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쪽이와 두쪽이
난 반쪽짜리다. 태생은 서울, 사는 곳은 시드니. 12년을 한국에서24년을 호주에서 보냈다. 전형적인 한국 사람의 모습을 한 호주 국민이다. 집에서는 한국어를 사용하고 밖에선 영어를 사용한다. 반은 한국인, 반은 호주인인 셈이다. 남편은 나보다는 늦게 왔지만 한국과 호주에서 반반의 삶을 살았으니 그 역시 반쪽짜리다. 그런데 반쪽이들 사이에서 아이들이 태어나자 이 아이들을 반쪽이라 해야 할지 한쪽이라 해야 할지 모르겠다.
영어 이름을 짓지 않은 탓에 이곳 사람들은 대화도 나누기 전에 나를 이방인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너 영어를 썩 호주 사람처럼 한다’는 말은 칭찬으로 둔갑한 무자비한 차별이다. 의도는 그게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직접 들으면 기분이 썩 좋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름은 바꾸지 않는다. 아이러니하게 나의 이름인 새미(Saemi)는 모두가 쉽게 발음하지만, 어느 누구도 단번에 읽어내지 못한다. 영어는 물론, 전형적인 한국 이름 같지 않아 국적을 가늠하기 힘들다. 그 점이 가장 마음에 든다. 이방인 취급을 당하는 게 좋지 않으면서도 이름만으로는 어떠한 힌트도 주고 싶지 않다.
대학 시절 교양 과목으로 일본어 수업을 들은 적이 있는데, 출석을 부르던 교수님이 내 이름을 부르지 않고 지나갔다. 한참이 지나서야 좀 전에 외치던 ‘사에미(Saemi) 상’이 나였다는 것을 눈치 채고 ‘사에미 여기 있습니다’ 대답했다. 그날 이후 일본어 교실에서 나의 이름은 ‘사에미’였다. 나중에 일본어로 새미가 매미라는 사실을 알았을 땐 사에미로 남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문은 아니지만, 뒤늦은 방황의 시기를 거치고 휴학을 결심했을 때, 대학에서 편지 한 통이 도착했다. Dear Saemo로 시작하는 편지는, 웃기지 않은 내용을 뜯기도 전에 웃기게 전달해 버린, 정말이지 웃긴 편지였다. 사무실에서 낸 오타였지만, 휴학을 거치고 자퇴의 길로 들어서자 정정할 기회는 영영 사라져 버렸다. 어떤 이유에선가 그 후로도 몇 통의 편지가 날아왔는데, 그때마다 Saemo로 쓰여 있던 것을 보면 그 학교에 다닌 것은 새미가 아닌 세모였다고 묻어두고 넘어가는 편이 오히려 유쾌할 듯하다. 호주 사람들에게 이름을 알려주면 열에 여덟 아홉은 Sammy로 표기하는데, 영어로 Samantha라는 이름을 줄여서 그렇게 부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관공서가 아니고서는 일부러 정정하지 않는다.
그 외에도 이름에 얽힌 일화는 많지만, 이러니저러니 해도 난 순수 한글인 내 이름을 사랑한다. 샘물의 샘에서 따와 ‘샘’이 될 뻔했지만 샘이 많아질까 새미가 되었다. 되려 함부로 샘을 부려서는 안 될 것 같단 생각으로 살게 되었으니, 이름은 때론 삶의 방향성까지 정해주기도 한다.
아이들의 이름을 지을 때 반쪽짜리 이름을 지어 줄 것이냐 한쪽을 택할 것이냐가 가장 큰 고민이었다. 게다가 첫째가 5주나 일찍 태어나버리는 바람에 발등에 불 떨어진 마음으로 급히 이름을 정해야 했던 나와 남편은 결국 양쪽 모두를 선택했다. 학교에선 영어 이름으로 집에선 한국 이름으로 불리며 두 개의 정체성을 가진 두쪽이들이 되었다. 반쪽이랑 두쪽이의 차이는 사실 크지 않다. 굳이 나누는 것 자체가 의미 없지만 이러한 것에 의미를 두는 것이 바로 반쪽이의 숙명이다. 이왕이면 반쪽씩 나뉜 것보다는 양쪽에서 온전한 한쪽으로 남는 게 좋다. 이것이 상처받은 반쪽이의 치유법이다.
박새미 / 2020 창작산맥 수필부문 신인상 등단, 시드니 문학동인 ‘캥거루’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