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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말씀 : 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마태복음 9:1~13)
* 본문요약
예수께서 바다를 건너 가버나움의 거주지로 오시자
어떤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침상에 누인 채로 예수께 데리고 왔습니다.
예수께서 그의 믿음을 보시고 그가 죄 사함을 받았음을 선언하시자
서기관들이 속으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했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이 악하다 하시고 죄 사함의 권세가 있는 것을 보이기 위해
중풍병자를 향하여 일어나 침상을 들고 걸으라고 명하십니다.
그러자 병자가 곧 일어나 침상을 들고 집에 돌아갑니다.
예수께서 세관에 앉은 마태를 부르시니 마태가 예수님을 따릅니다.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님과 함께 앉아 음식을 드십니다.
이를 보고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질책하자
예수님은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고 말씀하십니다.
찬 양 : 491장(새 434) 귀하신 친구 내게 계시니
318장(새 528) 예수가 우리를 부르는 소리
* 본문해설
1. 중풍병자를 치유하신 예수님(1~8절)
1) 예수께서 배를 타시고 호수를 건너 본 동네(가버나움)에 이르시니
2) 그때 사람들이 중풍병자 한 사람을 침상에 누인 채로 예수께로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얘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3) 그러자 몇몇 서기관(율법학자)들이 속으로 이르되
“이 사람이 참람하도다(이 사람이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고 있도다).”
4) 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하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마음에 악한 생각을 품고 있느냐?
5) ‘네 죄 사함을 받았다’하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서 걸어가라’하고 말하는 것 가운데서 어느 것이 더 말하기가 쉽겠느냐?
6) 그러나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용서하는) 권세를 가지고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7) 그가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거늘
8) 무리가 이 일을 보고 두려워하며
이런 권능을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 본 동네(1절) :
본 동네는 예수께서 공생애 기간 동안 기거하셨던 가버나움의 집을 의미합니다.
- 믿음을 보시고(2절) :
그 병자에게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있음을 보시고
예수께서 그의 죄가 즉시 죄가 사해졌음을 선언하십니다.
- 참람하도다(3절) : 블라스페메이
‘참람하다’에 해당하는 ‘블라스페메이’는
‘남을 욕하다, 부당하게 비난한다’는 뜻인데,
여기에서는 하나님을 모독한다는 뜻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사람의 죄를 용서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신데
예수께서 그 병자에게 죄 사함을 받았다고 말씀하시니 사람이 하나님 행세를 했다면서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으라 하는 말이…(5절) :
사람이 그냥 말로 하기에는 일어나 걸으라 하는 말보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이 더 쉽다는 뜻입니다.
일어나 걸으라는 말은 능력이 있어야만 할 수 있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으로 중풍병자를 즉시 일어나게 하심으로
죄 사함의 권세가 있음을 보이셨습니다.
2. 마태를 제자로 부르심(9절)
9) 예수께서 그곳을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하시니 마태가 곧 일어나 예수님을 따르니라.
- 나를 따르라(9절) : 아콜루데이
여기서 ‘따르라’에 해당하는 ‘아콜루데이’는 현재 명령형으로
조금도 지체하거나 주저 없이 당장 좇으라는 뜻입니다.
이는 신앙 결단의 시급(時急)성을 강조한 말로서
내 제자가 되라는 의미와 같은 말입니다(4:19; 19:21).
3. 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10~13절)
10) 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
11) 이것을 본 바리새파 사람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어울려서 음식을 잡수시느냐?”
12) 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데없고, 병든 자라야 쓸 데 있느니라.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필요 없으나, 병든 자에게는 의사가 필요하니라.)
13)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호 6:6)라고 하신 말씀의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13절) :
제사를 원치 않는다고 하신 말씀은 예배가 필요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제사는 형식적인 율법 준수와 예배 참여를 말합니다.
형식적으로 경건 생활을 하는 것보다
긍휼을 실천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더 기뻐하신다고 하신 말씀입니다.
* 묵상 point
1. 예수님을 왕으로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
1) 예수님을 왕으로 믿은 중풍병자(2절)
예수께서 바다를 건너 가버나움의 거주지로 오시니
어떤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침상에 누인 채로 예수께 데리고 왔습니다.
예수께서 그 중풍병자에게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있음을 보시고
즉시 그의 죄가 사해졌음을 선언하십니다.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란 예수님이 자신의 왕이시라는 것과
예수님이 그를 구하실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믿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께서 그 믿음을 보시고 그의 죄를 사하시고 그의 병도 고치셨습니다.
2) 예수님이 왕이심을 믿지 않은 서기관과 바리새인 (3절)
이 장면을 보고 서기관들은 예수께서 죄를 사한다는 선언을 하자
예수님이 하나님을 모독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이 아니시면 할 수 없는 능력을 예수께서 보이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예수님이 정말로 우리를 구원할 구세주가 맞는지에 대한 일말의 고민도 없이
예수님이 하나님을 모독했다고 규정합니다.
