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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개벽을 꿈꾸는 시 01
공중 전화기 앞에 서면
공중전화기 앞
망설이는 사람들
어디에 어디에
전화를 거는 건지
나도 따라
한번쯤 걸어보는 건
그래도 누군가
있을지 모를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연인들
팔짱 끼고 걷는
거리에 서면
하늘이 뿌옇게 흐리다
사람들 줄지어
드디어 차례가 오면
목적없는 전화 긴 시간의 통화
기다림의 시간 아까워
나도 따라
다이얼을 돌린다
공중전화기 앞에 서면
괜시리 망설여지는 건
그래도
누군가 있을지 모를
그리움이 있기 때문이다
인생개벽을 꿈꾸는 시 02
“그리움”이 “허상”에 기대고 있다
그리움이란 단어를 노트 속에 동그란 종이로 접어, 그림이라는 걸 그려본다 새벽은 아직 깨어나지 않았다, 우리에게선 떨어나가지 않은 천국의 시체들이 黎明(여명) 속에 하나둘 살아나고 난, 이 어둠에서 조금도 물러서지 않는다
그리움이 허상 속으로 기어들어간다 움츠린 어깨, 더욱 더 움츠리고 “너”라는 좁디좁은 동굴 속으로 빨려드는 그곳은 텅빈 가슴, 아무도 없다 젖무덤의 향내 나는 입술 사이 한숨이 새어나오고, 그․립․다
다이아 색채나는 반짓가락 만지작거리면 허영에 들뜬 마음이 움직인다, 바람이 지나친 바람에 쓰러진 나무들, 廟塔(묘탑)에 부은 시선들, 너마다 등을 돌려, 야윈 풀들은 꿋꿋하다 그리움은, 없․다
좁은 어둠 사이로 허상이 그리움을 잡아끌고, 살아있는 시체가 묻히고, 몰아치는 폭우가 무덤을 짓밟고 난, 그리움이란 단어 속에 들어가 “허상”에 기․대․고․있․다
인생개벽을 꿈꾸는 시 03
열대어네 집
내가 그들 곁으로 가면
밥 달라고 아우성
손 닿을세라 부리나케 튕기는
치어(稚魚)들의 몸부림,
먹이인지 적인지
내 살 쪼아대는 그네들의 놀이,
엉겁결에 새 살이 돋았다 사라진다.
시간따라 출렁이는 물결의 삶, 삶들.
약한 고기는 죽어서 힘센 이들의 밥이 되고
힘센 이들의 세월은 길기만 하다,
몸부림 사라진 그들의 오만한 몸짓.
그러나 오늘도
내가 그들 곁으로 가면 밥 달라고 아우성
닿을세라 부리나케 튕기는 성어(成魚)들의 안간힘.
인생개벽을 꿈꾸는 시 04
마음이 가는 곳에
마음 먹은 대로 가다 보면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
흘러가는대로
따라서 가다보면 가다보면
무엇이 무엇인지
머지 않아 알게 되겠지
구름은 아니더라
세월도 아니더라
나를 일깨우는 건
무엇이 무엇인지
중요하지 않더라
진심으로 진심으로
진실한 마음 하나 안고
그저 가다가 보면은
무엇이 무엇인지
저절로 알게 되더라
혼자서는 절대로 못해도
서로 도와 가다보면
저절로 알 수 있겠지
모두가 사랑인 날이
언젠가는 오게 되겠지
무엇이 무엇인지
하나도 몰라도
마음 가는 대로 흘러흘러
가다보면 가다보면 가다보면
인생개벽을 꿈꾸는 시 05
비 둘 기
자유를 바라며
날으는
새우리 안의
비둘기.
누군가,
열은 문을
차고 나오려는
날개짓.
푸른 허공
문 사이
흩어지는 그들의
한 맺힌
지저귐.
먹구름
몰려들어
그들을 버린
하늘.
비 뚫고
날아 오르는
새우리 안의
봉우리.
그저 한번
몸부림치던
날개 안의
설레임.
인생개벽을 꿈꾸는 시 06
네가 사랑이란 놈이냐?
커피
두스푼에 설탕 두스푼?
