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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0 장 삼위의 하나님과 관계를 이룬 것이 믿음
13.그러하나 진리의 성영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
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14.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 15.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리라 하였노라 (요16:13-15)
오늘 본문은 누가 말씀하신 것입니까? 예수님이지요? 그러면 예수님께서 누구를 소개하셨습니까?
"진리의 성영님이 오시면"해서 성영님이시지요? 15에서는 누구를 소개하셨습니까? 바로 '아버지'
입니다. 그래서 아버지와 아들 예수님과 성영님이신 삼위로 계시는 하나님, 다시 말해 한 하나님이
아버지와 아들과 성영님의 삼위로 계시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게 하셨습니다. 이것을 삼위일체라
고 말합니다. 그래서 오늘 <삼위의 하나님을 알고 관계되는 것이 믿음이다>라는 제목을 가지고 말
씀의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본문의 말씀을 들어가기 전에 먼저 간혹 질문을 받는 것이 있어서 그것을 좀 이야기를
하고 본문으로 들어가겠습니다. 다름 아니라, 우리에게 주신 이 성경을 통해서는 하나님에 대해서
다 알 수가 없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에 대한 여러 측면 중에서 인간을 구원하는 구원사적인 그 방
면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성경 말씀을 다 안다 해도 하나님 전체를 다 아는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인간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모습만 알 수 있는 겁니다. 그 외에 기록되지 않은
하나님에 대해서는 하나님 나라에 가서 하나님과 산다고 했으니 그때에 전부 다 알 수가 있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구속사에 필요한 인물들을 들어서 뜻을 기록하여 놓으셨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
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나온 후 가인과 아벨을 낳았다고 했고, 가인이 죄악을 범하고 하나님
앞을 떠나 나가서 아내와 동침하니 자식을 낳았다고 했는데 도대체 그 아내는 뭐냐? 그럼 다른 곳
에도 사람을 지어놓으신 것이냐? 라는 의문이 있게 되니 이것에 대해 질문이 있더라는 말입니다.
물론 이것은 아담과 하와에게서 태어난 자식이 가인과 아벨만이 아니라 그 외의 자녀들은 다수 생
산했을 것이라는 추측은 충분히 해볼 수가 있습니다. 그때는 근친혼이 하나님의 영적인 구속의 뜻,
즉 사람이 예수님께로 나서 예수님과 한 몸을 이뤄야 하는 구속의 뜻을 보이시는 방법이었기에 아
담이 가인과 그 외에 낳은 자녀 중에서 가인과 혼인을 했을 가능이 있다는 것입니다. 즉 아담의 몸
에서 나온 여자와 아담을 한 몸을 이루게 하심으로써 곧 예수님의 신부는 예수님의 생명에서 나온
자라야 신부로 한 몸을 이루는 것이라는 것을 보이신 것처럼, 가인이 그같이 그때의 배경으로 보아
서 근친혼을 했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런 부분은 반드시 예수님과 우리 믿는 자의 관계를 깨닫게
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이요 섭리이니, 하나님의 이 뜻을 이해하여 믿음은 되어도 이것을 빌미로 하
여 근친혼을 하라는 것은 절대로 아니니 새겨듣기 바랍니다. 또한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에
는 바로 아벨과 가인을 통해서 예수님의 길과 사단의 길을 보고 어느 길을 택할 것이냐? 가인이냐
아벨이냐? 아벨은 곧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자요, 가인은 흙을 양식으로 삼은 사단에게 속한 자라
는 것을 가르쳐 보이시는 데 목적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의 구속사적
인 것을 기록하는 것에 목적을 두셨기 때문에 기록된 범위에서 하나님을 알고 구원받는 것이 돼야
합니다. 이해됐습니까?
