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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천성경 천성경 (天聖經) - 제1권 참하나님 - 제1장 하나님의 본체
대태양/김현수 추천 2 조회 1,728 13.04.10 23:01 댓글 34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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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4.08.24 16:18

    첫댓글 43-지혜로운 하나님, 전지전능(全知全能)하신 하나님은 중앙에서 마음대로 거동할 수 있는 무형적인 존재로 계시면서 주관하는 것이 제일 편리하겠다고 생각하신 겁니다. 하나님은 무형이니만큼 존재세계를 마음대로 뚫고 오더라도 조금도 지장이 없습니다. 여러분, 몸뚱이로 하나님이 와서 마음대로 지나가더라도 여러분은 모른다는 것입니다.

    43-하나님이 꾸벅꾸벅 졸고 있는 여러분들의 몸뚱이를 마음대로 밟고 지나가도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편리합니까. 그러니까 하나님은 생각 끝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으로 계시는 것이 제일 편리할 것이다 해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됐다 하는 논리는 가당한 논리입니다. (138-141

  • 14.08.24 16:20

    43-우리는 공기가 통하는 것을 모릅니다. 공기가 통하고 있지만 그걸 못 느낍니다. 공기가 통하는 것도 못 느끼는데 하나님이 통하는 것을 알겠느냐는 것입니다.

    43-하나님은 무형의 신으로 계시는 것이 최고의 편리한 방법입니다. 그러면서 이 큰 우주를 보자기로 싸고도 남을 수 있는, 그러한 하나님이 아니면 안 됩니다. 무형의 하나님이지만 하나님의 마음은 이 우주보다 더 큰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138-167)

  • 14.08.24 16:21

    45-제일 귀한 물건이 있다면 언제든지 가지고 다니면서 한시도 그 물건과 떨어지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 최고 보물이라 할 수 있는 하나님을 갖고 있다면, 그분을 어디에 모시고 싶어하느냐? 안전하게 모실 수 있는 창고가 있다면 어디일 것이냐? 그 창고는 바로 우리 마음입니다. 인간의 마음이 하나님을 안전하게 모실 수 있는 창고인 것입니다.

    45-하나님은 무형이기 때문에 유형의 존재를 자기보다도 중요시해야 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래야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또, 사람은 자기 몸뚱이보다도 보이지 않는 마음과 하나님을 더 중요시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111-36)

  • 16.10.23 07:48

    1) 하나님은 무형(無形)의 주체(主體)시다

    ① 무형(無形)으로 계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어떠한 형체(形體)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크다고 하면 무한대(無限大)요, 작다고 하면 무한(無限)히 작은 분이십니다. (10-13)

    하나님은 과연(果然) 계시는가? 누가 꼬집어서 ‘아야'하고 소리치는 것보다도, 배가 고파 밥을 먹는 것보다 더 사실적(事實的)으로 느낄 수 있는 하나님이 있느냐? 문제(問題)는 거기에 있습니다. 진짜 하나님이 계시다고 할 때, 문제(問題)는 다 해결(解決)됩니다.

  • 16.10.23 07:54

    인간(人間)에게는 마음이 있습니다. 마음은 보이지 않아 없는 것 같지만 있는 것입니다. 마음이 어디에 있느냐? 머리에 있느냐, 심장(心臟) 가운데에 있느냐? 마음은 내 몸 어디에나 있습니다. 내 몸 가운데 없는 데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계시다면 하나님도 이 세계(世界)가 하나님의 몸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이 세계(世界) 어디에나 있습니다.
    하나님은 볼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힘이 보여요? 하나님은 에너지의 본체(本體)이기 때문에 영계(靈界)에 가서도 볼 수 없습니다. (105-175)
    하나님은 볼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힘이 보여요? 하나님은 에너지의 본체이기 때문에 영계에 가서도 볼 수 없습니다. (105-175)

  • 16.10.23 13:49

    지혜(智慧,知慧)로운 하나님, 전지전능(全知全能)하신 하나님은 중앙(中央)에서 마음대로 거동(擧動)할 수 있는 무형적(無形的)인 존재(存在)로 계시면서 주관(主管)하는 것이 제일(第一) 편리(便利)하겠다고 생각(生覺)하신 겁니다. 하나님은 무형(無形)이니만큼 존재세계(存在世界)를 마음대로 뚫고 오더라도 조금도 지장(支障)이 없습니다. 여러분, 몸뚱이로 하나님이 와서 마음대로 지나가더라도 여러분은 모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꾸벅꾸벅 졸고 있는 여러분들의 몸뚱이를 마음대로 밟고 지나가도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편리(便利)합니까.

