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29.대림 제 1주일. 원주성당. 유낙준주교.
“주께서 그 고생의 기간을 줄여주시지 않는다면 살아 남을 사람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주께서는 뽑으신 백성들을 위하여 그 기간을 줄여주셨다(마르코13:20). The Lord has reduced the number of the trouble of those days; if he had not, nobody would survive. For the sake of his chosen people, however, he has reduced those days.”
고통의 시간을 감해주시는 하느님께 감사를 올리자!(마르13:20 참조)
예기치 않게 고통은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오래 고통을 겪는 것을 좋아하시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우리 원주성당성도들에게 고통을 감해주시고자 오늘 하느님이 방문해 주셨습니다. 하느님이 사랑하시는 여러분의 고통이 줄여들 것을 믿고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선포합니다. 아멘.
대림 첫 주일이 오늘입니다. 주님의 달력으로는 오늘이 새해 첫날입니다. 그래서 복음에서 지난 날과 다른 새로운 날로 오늘을 잘 지키라는 뜻으로 “늘 깨어 있어라 Watch!(마르13:37)”고 예수님이 우리에게 외치십니다. Watch는 ‘주의해서 지켜보다’ 이고 Keep awake는 ‘잠에서 깨어 눈 뜨고 있어라’는 뜻입니다. 둘다 눈감지 말고 ‘눈을 뜨고 있으라’는 뜻입니다. 눈감고 있을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것이니까 순식간에 뭔일이 터질 거라는 뜻입니다. 어떤 사람을 보면 나는 아무 감각없이 지나치는데 순간 지나치는 것을 알아차리는 사람을 보면 놀라기도 합니다. 예민한 감각을 지닌 사람을 보면 부럽기도 합니다. 특히 예리한 눈매로 사람을 정확히 보는 사람이면 부럽습니다. 또한 시대를 정확하게 보는 사람을 보면 저보다 머리가 하나 더 있는 듯이 보입니다. 또한 교회 안에서 영적인 상태를 정확히 보고서 영적인 어려움을 겪는 교우를 위해 하느님의 힘으로 잘 이겨나가기를 간구하는 교회위원성도를 보면 하느님이 주신 은총에 감사기도를 올리게 됩니다. 사탄인 적군이 쳐들어오는 것을 망루에서 보고 미리 대비하여 피해를 최대한 줄이고 적을 물리칠 위치를 잡는 것입니다. 그 망루에서 졸면 안 됩니다. 적이 오는지를 보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인 “깨어 있어라”는 우리의 영적인 안전을 위하여 인생출발부터 이를 잘 지키라는 말씀이십니다.
레이첼 카슨(1907-1964)은 미국의 펜유출신의 생물학자로 “침묵의 봄”이라는 책을 내어 환경운동가들이 좋아하는 분이십니다. 해충제와 DDT라는 제초제로 인하여 지구의 생태가 파괴되고 봄이 왔는데도 새들이 자취를 감추었고 인간이 파괴된다는 뜻을 제기한 중수필입니다. 농산물을 대량생산하기 위해 쓰여진 살충제가 결국 인간을 파괴한다는 내용을 제기하고 큰 회사들과 싸워 환경운동을 펼친 여성입니다. 돈이라는 이익을 보기보다는 생명을 존중하는 마음을 지키는 것이 깨어 있는 삶입니다. 인생에서 전환점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대개 크게 아프고 나면 선한 사람이 됩니다. 아픈 것이 큰 전환점이 된 것입니다. 아픈 적이 없는 사람은 늘 욕심을 부리는 사회에 살고 있었기에 선한 사람이 될 기회를 놓친 사람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DDT로 인하여 새가 아파 죽어가는 것을 보고 자신이 아픈 마음이 든 것입니다. “하느님은 하느님의 사람중의 한 사람이 죽으면 하느님의 마음의 고통이 얼마나 크신지요(시편116:15)?” 다른 사람이 아프면 내가 아프게 되는 것이 하느님의 마음을 갖는 사람입니다. 하느님의 창조물인 새가 아프면 내가 아프게 되는 것이 그리스도인입니다. 깨어 있으라는 말씀은 하느님의 창조물이 아프면 아픈 내 마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전에는 남의 아픔이 만난 그 때만 아팠는데 이제는 헤어져서 멀리 있는데도 계속적으로 내 마음이 아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기업과 싸우면서까지 하느님의 창조물인 새들과 땅과 인간을 지키려고 한 레이첼 카슨여성입니다.
성공하거나 성취한 것을 가지고 기쁨을 나누는 자리를 자주 가는 사제는 사제답지 못합니다. 고통받는 자리에 자주 가는 사제이어야 한다는 뜻에서 이를 강조하게 됩니다. 아픔을 함께하시는 자리에 하느님이 계시기 때문에 하느님은 고통의 연대자이시기에 우리가 하느님과 함께 하려면 고통의 자리를 우선에 두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아픔과 고통이 있는 자리에 가장 먼저 달려가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우리 교회가 살려면 아픔의 자리에 우리가 자주 가면 됩니다. 그렇게 아픔의 연대자로 사는 삶의 전략을 바꾸면 교회가 살고 우리가 삽니다.
