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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5월 12일 주일 설교
시리즈 제목: 땅을 위한 하늘의 대리인들 19
설교 제목: 우리의 미래에는 무엇이 있을까?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디모데후서 4:7~8
설교 목적:
어버이주일을 맞이하여 인생의 노년에서 우리가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지에 대하여 생각해 본다. 치열하게 한평생을 살았던 모든 사람에게는 아쉬움과 후회, 그리고 마지막까지 놓을 수 없는 희망 같은 것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시로 표현되고 노래로 기려진다. 그렇게 우리는 누구나 늙어가고 그 황혼의 시간도 찬란한 아름다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이번 설교에서 ‘백만송이 장미’를 소개하고 한용운의 시, 님의 침묵을 소개할 것이다. 그 시와 노래들에 담긴 인생의 염원과 희망에 대해서 생각해 볼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인생을 간단하게 살핀 후에 사도 바울의 고백을 생각해 볼 것이다. 저마다 자기의 운명을 어떤 이야기로 표현하고 이해할 것이다. 그런데 기독교회의 성경에서 우리는 이 노년의 시기에 무엇을 읽을 수 있을까?
나는 ‘우리의 미래에는 무엇이 있을까?’ 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면서 지금 우리가 우리의 인생을 해석하고 그 해석을 바탕으로 우리의 노년을 살아갈 수밖에 없음을 설명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경륜이라는 이 이야기가 인생을 이해하려는 이 철학의 경연대회에서 어떻게 우승후보가 될 수 있는지를 소개하고 추천하고자 한다.
설교 개요:
1. 백만송이 장미와 님의 침묵
2. 인생의 황혼에서
3. 인생철학의 경연장
4. 우리의 미래에는 무엇이 있을까?
***
1. 백만송이 장미와 님의 침묵
백만송이 장미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차분하고 감성적으로 노래하는 가수 심수봉 씨가 부른 곡입니다. 백만송이의 장미를 피워야 저 별나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그 장미는 미워하는 마음 없이 진실한 사랑을 할 때만 핀다고 합니다. 저 별에서 나를 찾아온 그대와 함께한다면 더 많은 꽃을 피울 수 있을 것 같다는 노랫말을 듣노라면 정말 마음이 애틋해집니다. 심수봉 씨는 인생을 이렇게 노래합니다. 사랑을 통해 꽃을 피우는 과정이라고요. 그 노래 속에서 인생은 꽃을 가꾸는 정원사입니다.
그런데 이 노래는 본래 1981년에 라트비아 사람에 의해서 세상에 나왔습니다. 라이몬츠 파울스 (Raimonds Pauls)라는 작곡가는 라트비아에서 가장 유명한 대중가요 작곡가입니다. 1936년에 태어나 올해로 88세 되신 이분은 나중에 문화부장관을 맡기도 했습니다.
이 노래는 처음에 조국 라트비아의 안타까운 현실을 담았습니다. 라트비아는 발트해 연안에 있는 작은 나라입니다. 러시아와 소련, 그리고 독일에게 짓밟히다가 1990년에 독립을 선언하고 그 이듬해에 소련으로부터 승인을 받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힘이 없는 나라가 강대국들에게 짓밟히고 억눌릴 때 얼마나 답답했겠습니까? 그것은 마치 엄마를 일찍 잃은 소녀의 애달픈 모습으로 그려졌습니다.
그런데 이 노래는 러시아로 건너가서 새로운 제목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가난한 화가가 아름다운 여배우에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서 백만송이의 장미를 준비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가난한 화가는 모든 재산을 다 팔고 자신의 피까지 팔아서 그 장미를 준비했습니다. 그렇게 이 노래는 남녀 간의 사랑의 노래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일본을 거쳐 1997년에 한국의 가수 심수봉 씨에게 전해졌고 그 노래는 다시 같은 제목이지만 더 고상한 사랑의 이야기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조국의 안타까운 형편을 노래한 시인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 한용운 시인의 시 ‘님의 침묵’이 있습니다. 그 시는 1925년에 씌어진 것으로 이렇게 시작합니다: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중략) … 아아, 님은 갔지만 나는 님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사람에게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이며, 조국이며, 그리고 영원입니다. 그 외에도 사람은 저마다 소중한 것을 마음에 품고 살아갑니다. 그것은 시로 나오고 한숨으로 나오고 통곡으로 나오기도 합니다. 겨우내 메마른 나무가 죽은 것 같아도 봄이 되면 새순이 돋고 잎이 무성해지듯이, 우리 마음에서 소원이 있는데 평상시에는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마음의 빗장이 풀어지는 날이 오면 우리들은 마음에 꽁꽁 감추어 두었던 그 소원을 외치고 노래합니다.
오늘 저는 어버이주일을 맞이하여 인생의 황혼에 서 있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습니다.
