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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엽 목사님 말씀책의 내용과 100% 동일하게 옮겨 적었습니다. 마음을 다해 정독 하신다면
말씀의 주인이신 성영님께서 반드시 영의 귀와 눈을 열어 듣고 보게 하실 것입니다. 샬롬!
제 17 장 육의 몸은 부활할 신영한 몸의 모형
44.육의 몸으로 심고 신영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영한 몸이 있느니라
45.기록된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46.그러나 먼저는 신영한 자가 아니요 육 있는 자요 그 다음에 신영한 자니라 47.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48.무릇 흙에 속한 자는
저 흙에 속한 자들과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는 저 하늘에 속한 자들과 같으니 49.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으리라 (고전15:44-49)
우리 인간은 영적 존재입니다. 영적 존재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을 넣어 창조한 사람으로, 곧
하나님으로 살아야 하는 존재라는 말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요소와 땅의 요소로 되어 있습니다.
짐승은 흙으로만 지어져 흙으로 끝나지만 사람은 흙으로 지은 그 속에다 영원히 존재하는 하나님의
영을 넣으셨습니다. 인간이 영이신 하나님을 인식하고 하나님을 느끼고 하나님을 알고 교제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육신의 정욕과 죄의 정욕에 빠져 죄악가운데
살면서 온전히 하나님과 단절되어 하나님을 알 수 없는 육이 되어 버렸습니다.
첫 사람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하신 하나님의 명을 듣고도 뱀을 통한 사단의
유혹하는 말을 듣고 먹었으므로 그것은 롬6:23에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하신 법에 해당하여 사망의
법 아래에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 자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한 자아로 죄를 지은
자아가 되었습니다. 그것을 롬6:6에서는 죄의 몸이라 했고 롬7:24에서는 사망의 몸이라 했고
롬8:10에서는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몸은 죄로 인해 죽었다, 사망의 몸이다.
라고 하니 또 여러분이 흙으로 된 우리 육체가 죽지 않고 그대로 영원히 살 수 있었는데 아담의
불순종으로 죽게 되었다는 것으로 착각하고 듣게 되면 안 됩니다. 여러분께 듣는 귀와 영적 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육체는 흙먼지로 되었기 때문에 흙으로 다시 돌아갑니다. 흙먼지로
되었다는 것은 언젠가 무너질 때가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말씀 전하는 모든 사람이 눈에 보이는 현상만 가지고 하나같이 말하는 것은,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
먹는 죄를 짓지 않았다면 그 좋은 에덴동산에서 행복하게 영원히 살 수 있었을 텐데 먹지 말라는
것을 어기고 먹었으므로 인간이 이렇게 죄인이 되어 고통을 당하게 되었고 죽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숨은 의도와 뜻을 깨닫지 못한 말을 쉽게 함으로써 모든 책임이 아담과 하와
에게 있는 것처럼 하여 사람들의 믿음을 잘못 갖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 마음속에
끊임없이 아담과 하와에게 책임을 묻게 하고 정죄하는 마음을 갖게 하여 첫 사람이 곧 자기 자신
임을 볼 수 없도록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는 소경으로 이끌고 선악과를
두신 하나님에 대하여 부정적인 시각이 되게 하는 또 다른 엄청난 죄를 짓고 있는 것입니다(선악과
사건에 대해서 바르게 알고 이해하려면 창세기 말씀설교 집을 다 읽어 봐야 함).
그런데 저는 오늘 흙으로 지은 우리 육체는 죄와 상관없이 영원한 것이 아닌 것을 분명히 말합니다.
창3:19에 필경은 흙으로 돌아 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했습니다. 어디서 취했다
고요?(흙에서) 그러니까 사람을 지으실 때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된, 형상과 모양이 뭡니까?
영과 혼(인격)입니다. 그 영혼이 거할 집으로 먼저 흙의 몸을 지으셨는데 그것은 흙에서 취함을
입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육체는 영혼이 거할, 영혼을 담은 집과 같은 것으로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심으로 영혼을 담고 있던 육체는 언젠가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고 하는
흙의 본질을 일러 주셨습니다. 사람이 나서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죄 때문이 아니라 흙이기 때문에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라는 말입니다.
