광은 인기있는 명소가 된다. 동백차를 팔고 있었다. 임진왜란 때 이충무공이 이곳에 대나무를 많이 심었는데 화살의 재료가 되는 곧은 신우대(신이대의 이 지방 사투리)가 빽빽하다. 대나무는 무당들이 신이 내릴 때 쓰는 나무이다. 신이대라고 하는 것도 그런 연유에서다. 동백은 붉은 꽃이나 하얀 동백꽃도 있다. 마침 만개한 흰동백을 여기서 볼 수 있었다.
동백열차
若無湖南是無國家
바닷가 해물들(멍게 등)이 싱싱하다.
오동도 넓은 광장은 분수와 놀이정원 그리고 생선파는 아줌마들이 생동감을 불러 일 으킨다. 큰 거북선 모형을 배경으로 "若無湖南是無國家"라는 휘호가 암각된 비석이 눈길을 끈다. 이순신 장군이 持平 玄德升에게 보낸 서한의 내용이라고 적혀 있다. "호남이 없으면 이는 나라가 없는 것과 같다"라는데 이말은 곧 호남을 지키려면 한산 도에서 적을 막아야 한다는 뜻이라고--
오동도 관광을 마치고 11시반에 게장백반으로 유명한 "원앙식당"에서 아점(아침 겸 점심) 을 먹었다. 돌게장백반인데 간장무침게장 그리고 고추장무침게장 모두 어찌나 맛이 좋은 지- 양태(양씨가 처음 잡았다고 해서 양태라 한단다)라는 생선도 맛이 좋았다. 여수는 맛의 고장이다. 전국 최고의 맛을 자랑하는 한정식도 유명하고, 아침에 먹은 돌게 장백반 그리고 돌아오는 날 저녁식사인 서대회무침도 유명한 식단이다. 식사를 마치고 여객선 출항시간인 1시40분까지 시간이 남아서 터미널 근처 어물시장구경 에 나섰다. 이름도 망대,서대 등 생소하고 처음보는 생선도 많았다.
게장백반 전문식당 원앙식당
김인수회장의 인사와 건배
게장백반으로 맛있는 아점식사를 하였다.
피등피등 말리고 있는 생선들
해물 시장구경
거문도로 가는 뱃길 40분과 오후 1시40분 두번 출항한다. 마침 파고가 2M로 높지않아 밖으로 나가 사진을 찍을 수 있었고, 배멀미 걱정도 필요없었다. 배타는 시간은 2시간20분. 총 114.7km의 거 리로 배 속도는 시속 60km라고 한다. 바다를 보기가 어려운 서울시민으로서는 모처럼 시원한 남해바다 파도를 보면서 가슴이 시원히 뚤리는 느낌을 가졌다. 배 바깥 난간에 서서 배뒤로 부서지는 파도를 보면서 모두 들 상기된 얼굴이다. 기념사진도 찍고 멀리 외롭게 서 있는 바위섬도 구경하면서.
여수와 거문도를 왕복하는 거문도호
배 뒤로 하얀 물거품을 뿜어대며 달린다.
황영재 초대회장의 즐거워 하는 모습
거문도항에 내린다.
50분이 지나 2시반경 나로도항에 도착했다. 우주선발사로 이름을 알린 섬이다. 나로도항에서 많은 승객들이 타서 삽시간에 배안이 시끌버끌했다. 주민 150명이 살고 있다는 선죽도를 거쳐 초도 의성항에 도착하였다. 450명이 살고 있다니 제법 큰 섬이다. 나로도,선죽도,초도에서 정박후 드디어 거문도에 진입하였다. 먼저 서도항에 손님이 일부 내리고 우리는 종점인 고도항(거문도항)에서 모두 하선했다. 예정시간 그대로 4시20분.
거문도 거문도(巨文島,巨門島)는 남해안에 있는 행정구역상 여수시에 속하는 섬이다. 영어로 는 포트해밀턴(Port Hamilton)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에 속한 다. 거문도의 본섬인 동도·서도·고도 등 세개의 섬은 바다 가운데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 고 그 가운데에는 1백여 만 평 정도의 천연항만이 호수처럼 형성돼 있어 큰 배가 드나들 수 있는 천혜의 항구 구실을 한다. 때문에 거문도 항은 빈번히 열강의 침입을 받아왔고 현재는 남해의 어업기지로서 전국의 어선들이 몰려들고 있다.1905년 국내 최초의 거문도 등대가 건립된 것도 이 때문이다.