그리고 오늘 우리가 예배드리는 이 날이 내 날입니까? 누구의 날이에요? 예수님의 날입니다. 왜 이
날을 예배의 날로 정하셨습니까? 이날은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일어나신 날입니다. 그러므로 이날은
예수님의 날이요, 우리에게 주신 예수님 밖의 날이 아니라 예수님 안에서의 날입니다. 세상의 날도
내 날도 아닌 예수님의 날이에요. 삼위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로 영광을 돌리고 또 말씀을 듣고 그
말씀으로 사는 능력을 갖추므로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또한, 아버지께서는 예배로 영
광을 받으시고 복을 주시는 날입니다. 그래서 참으로 믿는 자면 이 예수님의 날을 그렇게 가치 없
게 여길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날을 우상시하고 신성시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 안에서의 예
수님의 날임을 존중하여 참으로 사랑하여 예배의 날로 지키는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 예수님이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이 날을 우리에게 복 주고 복 주시는 이 예배 날에, 예
수님 안에서 아버지와 얼굴을 마주 대하는 관계로 아버지는 말씀으로 복 주시고 우리는 천국의 그
큰 복을 받는 이 날을 존중하여 지키는 것이 돼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날을 우습게 여기고
가볍게 여깁니다. 한두 시간 예배드린 것으로 자기만족으로 삼고 이후 시간은 자기의 오락, 자기를
위한 일을 행하고 다니는 것입니다. 티브이가 예배의 대상 돼 있고, 사람들을 만나 세상 이야기나
잡담을 하고, 먹고 살기 위한 일을 찾는다고 분주히 돌아다니고, 자기 육신의 것을 위해 무엇을 취
하러 쫓아다니고, 잔치에 쫓아다니고, 자기 자식들 잔치 날로 삼고, 다른 사람 생일 쫓아다니고,
자기 생일잔치를 벌이고, 계모임 가족 모임 쫓아다니고, 그저 세상 사람들처럼 똑같이 행하고 다니
는 것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이 예배의 날을 존중하여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가 아니라, 오히려 하
나님을 욕되게 하는 귀신의 종노릇입니다. 하나님의 원수로 행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스스로 거
룩함을 저버리는 악입니다. 죄입니다. 알기 바랍니다.
본문으로 오겠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과 함께 요한복음 전체 곳곳에서 삼위일체 되시는 하나님을 너
무나 잘 드러내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삼위 되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믿는다는 것은 믿음이 잘
못되는 첩경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누구이신가를 말할 때, 창세기 1:1에서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
주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을 히브리어로 복수 명사인 '엘로힘'이라고 했는데 이 엘
로힘은 바로 무에서 유가 되게 하신 전능하신 창조주로 삼위의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그다음 하나
님을 창2:4에서 '여호와'라고 했습니다. 창1장은 하나님이라고만 했는데, 2장에 와서는 '여호와 하
나님'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엘로힘)'이라고만 해도 하나님은 창조주요, 전능한 분이요, 절대자
라는 것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또 '여호와'라고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여호와는 자기의 백성과 구원의 언약을 맺고 복 주시는 하나님, 죄지은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여 영
생을 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다, 그러나 하나님께 나오지 않는 자는 심판하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입
니다. 그다음 하나님을 출3:14에서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만든 자도 없
고 가르칠 자도 없고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스스로 계신 영원히 존재하시는 분이라는 말입니다.
그다음에 하나님은 요4:24에 "하나님은 영이시니"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누구시냐 할 때,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은 여호와이시고, 하나님은 스스로 계신 분이고, 하나님은
영이라고 설명할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본질이요, 이 네가지로 하나님의 본질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보이지 아니하는 영이시기 때문에 요일4:12에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다
고 했고 요1:18에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을 눈으로 볼 수 없
는 인간은 하나님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논쟁을 하고 있지만,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
라서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마음속에 절대자에 대한 관념이 있고 또한 진리를 추구하는 관념이 있
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분명히 준재하시는 스스로 계신, 오직 유일하신 참 신이시요,
창조주라는 것을 알 수 있도록 이같이 성경 말씀을 통해서 알려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은 죄인
