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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洪海里 스크랩 <문학평론> 자연의 변형과 시적 현상 : 홍해리론 / 채수영
홍해리洪海里 추천 0 조회 25 13.05.15 04:47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자연의 변형과 시적 현상

- 洪海里論/채수영

 

自然의 변형과 詩的 現像
- 洪海里論

                                                          채수영(시인. 문학평론가)

 1. 시인과 개성

  詩 속엔 우주의 모든 것이 들어 있다는 말은 신기한 뜻이 아니다. 시인이 여타 장르의 문인들과 다른 이유는 아무래도 시인의 뇌리 속에 간직된 관심의 영역과 시적 특징이 우주적이라는 점에서 유다른 立地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시인이란 소설가나 수필가와는 다른 본질을 다루고 있는 소재적 측면을 한정하는 점에 있는가? 이 또한 본격적인 대답이 아니라는 데서 오리무중의 迷路를 서성이는 셈이다. 그러나 시는 소설가가 관심을 갖는 인간의 문제, 예컨데 사랑이니 증오니 하는 자잘한 문제에 집중되는 경향인데 반해서 시인의 관심은 이보다 훨씬 광범위하고 본질적이라는 데서 차이가 엄존하고 있다. 詩는 하늘의 별에서부터 땅 위의 자잘한 돌멩이 혹은 이름없는 잡초에 이르기까지 시인의 촉수가 닿으면 승화하는 불빛을 만들어 내는 데서 여타 문학 장르가 따르지 못하는 地位를 갖는다. 시인의 순서가 언제나 문학의 맨 앞자리에서 문학을 바라보는 경우에서도 암시적이다. 그렇다면 시는 본래부터 지위가 결정지워졌는가 라는 의문은 불식되어야 할 차례이다. 시가 가지고 있는 영역ㅡ소재적인 면에서 시는 확고한 입지를 점령하고 있다는 점은 부인 될 수 없는 명백성을 갖는다. 이러매 시인은 우주를 바라보는 커다란 안목을 가져야 할 생래적 기질ㅡ이것이 갖추어져 있을 때 시인의 개성은 확실한 표정을 갖게 된다. 시인은 개성의 소리꾼ㅡ이런 첫번째 조건 속에서 또다른 개성을 찾아나서는 끝 모를 나그네의 임무에서 벗어날 수 없을 때 시의 모습은 詩人 앞에 나타난다. 洪海里의 시는 개성의 城을 쌓기 위해 남다른 표정을 축적한 시인이다. 그의 나이 49세를 보내는 1989년에 출간한 시집 『淸別』을 중심으로 시적 특질을 살핀다.

 2. 자연의 소리꾼ㅡ洪海里

  洪海里의 시에 부딪히는 첫번째 자극은 시 속에 자연의 소리가 가득하다는 사실이다. 바다 내음이 진하고, 우이동의 인수봉이 보이고, 봄날의 향내음이 스며오고, 겨울의 매서움ㅡ이것들은 모두 있는 그대로의 자연이라면, 가꾸는 자연ㅡ난초에 심취된 홍해리의 섬세한 숨소리가 蘭香으로 다가온다. 자연으로서의 자연과 가꾸는 자연은 별개의 의미가 아니다. 있는 그대로의 자연 속엔 인간의 개념으로 구분한 편의상의 문제이지 본질적인 점에서는 자연이라는 구성요인들을 구분해야 할 개념이 아니다. 어떻든 큰 그릇 속에서 사물을 구분하는 이치와 다를 바가 없다. 자연은 변화하는 속성에서 봄·여름과 겨울을 갖는다. 물론 넷으로의 구분은 편의상의 현상일 뿐이지 원칙적인 구분은 또한 아니다. 시인은 자연을 재료로 시라는 또하나의 우주를 만드는 匠人이다. 홍해리의 자연엔 있는 그대로의 자연과 깎고 다듬은 인공의 자연이 交織되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바라보는 눈이 유다르게 빛나고 있다.