고후5:1에 흙으로 된 육체를 장막 집이라고 했습니다. 장막이라 한 것은 언젠가는 무너진다는
말입니다. 임시 거처와 같다는 말입니다. 언젠가는 낡아지는 것으로 쓸 수 없으니 무너진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육체는 흙이기에 흙의 목숨이 다하면 흙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흙인 육체 안에
담은 하나님의 요소인 영혼은 끝나지 않고 영원히 존재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영혼에 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오늘 흙으로 된 우리 육체의 본질을 분명히 말씀드리면서 또한 너무나
중요한 우리 영혼에 대해서 말씀드리려고 하는 겁니다. 흙으로 된 우리 육체는 죄를 지었든 안
지었든 죄와 상관없이 우리 영혼이 잠시 거할 집으로 필요했던 것임을 여러분 분명히 아십시오.
하나님은 육체가 영원히 존재할 것으로 지으신 것 아닙니다. 아셨습니까?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은 영원히 함께 하려는데 있습니다. 하나님이 낳으신 관계가 되어
하나님은 아버지요 우리는 자녀로 하나님의 집에서 영원히 함께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 같은
뜻에 대해서는 인간이 그러냐? 저러냐?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로마서 9장 토기장이 비유를 참조).
하나님은 이 뜻을 성취하시기 위해 먼저 흙으로 사람의 형체를 만드시고 그 형체 안에다 생기를
불어 넣어 사는 영(목숨이 있는 영)이 되게 하셨습니다. 생기로 인하여 육체가 가동할 피가 흐르자
바로 정신, 즉 혼의 지정의의 인격이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영과 혼과 몸의 세 분야로
구분이 되는데 그러나 서로 분리될 수 없고 뗄 수 없는 유기적 관계이면서 하는 일에 있어서는
각각 그 기능이 서로 다릅니다.
영은, 영이신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인식하여 교제할 수 있는, 곧 하나님을 담을 수 있는,
하나님을 담아야 하는 곳입니다(이것은 성영님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정신이라고도 말하는 우리 혼은 바로 자아입니다. '나'란 말입니다. 나를 말합니다.
이 혼, 나를 말하는 자아는 인격이라고 하는 지정의를 담고 있습니다. 지성과 감정과 의지의 부분
입니다. 그래서 지정의가 있는 인간을 인격적 존재라고 말합니다. 자유의지를 가진 독립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끊임없이 지식을 추구하고 알기를 원하고 그 지식을 받아들여 알고 느낄 수 있고
생각하고 판단하고 뜻을 정할 수 있고 선택할 수 있는, 이런 지정의의 자유의지를 가진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자기 의지에 대한 책임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대단한 수준을 가진
존재요, 신을 닮았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인간은 존귀한 자로 지음을 받았다고 말씀하고
있고 그렇게 존귀한 자로 창조되었음에도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자는 어리석은 자요, 멸망하는
짐승과 같다(멸망하는 짐승은 사단과 그의 영들을 일컫는 것)고 말씀셨습니다(시14:1,시49:12,20,
시53:1)
그다음 우리 육체는 땅의 것에 감각을 가졌습니다. 그것을 오감이라고 하지요.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이렇게 다섯 가지 감각으로 세상을 인식하고 원합니다. 그런데 이 육체에는 혼, 정신이 같이
합니다. 육체와 함께 세상 것을 원하는 것이 이 혼입니다. 그래서 하늘의 요소인 영과 땅의 요소인
육체(+혼)는 서로 반대되는 성질을 가졌습니다. 영은 하나님을 바라지만 육체(+혼)는 오감으로 땅의
것을 알고 느끼며 세상 것을 바랍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영에 관심 없고 정신이 바라는 것과 육체의
감각적인 것만 바라고 좇아 사는 것이면 그것은 짐승과 다를 바 없다고 한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생각할 때 인간이 죄와 상관없이 영이 강하겠습니까? 육(육체+혼)이 강하겠습니까?