이기 때문에 도무지 하나님을 보고 살 자가 없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말씀으로 기록하여 보내신 성경을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절대로 가질
수가 없는 것이기에, 하나님은 분명히 존재하시는 신이오, 영광스러운 분으로 사랑의 실체라는 것
을 말씀으로 보내 알려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성경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여야만 자기를
알고 하나님을 알게 되고 하나님과 교제하게 되는 것이기에 계속 여러분에게 말씀을 보라고 읽으라
고 강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인격적이어야 하므로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생각과 뜻
을 알고 받아들여 따라갈 때 그것이 인격적이라고 하는 것이요, 믿는 증거이니 그래서 말씀을 늘
상고하여 삼위의 하나님을 알고 관계를 이룬 믿음이 돼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같이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자신을 나타내시더니 마침내 하나님이 눈에 보이는 분으로 오셨습니다
하나님 안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육신이 되어 오셔서 사람 가운데
거하신 것입니다.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했습니
다. 그래서 하나님의 독생자가 오시기 전에는 사람이 하나님을 보고 살아날 자가 없었습니다. 그러
나 이제는 사람이 그 독생자를 못 보면 죽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분이 누구입니까? 바로 예수님이
니 그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고 보지 못하면 죽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을 인간이 직접
볼 수 있게 오셨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눈으로 보기를 원했습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눈
으로 확인해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요14:8-10에 빌립이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주면 족하겠다고 아버지를 보여 달라고 했습니다. 예수
님이 말씀하시길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
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그 하나님을 볼 수 없
으므로 내가 아버지에게서 나와 아버지를 보인 것임에도 알지 못하느냐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내
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요14:7에 너희가 나를 알았
더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라고 하셨습니다. 예
수님을 안다면 아버지도 알게 된 것이니 너희가 아버지를 보았다는 말입니다. 요14:6에 내가 곧 길
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 올 자가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져도 아버지께 올 자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모르
면 아버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모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요6:46에 말씀하시기를 누군가 아버지를 본 자가 있다는 말이 아니라 예수님 자신만이
하나님에게서 왔고 하나님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을 모르면 아버지께 갈 수 없습니
다. 예수님만이 생명이요, 하늘에 들어가는 길이요,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알지 못하면서
예수님에 대해 무관심하면서 하나님을 안다고 하는 것은 거짓말이요, 자신을 속이는 것입니다. 믿
음은 내 생각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잘 깨달아 하나님의 방법대로 믿는
것, 하나님의 방법을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입니다. 말씀대로 믿는 것을 바로 믿음이라고 하는 것입
니다. 예수님을 믿기 원하면 삼위 하나님을 바르게 알아야 하며 아버지와 예수님의 관계, 아버지와
예수님과 성영님의 관계에 대해서 정확하게 바로 알면서 또한 아버지와 예수님과 성영님과 나와의
관계를 바로 맺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 예수님, 성영님에 대해서 혼동을 가지고 자신
이 무엇을 믿고 있는 줄도 몰라서 결국 예수님의 이름을 자신의 세상 욕심 채우는 것에다 써먹는
것으로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렇잖습니까? 예수님 이름으로 자기 세상 욕심 채우기 원하는데 기도
하고 맨 마지막에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였습니다'하는 정도로 써먹는 것이지 않습니까?
요일2:23에 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또한 아버지가 없으되 아들을 시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도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신데 예수님이 아들이신 것을 부인하면 그에게는
아버지도 없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진정 시인하는 자는 그에게 아버지도 있다고 하
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누구이신가? 하는 예수님에 대해서 정확히 바로 알고 시인하여 통하