진한 커피색
조금은 쓴
맛이 있네
그 속에
나같은 너가
보이고 있네
그런 네가
나를 젓고 있어
찻술로 저으면
너가 그속에 흐물거린다
나를 마시고 있는
네가
사랑이란 놈이냐?
인생개벽을 꿈꾸는 시 07
그 대 로
밤 피어오르듯 별은
어제
그 자리에 빛을 내고
뜨거운 열기로 타오르는 사막에
오늘
목마름을 덜어내는
오아시스
사라지듯 기어이,
달아오르는 날빛
내일
또
그대로
인생개벽을 꿈꾸는 시 08
마 음
맑은 하늘,
눈이 내리고
그 안에
떨어지는 나라면
흐린 하늘,
눈이 내렸고
그 속에 묻혀 사는
그것도 나.
바람 부는 허공.
우뚝 선 눈사람.
거기에
떨고 있는 나라면
밝은 햇살,
시간의 눈빛에
침묵으로 사라지는
그것조차 나.
인생개벽을 꿈꾸는 시 09
나는 자꾸만 굵어지는 빗방울에 대해서 썼다
해가 지도록
낭송할 詩를 찾지 못해
새벽을 찾아 나는 헤맨다
모모 박사가
나는 詩가 아니므로
<별 세 개가 보였고
창문 밖으론
까치들이 떼지어 날았다>
같은 詩를 써보라고
고개 끄덕이며 눈인사를 했다
새벽을 찾아 갔지만
<별 세 개는 보이지 않았고
창문 밖으론
까치들도 떼지어 날지 않았다>
해가 뜨기 전에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비를 맞으며 쓰는 詩는
지나치게 감상적이 될 거라며
눈웃음 가득 머금은 부드러운 음성으로
모모박사가 말했다, 나는
자꾸만 굵어지는 빗방울에 대해서 썼다
그러자 자꾸
눈물이 내리기 시작했고
나의 쏟아지는 눈물을 바라보는
이맛살 찌푸린 모모박사의 얼굴에서
밤하늘에 없었던 <세 개의 별>과
그 위를 <떼지어 날아가는 까치들>이
자꾸만 굵어지는 빗방울 속에서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인생개벽을 꿈꾸는 시 10
거울과 나
당신은 멋쟁이, 신사
한낱 그리움으로
그대를 맞겠습니다
저것은 추남,
나의 실망감으로
너를 보겠습니다
그러나 이건
소리내어 무너지지 않는
부끄러워 보이지 않는
나의 모든 것
이제는 그를 등지어
아쉬움으로 새겨질
너의 겉모양
당신을 떠나는
뒷모습으로
너를 기억하겠습니다
인생개벽을 꿈꾸는 시 11
동 행․1
- 水國에서
오늘부터
나의 이름을
비워두기로 합니다
이 여백은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바다
몸을 맡겨본다.
어떠한 상처도
남아있지 않을 것 같은 파도,
어떠한 상처도
남아있지 않을 것 같은 바람.
그러나 오늘부터
나의 이름은 비워집니다
언제나 오늘부터.
인생개벽을 꿈꾸는 시 12
동 행․2
- 술취한 자가 술취한 것도 모르고
술에 취해 웃고 있다
난 술취한 자가 왜 웃고 있는지도 모르고
술취한 자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술취한 자는
그래도 웃고 있다
나는 숨을 멈추었다
오늘만이라도
살아내어 보자
누구에게나 있을지 모를
찬란한 하늘의 꿈,
화사하게 시들고
바람마저 세찬
터엉 빈 바다로 달려
사람들의 숨소리 느껴지는
생채기라도 내어
하루를 지키어내는
저 고운 하늘 저 고운 바다 저 고운
바람이 불러내는 오늘,
하루만이라도 살아내어 보자
어쩌면
여엉영 끝나지 않을지 모를.
(사람들은
새벽빛 불어오는 오늘을
내맘대로 걷고 있다)
인생개벽을 꿈꾸는 시 13
자갈과 바위
1.