육(육체+혼)이 강하겠습니까? 사람이 선악과의 불순종의 죄를 지었든 안 지었든 상관없이 인간은
환경적으로나 감각적으로나 흙에서 난 육(육체+혼)이 강할 수밖에는 없습니다. 그래서 죄와 상관
없이 인간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 보다는 눈에 보이고 손에 만져지고 맛으로 느껴지는 이런
오감의 감각을 지닌 육에게로 끌려갈 수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육은 오감으로 감각적인 것만 바라고
취하고자 좇아다니고 그것이 흙으로 된 육의 욕구요 일이기 때문에 그러므로 인간의 자아, 혼의
지정의가 육체와 하나가 되어서 보이는 것 감각적인 것을 자연스럽게 좇아갈 수밖에는 없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고전15:47에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라고 말함으로써
바로 사람의 자아가 흙에 속한 자아가 될 수밖에 없는 것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인간 눈에 보이지 않는 영의 세계에는 창조주 하나님이 계시면서 또 다른 영적 존재인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늘로부터 쫓겨나서 공중에 거하는 사단 또는 마귀라고 불리는 우두머리와 그의 무리인
악한 영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 사단과 악한 영들은 오로지 하나님의 보좌를 찬탈하려는 것이
목적이기에 하나님의 일이 실패로 돌아가게 하려는 그 간계를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방해하여
하나님이 지으신 인간, 특히 믿는 자들을 사주하여 자기의 소유물을 삼고 하나님께 배은망덕하게
하여 멸망 받게 하려는 일을 끊임없이 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것을 다 아실까요? 모르실까요? 하나님이 사람을 짓고 보니 사람에게 하나님을
바라는 영의 쪽보다 육의 쪽을 택할 약함이 있겠구나, 사단이 사람에게 간계를 부려 자기 소유가
되게 하겠구나 하는 것을 그때 아신 것 아닙니다. 이미 창조 이전에 사단은 하나님과 사람과 원수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신 사람과 함께 그 원수인 사단과 무리
들의 권세를 깨고 영원한 무저갱으로 집어넣어 버릴 계획을 하셨습니다. 사람은 첫 창조로 끝내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사단은 멸하고 첫 창조된 사람 안에는 하늘의 생명을 얻게 하여 영생
하는 사람으로 재창조하시는 것이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뜻이요 계획입니다. 알아듣습니까?
오늘 고전15:44-49의 말씀이 그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첫 사람 아담은 땅에서 나서 흙에 속한
자이기에,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님이 살려주는 영이 되었으므로 그 예수님으로 산다고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너질 흙으로 사람을 지으신 것은 영원히 살게 하는 신영한 몸, 부활의 몸을 있게 하시
려는 것입니다.
44절의 말씀이 그것을 잘 말하고 있습니다. 육의 몸(나, 곧 자아)으로 심고 신영한 몸(예수님의
생명으로 다시 부활할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영한 몸이 있느니라 신영한 몸이
있으려면 육의 몸이 있어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그래서 그 육의 몸을 심어야만 즉 한 알의 밀알이
흙속에서 죽어 많은 열매를 맺는 것처럼 곧 육의 몸(육에 속한 자아)이 그 같이 죽어야 신영한
몸으로 다시 산다고 하는 것입니다. 신영(부활할 몸)한 몸이 있기 위해서 육의 몸이 있다고 하는
거예요. 처음 지으실 때 불어넣으신 이 영에는 예수님의 부활하신 생명, 즉 예수님을 죽음에서
살리신 성영님이 오시고 혼의 지정의로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영님을 아는 그 지식으로 영과 혼이
함께 자라 삼위 하나님과 온전히 관계를 이룬 신영한 몸을 입게 함으로써 흙의 몸이 무너지면 그
신영한 몸으로 부활하여 하나님과 영원히 살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육의 몸으로 심고 신영한 몸으로 살기 위해서는 육의 몸(나,자아,인본)을 죽음에 넣아야할
선악과를 두시는 것입니다. 육의 몸이라고 하는 것은 앞서 말했듯이 또 흙으로 된 우리 이 육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니 잘 새겨듣기 바랍니다. 뒤에서 말씀드릴 것입니다만 '육의 몸'또는'육의 사람'
하는 것은 육체에 속하여 불순종의 죄를 지은 자아, 나를 말합니다. 육체의 오감에 하나가 되어서
죄지은 혼을 말합니다. 그래서 자기는 죽고 하나님 말씀을 온전히 순종하신 예수님으로 몸을 입어야
하기에 사람이 선악과를 먹고 죽음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신영한 몸으로 다시 살리려고 오신 분이 누구예요? 예수님입니다. 하나님께서 첫 사람
에게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하신 것은 바로 예수께서 오셔서 죽는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으로 사단
에게는 비밀에 부친 것이라 말씀드렸습니다. 첫 사람이 선악과를 먹고 '죽으리라'를 받아들이면
예수님께서 '죽으리라'의 바통(배턴,baton)을 받아 오셔서 죽으실 것을 말씀하신 뜻이란 말입니다.
