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7:24-8:17 기드온이 사자들을 보내서 에브라임 온 산지로 두루 다니게 하여 이르기를 내려와서 미디안을 치고 그들을 앞질러 벧 바라와 요단 강에 이르는 수로를 점령하라 하매 이에 에브라임 사람들이 다 모여 벧 바라와 요단 강에 이르는 수로를 점령하고 25 또 미디안의 두 방백 오렙과 스엡을 사로잡아 오렙은 오렙 바위에서 죽이고 스엡은 스엡 포도주 틀에서 죽이고 미디안을 추격하였고 오렙과 스엡의 머리를 요단 강 건너편에서 기드온에게 가져왔더라 8:1 에브라임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이르되 네가 미디안과 싸우러 갈 때에 우리를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우리를 이같이 대접함은 어찌 됨이냐 하고 그와 크게 다투는지라 2 기드온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이제 행한 일이 너희가 한 것에 비교되겠느냐 에브라임의 끝물 포도가 아비에셀의 맏물 포도보다 낫지 아니하냐 3 하나님이 미디안의 방백 오렙과 스엡을 너희 손에 넘겨 주셨으니 내가 한 일이 어찌 능히 너희가 한 것에 비교되겠느냐 하니라 기드온이 이 말을 하매 그 때에 그들의 노여움이 풀리니라 4 기드온과 그와 함께 한 자 삼백 명이 요단 강에 이르러 건너고 비록 피곤하나 추격하며 5 그가 숙곳 사람들에게 이르되 나를 따르는 백성이 피곤하니 청하건대 그들에게 떡덩이를 주라 나는 미디안의 왕들인 세바와 살문나의 뒤를 추격하고 있노라 하니 6 숙곳의 방백들이 이르되 세바와 살문나의 손이 지금 네 손 안에 있다는거냐 어찌 우리가 네 군대에게 떡을 주겠느냐 하는지라 7 기드온이 이르되 그러면 여호와께서 세바와 살문나를 내 손에 넘겨 주신 후에 내가 들가시와 찔레로 너희 살을 찢으리라 하고 8 거기서 브누엘로 올라가서 그들에게도 그같이 구한즉 브누엘 사람들의 대답도 숙곳 사람들의 대답과 같은지라 9 기드온이 또 브누엘 사람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평안히 돌아올 때에 이 망대를 헐리라 하니라 10 이 때에 세바와 살문나가 갈골에 있는데 동방 사람의 모든 군대 중에 칼 든 자 십이만 명이 죽었고 그 남은 만 오천 명 가량은 그들을 따라와서 거기에 있더라 11 적군이 안심하고 있는 중에 기드온이 노바와 욕브하 동쪽 장막에 거주하는 자의 길로 올라가서 그 적진을 치니 12 세바와 살문나가 도망하는지라 기드온이 그들의 뒤를 추격하여 미디안의 두 왕 세바와 살문나를 사로잡고 그 온 진영을 격파하니라 13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헤레스 비탈 전장에서 돌아오다가 14 숙곳 사람 중 한 소년을 잡아 그를 심문하매 그가 숙곳의 방백들과 장로들 칠십칠 명을 그에게 적어 준지라 15 기드온이 숙곳 사람들에게 이르러 말하되 너희가 전에 나를 희롱하여 이르기를 세바와 살문나의 손이 지금 네 손 안에 있다는거냐 어찌 우리가 네 피곤한 사람들에게 떡을 주겠느냐 한 그 세바와 살문나를 보라 하고 16 그 성읍의 장로들을 붙잡아 들가시와 찔레로 숙곳 사람들을 징벌하고 17 브누엘 망대를 헐며 그 성읍 사람들을 죽이니라.
분별과 집중
사사기 8장은 미디안 연합군과 기드온과 300 용사의 큰 싸움에서 승리한 기드온이 도망치는 잔당들을 소탕하는 남은 전쟁을 배경으로 등장하는 두 개의 에피소가 전체적인 내용을 끌고 갑니다. 먼저 에브라임이 기드온에게 시비를 거는 장면이 나옵니다(1-3). 뒤늦게 전쟁에 참여했던 에브라임 사람들은 미디안의 두 방백을 잡아 죽이는 전과를 올리고는 의기양양해서 왜 자신들을 일찍 불러주지 않고 마지막에 불러서 뒤치다꺼리만 하게 하느냐고 불평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에피소드는 요단강 동쪽 계곡에 위치한 갓 지파의 영토에 속한 숙곳과 브누엘 사람들이 기드온의 요청을 거절한데서 발생한 사건입니다. 도망치던 세바와 살문나를 뒤쫓던 기드온과 300 용사는 요단강을 건넌 후 심히 지쳐서 숙곳 사람들에게 떡을 좀 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러나 숙곳 사람들은 “네가 아직 세바와 살문나에게 완전한 승리를 거두지도 않았는데 우리가 어찌하여 네 군대에게 떡을 줄 수 있겠느냐?”고 하면서 기드온의 요청을 거절합니다. 이 말은 아직 전세가 뒤집힐 가능성이 충분히 있고, 그렇게 되면 나중에 당할 보복이 두려우니 상황을 더 지켜보겠다는 의미입니다. 지금 기드온을 따르는 군사는 300이요, 적은 15,000입니다. 누가 봐도 객관적인 전력으로는 여전히 게임이 안 되니 그렇게 생각할 법도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들의 거절이 거의 희롱에 가까운 거절이었다는 점입니다.