제가 태어난 천안시골에 가면 지금도 고조모, 증조모,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산소를 종중산에 모시고 계십니다. 그 땅에서 태어나고 살았고 돌아가셔서 그곳에 묻히셨고 흙이 되었습니다. 토양의 일부가 된 순환적인 삶이 된 우리의 조상들이십니다. 그곳서 저는 자랐고 그 흙을 밟고 다녔고 그곳서 숨을 쉬었습니다. 또한 그곳서 자란 동식물들의 인자들이 토양과 공기를 통해 나의 세포인자와 연결됐을 것입니다. 땅의 소유보다도 땅의 공유를 강조한 어르신들의 말씀들을 들으면서 자랐습니다. 그리고 각각의 땅에서 일하신 사람의 말과 억양이 그곳에 묻어 있음을 늘 느끼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후손들이 많이 흩어져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요한복음 3장 16절을 읽어 봅시다. “하느님은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 주셨습니다. For God loved the world so much that he gave his only Son.” 예수님은 인간구원만을 위해 우리들에게 오셨다고 인간중심적인 관점을 지니려는 성향을 우리는 지녔습니다. 이에 대하여 요한복음의 예수님의 말씀은 매우 우리에게 도전적인 말씀으로 다가옵니다. ‘하느님은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지 ‘하느님은 인간을 극진히 사랑하셨다’고 기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창조하신 모두를 사랑하시지 인간만을 사랑한다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로버트 프로스트(1874 -1963)는 미국 국민시인으로 “불과 얼음”이라는 시에서 “세상이 불로 끝나리라는 사람도 있고 얼음으로 끝나리라는 사람도 있다. 나는 내가 탐닉한 욕망으로 본다면 나는 불을 택한 사람에게 더 공감이 간다. 그러나 두 번 멸망한다면 사람들의 증오를 아니 얼음으로 멸망하리라는 것을 나는 안다. 역시 숭고하고 당연히 그럴만하다고 하리라.” 여기서 시인은 욕망과 증오로 인간은 멸망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1961년 케네디 대통령 취임식서 “아낌없는 선물”을 낭독하여 시를 가까이하게 하였습니다. 1950년대 75세, 85세 생일축사를 상원 결의안으로 채택을 하여 보냈다고 합니다. 케네디대통령 추모시“가지 않는 길”에서 ‘길은 길로 이어지고’가 눈에 띄입니다.
지금부터 55년전에는 30억 인구에 초지가 62%였는데 2020년도에는 71억 8천만명의 인구에 35%의 초지가 되었습니다. 지구의 미래가 희망적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어떤 전환점이 필요한 인간입니다. 마르코복음에서 예수님은 선포하십니다. “시간을 아는 사람이 없다(마르13:32). No one knows the hour!” 우리가 살면서 필연적으로 맞이하는 예기치 않은 일들이 있습니다. 차사고, 심장마비, 뇌진탕, 공격적인 암 등이 우리의 생명을 위협하는데 이 시간을 아무도 모릅니다. 죽을 때를 아는 이가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삶을 더 확장하여 보고자 합니다. 2020년 호주의 산림이 21%가 불로 사라졌다고 합니다. 초대교회의 박해의 원인은 자신의 세대가 지나기 전에 믿음의 자유와 함께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는 재림신앙이었습니다. 거대한 갈등과 거대한 자연재해의 끝자락에 예수재림신앙이라는 믿음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14세기 중엽에도 1/3유럽인구의 죽음을 몰고 온 페스트전염병후에 에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것이라고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믿었다는 것입니다. 이와 유사하게 세계 1차 2차대전시기에도 끝이 왔으니 예수님의 재림신앙이 왕성했다는 것입니다. 호주의 불로 33명의 목숨을 잃고 30억마리의 동물들이 죽었고 인한 하늘의 붉은 색상과 까만 연기로 인한 대낮의 어두운 사진으로 재림신앙이 더 기억되었다는 것입니다. 2020년초에 온 코로나-19가 지난 8개월간 우리를 지배한 후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오심을 맞이하는 대림절기입니다. “깨어 있어라”“믿음을 지키라!” “포기하지마라!”
세상을 사랑한다면 우리가 세상에 스트래스를 주는 일들을 말리셨을 예수님이십니다. 성탄절을 향한 대림여행의 출발점인 오늘입니다. 대림여행의 중요한 출발점은 이웃사랑의 방향을 잘 잡자는 것입니다. 이웃사랑은 생명을 공유하는 사람들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생명만을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동식물계 생명 모두를 존중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생명을 향한 위대한 존경을 갖는 것과 하느님의 창조세계를 존중하는 것은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이 제시하는 좋은 일입니다. “씨를 뿌리지도 않고 먹고 사는 새들까지 먹이시는 아버지 하느님이신데 너희는 새보다 훨씬 귀하지 않느냐?(마태6:26).” 하느님의 돌봄에 우리도 서로를 돌보고(5표지중 3번. “사랑의 섬김으로 이웃의 필요에 응답합니다) 창조물을 돌보아야(5표지중 5번) 합니다. 특히 새로운 생명의 희망이 적은 현 환경제도하에서 우리가 할 일은 생태계 보전의 5표지중의 5번항입니다. “창조질서를 보전하며, 지구생명의 회복과 유지에 헌신합니다.”
다시 사는 부활의 본질은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어두움에 빛이 비췰 것으로 하느님의 은총 안에서의 가능성이 마지막에 새로운 시작으로 변화할 것입니다. 이것이 대림절 첫날의 선포입니다. 희망을 포기하지 믿음과 새로움의 가능성에 열어놓는 기도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 깨어 있는 삶으로 나와 다른 사람과 함께 협력하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고통의 시간을 줄여주시는 하느님의 은총을 받으시길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선포하였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