먹지 말라 하신 하나님 말씀을 불순종한 죄는 예수님이 대신 형벌을 받아 죄의 값을 치러실 것이요
다시 사신 그 생명으로 사람을 살리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첫 사람이 '정녕 죽으리라'하신
것을 받아들이니 곧 예수님께서 사람으로 오셔서 죽으실 수 있게 되었고 죽으셨으나 다시 살아나
버리셨으니 사람이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면 생명을 얻게 되어 영의 몸 신영한 몸을 입고 영원히
살게 되니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같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사단과 죄는 죽음에 던져 넣고
사람은 살리시는 뜻을 가지셨던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를 낳으시는 이 같은 사정의 뜻을 이렇게 말씀으로 알리고 가르치는
것을 좀 듣고 알았으면 그 하나님이 아버지시라는 것을 진짜 믿는다면 좀 아버지의 뜻을 존중하고
사랑해서 그 뜻에 동참하려는 인격적 의지가 있어야 하는데 '우리의 자세가 이래야 한다'고 하면
뭘 그리 마음으로 꼭 투덜대야 하고 사단으로부터 들어온 것을 못 버려서, 놓기 아까워서 그렇게도
붙들고 집착하겠으며 죽음에 내줘버린 죄지은 자기를 뭘 그리 죽기 싫어 여전히 사랑하려고 발버
둥을 치겠습니까? 뭘 그리 놓치 못할 것이 있습니까? 그래서 믿음 생활 오래 한 사람들에게서 이런
태도들을 보면 사실 '너는 아직 사단 보고 나 좀 붙들어 달라고 애원하고 있구나'하는 생각밖에
드는 것이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로 인해 믿음이 사람들 속에 잘못 보이고 잘못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첫 사람에게 사단이 다가와서 뭐라고 했습니까? '선악을 아는 실과를 먹어도 죽지 않는다,
하나님이 너희가 먹으면 하나님과 같이 될 것 같으니까, 먹지 말라고 거짓말 한 것이다, 너희가
먹으면 너희도 하나님 같이 된다'하자 그 유혹의 말을 듣고 가서 그 실과를 바라보니 어떠했습니까?
그야말로 진짜 먹음직도하고 보암직도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게 보였습니다. 사단의 말처럼
보기에도 좋고 먹음직하고 얼마나 탐스러운지, 먹어 보지 않고는 배겨날 수 없을 것 같은 유혹이
들어왔습니다. 그 실과를 바라볼수록 지혜롭게 할 만큼, 즉 사단의 말처럼 정말 하나님 같이 지혜
로울 것 같은 하나님의 지혜를 가질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렇게 바라보다가 사단의 말이 참말같이
들린 것입니다. 그래서 지체할 것 없이 그것을 따 먹었습니다. 먹고자 하는 육체의 욕구에 끌려가게
되었고 지혜롭게 할 것 같은 자아의 욕구에 끌려가게 되었고 지정의가 동의하여 의지를 먹는 것에
둔 것입니다.
먹지 말라하신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육체의 감각적인 것 보는 것 맛보는 것 자기를 지혜롭게 할 것
같은 그 욕구에 끌려 자기가 먹는 것을 택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죽으러 오시는 길이 확실히
나게 되었고 '정녕 죽으리라'가 적용되어 예수님이 죽으실 것이 확정되었습니다(창3:22). 그러니까
이미 서두에 말씀드린 몸은 죄로 인해 죽은 것이라 한 말이 바로 하나님이 사람을 흙으로 지으실 때
그 흙이 피가 흐르는 육체가 되면서 생성한 자아, 말씀을 불순종한 그 혼을 말하는 것입니다.
혼의 자아가 불순종하여 죄를 지었으므로 그것이 '죄로 죽은 몸'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설명하자면 구약 성전에서 가장 깊은 장소가 어디입니까? (지성소) 지성소는 영이신 하나님을
말한다고 했습니다. 또한, 우리 사람도 영과 혼과 몸으로 구성되었는데(살전5:23,히4:12), 그러면
이 지성소는 우리 영,혼,육 중에서 어디에 해당한다고 했습니까? (영) 성전과 마찬가지로 우리 영도
가장 깊은 곳에 있습니다. 그것을 그림으로 나타내 보면 제가 손으로 표시해 보겠습니다.