그의 주위는 온통 자갈밭이다
때로는 그가 나였으면 하기도,
나이기도 하다
움직일 줄 모르는 최악의 움직임
누구도
나를 움직이지 못한다
꿋꿋한 자갈들의 세상은
유동적이다
나는
그들의 세상을 보지 못한다
나를 옮겨 보려는
사람들의 노력
누구도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
손에 이끌린 자갈 하나가
나의 곁에 와 앉는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자갈들을 온통 짓밟아도
아무말 하지 않는다
즐거운 그들의 세상에
나도 뛰어놀고 싶다
2.
그들의 가운데에
바위가 있다
때로는 그들이 나였으면 하기도,
나이기도 하다
사람들의 손에 이끌린 나는
상처 난 몸투성이를 이끌고
바위 밑으로 숨어들었다
지친 몸들을 이끌고
사람들은
바위 틈에 와 앉는다.
누구의 눈에도
띄고 싶지 않은
나의 노력
누구도
나를 찾지 않는다
휴식이 필요한
누군가의 몸에 짓눌려도
아무 말 하지 않는다
편안한 그의 세상에서
나는 낮잠을 청한다
나도 그처럼
누군가의 휴식이 되고 싶다
3.
나는
바위가 되었다가
자갈이 되기도 한다
나는
바위가 되고 싶기도 하다가
자갈이 되고 싶기도 하다
또 나는
바위가 아니기도 하고
자갈이 될 수 없기도 하다.
인생개벽을 꿈꾸는 시 14
펭 귄
뒤로 막은
거대한 얼음덩이
앞은 출렁이는
푸르름
끝내
녹지 않는
바닥 위에 존재한
나의 일상(日常)
문득
흔들리는 몸짓에
동무들 지나가고
하늘을 우러르는
나의 一讀
조금
조금
뒤뚱이며
나아가는
나의 걸음은
파도 헤치며
부리로 부여잡는
파란 물결 물고기
잡으러 잡으러 잡으러
인생개벽을 꿈꾸는 시 15
웅크리고 앉아서 (패러디시편·1)
한 잔의 毒酒를 마시고 우리는
웅크리고 앉아 이야기한다
집구석에서, 골목길 모퉁이에서, 건물 앞 현관문에서
웅크리고 앉아 우리는
우리의 알 수 없는 미래와 지나간 과거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매일 웅크리고 앉는 우리는
사랑과 이별에 대해서, 신문에 난 오늘의 기사에 대해서, 돈 50원 때문에 싸웠던 오늘 아침의 그 여자와 남자에 대해서
웅크리고 앉아 이야기한다 웅크리고 앉아 우리는
매일 이야기한다 사라지는 것과 존재하는 것, 영원한 것과 영원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각자의 추억과 각자의 할 일에 대해서, 아아 그렇다
우리는 각자에 대해서 각자의 이야기를 하고, 각자의 이야기를 듣는다
우리는 매일 같이 있어도 혼자 있고, 혼자 있어도 같이 있다
우리는 매일 같이 웅크리고 앉아 웅크린 이야기를 한다
우리는 웅크리기 전에는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는다, 웅크린 후에야
우리는 비로소 우리의 이야기를, 각자의 이야기를, 저마다 떠벌릴 수 있다, 그래야만 우리는 서로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간 숙녀에 대해선,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는다)
웅크리고 앉아서, 웅크리고 앉아서.
인생개벽을 꿈꾸는 시 16
네가 보일 때까지
바람 속으로 들어가라
가서, 너의 눈물을 보고
세월이 앗아가버린
아픔에 대해서 이야기하라
후회는 침묵에서 오는 것
수많은 상처들에 둘러쌓인
절정의 고비에서
이제는 돌아오지 않는
헤어짐의 나날, 속물처럼
빼앗겨버린 명예와
실추된 너의 앞날에 대해서
아픔으로 이야기하라
이별만이 슬픔은 아니듯
웃음과 울음 사이에
가장 큰 아픔이 있음을
너의 눈으로 말하라
눈빛의 강한 열기가 너를 붙들 것이다
이제, 눈으로 들어가라
가서
너의 열정에 대해서 말하라.
돌아오지 않는 것들은 내일에 있다
바람처럼 빼앗겨버린 날들에 대해
슬픔으로 이야기하지 마라, 눈빛으로
점점 더 슬퍼하지 않는 눈빛으로 끌려가는 곳
이별은 더 이상 슬픔이 아니니, 어둠에 서라.