15절에는 분명히 이들이 기드온을 희롱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들에게 모욕을 당한 기드온은 여호와가 나에게 세바와 살문나를 넘겨주어서 승리하고 나면 돌아와서 들가시와 찔레로 너희 살을 찢겠다 하고, 브누엘로 올라가서 똑같은 부탁을 합니다. 브누엘 사람들도 숙곳 사람들과 똑같이 대답하자 기드온은 돌아올 때 너희 망대도 헐겠다고 하고, 세바와 살문나를 계속 추격해서 만 오천 명의 군대를 격파하고 세바와 살문나를 사로잡아 옵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숙곳에 들려 자신과 300 용사를 희롱한 그 곳 사람들과 장로들과 방백들을 약속대로 들가시와 찔레로 징벌하고, 브누엘의 망대도 헐고 그 성읍 사람들도 죽여서 징벌합니다.
오늘 우리가 생각해야 할 부분은 이 두 이야기의 다른 결과입니다. 왜 기드온은 소리를 지르면서 달려드는 에브라임 사람들은 달래서 돌려보내고, 숙곳 사람과 브누엘 사람들은 동족인데도 마치 원수를 대하듯이 무참하게 복수했습니까? 이 차이는 전쟁의 참전 여부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자처하는 사람들이 실제로 하나님의 일에 동참했느냐 아니면 구경만 하고 말만 하느냐의 차이입니다. 에브라임은 얄밉게 눈치를 보다가 뒤늦게 살금살금 들어와 승리를 챙긴 경우이지만 그래도 싸움에 참여했습니다. 싸움에 참여해서 무엇인가를 했습니다. 그러나 숙곳과 브누엘은 말은 하나님의 전쟁에서 피곤하고 지친 용사들을 돕기는커녕 오히려 희롱했습니다. 원래 이스라엘 문화는 지나가는 나그네도 환대하는 문화입니다. 그런데 열심히 땀 흘리면서 하나님의 전쟁을 수행하고 있는 동족 기드온과 300 용사를 조롱하면서 외면하여 낙심하게 만들었습니다. 사사기는 전혀 다른 결과로 이 차이를 굉장히 중요하게 부각시켜서 우리를 교훈합니다.
누가 하나님 나라의 백성입니까? 사사기 5장의 드보라의 노래를 보면 여호와의 전쟁에 참여한 지파들은 복을 받았고, 참여하지 않은 지파들을 저주를 당했습니다. 지금 기드온이 이 전쟁에 참여한 에브라임과 참여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들을 조롱했던 숙곳과 브누엘을 전혀 다른 관점으로 대하고 있는 것도 동일한 기준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 나라의 싸움에 참여하는 자들입니다. 아무리 혈통적으로 이스라엘이고 이스라엘의 경내에 살고 있어도 하나님이 일으키신 전쟁에 참여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아닙니다. 실제로 숙곳과 브누엘이 지리적으로는 갓 지파에 속하지만, 오늘 본문은 이들의 지파를 밝히지 않고 그냥 숙곳과 브누엘 사람이라고만 거명한 자체가 이를 반증합니다. 이들은 혈통상 지리상 이스라엘에 속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참 이스라엘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반면에 뒤늦게 싸움에 끼어들어 얄밉게 전과를 올렸어도 여호와의 싸움에 참여한 이상 에브라임은 여전히 영광스러운 하나님 나라의 백성입니다. 이는 사사기 12장에서 에브라임이 공과를 놓고 입다와 시비를 벌이는 장면에서도 확인됩니다. 거기서 에브라임의 운명은 지금 8장의 결말과 다르게 끝납니다. 12장의 입다는 기드온과 달리 에브라임을 용납하지 않고 무려 4만 2천 명이나 죽입니다. 왜 이런 차이가 있습니까? 12장의 에브라임과 8장의 에브라임이 다른 점은 하나뿐입니다. 전쟁의 참전 여부입니다. 8장의 에브라임은 그나마 전쟁에 참여했습니다. 그러나 12장의 에브라임은 전쟁에 코기도 내밀지 않으면서 시비하고 원망하면서 입다의 분개를 샀습니다(12:1-3).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라면 하나님이 명하신 하나님의 싸움에 참여해야 합니다. 피하지 말아야 합니다. 늦게라도 그 싸움에 참여하는 자가 하나님 나라의 백성입니다. 오늘 우리는 어떠합니까? 하나님이 마땅히 싸우라고 명령하신 믿음의 싸움을 싸우고 있습니까? 아니면 도무지 싸울 생각을 하지 않으면서 이런저런 불평과 원망을 쏟아내면서 시비를 일으키고 있습니까? 저와 여러분은 죄와 싸우고 있습니까? 불의와 싸움하고 있습니까? 주의 교회를 위해 헌신하는 일에 동참하고 있습니까? 교회가 나누어야 할 고난의 짐에 기꺼이 동참하면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고 있습니까? 동참을 부탁받고도 숙곳과 브누엘처럼 꽁무니를 빼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 더 생각해야 할 것은 기드온의 분별과 집중력입니다. 그는 아직 그가 해야 할 일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미디안의 패잔병들을 완전히 제압해서 다시는 그들이 이스라엘을 괴롭히지 못하도록 하는 일이 아직 남아 있는데 에브라임과 숙곳과 브누엘의 갈등이 발생했습니다. 그는 이 싸움의 마지막에 집중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의 힘을 분산시키는 일에 말려들지 않고 힘을 집중할 줄 알았습니다.