2. 인생의 황혼에서
우리는 모두 어린 시절을 지나왔습니다. 그때 우리는 모두 가정에서 부모님을 따랐습니다. 가족 간의 우애와 사랑, 그리고 부모님의 지도를 받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러다가 우리는 청년이 되어 친구를 만났습니다.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미래를 생각했습니다. 새로운 모험도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사랑하는 이를 만나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자녀를 낳고 양육했습니다. 그렇게 우리의 인생은 봄과 여름, 그리고 가을로 접어들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어떤 분들은 인생의 겨울을 앞두고 있습니다. 인생은 아침과 점심, 오후와 황혼으로 비유되기도 합니다. 황혼은 해가 져가는 때입니다. 황혼은 인생이 저물어 가는 시간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황혼의 시간에 서 있는 사람에게 인생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인생의 황혼에 서 있는 사람은 이제 자녀들을 품에서 떠나보내고 그들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일 것입니다. 이제 나의 인생에서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인생의 황혼에서 우리는 어쩌면 비로소 나의 삶을 돌아보게 되는 것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나의 인생은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나는 무엇을 위해서 살아왔지?’ 이럴 때 우리는 시나 노래를 통해서 우리의 마음을 간접적으로 표현합니다. 어떤 사람에게 인생은 엄마 같은 조국을 잃고 안타까워하는 소녀의 모습으로 표현됩니다. 어떤 사람에게 인생은 사랑하는 님을 떠나보내고 못 잊어 아쉬워하는 사람으로 표현됩니다. 어떤 사람에게 인생은 모든 것을 다 걸고 그 사람이나 그것에 쏟았으니 후회는 없다는 노래로 표현됩니다.
심수봉 씨처럼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그 사랑을 따라 살다가 주님의 품으로 돌아갈 것을 바라보며 사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실제로 심수봉 씨는 1985년에 교회에 출석하여 예수님의 사랑을 깨닫고 백만송이 장미라는 노랫말을 썼다고 합니다. 연세대에서 신학교수로 일하는 김학철 교수는 백만송이 장미라는 노랫말에 얽힌 사연을 감동적으로 정리했습니다.
3. 인생철학의 경연장
우리는 저마다 다른 길을 걸으면서 인생을 살아왔고 오늘 여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있습니다. 오늘 저는 대중가요나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우리의 인생에 대한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설명하고 노래하는 것을 봅니다.
최근 몇 년 동안에 유행한 프로그램 중에 미스트롯이라는 노래 경연이 있습니다. 2019년부터 시작된 미스트롯 경연대회에서 여러 스타가 배출되었습니다. 진도 사투리를 쓰는 송가인 씨를 비롯하여, 효자로 알려진 임영웅 씨가 대표적입니다. 여기서 배출된 젊은 가수들의 노래를 들으려고 비싼 입장료를 지불하는 중년 부인들도 적지 않다고 합니다. 아마 사람들이 트로트 가수들의 노래에 열광하는 이유는 그 노래가 사람들의 마음에 감동을 주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트로트 노래를 들으며 우울증이 나았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노래와 드라마, 연극과 영화, 그리고 수많은 유튜버들 속에서 우리는 살아갑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하늘의 뜻을 구하고 그 뜻을 붙들고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를 성경은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며, 하나님의 자녀라고 부릅니다. 이 세상에 많은 신이 있고 철학이 있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사실 사도 바울이 철학의 도시 아테네를 방문했을 때 그곳에서 철학자들을 만났습니다. 사도행전 17장에는 그 철학자들이 에피쿠로스 학파와 스토아 학파였다고 합니다(18절). 그곳 아테네는 철학과 문화의 도시라는 이름에 걸맞게 시민들과 외국에서 온 사람들이 가장 새로운 것을 말하고 듣는 것 이외에는 달리 시간을 쓰지 않았다고 합니다(21절). 이것은 오늘 우리가 대부분 텔레비전이나 휴대폰을 통하여 새로 나온 노래를 듣고, 새로 나온 드라마를 보며, 새로 개봉된 영화를 보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과 비슷하다고 하겠습니다.
그렇게 보면 바울이 방문한 아테네라는 도시는 인생철학의 경연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오늘 우리가 사는 서울과 온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트로트 가수들만 경연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와 드라마, 그리고 모든 종류의 지식인들과 전문가들이 자신의 철학을 드러내 놓고 선전하는 경연장, 그곳이 바로 오늘 우리가 사는 삶의 자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경연장에서 어떤 사람은 이런 철학에 열광하고 어떤 사람은 저런 철학에 열광합니다.