첫 번째 원(가장 안쪽의 원), 이것은 우리 영의 위치. 두 번째(가운데 원), 이것은 우리 혼의 위치,
그러니 우리 영은 어디 안에 있습니까? 혼 안에 있는 겁니다. 그다음 세 번째 원(바깥쪽 원),육체
입니다. 그러면 육체를 접하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혼입니다. 물론 우리 육체 안에 영혼을
담았지만 이해가 돼야 할 것이 육체 안에 혼이 있고 혼 안에 영이 있다, 그렇게 보시면 이해가 쉬울
것입니다. 그래서 영을 담고 있는 혼(자아)이 바로 '영의 몸'인 것입니다. 성경이, 영을 담은 혼
(자아)을 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죄지은 몸을 말할 땐 부패한 육으로 표현), 우리
영혼을 담은 육체를 몸이라고 하듯이 영을 담은 지정의의 혼도 몸이라고 한다는 말입니다.
사람의 영을 담은 몸인 혼이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사단의 말을 받아들여 '선악과를 먹음으로
죽으리라'가 적용되니 몸(혼, 자아)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입니다. 흙으로 들어가면 끝나버리는
육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영의 몸인 혼(자아)이 죄를 범하였으므로 그래서 죄의 몸이요 사망의
몸이요 몸은 죄로 인하여 죽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롬8:10) 그래서 다시 부활한다 할 때 그것을
몸의 부활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흙으로 된 우리 육체가 죽어서 흙으로 들어갔다가 부활할 때 다시
흙에서 일어난다는 뜻이 아닙니다. 몸이 부활한다는 것은 바로 육체로 있을 때의 그 모습으로 부활
한다는 말입니다.
부활의 몸이 되는 것에 대해 다시 설명합니다. 지어잔 사람 그 자기가, 혼의 지정의의 자아가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음에도 사단의 유혹을 듣고 선악과를 먹었으므로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법에
걸려서 일차는 가인 이후의 모든 인간은 하나님에 대하여 다 죽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하나님을
찾을 수도 볼 수도 만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찾아오셔서 만나주시고 불러주시지 않으면
사람 스스로가 하나님을 볼 수도 찾을 수도 만날 수도 없다는 말입니다. 왜냐? 하나님에 대해서는
죽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자기는 하나님에 대해서 죽었음을 알아야 하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때 하나님에 대하여 죽은 자기도 같이 죽었음을 알아야 하고 예수님이 죽음에서 살아
나셨으니 나도 예수님과 함께 살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죽은 자기가 살게 된 것은 오직
그 예수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이제 자기 안에서 이 사실을 알고 예수님을 아는 것만이 산 것이요,
예수님을 경험하는 그것이 생명의 능력이요 말씀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여 살고 따름으로써 예수님의
인격을 이루는 그것이 육체와 똑같은 모습으로 부활할 몸을 이루는 능력입니다.
