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아버지께 벌써 6월도 중순입니다. 요즘 동네 산책길은 초록이 절정을 이루고 있어요. 걷는 길목마다 낯익은 나무들이 생기로 반짝이고, 그 풍경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차분해집니다. 이런 계절이 오면 자연스레 아버지가 생각납니다. 나무를 좋아하고, 돌보는 걸 기꺼이 여기시던 아버지. 어릴 적, 아버지는 정원에 많은 나무를 심고 가꾸셨어요. 꽃도 열매도 앙증맞던 회양목, 한겨울에도 초록 잎을 자랑하던 사철나무, 이른 봄이면 함박꽃을 피워내던 백목련, 둥글둥글 복스러웠던 향나무... 그리고 제가 유난히 좋아하던 앵두나무와 감나무까지. 이른 아침, 물을 주고, 가지를 다듬고, 잎사귀 하나하나를 살피시던 그 모습이 문득 떠오릅니다. 그 모습은 어느새 제 안에서 시간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는 풍경이 되었어요. 그 시절, 이맘때가 되면 아버지는 제 손을 잡고 수목원에 가는 걸 참 좋아하셨지요. 나뭇잎의 결 하나, 줄기 하나를 참 사랑스럽게 바라보시던 아버지. 그리고 말씀하셨죠. “가만히 있는 것 같지만 얘도 숨 쉬고 있단다.” 그 나지막한 목소리와 나무를 바라보던 따뜻한 눈빛이 제 안에 오래도록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땐 몰랐어요. 아버지가 나무를 사랑하셨던 건 단지 자연을 좋아해서만이 아니라, 묵묵히 자라고, 계절을 견디고, 제자리를 지키는 삶의 방식을 닮고 싶으셨기 때문이라는 걸요.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나무가 되어간다는 건 그렇게 조용하고, 그러면서도 단단한 시간이었음을요. 얼마 전, 『나무는 자라서 나무가 된다』는 그림책을 읽었어요. 묘목 하나를 품에 안은 엄마와 아이가 숲으로 들어섭니다. 햇살 스며드는 나무들 사이, 투명하게 번지는 초록빛 길을 걷는 모습에서 꼬마였던 제 모습과 젊은 아버지의 모습이 겹쳐 보여 오래도록 눈길이 머물렀어요. 아기나무는 어떻게 태어나는지, 어린나무는 어떻게 자라는지, 그리고 자라고 자라서 무엇이 되는지... 엄마와 아이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또 나란히 걸으면서 나누는 자연과 생명에 대한 이야기는 다정하고 달콤했어요. 나무는 자라서 결국 나무가 되는 존재. 책 속에서 나무는 단순한 식물이 아니라 존재 그 자체로서 삶의 은유가 되어주었어요. 무언가를 애써 더하지 않아도, 제 자리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하다는 걸 말해주는 듯했지요. 그건 마치 아버지의 삶과도 닮아 있었어요. 크게 드러나지 않아도 늘 자리를 지키며 주변을 따뜻하게 만들어주시던 그 존재감 말이에요. 아버지와 함께 걷던 길에서 제가 배운 건 단지 나무의 이름이 아니라, 자라고, 기다리고, 스스로 뿌리를 내리는 삶의 방식이었어요. 그 덕분에 저는 아버지라는 든든한 나무 아래서 가지들을 다듬고, 비바람에도 단련되어, 제법 균형 잡힌 나무가 되어가고 있어요. 괴테는 말했지요. “부모가 자식에게 줄 수 있는 것은 두 가지뿐이다. 뿌리와 날개.” 뿌리는 단단히 발 딛고 서는 힘이에요. 내 삶을 내 손으로 꾸려 갈 수 있는 근력 같은 것. 날개는 더 먼 곳을 상상하고, 두렵더라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용기와 자유. 아버지는 그 두 가지를 모두 저에게 주신 분이에요. 그 뿌리 덕분에 저는 흔들려도 무너지지 않았고, 그 날개 덕분에 제 삶의 길을 날아올 수 있었어요. 아버지, 언젠가 저도 아버지처럼 누군가에게 숲이 되어줄 수 있기를 바래요. 혼자 자라지 않는 나무처럼, 서로 연결된 삶 안에서 때로는 그늘이 되어주고, 또 때로는 뿌리가 되어주는 존재. 말없이 곁을 지켜주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언제나 제 삶의 숲이 되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부디 오래도록, 푸르게 그 자리에 계셔 주세요. 나무처럼 저를 키워주신 아버지께 존경과 사랑을 담아 이 글을 드립니다. 추신. 아버지, 6월이 가기 전에 이 그림책을 들고 초록 숲에 가요. 이번엔 제가 아버지 손을 꼭 잡아드릴게요. 그리고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날이 너무 좋네요! 이렇게 멋진 날 아버지랑 같이 숲에 오길 정말 잘했어요.” |
첫댓글 오래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울컥했네요~
잘 읽었어요~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