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는 김민해 목사님과 동지 여러분들께.
김민해 목사님으로부터 오랜만에 전화가 걸려와 반갑게 받았습니다.
여러 해 동안 순천의 바닷가에서 작은 대안학교를 꾸려가고 계신 줄은 알고 있었습니다만,
어떻게 지내시는지 구체적인 근황은 모르고 있었는데, 이제 ‘마을인생대학’을 시작하신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정말로 축하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서울이라는 참으로 비인간적인 도시에서 잡지를 만든다는 핑계로 이렇다 할 보람도 없는
나날을 지내다가 이제 무기력한 늙은이가 되어버렸습니다만, 그래도 여러분들과 같은 건강한 생각과 맑은 정신을 가진 분들이 세상의 소금이 될 일을 시작한다는 소식을 들으면, 저도 모르게 새삼 가슴이 설레면서, 매우 부럽다는 심정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지금 세계의 상황을 생각해보면, 마음이 한없이 무거운 것이 사실입니다. 오죽하면 10대 아이들이 기후변화문제 때문에 동맹휴학을 결의하고, 거리로 나와서 데모를 하겠다고 할까요. 자식들의 미래를 조금이라도 생각하는 어버이들이라면 눈물을 흘리며 무릎을 꿇고 아이들에게 백배 사죄를 해야 할 상황입니다. 그리고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 더 이상 이 세계를 망가뜨리지 않겠다는 비상한 각오를 하고, 그것을 즉각 실행으로 옮기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세계는 이기심과 탐욕과 폭력이 대세를 이루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잘 아시다시피, 이 상황이 근본적으로 변화할 기미는 아직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더욱이 슬픈 것은, 이러한 세계의 암울한 상황에 대해서 많이 걱정하는 사람들 중에도 이제는 너무 늦었다고, 체념하는 경향이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는 점입니다. 하기는 논리적으로 생각하면, 기후변화뿐만 아니라 이미 너무나 많이 손상된 자연환경과 인간사회를 다시 치유하거나 복원한다는 것은 이제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기왕의 습관대로 무책임하게 살아가거나, 혹은 절망에 빠져 있어야 할까요.
물론 그 어느 쪽도 우리가 택할 수 있는 길은 아닙니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 상황일수록 우리는 인간이란 과연 무엇인가, 어떻게 사는 것이 정말로 인간답게 사는 것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으로 태어나 살아가는 우리의 가장 기초적인 윤리적 의무일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가 지금 세상의 미래가 암울하다고, 희망이 없다고, 단정하는 것도 크나큰 교만심의 발로인지도 모릅니다. 잘 생각해보면, 이 우주와 자연과 세계의 주인은 우리가 아닙니다. 그리고 아무리 미래가 어둡다고 하더라도 과연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될지는 누구도 정확히 알 수가 없고, 설령 파국이 닥친다고 하더라도 거기에는 우리의 머리로는 알 수 없는 어떤 섭리가 작용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적어도 그렇게 겸허한 자세로 생각하면서 우리의 동요하는 마음을 다독이는 지혜가 지금은 무엇보다 필요한 때라고 저는 믿습니다.
저는 ‘지혜’라는 말을 썼습니다만, 다른 말로 하면, 우리의 삶을 근원적으로 있게 하는 보이지 않는 원리에 대한 근원적인 ‘믿음’이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혹은, 종교인이라면 간단히 ‘신앙’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요컨대,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에게는 언제나 그래왔지만, 지금과 같은 생태적, 사회적, 실존적 위기가 거의 극단적인 상태로 된 상황에서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필요한 것이 그러한 지혜, 믿음, 신앙일 것입니다.
마하트마 간디는 근대문명의 파멸적 경향을 누구보다 명확히 간파했던 선각자였습니다. 그는 서구식 근대 산업문명이 제동을 받지 않고 세계 전역으로 확대된다면, 그것은 세상에 축복이 아니라 크나큰 저주가 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그리하여 세계와 인간을 살리는 구원의 원리로서 간디가 제시한 것이 ‘마을 자치’라는 이상이었습니다. 여기서 마을이란, 철저히 공생의 원리에 입각한 공동체, 즉 각자가 스스로를 낮추고--사람뿐만 아니라 자연만물을 포함한--타자를 드높임으로써 세계가 풍요롭게 되는 기적이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삶의 공간을 뜻하는 것일 것입니다.
물론 이미 너무나 복잡하고 방대해져버린 산업문명체제 속에서 지금 ‘마을’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보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 산업문명은 이제 수명을 다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여기서 방향전환을 하지 않으면 임박한 파국을 면하기는 불가능할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마을’은 단순히 피난처가 아니라, 세상의 미래를 약속하는 가장 확실한 희망의 등대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출발을 마음으로부터 축하드립니다. 앞으로 여러분들의 손으로 만들어질 ‘마을’의 모습이 이 사회의 많은 사람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끼치기를 바라고, 그렇게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2019년 3월 12일
김종철(녹색평론 발행인)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