어둠에 서서 빛을 보라, 빛을 보고 다시
어둠을 보라, 그 속에서
너를 보라, 네가 보일 때까지
네가 보일 때까지.
인생개벽을 꿈꾸는 시 17
적색 신호등을 켜다
어데다 호소를 하나
길은 앞뒤 막혀 빵빵거리는 아침
초보운전 파란색 딱지 시야를 가린 출발은
컨디션 점검에 앞서, 기름
떨어져가는 주유소를 지나치면 다음
주유소는 항상 불길하다
적색신호등 멈칫거려 조심조심 몰아가는 차의 언덕,
브레이크와 엑셀이 교차하는 순간
거리의 움직임은 슬로우모션으로 눈앞을 지나친다
보이지 않는 거리의 차들, 제멋대로 달려
나도 달린다 제멋대로의 삶이 있고 색이 바랜
도로의 어디선가 들리는 교통의 호각소리
시내의 복판은 온통 소음 뿐.
네온사인 흔들리는 일방통행에 들면
시나브로 지나치는 분주한 인간들,
조급한 마음으로 비상깜박이를 켜면
불안한 시동소리에 움츠린 어깨가 들썩인다
기회 엿보다 나온
녹색등만의 일방통행로.
이쯤에서 돌아서자
거리의 어둠이 도시의 어둠으로 바뀌어
쉬임없이 달려드는 세월이 오기 전에
적색 신호등을 켜자
신호위반의 범칙금이 부과되어 버린
도시 한복판의 적색 신호등,
들켜버린 어둠 속으로 돌아서다
인생개벽을 꿈꾸는 시 18
이상한 교수님
이상한 교수님은
그래요, 그만해요, 됐어요, 라는 어눌한 말투로
내기억 속에 존재한다 아차!
교수님은 외래교수였지 아니지 외래교수님은 시인이셨지 아니야 아니야
출판사를 경영하는 사장이라셨지? 그분이 누구더라?
외래교수 혹은 시인 혹은 사장 그 중 하나였나? 그 중 하나라면
이상한 씨의 강의를 듣고 있는
나는 누구의 제자가 되지? 시인 아니면 외래교수 혹은 사장님?
존재했던 기억은 나를 떠나고
그럼 이제, 강의를 시작하지요,
다양한 생각들이 이상한씨의 학교를 벗어나고 있다
인생개벽을 꿈꾸는 시 19
동행 3
- 바람이 불러내는 오늘
하루만이라도
오늘은
새의 날개를 접어
흰 빛 날리는
너무너무 화창한
꿈이었다
햇살 달려
너의 곁에 가 닿으면
오후의 나른한 한숨 쉬어본다.
날개짓은 멈추지 않고
오늘은
흰 살촉 날리는
너무너무 화려한
꿈이었다
인생개벽을 꿈꾸는 시 20
歸 無 (패러디시편.2)
나 全無로 돌아가리라
어둔밤 닿으면 일어서는
세속 더듬어 손에 손 잡고
나 全無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없이 나 혼자
별빛보며 놀다, 있음 손짓하며는
나 全無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있음 끝나는 날
가서 있었음이라고 증명하리라
인생개벽을 꿈꾸는 시 21
동행 4
- 떠나지 않는 것들은 다
내일에 있다
오늘이 있었더라면
나는 숨을 쉬고 싶어
안달한 사내애 하나
문득
내일로 달려간다
열려진 창문 네모난 바람이
마치
꿈인 듯 싸늘하다 어제와
함께 있는 여름은
반가운 소식이라도 검은
구름 드리우고
바람은
안달한 사내애 하나 데불고
내일이란 종착역에 도착해 있다
인생개벽을 꿈꾸는 시 22
왜 사냐건 (패러디시편 3)
왜 사냐건
묻지요
왜 사냐고
왜 묻느냐고
묻지요
그리곤 웃지요
왜 사냐고
묻는데
왜 웃느냐고
웃지요
인생개벽을 꿈꾸는 시 23
동행 5
- 오늘만이라도
살아내어 보자
술취한 자의 숨소리
가슴 가득 고여오면
무엇이 그리도 괴로운지
꺽꺽대며 시대를 토해내듯
쏟아내는 오물덩이들
말을 잃은 "나"란 놈이
허우적대고
보이지 않는
오만한 자의 주먹
우우욱- 술취한 자가
벌러덩 누워 잠을 잔다
오늘을 살아내었다는 안도감에
새근새근 잠을 잔다
인생개벽을 꿈꾸는 시 24
동행 6
- 하늘에게
나는 지금 너를 만나려 하는데
어제부터 가슴이 두근거렸다
인생개벽을 꿈꾸는 시 25
동행 6
하늘에게
나는 지금 너를 만나려 하는데
어제부터 가슴이 두근거렸다
왜 그런지 너의 떨림은 나의 인내심을 자극시켰다.
