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들어 새 마음으로 각오를 다지기 위해 장거리 달리기를 계획했다. 경기 둘레길 잇기다. 지난번 끝낸 김포 조류생태공원에서 시작이다. 김포 골드라인 가까운 역이 운양역이다. 막 밝아져 오는 2번 출구에서 출발이다.
소한 날이라 이름값 한다고 영하 10도의 기온이다. 조류 생태공원 데크를 한 바퀴 돌고 일산대교로 향했다. 평화의 길과 같다는 생각에 한강을 따라 철책을 따라 달리다 보니 일산대교로 올라갈 길이 없다. 두루 누비엡에서 확인하고 계양천 수문을 건너 일산대교로 오를 수 있었다.
소한 아니랄까 봐 일산대교 강바람이 차갑다. 한강의 다리 중에 가장 하류에 있는 다리로 길이가 1.84km나 된다. 일산 시내로 들어가는 길은 보행자 신호등이 없어 차가 뜸 할 때 잽싸게 건너야 한다. 킨텍스와 고양운동장을 지나 외곽으로 나올 때 까지는 신호등을 여러 번 받아야 했다.
일산은 아파트 촌을 벗어나면 바로 논밭이다. 5코스 시작점은 동패 지하도 위인 심학산 자락에 있다.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심학산 둘레길과 연결이 된다. 얼마나 이용자가 많은지 길이 광택이 날 정도로 인근 주민들이 즐겨 찾는 둘레길이다. 전망대에서 건너편 김포가 또렸이 보인다.
내려서면 파주 출판단지를 통과한다. 신림, 영등포 등지로 출퇴근 버스가 있는 걸 보니 대부분 서울 출. 퇴근자들이다. 잠시 자유로를 옆으로 두고 달린다. 이 길이 자전거로 달리는 평화누리길이다. 뚜벅이 길은 자주 인근 마을 안길이나 숲길을 지난다. 도보여행자를 위한 길이지만 달려도 된다. 검단산을 돌아가는 살레길을 지난다. 산허리를 감싸고도는 둘레길이다. 통일동산은 폐허같이 방치되어 있다.
이곳에 파주는 장단콩으로 유명해 손두부가 유명하다. 30km 이상을 달렸으니 밥값은 했다. 점심식사를 하고 출발이다. 성동사거리에서 프로방스 마을을 지난다. 6코스는 반구정까지 20.1km 길이다.
지루한 자전거 길을 따라 달리기도 하고 마을 안길도 달린다. 왼쪽은 자유로고 임진강이다. 강 건너는 북녘땅이다. 다리 아래는 민통선이다. 분단국임을 실감하는 곳이다. 우리는 가끔 분단국이란 사실을 무덤덤하게 잊고 사는 것 같다.
지루하고 긴 길은 자유로와 논길을 따라 달리는 구간이다. 때로는 수문을 수리한다고 길을 통째로 막아 버리고 우회하라는 표시만 붙여 놓았다. 어디로 우회를 하라는 안내표지도 없다. 논바닥을 달려서 경기 둘레길을 찾아가야 했다.
논바닥에 물을 담아 얼려서 썰매장으로 개장한 야외 썰매장은 아이들과 부모들이 신나게 썰매를 탄다. 썰매장 밖에는 드럼통에 장작불을 피워 언 손을 녹이는 모습이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겨울에만 즐길 수 있는 썰매 타기는 아이들에겐 겨울철 최고의 놀이터다.
문산천을 건너 당동으로 들어서면 산길로 접어든다. 임진각과 가까운 문산은 전철 개통으로 많이 발전했다. 아파트도 전원주택도 새로 지었다. 반구정으로 가는 길은 산길을 달리는 구간이다. 달림이에게는 자유로 옆의 자전기 길을 달리는 것보다 오름 내림이 있어도 발에 닿는 촉감이 좋은 흙길이 좋다.
임진강가 전망 좋은 반구정은 황희 정승이 관직을 내려놓고 야인생활을 한 곳으로 갈매기와 벗하며 여생을 보낸 곳이다. 그의 일화 중 하나는 '네 말도 옳고 네 말도 맞다.'로 부인이 그리도 사리가 분명치 않으시니 어떻게 합니까? 하니 '맞소, 부인 말씀도 참으로 맞소' 했단다.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하는 시사점이 크다.
이제 임진각이 지척이다. 건널목을 지나니 임진강역으로 가는 대로다. 이 길은 가을이면 문화일보가 주최하는 통일마라톤 대회장이 임진각이고 결승선으로 들어올 때 많이 달렸던 낯익은 길이다. 임진강역은 평일은 오전 오후 두 번의 전철이 있다. 혹시나 해서 알아온 오후 기차는 17:15에 있는데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 7코스 종점인 율곡 생태공원까지 달려 보기로 했다.