  • 16.10.23 13:57

    그러니까 하나님은 생각(生覺) 끝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으로 계시는 것이 제일(第一) 편리(便利)할 것이다 해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됐다 하는 논리(論理)는 가당(可當)한 논리(論理)입니다. (138-141)

    우리는 공기(空氣)가 통(通)하는 것을 모릅니다. 공기(空氣)가 통(通)하고 있지만 그걸 못 느낍니다. 공기(空氣)가 통(通)하는 것도 못 느끼는데 하나님이 통(通)하는 것을 알겠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무형(無形)의 신(神)으로 계시는 것이 최고(最高)의 편리(便利)한 방법(方法)입니다. 그러면서 이 큰 우주(宇宙)를 보자기로 싸고도 남을 수 있는, 그러한 하나님이 아니면 안 됩니다.

  • 16.10.23 14:06

    무형(無形)의 하나님이지만 하나님의 마음은 이 우주(宇宙)보다 더 큰 것을 요구(要求)하고 있습니다. (138-167)



    여러분! 사랑 가지고 있어요? 생명(生命) 가지고 있어요? 여러분의 혈통(血統)을 이을 수 있는 정자(精子)나 난자(卵子) 다 가지고 있지요? 양심(良心)도 가지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사랑을 본 적이 있어요? 생명(生命), 혈통(血統), 양심(良心)을 봤어요? 그 존재(存在)의 현상(現像)은 알지만 만질 수도 볼 수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직 마음으로 느껴서만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같은 논리(論理)로 하나님이 있느냐 없느냐 할 때, 또는 하나님을 봤느냐 못 봤느냐 물을 때, 못 봤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 16.10.23 14:21

    마음 속에 하나님이 들어와 계시면 마음이 압니다. 하나님이 마음 속에 들어오면 바람벽도 뚫어볼 수 있고, 가만히 앉아 몇천 년 전(千 年 前)에 죽은 성인(聖人)들을 운행(運行)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영원(永遠)하신 하나님이 마음 속에 들어오면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영원(永遠)을 시간(時間)으로는 포착(捕捉)할 수 없지만 영원(永遠) 안에 시간(時間)이 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은 안 보여도 마음은 압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사랑하느냐 할 때 답변(答辯)하기 곤란(困難)하지요? 하나님은 무형(無形)의 신(神)이기 때문에 어디든지 통(通)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씨의 눈 속에도 들어가고, 심장(心臟) 속에도 들어가고...

  • 16.10.23 14:32

    어디든지 안 가는 데 없이 다 통(通)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디서 사느냐? 집이 어디냐? 하나님이 사는 집은 우리 마음의 한복판(腹板)입니다. 남자(男子)의 마음에는 하나님의 남성적(男性的) 심정(心情)이 머무르고, 여자(女子)의 마음에는 여성적(女性的) 심정(心情)이 들어가 산다는 것입니다. (128-317)

    전지전능(全知全能)하신 하나님, 온 천하(天下)를 요리(料理)하시는 하나님이 여기 있다고 합시다. 힘으로 말하자면 태백산(太白山)도 날려 버리고 지구성(地球城)도 구멍을 낼 수 있는 능력(能力)의 하나님인데, 그러한 하나님을 여러분의 눈으로 보면서 살라고 한다면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 16.10.23 14:43