예수님은 이미 자신이 일반 보통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로서 온 자임을 그들이 알 수 있도록 처음부터 자신을 나타내셨습니다.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라는 음성을 들려주셨습니다.
수많은 병자를 고치셨고, 바람과 바다를 꾸짖기도 하셨으며,
지금도 그들이 보는 앞에서 말씀으로 중풍병자를 일으키셨습니다.
이렇게 엄청난 기적을 날마다 보면서도
그들이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끝내 알지 못한 것은
그들이 욕심에 사로잡혔기 때문입니다.
로마의 후광을 입어서 갖게 된 돈과 권세를 유지하려는 욕망이
그들의 눈과 귀를 막아 그런 엄청난 기적을 수없이 보면서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 묵상 :
욕망이나 미움이나 질투와 같은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지면
이들처럼 눈앞에 엄청난 기적이 일어나도 그 뜻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 됩니다.
마귀가 우리를 지옥에 빠뜨리지는 못하지만
우리 마음속에 지옥에 빠지게 할 만한 못된 생각을 넣어줄 수는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내 눈앞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학교나 직장이나 가정이나 교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마음을 빼앗겨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는 자가 되지 않게 조심하십시오.
2. 즉시 따라가는 마태(9절)
다른 제자들도 그랬지만 마태 역시 예수님의 명령에 즉시 따라갔습니다.
그는 세리로서 세관 업무를 보던 중에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는 많은 돈을 관리하던 중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돈보다 예수님 말씀 듣는 것이 더 중요했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그 자리에 놔주고 즉시 주님을 따랐습니다.
이것이 주님의 제자입니다.
● 묵상 : 당신은 예수님을 당신의 왕이라고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말씀을 읽고 묵상할 때마다
왕께서 나에게 주시는 말씀을 찾으십시오.
말씀을 읽고 묵상할 때에
본문에 담긴 주님의 명령이 무엇인지 깨닫도록 힘쓰십시오.
그리고 본문에 담긴 주님의 명령을 발견했다면
마태처럼 왕의 명령에 즉시 순종하는 자가 되십시오.
➀ 내가 행하지 못한 일이 발견되었다면 즉시 회개하여 그 죄를 씻어내고,
➁ 그 일이 지금 당장 해야만 하는 일이면 즉시 순종할 것이며,
➂ 지금 당장 하기 힘든 일이라면 장차 그 일을 행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간구하십시오.
3. 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
마태를 제자로 부르신 예수님은
마태의 집에서 그와 함께 음식을 잡수셨습니다.
그때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과 함께 음식을 먹었습니다(10절).
그러자 이 장면을 본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이 만일 하나님께로서 온 자라면 저 사람들이 어떤 죄를 지었는지 알 텐데
어떻게 저런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할 수 있느냐고 제자들에게 물었습니다(11절).
1) 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12~13절)
예수님이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는 것을 보고 불평하는 생각을 품자
예수께서 그들의 마음을 아시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13절).
이 말은 죄 없는 의인을 거절하시겠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의인인 체하는 위선자들을 거절하시겠다는 뜻입니다.
세상에 죄 없는 자가 하나도 없는데
겨우 예배 의식이나 절차 하나 지킨 것이나, 혹은 교회에서 직분 하나 얻은 것으로
이미 천국에 들어간 사람처럼 교만에 빠진 자들은
하나님 나라 백성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죄인임을 알고 주께 그 죄를 용서해 주실 것을
간절히 구하며 회개하는 자들을 위해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큰 실수는 자기가 죄인인 것을 잊어버리고
이미 의를 완전히 이룬 자인 것처럼 생각하는 일입니다.
2) 시작은 했으나 아직 완성되지는 않은 중간 단계
물론 우리는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의 백성이 된 자들입니다만
우리는 아직 그 의를 완전히 이룬 것은 아닙니다.
언젠가 주께서 오실 때에나, 우리가 죽은 후 주님의 심판대 앞에서
최종 심판을 받을 때 비로소 의가 완성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지금의 상태는
하나님의 의를 받기 시작하기는 했으나 그 의를 온전히 이룬 것은 아닌
‘이미’와 ‘아직’의 그 중간 단계입니다.
● 묵상 : 그러므로 항상 주님의 은혜 안에 머물러 있으십시오.
우리가 주님의 복음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예수님을 우리의 왕으로 믿고 섬기는 그 순간
주께서 주신 하늘의 의가 이미 시작되었으나 아직 온전히 이룬 것이 아니므로
우리도 얼마든지 죄에 빠질 수 있습니다.
우리도 얼마든지 주께로부터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주님을 찾고 구하십시오.
주님을 찾고 구하는 일이 중단되는 순간
나는 주님의 백성의 대열에서 벗어나게 된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 기도제목
1. 구원 받을 만한 참되고 건강한 믿음을
가진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2. 주님의 뜻을 깨닫게 하셔서
이 시대에 주의 일을 일으키는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3. 마태처럼 즉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