임진각에 왔으니 철마는 달리고 싶다. 와 망배단, 바람의 언덕은 둘러보고 가야겠다. 평일임에도 임진각을 찾는 나이 지긋한 분들이 많다. 곤돌라도 생기고 작은 변화가 있다. 아직 그리 시장기를 느끼 못해 남은 거리 10여 km는 달릴 수 있을 것 같아 그냥 출발했는데 그게 오늘 가장 힘든 길이 될 줄은 이때는 몰랐다.
왼쪽으로 철책이 이어지고 그 너머는 임진강이고 강 넘어는 북녘땅이다. 추수가 끝난 논에는 겨울철새가 떼를 지어 날아다니며 먹이를 찾고 있다. 철새에는 이 보다 더 평화로운 곳은 없을 게다. 지루한 논길에서 철새를 보면서 달렸다. 슬슬 시장기가 밀려온다. 비상식으로 준비한 초콜릿을 2개나 까먹었지만 그때뿐이다. 마지막 파워젤까지 먹어도 다시 허기가 온다. 장산리는 휴전선 접경 마을이라 가게는 커녕 추운 날씨에 물을 얻어먹을 수도 없는 마을이다.
물도 떨어지고 허기는 밀려오니 자연 발걸음도 둔하다. 임진각에서 당장은 시장하지 않더라도 뭘 좀 먹고 출발 했었어야 하는 후회가 막심하다. 산행에나 장거리 달리기에서는 시장기가 들기 전에 먹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남은거리 10km 남짓이라 깔본 게 화근이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길은 산을 올라간다. 평소 같으면 대수롭지 않은 오르막길이지만 지금은 최악의 길이다.
내리막길은 그나마 포장도로가 끝이 난다. 울퉁불퉁한 길에 삐끗하면 부상으로 이어진다. 거기다 흐린 날씨에 일몰시간이 가까워 오니 어두움이 찾아온다. 혼신의 힘을 다해서 달리는데 앞에 밝은 불빛이 비친다. 멀리서 봐도 동네고 최소한 가게나 식당이 있을 것 같다. 그곳이 임진리다. 임진각의 이름은 임진리에서 따온 것이다. 큰 간판에 어탕집이라 쓰여있다. 남은 거리는 2.5km라지만 앞뒤 가리지 않고 들어갔다.
온기가 있어 좋다. 어탕국수를 주문하고 따뜻한 물을 연거푸 3컵이나 마셨다. 그제야 살 것 같다. 추운 날에 바람막이 안으로 땀을 많이 흘렸더니 탈수가 많이 일어난 게다. 뜨끈한 어탕 국물과 면은 술술 잘 넘어간다. 배를 채우니 절로 힘이 난다.
어둑해진 길을 따라 마지막 힘을 내 본다. 다행히 다리에 문제는 없고 탈수현상에 에너지 고갈이다. 임진강이 보이는 길을 따라 달리면 화석정이 반긴다. 이 정자는 임진왜란 때 선조가 의주로 피난을 갈 때 시각이 촉박하여 한 밤 중에 임진강을 건널 때 이 정자에 불을 질러 강을 밝게 하여 강을 건넜다는 정자다. 임진강의 물결을 바라보는 전망이 좋은 곳에 자리한 정자다.
율곡습지공원은 여기서 1km 정도 떨어져 있어 다리에 절로 힘이 들어간다. 느지막이 찾아간 율곡 생태공원은 어두움이 찾아오고 있다. 이젠 집으로 돌아갈 일이 걱정이다. 시골의 버스는 배차간격이 뜸하다. 인근에 있는 버스 정류장을 찾아 문산 가는 버스 시간 버튼을 누르니 2분 후에 92번 버스가 옵니다. 음성이 들린다.
어째 이런 일이! 문산 택시를 부를까 생각 중이었다. 기온은 떨어지는 데다가 입은 옷은 바람막이 밖에 없으니 달리지 않으면 금세 체온이 식는다. 셀리의 법칙이 통했다. 마스크도 채 챙기지 못했는데 버스가 들어온다. 잽싸게 버스에 오르니 안방 같이 포근하다. 오매 좋은 것. 이런 포근함에도 소확행이다.
새해 첫 장거리 달리기 도전은 숫자상 나이는 한 살을 더했지만 마음은 아직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선물해 주었다. 몸이 늙는 것보다 마음이 늙는 게 더 빠른 노화를 가져온다고 한다. 새해는 그간 이루지 못한 무언가를 도전해 마음은 좀 젊게 살아가는 한해를 만들어 보고 싶다.
첫댓글 임인년 새해도 힘차게 나아가심을 축하드립니다,중년에 희망도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