너는 오늘따라 유난히도 투명했다
나는 지금 너를 만나는데
아직도 가슴이 떨린다.
왜 그런지 나의 떨림은 너를 그린다.
너는 오늘따라 유난히도 수척하다.
너와 헤어지려는 이 순간
나의 아쉬움이 너를 긴장시키려 한다.
왜 그런지 아쉬움이 너무도 많이 남는 나는
네가 슬퍼보여 뒤돌아서지만
너는 멀리 사라져버렸다.
이제 내일, 너를 만나려 하는데
왜 그런지 나는
벌써부터 가슴이 떨린다
- 맑은 하늘을 볼 수가 없다. 아니, 하늘은 언제나 맑지 못하다. 현실은 언제나 어둡다. 사람들이 죽어나간다. 매일, 대형사고가 잇따른다. 평화는 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하늘과 데이트를 한다. 맑은 하늘과. 언젠가, 떨지 않고 만날 수 있으리란 기대를 하면서.
인생개벽을 꿈꾸는 시 26
XX 스승과 앉아
패러디시편 4
증 오 - 영 원
담 배 연 기 - 시 원
디 스 - 천 원
말 보 로 - 천 원
사 랑 - 만 원
시를 <가르치겠다>는
XX 스승과 앉아
담배연기를 마신다
돈 안 드는 영원, 가장 비싼
사랑, 시원한
국산담배???
인생개벽을 꿈꾸는 시 27
사발면
몰라야 했다
나 그리움 쉽게 타오르는 밤
뜨뜻미지근한 커피 안에서 누군가
나를 도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시간이 지나면
결국은 눈이 퉁퉁 불어 터져
씹히지도 않는 면발,
새로워야 했다
인스턴트 부풀리는 시간 점점 짧아지고
눈 껌벅일 새도 없이 내 안에 그리움이 들어찬다
그래도 추위를 모르는 참새들은 낳은 편이다,
자위(自慰)를 하는 순간 이미 시들어버린 국물,
이겨내야 했다
뜨뜻미지근한 커피 안에 내가 있고,
내 밖에 서 있는 사발면의 낡은 기억들.
목숨 건 도전이라면 낯익은 정신이지만
새로움 속에서 도전해야 했다.
후루룩.
사발면 먹는 소리가 여기저기 정겹다
인생개벽을 꿈꾸는 시 28
찻 잔
내가 비워졌을 때
비로소 생겨나는 맘
얹혀진 가스렌지에는
한 점 지나가는 인연도 없이
삶의 일부가 증발하고
신성한 냉수 한 사발에
슬쩍 담겨지는 소망,
채우고 싶다
끊이지 않는 목마름.
그러나
나는 또 비워지고
오랜 노동의 숨결로
노을 진 입술 훔치는 하루,
땀이 깊게 밴 일상들.
