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의 벽을 넘어
석혀수
저런 바보, 그것도 모르다니. 그러는 당신이란 사람은 바보가 아니란 말인가? 오십보백보겠지, 흰색과 덜 흰색의 차이일 뿐이리라. 세상은 모든 것을 다 알 수 있을 정도로 좁은 곳이 아니다. 저마다 편리하게 제 취향에 따라 받아들일 정보의 깊이를 정하고, 또한 취한다. 이렇게 해서 형성되는 틀이 곧 그 사람의 사유思惟의 한계가 되고, 지식의 한계가 되며, 이해의 폭이 된다. 이 틀의 크기는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 확대, 또는 축소되기도 한다. 사람들은 자기가 만든 틀 속에 갇혀 판단하고, 바깥세상과 접촉하고 때로는 빗장을 건다. 스스로가 만든 감옥 속에 자신이 갇히는 것이다.
일본인 요로 다케시養老 孟司가 쓴 『바보의 벽』이란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저자는 "왜 우리는 서로 말이 통하지 않나"라는 질문에 답하면서, 소위 듣기 싫은 말에는 귀를 막아 버리는 것을 '바보의 벽'이라 정의했다. ‘바보의 벽’을 허물라 한다. 벽은 자신의 마음속에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니 이것을 훌쩍 뛰어넘어 소통의 시대로 나가자는 제안이다. 눈에 보이지지 않는다고 해서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만든 스스로의 완고한 감옥은 제 눈으로는 보지 못한다. 좋아하는 것만 취하면서 나 홀로 담을 높이 쌓아가는 외골수들이 되어가고 있다. 담이 높을수록 그 속에는 과똑똑이와 기형아들 세상이다.
한 시대를 풍미하던 저명한 분이 돌아가셨다. 국가 정보를 독점하고 나랏일을 하던 분이다. 사망 기사가 신문 귀잡이에 한 줄 기사로 취급되었다. 옛날에 국가 기밀이니 정보니 하던 것들을 지금 와서는 수시로 공개해서 일반자료로 재분류를 한다. 세월이 흐르면 그렇게 담을 치고 가두어 놓던 정보도 그 가치가 사라지는 것이다. 정보를 독점했던 높은 담 속의 인물 또한 영욕의 세월을 쓸쓸히 버리고 역사의 뒤안길로 퇴장을 했다. 당시대라면 사회장社會葬정도를 논의해도 부족할 사람이 한줄 기사거리로만 죽음을 알려도 충분하게 된 것일까? 가을이라는 계절에 편승해서 삶의 덧없음을 더욱 느끼게 하였다.
세월 따라 변하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30년 전 쯤, 내가 서울생활을 할 때 친구 집에 들러 자주 숙식을 해결하였다. 친구네 집에는 식탁위에 두루마리 화장지를 올려놓고 냅킨처럼 쓰고 있었으니 시골 청년의 눈엔 이들이 대단한 문화생활을 하고 있는 것처럼 부러움을 사기에 충분했다. 몇 년 전 다시 친구 집을 방문한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직도 두루마리 화장지를 식탁위에서 쓰고 있는 것이 아닌가. 두루마리 화장지는 재생 펄프를 쓰기 때문에 ‘형광증백제’로 표백을 하고 있다. 이것이 입으로 들어가면 아주 유해하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상식이 할아버지 세대가 접할 수 있는 손쉬운 정보가 아니다. 할아버지로서는 남들이 하는 걸 보고 따라할 정도로라도 완고함을 푸시는 도리밖에 없다.
생활 정보가 나날이 변하고 있다. 가치 기준도 많이 달라져서 정보 우선순위가 뒤죽박죽이 되어버렸다. 집은 없어도 우선 승용차는 있어야 한다든지, 주소 란에 아파트 몇 동 몇 호라고 쓰지 못하는 어린 아이들은 빈곤층처럼 풀죽어 한다고 들었다. 자연적으로 사람들의 관심 정보는 차에 가게 되고, 아파트의 투자 전망에 가 있다.
신세대 부부에게는 하나 뿐인 내 자식에 대한 가정 정보가 최우선이고 그 외의 것들을 관심 밖이다. 좋아하는 것만 관심을 가지고 정보를 편식하고 살다보면 우리 또한 머지않아 오래전 노인들의 모습이 되지나 않을까. 보통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스스로가 만들어 갇혀 살고 있는 정보의 감옥으로부터 영광의 탈출Exodus이 필요한 시대가 아닌가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