사실 에브라임의 불평은 기드온을 분노하게 만들기 충분합니다. 에브라임의 늦은 참전은 자신들의 책임입니다. 하나님이 나팔을 불었음에도 두려움으로 나서지 않았습니다. 기드온이 떨치고 일어나기 전엔 미디안과 싸울 엄두조차 내지 못했습니다. 기드온이 이기고 승기를 잡으니까 웅크리고 숨어 있다가 겨우 나와서 싸워놓고 이제 큰소리를 치고 있습니다. 기드온의 입장에서 보면 에브라임의 난동에 가까운 이런 불평은 정말 억울한 일입니다. 이 전쟁을 시작하기까지 그는 혼자서 무거운 짐을 감당해야 했고 외로운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때까지 에브라임이 한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오히려 큰소리치면서 이 싸움을 마치 자기가 다 이긴 것처럼 따지고 있습니다. 기가 막힌 일입니다. 꼭 이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때 이번 기회에 한번 본때를 보여줄까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드온은 그 생각을 누르고 이들과 싸우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본때를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기드온은 이들의 마음을 위로하면서 그들을 달랩니다. 왜 기드온은 에브라임과 싸우지 않고 오히려 잘 설득하면서 돌려보내고 있습니까? 에브라임이 두려워서가 아닙니다. 그들이 하는 짓을 보면 한번 본때를 보여주고 싶지만, 지금은 뒤늦게나마 전쟁에 참여한 에브라임에게 본때를 보여주면서 힘을 소모해야 할 때가 아님을 알기 때문입니다.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습니다. 지금 이들과 자존심 싸움을 하면 미디안의 잔병을 잡지 못합니다. 지금은 그들에게 본때를 보여 다시는 나를 얕보지 못하도록 하는데 내 정열을 소모해야 할 때가 아닙니다. 지금은 그들을 달래놓고 미디안의 잔병들을 완전히 제압해서 다시는 미디안이 이스라엘을 괴롭히지 못하게 해야 하는 때입니다. 비록 에브라임이 정말 얌체 같고, 성질이 더럽고, 함께 하기가 힘든 지파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번 전쟁에 참가한 지파입니다. 싸워야 할 적군이 아니라 그래도 아군입니다. 그래서 기드온은 그들과 싸우지 않습니다. 아직 할 일이 남아 있는데 쓸데없이 아군과 자존심에 관한 싸움을 싸우면서 소모전을 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입니다. 분별력과 집중력입니다.
그 집중력으로 숙곳과 브누엘의 조롱과 거절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패잔병들을 쫓아 하나님이 명령하신 싸움의 남아 있는 목표를 향하여 흔들림 없이 나아가서 마침내 적들을 완전히 제압할 수 있었습니다. 저와 여러분에게도 싸우지 말아야 될 사람을 분별하고, 또 힘이 빠질 상황에서도 믿음의 집중력을 발휘해서 이겨내고 감당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에브라임처럼 자신의 자존심을 내세우면서 나와 시비할 것이고, 또 어떤 사람은 숙곳과 브누엘 사람들처럼 자기는 편안히 지내면서 말로만 떠들고 나의 헌신을 조롱할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도 흔들림 없이 달려갈 나의 목표와 사명은 무엇일까요?
어떤 때는 기드온이 에브라임을 달래서 보낸 것처럼 달래야 할 경우도 있고, 또 어떤 경우에는 숙곳과 브누엘 사람처럼 철저하게 응징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교회를 섬기고 하나님이 맡기신 성도의 삶을 믿음으로 살아갈 때, 이것을 잘 분별해서 집중력 있게 사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요?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이런 분별력과 집중력을 주셔서 주의 몸 된 교회를 잘 섬기고 또 우리에게 맡겨진 성도의 삶에도 집중하여 헌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박홍섭목사 / 한우리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