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설 이 곡은 브람스가 작곡한 4개의 협주곡인 ‘피아노 협주곡 제1번과 제2번’,'바이올린 협주곡’그리고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2중 협주곡’중에서 가장 뛰어난 협주곡이다. 브람스는 <피아노 협주곡 제1번, 작품15>을 작곡한지 20년이 지난 1881년에야 이 두 번째 피아노 협주곡을 완성했다. 그 동안 그는 교향곡「제1번」,「제2번」과「대학 축전 서곡」,「비극적 서곡」등을 발표하고 글자 그대로 원숙한 경지에 들어서고 있어 관현악 사용법의 능숙함을 보이고 있다. 그러므로 브람스에게는 이 곡이 하나의 야심작인 듯하다. 브람스는 자신이 훌륭한 피아니스트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 작품을 자신만만하게 작곡하였다. 그의 협주곡은 대체로 독주부를 가진 교향곡에 비할 만한데 여기서도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완전히 융합된 교향적인 작품이라는데 특징이 있다. 피아노의 원숙한 경지를 요구하는 명곡인지라 대가들이 자신들의 음악적 시각과 재능을 드러내기 위해 앞 다투어 연주하는 곡이다. 오케스트라의 구성미는 더욱 견고해졌고, 능숙한 솜씨만큼 피아노와 오케스트라 모두를 아우르는 수준이 높아졌다. 청년시절 작품인 피아노 협주곡 제1번 발표 후 20년 이상 지나서 작곡한 이 작품에는 밝은 정서와 원숙미, 그리고 로맨틱한 자유로움이 있다. 고전파의 전통을 준수하면서도 스케르초풍의 제2악장을 덧붙이는 혁명적 시도로 4악장의 형식을 갖추어 교향곡에 접근시켰다. 그래서 속칭 '피아노 교향곡'이라고까지 불린다. 이 곡은 당시 유행하고 있던 거장들의 협주곡처럼 피아노를 화려하게 기교적으로 사용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피아노를 완전히 관현악에 융합시키고 있다. 따라서 특별히 피아노가 부각되는 일이 없으며, 피아노는 브람스의 시각으로 고려된 채 움직이고 있다. 또한 이 곡에는 일반 협주곡처럼 피아노 만에 의한 긴 카덴차가 없다. 그래서 각 악장에는 오케스트라를 동반하지 않는 피아노만의 패시지가 가끔 나타난다. 피아노가 오케스트라 속의 한 파트처럼 되어 있는 이 곡을 완벽하게 연주하려면 높은 기교를 요한다. 이른바 피아니스트에게 피와 땀을 요구한다. 브람스가 "이 곡은 여성에게는 합당하지 않다"고 말했듯이 곡의 전반에 걸쳐 피아노의 중심을 잡기 위하여 대단한 역량이 필요하다.
아무튼, 브람스의 인생과 브람스의 사계(四季)가 질박하게 농축되어 있는 이 협주곡은 뛰어난 리듬과 놀랍게 전개되는 멜로디가 피아노와 오케스트라의 완벽한 조화를 느끼게 해준다.
▲ 작곡의 경과와 초연 브람스가 45세 때인 1878년 4월 봄날에 이탈리아 여행에서 받은 감흥을 받아 이 곡의 스케치를 시작했으나, <바이올린 협주곡>이나 <바이올린 소나타 제1번> 등의 일 때문에 잠시 중단되었고, 두 번째 이탈리아 여행 후에 빈 근교의 프레스바움에서 다시 손을 대어 비교적 짧은 시일 내에 이 대곡을 완성시킨 것은 1881년 7월이었다. 그는 이탈리아의 청정한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행복감을 만끽하였다고 한다. 잿빛 하늘 아래 움츠린 채 긴 겨울을 지내는 북부 독일에서 태어난 브람스에게 이탈리아의 햇빛 찬란한 봄은 마치 꿈만 같았을 것이다. 이런 연유로 이 작품에는 브람스 특유의 북 독일적인 차분함과 중후함 속에 이탈리아적인 밝은 명랑성도 내재되어 있다. 1881년 11월 9일 부다페스트에서 브람스 자신이 독주자로, 알렉산더 엘켈의 지휘로 초연되었다. 독일에서는 11월 22일에 막스 자이프리츠의 지휘로 연주되었다.