지 않고는 도무지 하나님 아버지와도 통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분명히 알라는 말입
니다. 예배드리는 것도 헌금 드리는 것도 말씀 듣는 것도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는 다 상관없는 자
기 행위입니다. 그래서 우리 믿음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그리스도이심을 보아야 하
고, 예수님이 아들이신 것을 보아야 하고, 그 아들이 하나님이신 것을 보아야 하고, 그 아들을 봄
으로써 아버지를 보아야 하고, 그러므로 이것을 진정으로 믿는 것이기에 시인하는 것이라는 말입
니다. 사람이 아들이신 예수님 없이 하나님을 믿을 수 없다. 바로 하나님을 믿되 아들을 믿으므로
하나님을 믿는 것이 돼야 한다는 것 분명히 이해됐습니까? 이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뜻입니다. 그
래서 요6:40에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
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루신 아버지의 구원하시는 사랑의 뜻을 각 사람이 받아 자기의 것으로 경험케
하시려고 누구를 보내셨어요? 성영님입니다. 우리가 배고플 때 쌀로 밥을 지어놓았어도 그것을 먹
어야 배고픔을 면하는 것이지 바라본다고 고픈 배가 부른 것이 아닌 것처럼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뜻도 듣고 아멘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성영님을 의지하여 온전한 구원의 능력이 되도록 적극적
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루신 구원을 개개인이 받아들여 생명을 얻게 하시기
위해 성영님이 오셨습니다. 성영님이 아니고는 예수님의 이 구원의 사실을 절대로 받을 수 없습니
다. 이기적이고 고집스럽고 변덕스럽고 의심 많고 죄성으로 가득한 우리가 하나님의 이 사랑하심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가 있겠습니까? 성영님의 도우심이 아니면 도무지 설 수 없는 인간의 죄성을 아
시기에 성영님께서 오셔서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의 믿음을 도우시고 영적인 사람으로 설 수 있도록
도우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이요, 예수님의 영이신 그분을 바로 성영님이라고, 성영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한 하나님 안에 독생하신 인성이 세상에 구주요 아들로 오시고 구원을 이루시고 이루신 그 구원을
또한 영이신 성영님이 영접하는 각 사람 안에 오셔서 구원받아 예수님의 생명을 얻게 하시니, 그래
서 오늘날 우리에게 실제로 역사하시는 분은 성영 하나님이십니다. 실제로 역사하시는 분은 누구라
고요? 성영님이 여러분에게 오셔서 늘 함께하시며 깨닫게 하시고 믿음을 도와주시고 영적 사람으로
성장하게 하여 부활의 몸을 온전히 이루도록 돕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여러분이 성영님과 함께합니
까? 이렇게 본질의 한 하나님이 세 위로 계시면서 각각의 일을 하시는 것이지만, 또 하나로 연결된
일체입니다. 그러니 이 엄청난 하나님이 계신 것과 인간 구원을 위해 일하신 역사를 우리가 들을
수 있고 믿을 수 있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감사하고 감사한 일입니까? 바로 성영님께서 도우시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성영님을 알지 못하고 관계가 되지 않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한다면 그가 믿는
예수님이 어떤 예수님인지 알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 주님으로 나가버린 거잖아요. 주님으로! 여러분 주님을 시인하는 자에게는 그 안에 아버
지도 있느니라 했습니까? 누구를 시인하는 자에게 아버지도 있습니까? 아들을 시인하는 자라 했으
니 그러면 아들이 주님입니까? 바로 예수님입니다. 주가 아들로 오신 것이 아닙니다. 바로 그리스
도 예수님이 아들로 오셨습니다. '주'로는 구주가 되실 수도 없고 아들이 되실 수도 없습니다. 그
래서 관계를 정확히 알고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이 믿음이 되지 않으니, 자기와 예수님과 연합의
관계를 이룰 수 없으니, 그저 주를 부르면서 주님으로 나간 것입니다. 그래서 관계를 '주'로 맺으
면 영적 구원은 없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말씀을 가르치는 자들의 현실이 되어 있다는 것 자주 말
씀드렸습니다. 그렇기에 열심히 믿는다고 교회에 물질 들여가면서 충성 봉사했지만, 예수님께서
나는 너를 모른다고 하시는 큰 낭패를 만날 수도 있기 때문에 믿는다는 사람들이 하루빨리 바른
관계의 믿음으로 깨어나야 하겠다는 말이지요. 그래서 우리가 이것을 기도하는 것이지 않습니까?
이렇게 성영님을 알고 성영님과 믿음의 길을 함께 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성영님에 관심
없고 성영님을 무시하고 성영님을 거역하고 성영님을 제한하고 있으니 그 믿음 생활이 힘이 없고
거짓투성이고 오류투성이인 것입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영님은 한 하나님이시면서 삼위로 계시는
하나님이요,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뜻을 이루시기 위해 같은 비중으로 역사하고 계신 하나님이신데,
그 하나님을 믿고 있는 사람들이 성영님을 잘못 알고 성영님을 은사나 주고 몸에 경련이나 일으켜
주는 분으로나 알고, 무당 점치듯이 잘 살겠나 못 살겠나? 점이나 쳐주듯이 하는 분으로나 알고
있는 이런 엄청난 잘못을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말로 예수님이 너희의 실상이라고 말씀하신 이
성영님, 우리에게 유익이라고 말씀하신 이 성영님, 예수님이 친히 소개하시며 성영님을 기다리라고
성영님이 오시면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라고 말씀하신 그 성영님을 왜 그렇게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다는 말입니까?
