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코스 : 보아귀골 – 용추계곡 버스 정류장.
겨울철 산불 예방에 따른 국유림 출입금지가 되어 차례대로 경기 둘레길을 걷지 못하여 오늘은 19코스를 걸어간다. 19코스는 연인산을 넘어가는 길이다. 해발 1,068m의 매우 높은 연인산을 넘어가는 것이 어떻게 둘레길을 걸어간다고 할 수가 있을까?
하지만 가평군 일대가 고산지대로 산길을 넘지 않고는 둘레길을 조성할 수 없어 고육지책으로 19코스를 연인산을 넘는 길로 지정한 것 같다. 아무튼, 좋다. 둘레길이면 어떻고 고산의 등산이면 어떠하랴! 길을 걷는 사람은 길이 있으면 어떠한 길이든지 마다하지 않고 걸어가는 것이 사명이 아니겠는가?
연인산은 경기도 제2의 고봉 명지산의 남녘 능선을 잇는 산으로 본래 명지산 우목봉으로 불리었으나 가평군이 지명을 공모하여 1999년 3월 ‘사랑이 이루어지는 곳’이란 뜻에서 이 산 이름을 연인산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연인산 서남쪽의 전패봉(906봉)은 우정봉, 전패고개는 우정고개, 동남쪽의 879봉은 장수봉으로 고쳤다. 또한, 우목봉에서 뻗은 각 능선에 우정, 연인, 장수, 청풍 능선 등의 이름을 붙여 연인산의 지명과 걸맞게 고쳤지만 아직도 우직하게 명지산 우목봉을 고집하며 보아귀골에서 우목봉(연인산)을 오른다.
보아귀골에서 고스락까지는 3.4km이다. 몇 채의 민가가 있는 시멘트 길에서 계곡물 소리를 들으며 오른다. 고요한 정적이 감도는데 도시의 공기와는 다름을 직감적으로 느낀다. 상쾌한 아침이다.
잣나무 지대를 지나 이정표를 만났다. 연인산 정상 2.8km를 알리며 1시간 10분이 소요된다고 기록하여 놓았다. 50대에 보아 귀골에서 연인산에 오를 때에는 힘은 들었어도 1시간 30분 만에 올랐지만 60대 후반에 과연 그 시간에 올라갈 수가 있을까?
계곡물 소리가 또다시 귀가를 때린다. 아무리 들어도 싫지 않고 기분 좋은 소리, 물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차분해지어 물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하는데 능선의 좌, 우에서 흘러내리는 좀처럼 보기 드문 쌍계 계곡이었다.
아쉽게도 쌍계계곡은 길게 이어지지 못하고 맛만 보여주어 그 명성이 세간에 알려지지 않았겠지만, 그 쌍 갈래 물줄기는 기이함을 자아내기에, 충분하였다. 오랜만에 깊은 산속에 온몸을 파묻혀 산의 맑은 기운으로 세속에 물든 찌든 때를 말끔 씻어낸다.
마음은 상쾌한데 등산로가 흙길이 아닌 돌들이 고정되어 있지 않고 구르는 돌이 되어 걸음마다 매우 조심스럽게 발을 떼야 하는 걷기 힘든 등산로가 계속되어 힘이 들었다. 계곡의 물소리도 귀가에 멀어졌다.
고요한 산의 정적, 산에서 들을 수 있는 소리는 오로지 바람 소리인데 그 바람은 또한 이마의 땀을 씻어주었다. 산의 크기에 비교하여 울창한 산림이 보이지 않는 것을 다소 아쉬워할 때 경기 둘레길은 연인산 1.3km를 알리며 소요시간 32분을 알린다.
오른쪽 13시 방향으로 연인산 고스락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아무래도 30분에는 오를 수 없을 것 같았다. 깊은 산속에서 우리 세 사람이 밟고 지나가는 낙엽 소리가 정겨워 지지만 오르막의 경사는 더욱 가팔라진다.
숨소리가 산의 정적을 깨트리어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뒤에 오는 박찬일 사장님을 기다리며 주위를 살펴보니 어디에서 보아도 오르르 싶은 충동이 솟는 경기 오악의 하나인 힘찬 바위의 기상이 서린 운악산이 솟아있다.