▲ 악기 편성 독주 피아노, 플루트 2, 오보에 2, 클라리넷 2, 바순 2, 호른 4, 트럼펫 2, 팀파니, 현5부 ■ 해설 ▲ 제1악장 Allegro non troppo(빠르게 그러나 지나치지 않게)Bb장조,3/4박자, 소나타 형식. ★★★★★ 브람스다운 힘차고 중후한 악장이다. 호른이 제1주제의 동기를 마치 신성한 생명의 소생을 알리는 신호음처럼 부드럽고 은은하게 연주하면, 곧 바로 피아노가 응답하듯이 아르페지오(arpeggio;펼침화음.분산화음.화음을 구성하는 각 음을 동시에 연주하지 않고 연속적으로 연주하는 주법)를 아름답게 펼친다. 다시 호른과 피아노의 응답이 이루어지면 이어서 목관(플루트)이 연주되고, 피아노가 카덴차풍의 악구로 화려하게 그것을 장식하며 정열적인 제1주제가 나타난다. 피아노에 이어 관현악만으로 제시부를 계속한다. 제1주제의 동기를 다룬 경과부에서 긴장을 조금씩 늦춰 가면, 바이올린이 풍부한 표정으로 d단조에서 부드러운 제2주제를 연주한다. 명쾌하고 리드미컬한 코데타 악구를 거쳐 제1주제의 동기를 힘차게 나타내고, 피아노가 나오면서 관현악 제시부에서 독주 제시부로 옮겨간다. 여기서 제1주제에 이어 제2주제가 관현악과 피아노의 응답풍으로 등장하는데, 새로운 소재도 더해진다. 힘찬 코데타 악구는 이전보다 더욱 정열적이다. 전개부는 코데타를 받아 f단조에서 관현악이 제1주제를 강렬하게 연주하고, 이어서 제2주제도 표현한다. 이렇게 두 주제는 서로 얽혀가고 호른과 피아노도 가세하여 열기를 점증시킨다. 코데타 악구도 전개 재료로 쓰인다. 피아노는 이 근처에서 매우 기교적이고 다이내믹하다. 순수하고 부드러운 새 생명을 상징하듯 티 없이 맑게 웃음 짓는 개울물의 영롱한 소리, 그리고 혹한의 시련을 극복하고 강인한 생명력으로 소생하는 만물의 환희를 듣는 것 같다. 강렬한 클라이맥스에 도달한 후 긴장이 느슨해지면서 호른의 유도로 재현부에 들어간다. 코데타 악구의 재등장에 이어 코다에서 독주부와 오케스트라는 융합된 효과를 보이면서 힘차게 끝난다. ▲ 제2악장 Allegro appassionato(빠르고 격정적으로) d단조 3/4박자. 3부 형식 ★★★★☆ 이 악장은 일반 협주곡과 달리 브람스가 덧붙여 넣은 스케르초(scherzos;극적-해학적 성격을 띤 기교적인 피아노곡으로 3/4박자의 세도막 형식)이다. 제1주제가 힘차게 피아노로 연주된 후 목관이 짧게 응답하고, 현악기에 의해 부주제가 서정적으로 아름답게 연주되어 서로 대비를 이룬다. 콘트라베이스, 첼로, 비올라, 호른이 피아노와 대립적인 리듬을 형성한다. 관현악에서 클라이맥스를 이루면, 스타카토(staccato;음을 분명하게 분리해서 연주하는 것)의 새로운 주제가 D장조로 찬연하게 햇살처럼 떠오르며 중간부가 시작되는데, 이 중간부에서는 호른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피아노에 이끌려 제3부로 들어가 다시 원조로 복귀되었다가 힘차게 코다로 들어간다. 거칠게 끓어오르는 듯이 변화무쌍하며 템포가 빠른 이 d단조 악장은 격정적인 제1주제와 우아한 제2주제가 훌륭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제1악장의 정열과 부드러움을 한층 더 농익은 모습으로 표출하면서 다음에 이어지는 제3악장과의 대비감을 강조하는 것 같다. ▲ 제3악장 Andante(느리게) Bb장조 6/4박자. 3부 형식. ★★★☆☆ 풍부한 음색을 지닌 첼로의 감미로운 독주는 이 악장에서 가장 중요한 테마이다. 마치 청명한 가을의 고요가 깃든 목가적 풍취를 자아내는 듯하다. 첼로 독주가 비올라 이하의 저음현의 부드러운 대위법을 동반하여 주제를 면면이 펼치면서 여러 갈래로 발전되는데 서정적인 정서를 물씬 풍긴다. 더하여 피아노가 들어와 환상적인 음향으로 발전을 이룬다. 아주 짧은 중간부는 F#장조로 시작되며 피아노와 클라리넷이 절묘하게 얽히다가 현으로 옮아간다. 클라리넷의 음색은 청아하고 피아노의 음향은 마치 정수리에 정수(精粹)한 아우라(aura)를 땅땅 박는 것 같다. 다시 첼로 독주가 부활하여 제1부의 서두가 제시된다. 첼로 독주와 피아노 독주는 이 악장의 마지막 부분에서 완벽하게 어우러져 깊은 인상과 여운을 길게 남기며 마무리한다. ▲ 제4악장 Allegretto grazioso(조금 빠르고 우미하게) Bb장조 2/4박자. 론도 형식. 이 악장에 내포된 절제미는 명쾌하고 희망찬 생동감이다. 앙증스런 물고기들이 눈이 시리도록 청징한 개울굽이에서 날렵하게 생동하는 모습을 떠오르게 하는가 하면, 또 고적한 겨울 밤 창창한 달빛을 뚫고 들려오는 이웃집 아낙네의 다듬이질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하다. 피아노와 비올라로 시작되는 경쾌하고 영롱한 제1주제는 바이올린으로 옮겨지고 곧 이어 오케스트라 전체로 옮겨지면서 점차 두께를 더해 가며 연주된다. 제1부주제는 목관(플루트)으로 우아하게 시작하여 현과 관의 응답풍으로 발전하고, 경쾌한 제2부주제는 피아노로 연주된다. 제1주제로의 복귀는 오보에로 시작된다. 3개의 주제가 서로 다른 론도 형식에 의해 교묘히 전개되다가 색채적인 변화를 보이면서 화려하게 끝난다. (이 악장은 제1주제부를 A, 제2주제부를 B로 하면 A-B-A-B-코다라는 발전부가 없는 소나타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도 본다. 재현부의 A는 전개를 겸하고 있고, A의 세 번째 재현을 상당히 변형된 코다로 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