성영님이 오시면 너희 기쁨이 클 것이라고 하신 그 성영님을 참으로 바로 알아서 함께하는 신앙이
돼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 말씀대로 성영님이 오시면 우리 안에 기쁨이 있습니다. 기쁨이 있는 것
으로 아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일을 만나면 우선 걱정이나 염려가 앞서지만, 그러나 그것은
잠시일 뿐 곧 '아, 내가 걱정할 일이 아니지, 성영님이 이것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어떻게 처리
해야 할지 아시니 내게 평안하라 하셨으니 제가 말씀대로 그냥 평안하겠습니다. 기뻐하라 하셨으니
기뻐합니다. 염려하지 말라 하셨으니 염려하지 않습니다'하고 성영님께 맡겨드리는 것입니다. 이것
이 곧 영을 따르는 일이예요. 성영님을 따르는 것이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지금 성영님을
알고 성영님을 의지하는 믿음인지 아닌지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성영님은 아무에게나 ....,'예수님 믿습니다'한다고 해서 무조건 그 속에 밀고 들어오시는 분 아닙
니다. 죄사함 받은 자 안에만 오시는 것입니다. 환영을 받으시고 영접하여 모셔 들여야 하는 분입
니다. 마12:31에 성영을 훼방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살전5:19에 성영을 소멸치 말라고 했습니다.
히10:29에 은혜의 성영을 욕되게 하는 자가 되지 말라 했습니다. 엡4:30에 하나님의 성영을 근심하
게 하지 말라 했습니다. 참으로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여 따르고 순종하는 삶이 돼야 함을 말
합니다. 마12:31에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성영을 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영을 거역하면 이 세상
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하나님이
계시느냐 안 계시느냐 하나님이 있으면 이럴 수가 있느냐 저럴 수가 있느냐 별말을 다 했어도 '예
수가 밥을 주냐 옷을 주냐'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그러잖아요? 그랬을지라도, 하나님에 대
해서 예수님에 대해서 어떤 말을 했던, 살인했던, 도둑질했던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자라 할
지라도 이후에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구세주임을 깨닫고 회개하면 다 용서를 받는데, 예
수님을 말로 훼방했던 것은 다 사함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용서받지 못하는 죄는 뭐냐?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구원을 온전히 이루시고 하늘로 가신 뒤
에 성영님이 오셔서 하시는 일을 말로 거역하고 훼방하는 것은 사함을 받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죄를 깨끗게 하시고 구원을 이루신 예수님을 증거하여 주시는 성영님의 증거를
훼방하거나 거역하는 것은 사함이 없다는 것, 참으로 두려운 일입니다. 예수님은 죄 가운데 오셔서
죄인들과 함께 유하시고 죄인처럼 십자가의 형벌을 받아야 하는 일이었기에 그래서 이 같으신 예수
님을 말로 거역한 것은 구원을 이루시기 전의 일이니 사함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구원을 이
루신 뒤에 성영님이 오셔서 전하시는 예수님을 말로 훼방하고 거역하는 것은 더 이상은 없는 것이
니 사함을 받을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누구를 통해서든지 성영님께서 증거의 말씀을 하시고 행하
시는 일들을 믿는다는 사람이 거역하고 훼방한다면 그것은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성영님을 알지 못하면서 성영님으로 행하는 것에, 성영님으로 전하는 말씀들에 비판하거나 무시하
는 것들은 100% 성영님을 훼방하는 죄가 되어 사함을 받지 못합니다. 그래서 저는 사람들로 이 죄
를 범치 않게 하려고 "나는 성영님으로 말하는 것이다, 성영님께서 말씀을 보내셨다, 성영님이 말
하라 하셨다, 성영님이 경고를 보내셨다" 이같이 나의 말의 출처는 성영님이라는 것을 분명히 밝혀
누누이 말했습니다. 그런데도 두려운 줄 모르고 성영님의 하시는 말씀을 비판하고 나오는 것은 그
것은 사단의 종자라는 것이 드러난 것이기에 정말 사함이 없습니다. 성영님을 따라 행하는 자를 비
판하고 모함하는 것은 성영님을 비판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사함 받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성영님
의 말씀을 받지 못하는 것, 받지 않는 것, 다 그의 영이 판단되는 것이라서 사함 받지 못한다는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영님은 죄 사함 받은 자 안에만 들어오신다는 것을 분명히 알기 바랍니다. 죄 사함을 받았
다는 것은 성경의 말씀을 집중하여 관심을 기울여 말씀을 통하여 자기를 알고 예수님을 알고 삼위
의 하나님을 알고 각각의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알고, 그러므로 자기의 죄를 알고 회개하고 예수님
의 죄 사함의 피를 만났음으로써 자기가 죄 사함을 받은 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지식을 따라