내가 비워져야 그들이 채워짐을
그들이 비워져야 내가 채워짐을
비로소 보게 되는 그런 오후,
하늘이 한 점 무지개를 띄우며
내 작은 소망을 일깨우고 있다
인생개벽을 꿈꾸는 시 29
가을 땡볕 아래서
할아버지 멍하니 하늘 보고 계신다
지나간 사람들을 보면서 지나간 사람들을
추억하고 계실지도 모른다
가을 땡볕 아래서
할아버지 졸고 계신다
꿈울 꾸면서 며느리랑 손자랑
행복한 하루를 보내고 계시나 본데,
할아버지 갑자기
눈물은 왜 글썽거리시는지
가을 땡볕 아래서
꼬마애들 소꿉장난 하고 계신다,
여보당신 하면서 재미있는 장난을 치시나 본데
할아버지 연신 갸우뚱 하며 쳐다보시다
문득 얹어지는 입가의 미소
하늘을 지나가는 구름이
자꾸만 햇살을 가려내신다
인생개벽을 꿈꾸는 시 30
고백 버스
고속버스 타고
부산으로 광주로 강릉으로
가던 중 쉬마려운 걸
이렇게 오래참아 보긴
처음이라고
그런데 그 사람 생각을 하며
고백조차 못하고 이렇게
끙끙앓긴 처음이라지
몇 시간의 오줌보가
겨우겨우 휴게실에 내렸을 땐
하늘을 나는 기쁨이었는데
경험상 고백은
지옥을 걷는 아픔이었던가
처음엔 아무말 못하다가
겨우겨우 고백을 하면
콧대가 세어지는.
아무말 못하고 그 사람을
만나면 웃어주고 그저
잡담만 하고 그러다
집에 와선 또 그 사람
생각만 하지
고속버스에는 화장실이 없어
너무 불편해 기차를 이용하면
언제나 배출구는 열려 있는 법
처음 기차를 탈 땐
그것이 그렇게
후련한 일인 줄 몰랐지
그런데 지금 나는
너무 숨이 막혀 버스에 타고 있는
그 사람 때문에 숨이 막혀
언제쯤 화장실 보이는 휴게실로
나는 내려갈 수 있을까
언제쯤 나는 버스를 내려
기차에 승차할 수 있을까
인생개벽을 꿈꾸는 시 31
신도림 환승역
여기는
지하로 내려가는 승객들과
올라가는 승객들이 엇갈리는
신도림 환승역입니다
즐거운 인사를 나누기엔
모두가 바쁘기만 한 출근길
사람들이 내는 길을 따라가면
겨우겨우 승강장에 닿을 수 있죠
어스레한 빛이 소곤소곤 나오려 하는데
안개가 온통 세상을 감싸 버렸어요
지하로 내려간 승객들은 까맣게 모르는
지상은 두 갈래 자연이 티격태격 사랑을 하네요
한참이나 사랑을 하고요
그러다가 태어난 너무도 환한 햇살.
햇살을 받고 다시 태어나는 사람들
오늘은 참 따뜻할 것만 같아요
지상으로 올라가는 승객들과
내려가는 승객들이 마주치는
서로서로 안녕이라고 인사하는
여기는 신도림 환승역입니다
인생개벽을 꿈꾸는 시 32
산 바라기
잘 있거라, 산천초목 풍경들아
멀리 보이는
다른 산만 자꾸 바라보는 당신을
난 감당할 수 없어,
잘 자거라 나무들아
산천초목 어우러져 흥겨운
회식(會食)마저 비참하여,
당신은
저 산에 가려니 설렌다, 설레인다
자꾸만 말하지, 나는 당신이
저 산에 반해 버릴까, 다시는 오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당신을 보내네.
기다릴 수 없어 여길 떠나려니
혹시나 당신 저 산이 아니었나
실망하고 다시 돌아올까 염려되어
여길 뜨지 못하고 당신 뒷모습 망연자실(茫然自失)
바라보고만, 바라보기만.
인생개벽을 꿈꾸는 시 33
모든 고속도로에서는 새들에게 우선권이 있다*
새들이 떠나는 고속도로에서는
백킬로미터 이하라는 푯말이
심각한 웃음을 띠고 그들을 통과시킨다
아직
보도블럭 위의 설치된 간판들은
제 몫을 다해 멋대로이다, 가는 길
움직임마다 놓인 피사체.
비상(飛上)하는 저들의 힘찬 날개짓.
승리지상주의가 짓밟힌 흔적들.
짓밟힌 것은 저 사람,
사람들을 위해 존재하는 법.
끝없이 변화하는 법.
머물 곳을 찾아보지만
이미 한번 돌아간 도로에
후진은 없다. 유턴도 없다.