그래서 신영한 몸이라고 하는 겁니다. 지정의가 얼마나 예수님의 영이요 생명 되는 말씀을 알고
사랑하고 따르고 사느냐? 얼마나 말씀이 속사람의 능력이 되었느냐? 얼마나 예수님과 같은 영적
자아가 되어 예수님으로 충만하냐에 따라서 그 영광(예수님과 연합의 분량만큼)이 다를 것이요 병들
지도 않고 쇠하지도 않고 죽지 않고 영원히 존재하는 몸으로 부활할 것입니다. 지성도 감성도 의지도
다 예수께 두고 예수님을 사랑하여 그 말씀으로 살고 오직 예수님으로 충만한 영적 인격이 바로
부활의 몸을 이루는 요소가 되어 신영한 몸으로 부활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다 해도
자기 안에 예수님이 계시지 않으면 부활은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사람의
길을 믿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사단이 들어갈 형벌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이 몸이라고 한 그 의미를 여러분이 무엇으로 연결하여 깨달아야 하는지 이제 이해가
되었습니까? 물론 성서에서 '인간의 혼이 몸이다, 몸이라고 하는 것이 바로 혼을 말한다'하고 딱
꼬집어서 말하고 있진 않습니다. 또 성경에 그렇게 말한 데가 어디 있느냐? 하지 않겠어요?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성영님께서 깨닫게 하시고 보게 하시면 물이 흐르듯 자연스럽게 말씀이 열려서 쉽게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삼위일체라고 하는 것도 성경에 그렇게 말하진 않았지만, 성경 전체
속에서 근거가 되는 것은 얼마든지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삼위일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삼위일체라는 것을 부인하거나 인정하지 않으면 그것은 이단에 속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삼위일체라는 말이 성서에 어디 있느냐? 그런 말이 어디 있느냐?'한다면 그것은 성경을 아는 자가
할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말할 때, 그 사람은 진리를 추구한 사람이었다고 성경에 그것을 콕 집어
말하지 않았어도 그가 얼마나 진리를 추구한 사람이었는지는 성영님의 눈과 마음으로 얼마든지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를 본 것처럼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처럼
진리를 추구하는 진리의 사람은 성경 속에서 그 아브라함을 만날 때 동질감을 느끼고 굉장한
친근감을 갖게 됩니다. 그렇기에 영적 자아가 부활의 몸이 된다는 것도 성영님으로 아는 것입니다.
믿음을 도우시기 위해 오신 성영님으로 감춰진 것과 같은 하나님의 영적인 뜻을 보고 깨닫고 아는
겁니다.
우리가 분명히 알 것은 하나님은 영이시요, 하나님의 일도 영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영의 일은
영으로만 보고 압니다. 영의 일은 육의 눈으로 보이는 것 아니요, 사람의 지혜로 알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하늘이 땅이 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이 로고스 말씀에서 하나님의 영적인 뜻,
생명이 충만하게 되는 레마의 말씀을 깨닫는 것은 오직 성영님으로만 된다고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성영님이 바로 우리의 눈입니다. 성영님이 우리 지혜입니다. 우리 입의 혀를 잡아 말하게 하십니다.
성영님으로 영이 거듭나면 영적인 일이 기록된 성서의 모든 말씀의 뜻을 성영님으로 보고 성영님
으로 듣고 성영님으로 깨닫고 성영님으로 믿고 성영님으로 말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흘리신 피로 자기의 죄악을 깨끗케 하시고 사망에서 구원해 주셨음을 믿고
기뻐하는 자, 영생 얻게 하려고 죽으시고 사신 예수님을 사랑하여 따르기 위해 말씀을 깨닫기를
원하는 자에게 성영님이 눈이 되어 주시고 지혜가 되어 주시는 것입니다. 깨달아 믿음으로 받은
모든 하늘의 것은 그의 영혼의 생명이 되고 능력이 되고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천국
이심을 보게 하시고 사단과 악한 영들의 정체와 하는 일들을 보게 하시고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말씀이 빛이기 때문에 말씀(빛)이 내게 있으면 어둠의 것들을 다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영님으로
성경을 보고 깨닫는 자만이 하나님의 믿음을 가진 자요, 참말을 하는 것입니다.
첫 사람에게 있었던 사건들은 사람이 예수님과 연합되어야 하기 때문에 그것을 가르치시기 위한
것이요, 하나님의 뜻을 알리시는 것이지만, 그 후손인 가인이 동생을 살인하는 악은 하나님의
계획도 뜻도 아닙니다. 그것은 사단이 가인에게 동생을 죽이도록 사주한 사단의 뜻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가인이 그 죄악을 범치 않게 하시려고 찾아오셔서 '죄를 범하면 죄의 하수인이 되는
것이니 사단이 너로 죄짓기를 원하지만 너는 죄를 다스리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럼에도 가인은
형제를 살인하는 악을 행하였기에 가인과 가인의 길로 나간 모든 인류는 하나님에 대하여는 전적
으로 죽었고 아주 부패한 육이 돼 버렸습니다. 그래서 아담 이후의 가인부터 인류는 하나님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전적으로 부패하고 타락한 육체가 돼 버렸습니다. 죄를 짓고 타락으로 부패한
육체(+혼)는 하나님과 원수 관계일 뿐만 아니라 자신의 영과 혼도 원수 관계가 되고 영과 육체도
원수 관계가 돼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영은 타락하고 부패한 죄 속에 갇혀서 고통하게 되었고
육체에서 떠날 때는 서로 원수였던 영과 혼이 합쳐져 사망의 몸으로 부활하여 지옥의 불구덩이에서
영원히 고통 받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사람들로 돌아올 기회를 주기 위해 자신에게
처한 이 같은 형편에 대해서 전하고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말씀을 듣고도 듣지 않는 것이면 그것은
그가 스스로 지옥을 선택한 것이 되었기에 그 책임이 자기에게 돌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하나님의 영을 불어넣으시고 인격이 있게 하셨습니다. 인격은 지 정 의요 그
지정의로 하여금 삼위일체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의 뜻을 사랑하여
따르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삼위 하나님과 관계를 이루는 삶을 통해 참 생명을 얻고, 하늘의
행복과 기쁨을 누리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의지와 뜻을 오직 예수님께 두고 그 지성으로
예수님을 깊이 알고 그 감정으로 예수님을 사랑하고 인격적인 사귐의 관계 속에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자라가게 하시려는 데 목적을 두신 겁니다.