 
 누구의 손으로
 천년 아니 억겁의 세월이 빚은
 지상에서 가장 잘 생긴 서울의 유방 한 쌍
 하늘에 드러난
 맑은 살결
 서울을 골짜구니에 품은 채
 젖빛 안개로 부끄러움을 가리는
 이곳에 오르면
 악인도 신선이 되어
 사람마다 날개가 돋는다.
   <牛耳洞 日誌.6>에서

 
 백운대 인수봉을 바라보면서 이를 詩化한 작품이다. 인수봉이라는 자연을 어떻게 시인의 마음속으로 끌어 넣어 변형을 이루는가는 시인의 개성이요 시인의 창조적 능력에 귀일 된다. 인수봉이라는 대상에 유다른 관심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전혀 무감각인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시인은 인수봉이라는 물상을 통해서 자기만의 세계를 織造하는 관심을 집중한 시가 <우이동 일지> 연작시이다. '유방 한 쌍'이나 '맑은 살결'로 바라본 우이동은 시인의 내면세계의 그림이지만, 악인이 신선으로 변모하는 정경을 발견하는 통찰력은 아무나의 경우는 아닐 것이다. 인수봉을 자기의 특유한 관념으로 변형시킨 관심은 자연을 그 자체의 자연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시인의 내면으로 끌어들여서 재 해석의 자연 곧 아름다운 한 편의 시로 도출되는 묘미에서 독특한 입지가 있다. 다시 말해서 있음 그대로의 자연을 시인의 意圖 속에 끌어들여 또다른 자연을 만나게 하는 데서 홍해리의 자연은 보다 명징한 자연으로 해석 된다. 여기엔 시인이 사물과의 완벽한 일체에서 감동이 있는 자연을 만나게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진달래 피면
 진달래 되고
 
 철쭉꽃 피면
 철쭉꽃 되고파라
      <우이동 일지.19>에서


 <꽃 피고 새가 울면>이라는 부제가 붙은 詩이다. 진달래와 철쭉꽃에서 시인은 자유자재로 照應하면서 '꽃'으로 변모된다. 꽃과 시인이 거리 멸각(滅脚) 상태에서 완벽한 자연 속에 목소리만 남는다. 이때 시는 또다른 신선미를 획득할 수 있게 된다.
 
 3.자연스러운 자연
 
 ①바다
  洪海里의 시는 두 면의 자연을 갖는다는 말을 앞에서 언급했다. 바다는 가장 많은 빈도의 자연 현상으로 보인다. 물은 생명의 원천이면서 스미는 이미지로써 창조의 진원지가 되는 곳이다. 또한 물은 공기와 더불어 우주를 살아나게 하는 원천적인 요소이지만 인간은 원천적인 현상을 무의식 속에서 살아가려는 경향이 농후하다. 홍 시인의 시 속에 바다 이미지는 시인의 정신적 갈증 현상과 무관한 것이 아니다. 어쩌면 시인의 갈증현상을 해소하기 위한 방편으로 어딘가 미지의 장소를 찾아 끝없는 여행에의 인자가 되는 의미를 내장하고 있는 뜻으로 보인다. 

 
 바다에 오면
 바다를 품고 
 바다를 길러
 바다가 되고
 
 섬에 오면
 섬을 품고
 섬을 길러
 섬이 되는 사람
    <甫吉島詩篇·I>


 바다와 시인의 관계는 '오면'이라는 自發性으로 형성 된다. 다시 말해서 시인이 바다에 오면 바다와 시인의 관계가 육화되는 새로운 자연으로 해석된다는 말이다. '품고'와 '길러'에서 시인은 '바다가 되고'의 경지에서 바다와 시인의 완벽한 자연 속으로 포괄된다. 2연에 오면 바다에서 섬과 인간의 관계가 형성 된다. 결론으로 말해서 섬은 인간의 바다를 연결해주는 중간매체로서의 기능을 다한다. 바다 한가운데 섬과 인간의 관계는 필연적으로 배라는 이동매체를 필요로 한다. '섬에 오면'이라는 '오면'의 가정은 자발성을 전제로 할 때 '품고'와 '길러'가 '되는 사람'으로 변모되면서 섬과 인간의 역사가 하나로 되는 절차를 밟게 된다. 1연과 같은 순서를 밟아 가면서 바다와 2연에 섬과의 관계만 남는다. <보길도시편,20>에 오면 시인은 온통 바다 앞에 스스로 어려지는 순진성으로 변모 된다. 


 나는
 젖먹이
 도리도리 짝짜꿍
 곤지곤지 잼잼

 
 '나는'이라는 시적 화자는 도리도리와 짝짜꿍의 의태적인 모습에서 순진한 모습으로 스스로가 어린애라는 천진성으로 바뀌어 진다. '바다 앞에서는/청맹과니가 되고 귀머거리가 되면서도 행복한 사람으로' <보길도시편,19> 바뀌어질 때 완벽한 순수 속으로 흡입된다. 이때 시인은 인간으로서의 시인이 아니라 바다가 되어버리는 융합의 경지를 구현한다. 홍해리는 바다에 오면 마음이 열리고 <보길도시편,9>와 <보길도시편,10>에 이르면 바다에서 이별의 아픔을 맞기도 한다. 바다에서 그리움과 창조와 사랑을 경험하는 열린 공간으로 작용을 마무리 할 때 시적인 균형이 이루어진다. 시는 無慾에서 생명을 이룬다. 시인의 개성을 고집 할 때 사물과 시인은 분리 된다. 홍해리의 시는 자연이라는 시적 대상과 하나로 합치되면서 거리가 소멸되어 완벽한 일치를 이루어 시인의 또다른 개성이 발현 된다. 홍해리의 詩作文法은 이런 절차를 마련하는 점에서 유다르다.
  
