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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과 웰빙 스크랩 건강상식 현대 사회의 정신병리와 그 치유 - 이만홍 박사
김진영목사 추천 0 조회 105 11.04.15 09:32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주제발표 Ⅰ

현대 사회의 정신병리와 그 치유


 이 만 홍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정신과 교수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 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딤후 3: 1-5)


현대 사회 정신병리 현상의 특징은 보편성과 비정형성에 있습니다.


   현대는 정신질환이 너무나 보편적으로 만연되어 있는 시대이기 때문에 현대를 불안의 시대라고 부릅니다. 사람들은 그 불안의 정체를 외부에서 찾으려 하지만 그런 시도는 해결책을 찾을 수 없는 투사에 불과합니다. 불안의 근원은 인간의 내부 바로 우리의 심성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불행히도 정신질환이 급증하고 있는 현상은 교회라고 하여 예외는 아닙니다. 많은 목회자들이 목회의 현장에서 정신질환과 맞닥드리고 있으며 이들을 효과적으로 다루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정신분열병, 우울증, 인격장애, 알코올 및 약물중독 등의 질환들이 우리 주위에 만연한데도 그 어떤 전문가 집단도 이를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대비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현대인의 정신병리의 또 다른 특징으로 비정형성을 들 수 있습니다. 어떤 특정한 증상을 가진 정신질환 만이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심성 그 자체가 나약하게 일그러져 갑니다. 즉 우리 모두의 인격 그 자체가 병적이 되어가고 있다는 말입니다. 디모데 후서의 기술처럼 자아가 나약해지며, 의존적이 되어 가며, 그리고 자기중심적인 경향이 점점 심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자아가 약하게 형성되기 때문에 쉽게 깨어지며, 쉽게 정신병적인 상태로 빠지며. 사소한 스트레스에도 쉽게 무너져 버립니다. 반면에 어떤 절대적인 대상을 찾아 확실하게 의존하려는 의존성의 경향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신앙의 형태가 즉각적이고 주술적이며 현실 보상적인 경향을 띠게 됩니다. 오래 참고 기다리지를 못하고 사이비 이단에 빠지기 쉽습니다. 아울러 극도로 자기중심적이 되어 가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기적이고 교만해 지며, 자아도취적(나르시즘적)이 됩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고독감, 두려움, 인정에 대한 갈구, 열등감, 낮은 자존감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인격장애적인 특성은 특히 젊은 층에서 더욱 뚜렷하여 보이므로 오늘날의 젊은이들이 교회 공동체 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며 앞으로 어떻게 이에 대처하여야 하는가는 모든 크리스천과 교회가 해결해야할 과제가도 하겠습니다.


정신병리의 원인과 해결책에 관하여


   첫째, 현대인의 정신질환은 그 원인이 심리적인 혹은 영적인 어느 한 영역 만의 문제가 아니라 매우 복합적이고도 다차원적인 데에 그 원인이 있습다. 그러므로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는 문제를 바라보는 데에 있어서 통합적인 시각을 가져야 합니다.  정신질환의 유전학설과 창조-타락의 신적 섭리와는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정신질환의 3세대 가설(three generation hypothesis)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주장은 원래 역동적인 심리학설에서 나온 주장이지만 오늘날의 첨단 유전학과 신경세포학의 발달이 보여 주는 것은 인간의 타락으로 야기된 뿌리깊은 인간성의 병리가 단지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 세포 하나 하나의 구조에 변형이 아로새겨져서 그것이 대대로 이어져 내려간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즉 정신병의 원인을 연구해 들어가면 그 속에는 하나님의 창조-타락의 섭리와 이에서부터 생겨난 인간의 연대적인 책임과 신적인 질서가 있음을 알게 됩니다. 따라서 정신질환을 이해하고 극복하려는 노력은 자연과학과 심리학의 영역일 뿐만 아니라 구원의 문제와도 직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목회자들이 정신질환을 단순히 영적인 차원의 작업을 통하여 극복하려고 시도하는 것이 비현실적인 것일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현대의 과학자들이 영적인 질서나 인간적인 모순과 책임을 도외시하면서 유전자 조작만으로 정신병을 고쳐 보려는 시도는 오히려 종말론적인 재앙을 자초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의 통합적인 시각으로 돌아가야 하되 상담심리학을 포함한 모든 학문적인 노력에 대하여도 마음을 열고 귀를 기울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둘째, 정신병리의 주원인 중의 하나는 잘못된 만남에서부터 비롯됩니다. 인간이 성숙하게 되는 것은 인간이 성장하면서 겪게 되는 다양한 만남에 의합니다. 그것은 인격의 성숙이든 영적인 성숙이든 공통적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신질환을 예방하고 극복하기 위하여 인격적인 만남을 중시하여야 합니다. 대상관계 이론가들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지혜는 인간의 창조적인 성숙은 개인적으로 만나는 경험이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갓 태어난 어린아이는 엄마의 사랑, 관심, 정서, 즐거움을 개인적인 만남을 통하여 얻게 되며 이를 받지 못할 때 인간은 정신적으로 심하게 병들고 맙니다. 아기의 타고난 발달잠재력은 엄마로부터의 사랑의 공감적 돌봄에 의하여 활성화되는데 Winnicot는 특별히 이를 여성적 요소(the female element)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므로 현대 정신병리를 예방하고 극복하기 위하여는 우리는 여성의 사회참여와 남녀 평등의 그늘 속으로 축소되어 가는 엄마의 여성적인 역할의 중대함을 재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젊은 엄마들의 자기주장과 사회참여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긴 하지만 정신병리적인 관점에서는 심각한 비극의 시초일 수도 있습니다. 서구 사회에서 이혼의 급증과 병리현상의 급증이 바로 직결되어 있는 것이 그 증거입니다.  