    하나님이 안 보이길 잘했다는 것입니다. 보이면 여러분은 신경쇠약(神經衰弱)에 걸려서 한 시간(時間)도 살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안 보이는 것을 고맙게 생각(生覺)해야 됩니다. 이건 웃을 얘기가 아닙니다. 지금까지 한 얘기는 내가 그러한 문제(問題)를 중심(中心)삼고 심각(深刻)하게 겪었던 경험담(經驗談)입니다. 남의 말을 한 것이 아니라 내가 지금까지 더듬어 나온 경력(經歷) 보고(報告)와 같은 이야기입니다. (38-222)

    만일 이 세계(世界)에 공기(空氣)가 한 되밖에 남아 있지 않다면 어떻게 되겠느냐? 하나님이 짖궂은 분이라면 세계(世界) 통일(統一)은 문제(問題)없습니다. 아마 5분( 5分)이내에 통일(統一)할

  • 16.10.23 15:03

    것입니다. 하나님이 공기(空氣)를 몽땅 끌어 가면서 ‘너희들 통일(統一) 할 거야, 안 할 거야?' 하게 되면 세계 인류(世界 人類)가 합창(合唱)으로 ‘통일(統一)하겠습니다.'라고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일시(一時)에 통일(統一)할 수 있겠지만 하나님이 공기(空氣) 가지고 그렇게 안 하시는 것은 정말 고마운 일입니다. 공기(空氣)가 없으면 우리는 살 수 없습니다. 이렇게 공기(空氣)는 생명(生命)에 절대적(絶對的)으로 필요(必要)한 요소(要所)입니다. 그런데 공기(空氣)에 대(對)해 고맙다는 생각(生覺)도 하지 않고 도둑놈같이 먹어치우고 있습니다.

  • 16.10.24 04:50

    천주(天宙)의 대주재(大主宰) 되시는 하나님이 인간(人間)의 눈에 보이게 된다면 하나님을 서로 빼앗겠다는 싸움을 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이 싸움을 막을 도리(道理)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안 보이기를 잘한 것입니다.

    만약(萬若) 하나님이 보였다면 미국(美國)과 소련(蘇聯)이 서로 자기(自己) 하나님이라고 싸우겠어요, 안 싸우겠어요? 싸운다는 것입니다. 그 싸움을 누가 말릴 수 있겠어요? 하나님은 전지(全知)하사, 이런 싸움이 있을까봐 무형(無形)으로 계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이기를 바라는 것은 망령(妄靈)된 행위(行爲)입니다. 안 보이기를 잘했다는 것입니다. (41-260)

  • 16.10.24 05:13

    이 우주(宇宙)는 신비(神秘)에 싸여 있습니다. 그 크기가 210억 광년(億光年)이나 되는 대우주(大宇宙)입니다. 1광년(光年)은 빛이 1년(年) 동안 가는 거리를 말합니다. 1초(秒) 동안에 지구(地球)를 일곱 바퀴 반이나 돌 수 있는 빛인데, 이 빛이 1년 동안 나아가는 것이 1광년(光年)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큰 우주(宇宙)를 지배(支配)할 수 있는 주인(主人)은 얼마나 크겠느냐? 키가 크다면 얼마나 크겠느냐? 하나님이 그렇게 크다면 하나님 자신(自身)이 거추장스러운 몸을 끌고 다닐 수 있겠느냐? 철커덕 철커덕 다닌다면 얼마나 불편(不便)하겠느냐?한번 움직이면 우주(宇宙)가 전부(全部) 놀라 자빠질 것입니다.

  • 16.10.24 05:20

    하나님은 지혜(知慧)로운 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주인(主人)이 되자.'고 생각(生覺)했던 것입니다. (138-16)

    하나님이 얼마나 무거울까요? 그걸 생각(生覺)해 봤어요? 하나님이 얼마나 무거워요? 근수(斤數)로 달면 몇 근(斤)이나 될까요? 몇 억만(億萬) 톤이 될까요? 무겁다면 그 몸으로 다니려면 큰일이지만 하나님은 무형(無形)이시기 때문에 이상적(理想的)입니다. 지갑에 넣고 다녀도 무게가 느껴지지 않습니다. 또 무형(無形)이기 때문에 아무리 좁은 바늘귀로도 오갈 수 있습니다. 마음대로 운행(運行)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 16.10.24 05:26