거문도는 다도해 최남단에 위치한 세개의 섬으로 형성되어 삼도(三島)라 부르다가 1885~1887년에 영국 해군이 거문도를 불법으로 점령했을 당시 청국 수군제독 정여창 이 당대의 거유(巨儒) 귤은선생의 제자들과 필담으로 대화를 나누다 감탄하여 문장가 가 많은 곳이므로 삼도(三島)를 클거(巨),글월문(文)으로 하여 거문도(巨文島)로 명명 하여 줄 것을 조정에 건의하여 거문도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거문도에 내려 숙소부터 정해야 했다. 현지가이드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숙소가 한군데 몰려 있는게 아니고 여기저기로 분산하면서 4쌍씩 숙소를 배정했다. 숙소가 좋고 나쁜 것은 복걸복이다. 나는 첫숙소인 "하얀장"이란 모텔에 짐을 풀고 밖 으로 나왔다. 저녁식사시간까지는 시간이 많았다.
필자가 머문 숙소 "하얀집"
숙소에 짐을 풀고 자유시간을 이용 "영국군묘"를 찾았다.
길가에 노란 유채꽃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영국군묘
영국군묘에 어느새 일행 대부분이 모였다.
바다를 배경으로-
섬 안의 관광지로 알려진 "영국군묘지"를 찾아 나섰다. 좁은 골목길로 안내가 잘 되어 있었다. 바다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높은 산턱에 자리잡은 영국군묘지로 가는 길에 노 란 유채꽃이 반가이 맞아준다. 어느틈에 전원이 이곳으로 모여들었다. 밭에는 싱싱한 상추가 입맛을 돌게하고 이름모르는 빨간 열매도 탐스럽게 열려 있다. 영국군묘는 고종22년(1885년) 군함 6척과 수송선 2척으로 구성된 영국 해군이 이곳을 점령하여 23개월간 머물면서 병기사고 등으로 9명이 죽었다고 하는데 그 중 화강암 묘비 에 두명의 수병이, 그리고 십자가 무덤에 수병 한명이 묻혀 있다. 묘소 위에 정자가 있어서 정자에서 내려다 보이는 바다풍경이 너무 아름다웠다. 노란 유채꽃을 배경으로 사진을 남겼다.
영국군묘지에서 돌아오니 저녁식사시간이다. "황금식당"에 전원이 모였다. 분쟁이 있다며 나누어 숙소를 정해주며 식당도 미리 예약을 어느집으로 정하면 곤란 하다며 손님이 직접 골르도록 하는 희한한 방식이다. 그래서인지 전혀 호객행위나 덤 핑,혹은 바가지요금이 없단다. 다소 고객은 불편하지만 이 방식도 현명한 방법이라 생각되었다. 싱싱한 자연산 회를 안주로 마시는 술맛은 일품이다. 김인수회장의 인사말을 이어 황영재 초대회장이 선창하는 건배구호를 외쳤다. "우리의 꿈과 이상을 더높게-- 우리의 건강과 행복은 이대로-- 우리의 우정과 사랑을 더 깊게--" 멋진 구호이다. 대신 '우리의 우정과 밤일을 더 깊게'를 장소에 따라 사용하면 좋다고 소개까지 한다.
여인석총무- 너무나 수고가 많다.
김인수회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황영재 초대회장이 건배사와 구호를 외치고
네번째 홀인원의 행운을 가졌다는 신길웅회원
거문도 이름으로 즉석 삼행시를 지은 황기인 회원
미국에서 하마터면 큰일날뻔 했던 골프장 사고를 설명하는 황영석회원
언제나 우스개로 분위기를 즐겁게 만드는 문규원 회원
여성회장(심옥진회원 사모님)의 인사말
황영석회원 부인이 미국 골프장에서 터네이도를 만나 나무가 쓰러지면서 큰 위기를 당 했는데 마침 뒤로 넘어져 조금 다치기만 하였으나 생명은 건졌다는 소개와 당시의 아찔 했던 순간의 얘기를 들으며 천만다행이었다고 모두들 축하를 해주었다. 덕분에 금일봉 이 두번이나 나오고-
신길웅회원은 남들은 생애 한번도 못한다는 홀인원을 네번째 하였다고. 보통 행운이 아니라며 선물까지 준비해 왔다. 황기인회원의 '거문도'라는 즉흥 삼행시도 박수를 받 았다. "거친 바다에 문을 열고 도약하자"--
노래방에서
모두들 가수를 뺨치는 노래솜시였다.그중 필자가 뽑은 가수왕은 신길웅회원 사모님
술에 취하고 분위기에 취한 일행은 그 분위기를 그대로 살리기 위해 "너랑나랑"이라 는 소주호프집 노래방으로 갔다. 홀 전체를 사용하면서 거문도의 아름다운 추억의 밤을 만들었다. 즐거운밤,신나는 밤,추억의 밤이었다.카메라로 그 즐거운 표정을 담 느라 바쁜 시간을 보냈다. 내일은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백도관광날이다. 아침 7시에 백도유람선을 타야 한단다. 두시간 유람선을 타고 백도를 둘러보게 되는 데 백도는 무인도 섬으로 착륙을 금하고 있어서 배 위에서만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백도 유람선을 타고 백도의 아름다움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으나 아직 그 이름 만큼 대중적 주목을 받 지 못했다. 접근이 쉽지 않다라는 의미일 것이다. 아마 신이 마지막 까지 숨기고 싶은 곳이 있다면 이 백도의 비경일 것이다. 백도는 꼭 거문도를 거쳐야 한다. 일반적으로 거문도 백도를 가려면 여수만 우선 알 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거리상 더 가까운 녹도항에서 출발하는 경우도 많다.