에피쿠로스 학파의 주장을 요약하면,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하면 행복하리라는 것입니다. 스토아 학파의 주장을 요약하면, 모든 일에 인내하고 잘 참아내야 진정한 행복이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이런 주장은 사실 오늘 우리 주위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습니다. 아테네에서 2천년 전에 풍미했던 인생철학은 오늘 우리 시대에도 여러 매체를 통하여 볼 수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도 그 가운데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철학의 도시에서 사도 바울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소개했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이 만물을 바로잡으시려고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키셨다고 선언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아테네에 전했던 것입니다. 그때 아테네의 철학자들과 그들을 추종하는 사람들은 사도 바울의 말을 듣고 어떻게 반응을 했습니까? 어떤 사람은 조롱했고 어떤 사람은 다음에 다시 듣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도 모르고 하나님의 경륜도 모르고 그저 참된 행복을 위해서 새로운 철학을 듣고자 했던 아테네 시민들에게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했고 그들 가운데서 복음으로 인생철학의 경연을 펼쳤습니다.
4. 우리의 미래에는 무엇이 있을까?
사람은 저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인생철학을 가지고 인생을 평가하고 미래를 소망합니다. 이제 우리의 미래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가에 대하여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리스 철학자 데모크리토스는 이 세상은 원자로 구성되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사람도 원자로 되어 있으니 결국 사람은 죽은 후에 원자로 흩어져 이 세상에서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인생은 살아 있을 때 인생이지 죽은 후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은 그런 철학을 반영합니다. 오늘날에도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 중에는 죽은 후에 천국과 지옥이 있어서 믿은 사람은 천국에 들어가고 믿지 않은 사람은 지옥에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즉, 천국과 지옥은 구원을 받았느냐 받지 못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도를 할 때도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것에 따라서 내세의 삶이 결정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미래의 삶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그가 디모데에게 남긴 유언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디모데후서 4:7~8
사도 바울은 자신의 미래에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어 있을 것을 기대했습니다. 그 면류관은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주실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도 바울이 생각하는 미래를 엿볼 수 있습니다. 그 미래에는 모든 사람이 의로우신 재판장의 앞에 서게 될 것을 보여주는 그림입니다. 우리는 에베소서에서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경륜을 소개한 것을 기억합니다: ‘하나님의 경륜은, 때가 차면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머리로 하여 통일시키는 것입니다.’(에베소서 1:10, 표준새번역성경)
심수봉 씨는 인생과 신앙을 사랑의 장미꽃을 피우는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예수님을 따라서 미워하는 마음 없이 아낌없이 주는 사랑을 실천하다가 주님과 함께 별나라로 다시 돌아가는 것으로 인생을 이해했습니다. 참 멋진 그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성경을 읽어 보면 우리의 미래를 보여주는 그림은 더 많고 더 풍성합니다. 오늘 우리의 과제는 이렇게 다양한 주장이 펼쳐지고 있는 인생철학의 경연장에서 성경말씀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바르게 배우고 굳게 붙들며 그것을 따라 살면서 그것을 따라서 꿈꾸면서 마지막까지 확신 속에 눈을 감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아테네인들이 사랑했던 철학자들이 많습니다. 스토아 철학의 금욕적인 정신을 따라 살았던 위인들도 있습니다. 로마제국의 5현제 중에 아우렐리우스 황제는 스토아 철학에 조예가 깊었다고 합니다. 그가 남긴 명상록은 오늘날까지도 읽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기록한 편지와 사도들이 남긴 글들은 우리에게 다른 이야기와 다른 그림을 제공합니다. 그 이야기와 그림들은 우리에게 이 세상과 우리의 미래에 대하여 새로운 소망을 갖게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경륜입니다. 저는 그것을 ‘성경이 들려주는 위대한 서사시’라고 풀었습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에 대하여는 ‘판타지로 쓴 하나님의 경륜’이라고 풀었습니다.
저는 설교를 준비하면서 미스트롯 시즌 3에서 나온 노래 ‘99881234’를 들어보았습니다. 경쾌하고 신나는 곡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노년을 그렇게 건강하고 즐겁게 보내는 것이 얼마나 좋습니까? 어차피 가는 인생, 행복하게 살다가 원 없이 놀다가 가자는 것입니다. 밝고 긍정적인 바람입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목적이 없습니다. 트로트 노래에서 인생철학을 찾는 것은 무리가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우리가 부르는 노래, 우리가 말하는 언어에는 우리의 철학이 고스란히 녹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인생에서 우리가 힘써서 배우고 기억하고 꿈꾸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주는 약속과 희망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무엇을 듣고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꿈꾸고 계십니까? 우리의 미래에는 정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요?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배우고 기도하고 경배하면서 한평생을 살아왔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요? 우리의 마음 속에 있는 미래의 그림은 이 세상 사람들과 어떻게 다를까요? 이런 것을 생각하면서 우리의 남은 인생을 걸어가 보면 어떨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