그런데 아주 육으로 타락해 버린 인간, 하나님을 떠나 사단과 한패가 되어 버린 인간은 그렇게
사단과 함께 세상을 높이고 세워나가는 것에 주력한 것입니다. 육으로 타락한 인간의 지성은 그
육체가 끝날 때 함께 끝나 버릴 세상 지식을 끊임없이 추구하여 좇아가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것을 좇아 그렇게 세상 지식과 세상 지혜의 경지를 정복해 보겠다고 그래서 인간 승리를
해 보겠다고, 최고가 되어 보겠다고 바벨탑을 쌓듯이 문명으로 하나님과 겨루어 하늘에 닿아
보겠다고 좇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 지혜가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세상 지식을 아무리
많이 쌓았어도 아무리 많은 학문을 했어도 그것으로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것 절대로 아니라는 것
다시 또 강조합니다. 그런데 또 예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이 세상 알기 위한 공부를 참으로 열심히
합니다. 세상을 아는 일에 목숨을 걸다시피 하여 공부하며 학식을 높이고 있습니다. 그런 세상의
것들로 영광을 얻기 위하여 그렇게 엄청난 공부들을 하는 것입니다. 세상 것을 더 추구하기 위해서
그것을 놓고 기도하며 예수님을 믿는다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이용해서 세상을 발전시켜
보고자 하는 그래서 자기 욕망을 채우기 위한 일이라는 것 반드시 알기 바랍니다. 제가 이것을
말함은 자기 영광을 위하여 예수님을 믿고 이름을 불렀다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을 것임을
미리 경고하기 위해서입니다.
고전3:18-21에 보면 사도 바울이 이것을 분명히 지적하고 있습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이 세상
에서 지혜 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미련한 자가 되어라 그리하여야 지혜로운 자가 되리라 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 미련한 것이니 기록된바 지혜 있는 자들로 하여금 자기 궤휼(간사한 꾀, 교묘한
속임수, 궤변)에 빠지게 하시는 이라 하였고 또 주께서 지혜 있는 자들의 생각을 헛것으로 아신다
하셨느니라 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했습니다. 만일에
예수님을 믿는다는 사람이 예수님이 진정으로 자기의 자랑이 되지 않고 세상의 지혜와 지식이나
명예 등을, 또는 사람이 자랑이 되면 또한 무엇이든지 우상이 있으면 그것은 여기 사도 바울을 통해
성영님께서 하신 이 말씀이 그를 판단하는 말씀으로 그 앞에 설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과 세상의
것은 아무것도 자랑할 것이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또한 육이 된 자아, 즉 지성과 감정과 의지는 세상의 것들에서 행복을 찾고 기쁨을 찾고 즐거움을
찾으려고 모든 의지를 동원하여 좇아갑니다. 죄로 타락한 인간은 정신의 만족을 위하여 육체의
안일과 향락을 위하여 열심을 다해 이뤄보려고 쫓아갑니다. 탐욕의 노예가 되어 권력을 탐하고,
명예와 권세와 부에 집착함으로써 물질을 쌓고, 쌓는 것으로 기쁨이 되고 만족해 보려는 이 같은
타락의 일을 위해 애씁니다. 그러므로 믿는다는 사람이 이런 죄의 삶을 사는 것이면 그는 절대로
예수님을 믿는 것 아닙니다.