거문도에서 1시간 남짓 물길을 가르면 다다를 수 있는 백도는 남해의 절경 가운데서 도 첫 번째로 꼽을 만한 명승지로, 다도해 여행 중 한 번은 들러가야 하는 '신비의 섬'이다. 거문도 동쪽28㎞ 해상에 39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무인 군도 백도는 면적 322,414㎡이며, 북쪽에 위치한 섬들을 상백도, 남쪽에 위치한 섬들을 하백도라 한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백도(白島)라는 이름은 일찍이 섬의 봉우리가 백(百) 개 에서 하나(一)가 모자라 흰 백자를 섰다는 설과, 멀리서 바라보면 섬 전체가 흰빛을 띠고 있는 형상에서 백도라 불렀다는 설이 있다. 이와 함께 태초에 옥상 황제의 아들이 아버지의 노여움을 받아 귀양왔다가 용왕님의 딸에 반해 풍류를 즐기며 세월을 보냈다. 옥상 황제는 비록 아들을 뉘우치게 하려고 인간 세상에 귀양을 보내기는 하였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몹시 보고 싶어졌다. 신하들을 내려보내 데려오게 하였지만, 데리러 보낸 100명의 신하들마저 돌아오지 않자 그들을 모두 벌주어 크고 작은 섬이 되게 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아직 날씨가 완전히 풀리지 않아 이른 아침공기는 차갑기만 하다. 아침식사는 유람을 끝내고 돌아온 후에 하기로 하고 어제 받은 과자와 우유로 간단히 요기를 하고 배에 올 랐다. 이미 홍도에서 느낀 그 풍경이다. 선장이 우스개소리를 섞어가며 섬을 소개한다. 섬이름도 누가 지었는지 그럴듯하게 잘도 지었다. 어떤 것은 억지이름 같기도 하다.
초쾌속 백도유람선
아침해가 바다위에 떴다.
각시낭군바위
상백도 등대
물개바위
삼선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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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도의 아침햇살이 눈부시게 아름답다. 유람선으로 약두시간 휘돌아 보는 상백도와 하백도의 모습은 그야말로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어찌 서툰 필력과 사진으로 표현 할 수 있을까 두렵기만 하다. 백도의 기암 절벽들은 그 특이한 생김새로 각각의 바위 마다 고유한 이름이 붙어 있어 형상과 이름을 함께 연상하면 더욱 즐겁다.
선장이 손으로 가리키는 곳을 보면서 바위이름에 연신 고개를 끄떡이며 카메라 샷다 를 누른다.나중에 보니 어느바위인지 헷갈리기 십상이었다. 먼저 상백도를 돌고 팔자로 하백도를 돌았다. 상백도 바위섬들은 물새바위,탕건바위, 일자바위,매바위,야구공바위,쌍둥이형제바위,물개바위,지네바위,이혼바위,삼선암, 곰바위,병풍바위,시루떡바위,블록(고기이름)바위,노적섬바위,고래등바위,봉황새바위 그리고 하백도에는 석굴바위,빨래판바위,새말단바위,코끼리바위,장군바위,각시낭군 바위,바둑판바위,남자거시기바위,궁성바위,도끼바위,진돗개바위,감투바위,칼등바위, 스님바위,형제바위,성모마리아바위,피아노바위,거북암수바위,각시바위,쌍돗대바위, 흔들바위,왕관바위,굴바위 등 수많은 기암들이 늘어서 있다.
두시간에 걸쳐 백도관광을 마치고 식당으로 바로 가서 아침식사를 하였다. 숙소에 짐을 맡긴채 10시반 등대관광을 하러 유람선을 탔다. 불과 배로 5분만에 등대 로 가는 진입로에 도착했다. 걸어서 가자면 한시간 거리란다. 오르막 숲길은 1.35km 의 동백숲길이었다. 동백잎이 하도 윤이 나서 반짝거린다. 누군가 참기름을 발랐냐고 물어본다. 이토록 윤기나는 나무잎은 바람불고 공기맑은 바닷가에 자라는 동백과 후 박나무 그리고 천선과나무잎만이 갖는 특징이리라.