산은 동지이자, 벗이요, 때로는 스승이다. 길이나. 산속에서 만나는 산은 벗이기에 반가운 마을을 금할 수 없는데 오랜만에 운악산을 만났으니 어찌 반갑지 않겠는가? 성인께서도 “ 벗이 먼 곳으로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하겠는가?”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는가?
예전에 숯을 굽던 가마가 있던 숯가마 쉼터를 지나니 보이는 것은 올라야 할 가파른 등산로뿐인데 32분이면 오를 수가 있다는 정상은 나타나지 않고 정상 800m를 알릴 뿐이다. 오르면 더 높은 오르막으로 이어지더니 실망스럽게도 정상 600m를 알린다.
평지라면 200m의 거리는 눈감고도 걸어갈 수 있는 거리인데 숨을 헐떡이고 있다. 도도한 지조를 지닌 연인이라고 할까? 연인산은 쉽게 정상을 허락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마음을 가라앉히고 가파른 오르막길을 오르고 또 올라 정상에 올랐다.
고스락에 서서 사방을 둘러보니 사방팔방이 온통 산이다. 이름을 다 알 수 없지만, 서로가 어깨동무하며 나란히 뻗어있고, 층층대를 이루며 솟아있는 모습을 바라보니 무엇이라 말할 수 없지만 기쁨이 샘솟으며 가슴이 뭉클해진다.
연인산의 어머니인 경기 2봉인 명지산은 걸어가도 곧바로 이를 수가 있을 것 같고, 경기 오억의 하나이며 경기 1봉인 화악산은 뛰어가서 얼싸안고 싶은 마음이 든다. 화악산 옆에는 응봉이 힘차게 솟아있고 화악지맥의 산줄기가 장쾌하게 뻗어있다.
방향을 전환하면 한북정맥의 산줄기가 너무도 당당하게 뻗어 나가는데 청계산, 운악산은 언제 보아도 오르고 싶은 충동을 감출 수 없다. 가야 할 연인산의 능선을 바라보니 완만한 산세가 부드럽기만 한데 올라온 보아 귀골의 등산로는 천하의 비경을 보여주기 위해 그렇게도 가파른 산길이었나! 문득 이은상 선생의 천지송이 떠오른다.
천지송 - 이은상
보라, 저 울멍줄멍 높고 낮은 산줄기들
저마다 제자리에 조용히 엎드렸다.
산과 물 어느 것 한 가지도 함부로 된 것 아니로구나
공자께서 ‘동산에 올라 노나라가 작다고 여기셨고 테산에 올라가서는 천하가 작다’라고 여기셨고 육진을 개척한 김종서 장군은 ‘긴 파람 한 소리에 거칠 것이 없애라‘ 하였는데 연인산 고스락에서 천지의 맑은 기운을 마시니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난 것 같이 마음이 차분해졌다.
고스락에 오래 머무르고 싶었지만 만족하면 그것에 탐닉하지 않고 적당한 때 물러가는 것이 아름다운 세상으로 가는 지혜라면 산은 오르면 반드시 내려가야 하는 가르침을 말없이 들려주고 있다.
좀 더 오래 있지 못하는 아쉬움을 안고 용추계곡으로 하산하였다. 급경사의 내리막길이었다. 이름도 사랑하는 사람을 뜻하는 부드러운 연인인데 등산로는 험준함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땅바닥에 돌들이 박혀 있는 것이 아니라 멋대로 구르고 있어 미끄러지기 쉬고 경사 또한 가팔라서 매우 조심을 요했다.
길이 다소 완만해진 벤치가 놓여 있는 곳에서 점심을 먹고 하산하는데 물소리가 들린다. 오를 때 들은 물소리였지만 다시 들어도 정답다. 위험의 내리막길에서 잣나무 조림 지대를 지나며 임도로 이어지고 명품 계곡 길 종점에 이르렀다. 이제 용추계곡의 비경이 시작되었다.
명품 계곡 길은 전체거리 4.7km로 징검다리 11개를 건너며 용추계곡의 아름다운 비경인 용추 구곡을 감상하는 계곡길이다. 화양동에 화양구곡이 있다면 가평에는 그에 버금 하는 용추구곡이 있어 용추계곡을 더욱 아름다운 국민 관광지로 만들어 주었다.
한국전쟁 이후부터 연인산에 들어와 살기 시작하여 1972년 산림 녹화사업으로 모두 이주하였지만, 집터는 아직 남아있는 화전민 터를 지나 11번째 징검다리를 건너 숯가마터에 이른다.