 ②牛耳洞ㅡ삶의 시각
  시인은 그가 처해 있는 환경에 반응하는 양상일 때 심리적이다. 자기가 살고 있는 처지에 喜悲의 양상을 시로 노래하면서 詩路의 길을 다한다.
 詩人이 만나는 친구라거나 그의 가족 혹은 주변의 사람들에 대해 喜와 悲의 美感을 잉태한다. 홍해리는 그가 살고 있는 우이동에 심한 애착ㅡ편벽한 듯한 애착을 갖고 있는 詩人이다. 이런 징후는 그와 친한 사람들을 人物詩로 나타내는 경우와 더불어 그와 살고 있는 환경에 충실함으로부터 그리움을 일방적으로 보내는 착한 심성의 詩人이다. 우이동 日誌편에서는 우이동의 自然과 그곳에서 인연을 맺고 있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상처받은 날개가 치유되는
 사랑의 뿌리가 뻗어나는
 솔바람에 귀 트고 눈 씻고 
 진달래 철쭉으로 소년이 되는

 시래기국 냄새 아직도 구수하고
 흙냄새 살이 찌는 그리운 마을
 紫府仙人들이 모여 사는
 서울의 고향 우리들의 우이동
     <牛耳洞日誌 9>에서 


 우이동 사람들은
 이마에 별을 꽂고 달을 품고 산다.
 때로는 나무들과 손잡고
 불꽃놀이를 벌이고

 우이동 사람들은
 취하지 않는다
 취하는 것은 바람소리
 물소리일 뿐.
       <牛耳洞日誌 10>


 두 편의 詩는 우이동과 사람이 하나로 변모되는 자연의 아늑한 고향 중에 고향이라는 생각이고, 우이동에 사는 사람들은 싱싱한 자연과 同化된 우이동의 깨끗한 자연을 노래하고 있다. 이런 토운으로 볼 때 홍해리의 완고성은 우이동을 떠나지 못하는 폐칩성의 자연일 가능성이 많다. 다시말해서 한정된 자연 혹은 시인이 확인하고 바라보는 자연만을 고집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말이다. 이런 징후는 예슬이·주현미·신갑선·채희문·임보·이생진등 인물시가 많은 것도 보는 것과 만나는 것만을 고집하는 일단의 정신 현상으로 보인다.

 ③난초
  松·竹·梅·蘭은 고절한 사람들의 품성을 비유하는데 쓰인다. 가령 대나무를 완상하는 사람이나 소나무 바람소리를 즐겨 듣는거나, 오상고절의 국화나 매화에 인간을 상징하려는 오래된 개념이 있어 왔다. 홍해리는 난초에 탐닉하는 흔적들이 많은 편이다. 그렇다면 난초에 특별한 애착을 가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역시 시인의 정신현상은 시로써 대답을 마련해야 한다.