    크다 하면 크고 작다면 무한(無限)히 작기도 하여 이 우주(宇宙) 어디든 마음대로 운행(運行)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136-101)

    제일 귀(第一 貴)한 물건(物件)이 있다면 언제든지 가지고 다니면서 한시도 그 물건(物件)과 떨어지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 최고 보물(最高 寶物)이라 할 수 있는 하나님을 갖고 있다면, 그분을 어디에 모시고 싶어하느냐? 안전(安全)하게 모실 수 있는 창고(倉庫)가 있다면 어디일 것이냐? 그 창고(倉庫)는 바로 우리 마음입니다. 인간(人間)의 마음이 하나님을 안전(安全)하게 모실 수 있는 창고(倉庫)인 것입니다.

  • 16.10.24 05:34

    하나님은 무형(無形)이기 때문에 유형(有形)의 존재(存在)를 자기(自己)보다도 중요시(重要視)해야 된다는 결론(結論)이 나옵니다. 그래야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또, 사람은 자기(自己) 몸뚱이보다도 보이지 않는 마음과 하나님을 더 중요시(重要視)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111-36)

    ② 본래(本來)는 자연(自然)히 알게 되어 있었다

    인류(人類)가 타락(墮落)하지 않고 본성(本性)의 선(善)한 부모(父母)를 통(通)해 태어났던들 하나님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논란(論難)은 필요(必要)치 않았을 것입니다. 나면서부터 자연(自然)히 안다는 것입니다. 아기가 뱃속에서부터 젖먹는 법(法)을 배워 가지고 나옵니까?

  • 16.10.24 05:52

    나오자마자 눈앞에 젖이 있으면 빨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자동적(自動的)으로 알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인류(人類)가 타락(墮落)하지 않았다면 하나님과 인간(人間)의 관계(關係)를 자동적(自動的)으로 알고, 자동적(自動的)으로 해결(解決)하고, 자동적(自動的)으로 가야 할 입장(立場)인 줄 알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타락(墮落)함으로 말미암아 전부(全部) 다 망각(忘却)해 버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를 의심(疑心)하는 결과(結果)의 세계(世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비참한 사실입니다. (20-306)

    사람은 이 우주(宇宙)의 피조만물(彼造萬物) 가운데에서 걸작품(自動的)입니다. 얼마나 걸작품(自動的)이냐하면,

  • 16.10.24 06:00

    여러분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크고도 멋진 걸작품(自動的)입니다. 그러면 절대적(絶對的)인 하나님이 계셔 가지고 사람을 만들었다면, 하나님 자신(自身)이 말하는 것, 보는 것, 느끼는 것을 사람이 모르게 만들 수 있겠습니까? (53-51)

    하나님을 닮은 아담과 해와가 인류(人類)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되었다면, 그 모습을 통(通)해 언제나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역사(歷史)를 통(通)해 인지(認知)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만일(萬一)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면 하나님에 대(對)해 의심(疑心)을 가질 수가 없게 됩니다.

    타락(墮落)하지 않았더라면 언제나 볼 수 있고, 부르면 곧 나타나도록 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 16.10.24 06:10

    그와 같은 기준(基準)이 된다면 누가 하나님이 존재(存在)하지 않는다고 부인(否認)하겠습니까? 부인(否認)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있다, 하나님이 있다.'하는 것은 말뿐이 아닙니다. 원리(原理)를 통(通)해 주체(主體)와 대상 관계(對象 關係)를 중심(中心)삼고 볼 때, 하나님은 불가피(不可避)하게 있어야 된다는 입장(立場)이 아니라 하나님은 내가 생각(生覺)하기 전(前)에 있었던 분이요, 내 모든 감각(感覺), 나의 일체(一切)를 주관(主管)하는 분이다 하는 입장(立場)이어야 합니다.

    그것을 인식(認識)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重要)한 문제(問題)입니다.