숯가마 타는 연료가 귀했던 시절에 숯을 구워 겨울철 난방용으로 사용하거나 생계유지를 위한 화전민의 중요한 재료인 숯을 굽던 곳으로 지금에는 여기저기 놓여 있는 바위들에서 그 모습을 느끼게 하였다.
징검다리를 건너며 그 속에 감추진 설화를 떠 올린다. 옛날 선녀들이 무지개를 타고 내려와 노닐던 무지 개소에서는 선녀와 나무꾼의 옛이야기를 떠 올린다. 계곡은 아름다웠고 그 속에는 사연이 있어 더욱 아름다웠다. 6번째 징검다리를 건너니 내곡분교가 있었다.
화전민을 위한 학교였지만 지금은 폐교된 내곡분교를 지날 때 소원성취탑이 있었다. “ 이루어져라 ∼ 화전민들이 돌을 올려놓고 소원을 담아 빌면 소원을 들어주는 영험한 바위인 소원바위에서 마음속으로 소원을 빌고 5번째 징검다리를 건넌다.
징검다리를 건너며 흐르는 계곡물을 바라보는 풍광은 또 다른 재미이다. 비록 용축구곡의 비경에는 들어있지 않지만 어린 시절의 추억과 낭만을 떠올리게 하는 잊혀진 옛 모습을 오늘에 재현해 주고 있었다.
명품 계곡 길을 시작을 알리는 첫 번째 징검다리에 이르니 15시 30분이다. 우리는 용추계곡 버스 종점에서 16시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야 하는데 30분밖에 남지 않았다. 용추계곡의 아름다움에 취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었다.
발걸음을 서둘렀다. 하지만 16시까지는 도착할 수 없을 것 같았지만 버스를 놓치면 택시를 타고 갈 수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에서 쏜살같이 내달릴 때 전화벨이 울렸다. 박찬일 사장님이었다.
경기 둘레길을 함께 종주하고 있지만, 오늘은 몸이 아파 불참하였던 산 거북이 님이 19코스 출발지까지 자신의 승용차로 태워주겠다는 전화가 왔으니 빨리 갈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고마운 일이다. 경기 둘레길을 종주하면서 차량 지원이 절대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아픈 몸을 이끌고 우리를 목적지까지 태워다 주겠다 하니 함께 경기 둘레길을 종주하는 동지의 참마음을 알 수가 있을 것 같았다.
용추계곡 버스 주차장에 이르니 승안 내곡 지리비가 세워져 있다. ” 고향이란 인간의 원초적인 생의 뿌리이고 어머니 품과 같은 영원한 안식처이다. 우리 고향에 대한 추억과 지나온 삶의 발자취를 영원히 간직하고 우리들의 고향이 여기에 있었음을 후손에게 알려주고 고향을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는 영원한 안식처로 삼고 고향에 대한 향수를 영원히 간직“(승안 내곡 지리비에서 퍼옴)하고자 지리비를 세워 놓은 것이다.
고향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서슴없이 어디라고 말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부모님을 세세생생 가슴에 묻고 살 듯이 고향은 죽어서도 잊을 수 없는 영원한 안식처이다. 그런 고향을 어떻게 잊을 수가 있겠는가 ? 어떠한 사유로 나고 자랐던 주거지는 사라졌을지라도 고향의 향수는 사람들의 마음에 영원히 남아있을 것이다.
16시 15분이었다. 버스는 떠났지만 곧이어 산 거북님의 승용차가 도착하였다. 우리는 이 차를 타고 현리를 거쳐 승합차를 주차하여 놓은 19코스 시작점인 보아 귀골에 이르렀다. 대중교통인 버스를 이용하였다면 4~5시간이 소요될 거리를 불과 1시간이 채 되지 않아 목적지에 이른 것이다.
● 일 시 :2022년11월19일 토요일 맑음
● 동 행 : 박찬일 사장님. 김헌영 총무님
● 동 선
- 08시40분 : 보아귀골
- 10시30분 : 숯가마터
- 11시30분 : 연인산 고스락
- 13시52분 : 명품계곡길 종점(12시10분 ; 점심)
- 15시00분 : 내곡분교
- 16시15분 : 용추계곡 버스 주차장
● 소요시간 및 거리
◆ 총거리 : 15.4km
◆ 시간: 7시간35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