 천상으로 오르는
 원형계단
 …략…
 바르르 바르르
 떨리는 숨결
   <蘭詩.1>에서


 그녀는 혼자다
 늘 호젓하다
 …략…
 그녀는 호젓하다
 늘 혼자다
   <蘭詩.2>에서


 계집이야
 품는 맛
 …략…
 차라리 안쓰럽고
 그윽하고
   <蘭詩.3>에서

 
 전신을 들내놓고
 애무를 한다
 …략…
 향기 하나로
 천지를 혼절 시키고
   <蘭詩.4>에서


 너를 보면
 숨이 멎는다
 …략…
 숨이 멎는다
 현기증이 인다
   <蘭詩.5>에서


 洪海里는 난초에 사랑의 언어를 보낸다. <난시.2>.<난시.3.4.5.>의 분위기는 난초를 여성으로 바라보면서 난초 앞에 혼절하듯 절정의 마음을 애태우는 일방적인 형상이다. 물론 난초는 상상력의 형상화로 살아나는 의인화의 대상이다. 천상의 계단을 오르는 至高한 정신적 승화를 필두로해서 고독한 여인, 품안에 품고 싶은 열망과, 향기에 취해 정신이 흐물거리는 시인은 온통 비틀거리는 자화상을 갖는다. 어떤 因子에 의해 그토록 도취할 수 있을까? 앞서도 언급했지만 홍 시인의 성품은 넓은 영역을 확보한 활달한 성품이 아니다. 개방적이기 보다는 허여되어 있는 공간에 만족의 방도를 아는 安分知足의 정서로 만족하는 시인으로서 내성적이고 성실과 정직을 뼈대로 앞에서 언급한 사람에 속한다. 정직한 편애ㅡ시인은 난초에서 정직하고, 성실한 응답을 보내는 교감ㅡ꽃과 향으로 응답해주는 것을 알았기에 인간(여자)을 사랑하는 변심의 슬픔보다는 오히려 난초에서 위로와 그리움 혹은 사랑의 진실을 터득하고 있는 셈이다. 아울러 홍해리는 난초가 되고 난초는 홍해리가 되는 또다른 조화의 묘미를 만나게 하는 대상임이 확실하다. 이는 시인이 발견한 가꿈의 자연인 셈이다.

 ④식물성 시인
  洪 시인의 시에 많은 빈도로 나타나는 계절은 봄과 겨울이다. 겨울은 죽어있는 절망으로 나타나기 보다는 봄을 준비하는 느낌을 준다. 이로 보면 봄날의 시인이면서, 식물ㅡ꽃들이 등장하는 화려함을 꿈꾸는 시인이다. 식물은 움직이지 않으면서도 인간에게 아름다운 꽃과 향내로 다가온다. 비유하자면 활동적인 남성의 야성적인 세계이기 보다는 여성적인 섬세함과 같은 범주에 든다. 홍시인은 이점에서 여성적인 화려함을 꿈꾸는 시인이다. <넉줄시.6>에 대추꽃 <넉줄시.7>에 밤꽃과 연작시 <꽃시1~7>에 자귀나무꽃, 개나리, 진달래, 꽃양귀비, 앵두, 玉梅園, 매화부부, 동백꽃에 이르기까지 사물에 대한 애정, 물론 연작시 <蘭詩>도 여기에 포함하면 바다와 더불어 시인의 정신을 점하고 있는 주요 모티브들이다.


 안아 주세요
 안아 주세요
 …략… 
 벌겋게 열이 오른
 산이 날아 오른다
      <꽃시3>에서


 진달래를 형상화한 작품이다. '안아 주세요'를 소망하는 대상이 진달래꽃이지만 시인 자신의 마음을 의탁했다는 점에서 진달래는 시인의 정열을 표징한다. 홍 시인은 내면의 세계를 안으로 축적하는 시인이다. 꽃이라는 대상을 ergon의 정지태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Energeia의 정감적인 느낌으로 살아나게 하는 봄의 시인이다. 


 복사꽃물 면사포

 살구꽃 웨딩드레스

 진달래꽃 가슴
 
 개나리 금빛 아지랑이 꿈     
    <우이동일지.14>


 봄꿈이라는 부제가 있지만, 봄은 시인의 정신이 살아나는 꿈의 원천적인 의미를 갖는다. mythos의 세계는 창조가 구체화 되는 세계이지만 잠들었던 겨울에서 빛의 세계로 진행하는 데서 다이나믹한 느낌을 첨가한다. 아무튼 홍해리의 정신 質感은 움직이면서 꿈꾸는 언어를 빚었지만 식물성 속에서 화려한 외출을 그리워하는 여성 지향의 세계로 향하는 시인으로 생각 된다.

 4.마무리

 詩人은 오직 詩로써만 말을 만든다. 일상적 언어가 아닌 시어 속에서 美感의 장소를 이룩하는 시는, 시인의 또다른 분신의 화려한 공간을 창조해야 할 임무가 남는다. 洪海里는 식물을 재료로 사용하여 순수하고 선량한 자연을 만나게 하는 시인이다. 봄으로부터 생명의 진수를 만나면서 절정을 이룩하는 상관을 갖는 셈이다. 겨울을 겪는 갈증현상이 새봄이 되어 에너지 충전의 공급처로써 시인의 의식을 붙잡는 대상이다. 봄날로부터 출발하여 바다를 꿈꾸는 洪海里는 난초의 향기에서 인간적인 사랑과 그리움, 고독까지 즐기는 절대세계를 고집하는 외로운 식물성 시인이요 봄을 꿈꾸는 詩人이다.

                                          韓國現代詩人硏究 (1992. 1. 도서출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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