가끔 지나치는 간판들
모두 들떠서 아롱거리다가
서민들을 위한다며 일렬로 일렬로,
함께 고속도로를 탄다
모든 고속로에서는
질주하는 자유만이 있다.
* 미국 유타시의 조금 황당한 법률
인생개벽을 꿈꾸는 시 34
모든 고속도로에서는 새들에게 우선권이 있다 2 *
겨울도 아닌데 창가에 또는
거리 곳곳에 서리가 붙는다
혹독한 장마와 수해
그리고 가뭄의 여름을 보낸 뒤
비로소 내리는 가을,
감전이 두렵지 않은 듯 태연하게
전깃줄에 발을 감싸안는 까치 한 마리 우연인지
필연인지 그의 앞으로 번식기를 맞은 듯한 참새가
참새를 쫓고 있다
올해도 추위가 빨리 찾아왔군, 애써
태연한 말투로 중얼거리는 관리소 아저씨의 홍조(紅潮).
여름 내내 공원을 가득 채웠던 비둘기,
평화를 상징하는 파출소 모퉁이에서 간혹
아직 떠나지 못한 이들만 모이를 쪼아댈 뿐.
그 비둘기를 따뜻하게 응시하던
할아버지 할머니의 입담도 들리지 않는다
새들이 떠나는 고속로에서는
100킬로미터 이하라는 푯말이
조금은 일찍 찾아온 추위에 당황해
심각한 웃음을 띠고 그들을 통과시킨다
흐린 날씨 탓에 어둠은 조금 더 일찍
잔디 사이사이로 드나들기 시작했다, 아파트
건물 주택 상호들이 차츰차츰 불을 밝히면
아직 남아있던 새들도 스스로 사라져간다
나무나무마다 들려져 있던 낙엽들.
밤이 오는 강한 바람에 휩쓸리고
추위를 가리지 않고 한겨울을 보내는 텃새는
부랴부랴 집을 짓는다 겨울도 아닌데
철새들은 벌써부터 보색을 띤다
인생개벽을 꿈꾸는 시 35
0시 속(續) 0시
현재 시각 0시 조금 지나
귀뚜라미, 울지 않는다
창밖, 이미 떠 있는 달은
이별을 삼키고 날아가는
슬픈 새다
나는 알지 못하는 시간
허공에 뜬
해돋이가 선명하다, 어둠 속에서
귀뚜라미 울지 않고, 현재 시각
0시 조금 지나
과거로 돌아간 이별도
슬픔으로 남지 않는다.
저 혼자 우는 달,
저 혼자 뜨는 해,
세상이 비춰진 곳에서는
이별을 슬픔이라 말한다.
세상의 뒷골목에서
날지 못하는 새
목마른 울음에 지쳐간다,
나는 알지 못하는 시간
0시를
조금 지난.
인생개벽을 꿈꾸는 시 36
구름 속 산책
창문 밖
새가 날아오른다 하늘에는 구름 비춘 콘크리트 공사가 마악 시작되었다 공중 낮게 비명지르는 펜텀기 눈을 빛내며 공사장 아래를 지나간다 무너지는 집집마다
최강(最强)의 지진(地震)이 21세기의 빨간 불을 밝혔다 닫힌 손잡이 밖으로 한숨이 지하(地下)의 표현(表面)에서 웅성거렸다 저마다 하나씩의 두려움을 안고 공중에서 쏟아지는 비명소리에 가슴 졸이며 마지막 피난장소 구름 속으로 산책을 한다 터질 듯한 수증기
구름 속
집을 짓는다
구름 위 날아드는 새떼들 지상(地上)의 기억 밖으로 응집된다 물방울 기초공사를 마무리 지으며 회색빛으로 물든다 창문 밖
비가 내렸다 공사가 중단된다 공사의 계단마다 부실이 우글거렸다 공중 위 떠도는 철재(鐵材)들이 부도를 몰고다녔다 빗방울 위선(僞善)의 지상(地上)에 직격탄을 터뜨리며 튀어올랐다 바람이 공사장을 휩쓸고 창문 밖
구름 속에서 누군가 산책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