사람이 처음에는 예수님을 믿으면 천국이요 믿지 않으면 지옥 간다는 것이 맞는 것 같기도 하고 또
맞지 않는 말 같기도 하여 믿음이 요동할 수 있습니다. 또 예수님은 죄인을 구원하러 오셨다고
죄인의 구주시라고 하니 자기를 비롯해 사람들도 나쁜 짓 하고 죄짓는 것들을 보니 죄인인 것은
맞는 것 같아서 믿기는 믿어야 한다고 생각은 합니다. 그래도 또 어느 순간 맞지 않는 말 같은
의심이 자꾸 드는 겁니다. 그래도 자기 안에 하나님을 바라는 영에 의해서 왠지 믿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불안한 마음이 있기 때문에 믿는다고 하는 쪽으로 방향을 두기는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런대로 받아들일 만한데 여기 예수님의 교회에 나와 말씀을 들으면 자기에게는
부담되는 말, 자기 정신으로 듣기에는 너무나 거북스런 말, 자기의 생각하고는 전혀 반대되는 말,
자기 양심으로 생각해 봐도 도대체 옳지 않은 말을 하는 것 같아 듣는 것이 매우 불편한 겁니다.
그러니까 말씀을 듣다가 자기 속에서 즉시 말씀을 대적하는 마음이 올라옵니다. 이런 불평 저런
불만이 올라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살아온 타락한 자아가 그렇게
반항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원수 된 부패한 육의 자아가, 즉 자기 중심적인 자아가 즉시 나서서
대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살아왔던 자기 방식과는 맞지 않으니 거부하고 맞서는
것입니다.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것을 택하여 오로지 그것을
위해 살아온 타락한 육의 자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여전히 거역하게 하려고 하나님과 원수된 자격
으로 맞서 올라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인식해야 하는 것은 예수님을 믿기 전에 살아왔던
나는 하나님과 원수를 맺고 산 삶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 예수님께로 깨끗이 옮겨 앉아 버려야 합니다. 그래서 인간은
하나님을 따라 살 것이냐? 그렇게 자기가 하나님이 되어 살 것이냐? 하는 것을 선택해야 하는
존재입니다. 이제 자기가 영을 따를 것인지 육을 따를 것인지 결정해야 합니다 그 결정을 영이 하는
것 아닙니다. 육체가 하는 것도 아닙니다. 바로 영과 육 사이에 있는 나를 말하는 혼(자아)이,
즉 지 정 의의 전 인격이 영을 따를 것인지 육을 따를 것인지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의지를 어느 쪽에 두었느냐에 따라서 영의 사람이냐 육의 사람이냐 하는 것으로 갈라지는 것입니다.
성경은 영을 따르라고 분명히 그 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육을 따르면 그 길은 멸망으로 가는
길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영의 사람은 하나님 쪽이요, 육의 사람은 사단 쪽이라는 것을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이 예수님을 모셔들여 예수님으로 살게 되면 그것은 자기가 이 땅에
태어난 자로써 마땅히 행할 복이 있는 자인 것입니다, 그 영과 혼이 육에서 떠날 때 하나로 합쳐
져서 영생으로 들어갈 것이요, 예수님의 생명이 그 안에 없는 자는 사단이 들어갈 지옥으로 그 영과
혼이 하나로 합쳐져서 들어가 영원히 고통 받고 고통 하는 영혼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님이 아니면 살 수 없는 존재, 오직 예수님으로만 살 수 있는 영적 존재라는
것을 알고 영을 따름으로써 부활 할 신영한 몸으로 날마다 성장하기를 바랍니다. 아멘입니까?
또한, 오늘 이 말씀에서 인간은 영과 혼과 육체(육)로 된 존재인데, 영은 무엇이냐? 혼은
무엇이냐? 육체(육)는 무엇이냐? 하는 이 세 분야에 대해서 잘 이해가 되었으리라 셍각합니다.
말씀을 계속 반복하여 읽고 새김질함으로써 아주 깨끗이 이해가 돼 버리는 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이 말씀을 주셔서 우리의 믿음을 바로 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복 주신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
나의 사랑하는 구세주 예수님, 나의 사랑하는 성영님께 영원한 감사를 올리면서 말씀을
맺습니다. 아멘!!
제17장 육의 몸은 부활할 신영한 몸의 모형.p389-p4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