        한편 영적인 성숙은 예수님을 개인적으로 만나 영적으로 거듭나는데서 부터 출발합니다. 그것도 한 번 만의 만남이 아니라 자꾸만 만나고, 매일 만나야 영의 성숙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는 것은 카리스마적인 은사를 체험하는 것만이 아니라 믿음의 가족들과의 공동생활 속에서의 인격적인 만남을 통해서도 이루어 질 수 있어야 성숙 또한 가능하게 됩니다. 바로 이런 점에서 오늘날 우리 교회들은 반성이 필요합니다. 개인적인 만남의 경험이 이루어지지 않고 단지 다중적이고도 일방적인 말씀 선포가 주를 이루는 목회에서는 영적 성숙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을 통감하여야 합니다. 일방적인 지도와 순종이 아닌, 지도자가 시간을 내어 개인적인 삶의 모습과 고뇌에 귀를 기울이는 만남을 소중히 여기는 공동체적인 모습을 회복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 교회에서 성숙과 치유의 모습이 부족한 것은 은사나 기도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만남이 부족해서라고 봅니다.


   Guntrip은 이런 만남이야말로 궁극적인 분석의 과제(the ultimate analytic problem)라고 불렀습니다. 현대 정신분석이 인간치료의 중심에서부터 멀리 밀려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인격의 만남이 가지는 치유의 능력을 무시하였기 때문입니다. 상담에서야말로 만남과 공감의 중요성은 더욱 강조된다. 공감은 남에게 관심을 갖고 남을 이해하고 정서적으로 만나는 것입니다. 상담의 치유는 이러한 관계와 만남을 통한 치유이며 성숙의 노력입니다. 인격적인 관계야말로 가장 소중한 것이며, 성령 안에서 이루어질 때 온전하게 될 수 있습니다. 상담은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 관심을 기울이는 노력이며 바로 그 관계를 통하여 치유를 이루려고 하는 관계치유학입니다. 무엇이 인간 정신을 낫게 하는가? 하나님은 무엇을 통하여 역사 하시는가? 인격과 인격의 만남을 통해서입니다. 이것이 없이는 인간 성숙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누구나 상담에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전문가이든 아마추어이든 상관이 없습니다. 인위적인 형식의 틀에 지나치게 매이지 말고 상담사역이 사회적인 운동으로 자리를 잡도록 해야할 것입니다.


   셋째, 현대의 정신병리는 소유와 포기의 갈등 사이에서 발생하는 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대의 가치체계는 어쩔 수 없이 자본주의의 강한 영향하에 형성되어 왔으며 자본주의의 기본 덕목은 소유하는 데에 있습니다. 그러나 소유는 멈추지 않고 과도한 소유로 이어지며, 착취와 환경의 파괴와 불평등과 구속으로 이어지며,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 간의 긴장을 낳고, 불안과 우울로 이어집니다. 그러므로 현대사회의  정신병리는 자본주의의 병폐이며, 소유를 가치로 아는 것은 죄악입니다. 따라서 사회만이 아니라 교회가 그런 망조에 앞장 서 가는 현실은 시급히 반성을 해야할 일입니다. 특히 우리의 젊은 크리스천들은 아직 가난한 자리에 있을 때 먼저 소유하는 삶을 사느냐 포기하는 삶을 사느냐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결정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현대를 살면서 포기에서 오는 소외감, 열등감을 어떻게 극복하는가는 만만치 않은 큰 과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교회는 그 공동체적인 모습 속에서 해답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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