  • 16.10.24 06:20

    알고 인식(認識)하는 것이 원칙(原則)이 아니라 인식(認識)하고 아는 것이 원칙(原則)입니다.

    우리가 추우면 춥다 하는 것을 알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추운 것을 느껴 가지고 알지 않습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신(神)이 계시다면 신(神)이 계신 것을 여러분이 느껴야 되겠습니다. 세포(細胞)로 느껴야 되겠습니다.

    그 경지(境智)가 문제(問題)입니다. 다시 말하면, 체휼적 입장(體恤的 立場)을 어떻게 우리가 확정(確定)짓느냐 하는 것이 문제(問題)라는 것입니다. (58-291)

    여러분이 자다가도 ‘아버지!' 할 수 있고, 혼자말로도 ‘아버지!' 할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 16.10.24 06:31

    밥먹는 것을 잊어버리고 잠자는 것을 잊어버리면서 그 생활 이면(生活 裏面)에 아버지에 대(對)한 그리움을 가지고 ‘아버지!' 하게 되면, 아버지 손이 잡힙니다. 꿈같은 사실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아버지!'하면 아버지 품에 안깁니다.

    이러한 표현적(表現的) 권(圈)에서 체휼적 감정(體恤的 感情 )을 어떻게 체득(體得)하느냐 하는 것은 신앙생활(信仰生活)에서 무엇보다도 귀(貴)하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한 체휼(體恤)의 감도(感度), 느끼는 그 도수(度數), 그 양(量)의 여하(如何)가 그 사람의 신앙기준(信仰基準)이 그러한 사랑의 심정(心情)을 가졌다면 어디에 옮겨 가서 ‘내가 이것을 해야 된다.' 하게 될 때는,

  • 16.10.24 06:47

    ‘하늘이여, 같이해 주시옵소서.'하기 전(前)에 벌써 하나님은 같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여러분이 느끼게 될 때는 ‘고마우신 하나님' 하게 되는 것입니다. (58-299)

    통일교회 원리(統一敎會 原理)는 하나님을 무형(無形)의 절대적 주체(絶對的 主體)로, 이성성상(二性性相)의 중화적 주체(中和的 主體)로 계시는 분이라고 합니다. 이성성상(二性性相)으로 계시는 하나님 자신(自身)의 분성적 실체(分性的 實體)로 아담과 해와를 만들어 놓고, 이들이 장성(壯盛)하여 사랑을 중심(中心)삼고 횡적(橫的)으로 연결(連結)될 때, 종적(縱的)인 입장(立場)에서 중심(中心)이 되고자 하신 것입니다. 그건 무슨 말이냐 하면,

  • 16.10.24 06:57


    아담과 해와가 성숙(成熟)하게 되면 하나님의 남성 성품(男性 性稟)은 아담의 마음 속에, 하나님의 여성 성품(女性 性稟)은 해와의 마음 속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이 갈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한 이성성상(二性性相)의 주체(主體)로 계신 하나님이기 때문에 아담과 해와의 마음 속에 임재(臨在)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138-240)

    하나님은 이성성상(二性性相)의 중화적 존재(中和的存在)라고 말하지요? 중화적(中和的) 입장(立場)에서 사랑을 중심(中心)삼은 통일적 존재(統一的 存在)라는 것은 아직까지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거기에 사랑을 중심(中心)삼고 통일적 존재(統一的 存在)라는

  • 16.10.24 06:59

    그것을 첨부(添附)해야 됩니다. (223-249)

  • 16.10.24 06:59

    아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주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 16.10.24 07:00

    17회 아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주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 17.08.23 11:35

    아주 감사합니다

  • 19.01.06 17:59

    존귀하신 하늘부모님
    사랑하는 천지인 참부모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아주 ♡

  • 20.01.13 08:09

    참부모님 감사합니다

  • 20.09.28 06:24

    아주 감사합니다

  • 작성자 22.11.19 20:50

    아주

  • 22.11.19 19:39

    감사합니다 아주

  • 작성자 22.11.19 20:50

    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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