죄 사함을 받은 자가 성영님을 알고 성영님을 환영하여 모셔들이는 것입니다. 이 같은 성경의 뜻을
알고 말씀의 지식을 따라 죄 사함을 받지 않으면, 성영님도 알 수 없을뿐더러, 인격적이지 않기 때
문에 성영님이 오실 수가 없습니다. 성영님은 인격적인 분입니다. 원치 않음에도 환영하지 않음에
도 굳이 밀고 들어가는 것은 인격이 아닙니다. 그처럼 성영님께서는 인격이시니 믿는 자가 인격적
이어야 모셔 들일 수 있고 가장 귀한 분으로 대우해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자 안에 거처를
삼으시고 일생 동안 영원히 성영님으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고전3:11-15에 사도 바울이 말하기를.....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
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날이 공력을 밝
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 만일 누구든
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
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고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믿음의 터가 다른 것
으로 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터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터가 되었다는 것
은 율법에 비춰 회개하여 예수님의 피로 죄 사함을 받고 성영님을 영접하여 모셔 들인 상태를 말합
니다. 이제 이 상태에서 성영님으로 믿음의 도우심을 받고 온전한 구원에 이르는 장성으로 나아가
야 하는데, 그러면 여러분! 여러분의 믿음의 터는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맞습니까? 하나님
아닙니까? 주님 아닙니까? 자기중심 아닙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자기의 믿음의 터가 되었으면 이제
그 터 위에 믿음의 집이 세워져야지요.
그래서 이 터 위에 이제 각각 공력이 세워지는 것입니다. 공력은 노력하여 쌓아 올려 세워진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그 터 위에 공력을 세우는데 금이나 은이나 보석으로 세워지고 어떤
사람은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세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각각 공력이 나타나 불로 그 공력을 밝히
는 시험할 때에 공력이 불타면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고, 자기는 그 불 가운데서 얻는 것과 같이
간신히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 구원은 영광의 부활이 아닌 단순히 영의 구원만 받는 것을
말합니다. 바로 이것은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세운 것이니 공력을 시험할 때 그냥 힘없이 타버리지
않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열심히 믿음의 공력을 세운다고 했는데 그것은 예수님 안에
서 젖 먹는 어린아이 수준 정도의 자기 열심의 행함이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금이나 은이나 보석은 타지 않습니다. 금, 은, 보석이 무엇입니까? 성영님으로 믿는 믿음입
니다. 믿음의 훈련을 받음으로 말미암아 영혼이 온전히 구원받고 예수님으로 단단히 세워진 믿음입
니다. 그 믿음에 의해서 행한 모든 일입니다. 그러므로 이 공력이 그대로 있으니 상을 받는다고 했
습니다. 상을 받는다는 것은 예수님과 같은 영광의 부활로 나와 아버지 나라를 온전히 상속받는 것
을 말합니다.
그래서 절대로 우리 믿음은 성영님으로 세워져야 합니다. 삼위의 하나님과 관계를 이룬 믿음이 돼
야 합니다. 참으로 믿기 원하면 성영님이 거처로 삼는 집이 돼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성전 내
가 성전이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까? 성영님께 나를 온전히 맡겨드리고 이 모든 일을 깨닫게 해
주시고 나를 통해서 일하시도록 하는 것이 우리가 걸어가는 믿음의 길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
했을 때 하나님은 본질에 있어서는 창조주이고, 아버지요, 아들이요, 성영님으로 존재하고, 또한
구원하시는 여호와이지만, 구원 얻기를 거역하는 자는 심판하시는 하나님이고, 또한 스스로 존재하
는 영원불변의 하나님이고, 또한 하나님은 영이라고 하신, 이 네 가지 본질을 알고 믿는 믿음이
되었을 줄로 생각합니다.
또한, 오늘 말씀의 제목이 말하는바 아버지와 아들 예수님과 성영님과 관계를 이룬 믿음이 되었으
므로 예수님은 자기의 구주시요,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은 자기의 아버지요, 성영님은 자기 안에
오셔서 자기의 믿음을 도와 예수님을 증거 해주시고 말씀으로 양육해 주시는 보혜사가 되어 계실
줄로 믿습니다. 이로써 말씀을 맺습니다.
삼위의 하나님을 찬양하며 무한 감사로 영광을 돌립니다. 아멘!!
제 20 장 삼위의 하나님과 관계를 이룬 것이 믿음.p385-p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