등대까지 유람선을 타고
등대로 가는 길
짙푸른 청옥색 바다물에 흰손수건을 담구면 파랗게 물이 들것 같다.
전망대에서
기암들이 걸음을 멈추게 한다.
희귀종 흑비둘기
나무막대 지휘봉으로 봄노래를 지휘하는 여인석 총무
역사를 자랑하는 거문도등대
거문도등대 노래비에서 황영재회장 사모님
잔디밭에서 내려다 본 풍경
정자 관백정(觀白亭)
어지럽게 칼질한 것 같은 바위군
가져간 회를 안주로 소주파티
봄야유회장이다.
거문도노래비 앞에서
등대를 배경으로 한컷 더
휴식터에서 합창대회까지
카메라 앵글만 잡으면 그림같은 풍경이 그려진다.
기름으로 닦은듯 반질거린다.
옥색 잉크를 쏟아부은 것 같은 바다풍경에 넋을 잃는다. 새소리가 더욱 마음을 설레게 한다. 전망대로 가는 길에 쉼터가 있었다. 쉼터에서 봄노래합창의 아름다운 노래소리 가 섬안을 메아리친다. 드디어 등대에 도착했다. 등대계단을 걸어서 오르니 숨이 차 다. 누가 세었는지 155계단이란다. 등대 옆 정자에서 쉼터 자리를 만들려 했으나 바람 이 많이 불어 잔디밭으로 자리를 옮겼다. 술과 먹을 것을 내놓고 우스개소리로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일행을 즐겁게 하는데는 역시 문규원사장이 으뜸이다. 등대에 오른 기 념사진을 남기고 올라오다 봄노래를 불렀던 쉼터로 다시 내려가 합창대회를 열었다. 오가는 산행객들이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여인석총무의 지휘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12시반까지 배를 타야했다. 시간이 이처럼 느긋할 수가 없다. 세상사는것이 이처럼 여유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해본다. 거문도 황금횟집에서 벌써 세끼를 먹는다. 여수로 돌아가는 배가 4시30분이라고 한 다.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식사를 마치고 아내와 나는 어항옆에 보이던 연도교(섬과 보에 나섰다. 산으로 오르는 언덕길까지는 해변을 따라 가는 평탄한 길로 경치도 좋고 도중에 해수욕장도 있었다. 신축 호텔은 3층건물로 짓고 있었는데 내년 8월에 완공된 다고 한다. 위치가 너무 좋았다. 시원히 앞바다가 내다보이는 명당에 자리를 잡고 있 었다. 길가에는 유별나게 유채꽃이 많이 피어 있었다.
황금횟집의 마지막 식사
연도교 삼호교(서도와 고도를 연결한다)
내년 8월에 개통될 신축호텔 조감도
연도교를 건너 산보에 나선 박종일회원 사모님과 필자 부인
고동,물미역,해초를 캐는 섬 여인들
거문도 상수원 물탱크
방파제에서 낚시하는 사람들
등산코스인 신선바위와 보로봉으로 가는 등산로가 나타났다. 당초엔 이 등산로를 따 라 등대까지 트레킹을 가기로 예정되어 있었는데 일정이 바뀌어졌다. 한번 오르고 싶 은 충동을 느꼈으나 나 혼자가 아니라 참았다. 돌아와도 시간이 남아 반대편 방파제쪽 으로 산보를 이어갔다. 방파제에는 낚시하는 사람들이 바다낚시대를 드리우고 시간을 낚고 있었다. 좀더 가니 식수를 저장하는 물탱크가 나오고 해변으로 섬여인들이 고동 과 물미역,해초를 캐는 모습이 보였다. 우리도 바위를 엉금엉금 기어서 아래까지 내려 가 그들과 대화도 나누었다.
4시반 정각에 "오가고"호는 여수를 향해 출발했다. 갈때와는 달리 2시간이 채 안걸렸 다. 그러나 파고가 얼마나 센지 겁이 날 지경이었다. 토하는 사람도 나오고 비닐주머 니를 나누어 주었다. 어제 들어갈 때와는 달리 아무도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파도 가 세니 잠도 오질 않고 어서빨리 도착하기만을 기다리면서--
여수항 바로 앞 식당에서 이 지방 별식인 서대회무침으로 비빔밥을 만들어 먹었다. 심플하면서도 별미였다. 비행시간은 8시30분발이다. 모두 즐거운 여행을 마치고 행복 한 마음으로 비행기에 올랐다. 1박2일의 짧은 여정이었지만 결코 바쁘지 않고 여유로 운 그러나 볼거리도 많았던 여행이었다. 이번여행을 기획하고 이끌어준 김인수회장과 여인석총무의 세심한 배려와 한없는 봉사정신에 모두들 감동하고 박수를 보낸다. 졸필의 여행기를 읽느라 수고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사진은 CD에 구워 4월모임시 나누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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