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졸업 후 45년 만에 친구들과 처음으로 여행을 갔다.
글 쓰는 희경이, 그림 그리는 선옥이, 노래하는 정연이, 손주들 매니저하는 정혜,
맑은 영혼으로 우리를 가볍게 웃겨주는 규자, 그리고 나, 여섯명이 대만으로 떠났다.
타이베이/단수이/지우펀/스펀을 2024년 4월2일 출발하여 4일간 다녔다.
대만의 4월 초 날씨는 우리나라의 봄부터 초여름 날씨와 비슷했다.
맑은날에는 여름 날씨 만큼 덥지만 비가 오고 바람이 불면 꽤 쌀쌀하단다.
4월은 우기였지만 우리가 간 동안에는 맑은 날씨가 계속되어 가져갔던 우산이 필요없었다.
4월 2일 첫날은 지우펀을 갔다.
지우펀은 대만 신베이시에 있는 작은 마을로 일본 만화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모티브가 됐다는 곳이다.
정작 작가인 마야자키 하야오는 공식적으로 부인을 했지만.
지우펀의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돌고 3층 건물 지붕마다 홍등이 달려 있는 것을 보면서,
'센과 치히로' 에니메이션의 온천여관 장면이 생각났다.
안타깝게도 홍등이 켜져있는 야경은 보지 못했다.
상상만으로도 신비하고 몽환적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아쉬움이 더했다.
좁은 골목 안에 가파른 계단이 수없이 펼쳐있고 일본의 식민시절 건축 양식이 남아있어 꽤 이국적이었다.
골목을 돌아 보며 지우펀의 명물 기념품 '오카리나' 가게에 들어갔다.
동물들, 악기, 젖병 등 다양한 디자인의 수제 캐릭터 오카리나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정연이가 회비로 사줄테니 손주들 줄 선물을 고르라고해서 하늘이 하루 선물로 초록색 오리와 하얀색 코끼리를 골랐다.
오카리나 연주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OST '언제나 몇번이라도'(Always With Me)를 들으면 대만의 작은 마을
지우펀이 생각난다. 오카리나 연주에서 맑고 청아한 숲 속의 새들과 이슬방울 떨어지는 듯한 감미로움이 몸을 감싼다.
지우펀을 구경하고 스펀으로 천등을 날리러 갔다.
스펀은 일제 강점기 때 석탄 채굴을 위해 개발된 광산 마을이다.
좁디좁은 마을에 기찻길이 있는데 공간이 좁아 기찻길과 건물이 딱 붙어 있었다.
지금은 기차는 다니지 않지만 기찻길에서 천등을 날리는 관광 마을이 되었다.
천등은 종이 풍선에 촛불을 밝혀서 공기를 데워 하늘로 천천히 띄워 보내는 놀이로,
성공과 복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있는 대만의 전통 놀이이다
우리나라에도 동짓날 저녁 서당의 생도들이 이웃 서당의 생도들과 등불 싸움을 시작할 때,
출발 신호로 대형 풍선을 공중에 띄우는 놀이가 있었다.
풍등이라고도 하며 제갈공명이 발명했다는 기록이 있다.
세명씩 나누어 천등에 붓으로 각자의 소원을 쓰고 기찻길 한가운데서 정혜랑 정연이랑 하늘로 높이 날려 보냈다.
소원대로 이루어지리란 것을 우린 다 알고 있다.
참 많은 사람들이 소원을 적은 빨간 등을 하늘로 올리며 행복해하는 모습들이었다.
하늘에는 수십개의 빨간 소원들이 높게높게 떠다니고 있었다.
2024년 4월 3일 대만 시간으로 오전 7시 58분
화롄현 해역에서 25년 만에 가장 강력한 규모 7.2~7.4의 강진이 발생했다.
정연이 희경이랑 아침을 먹으러 조식 부페에 갔다.
접시에 음식을 담아 식탁에 놓고 먹으려는데 몸이 조금 흔들림을 느꼈다.
대만은 약한 지진이 늘상 일어난다는 얘기를 들어서 별 일 아니겠지 했다.
아직 내려 오지 않은 다른 친구들을 기다리며 커피를 마셨다.
또 한 번 몸이 기울여졌다.
이번엔 몸이 조금 세게 출렁거렸다.
주변을 둘러보니 다들 긴장한 모습에 밖으로 급히 나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몇 초 후 식탁이 좌우로 몇 번 흔들렸다.
별 일 아니겠지하고 앉아 있던 사람들도 급히 뛰쳐 나간다.
여러 사람들이 뛰쳐 나가니까 분위기가 웅성웅성해졌다.
옆 쪽을 보니 우리 가이드가 카운터를 잡고 몸을 기댄 채 별 일 없는 듯 서 있었다.
괜찮나보다, 이렇게 지나가나보다, 생각하며 약을 먹으려 물을 따르는데 출렁하며 식탁이 마구 흔들리고,
내 몸도 가누지를 못할 만큼 옆으로 왔다갔다 심하게 흔들렸다.
그때까지 침착했던 정연이랑 희경이가 "우리도 나가자"하며 사람들이 뛰쳐나가는 틈으로 같이 뛰어나가기 시작했다.
"정연아, 나 약 먹고 같이 가" 그 와중에 약을 먹고 뒤따라 쫓아 나갔다.
죽을 수 있다는 생각조차 안나는 흔들림이었다.
엘레베이터 타려는 사람, 현관 밖으로 뛰쳐나가는 사람, 대부분이 한국 관광객이었다.
우리 셋은 식당 밖 탁자에 손을 얹고 꼭 붙어 있었다.
몇 십초 후 흔들림이 멈췄다.
그제서야 '아, 조금 기다릴걸' 생각하니 뛰쳐나온 우리 모습이 우습기도 했다
우린 다시 식당으로 들어가 못다한 아침 식사를 마저했다.
참 신기한건 식탁이 그렇게 출렁출렁 흔들렸는데도 먹던 음식이나 커피가 쏟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층 수가 높았던 객실은 흔들림이 더했었나보다.
호텔방에 있던 선옥이랑 정혜는 침대 아래서 둘이 꼭 껴안고 떨고 있었단다.
규자가 놀라 방 밖으로 나와보니 그 흔들림 속에서도 청소부 아줌마가 청소하며 "오케이오케이"하더란다.
타이페이의 건물들은 의무적으로 내진 설계가 되어있기 때문에 큰 피해는 없다고 한다.
세상에 태어나 참 경험하기 어려운 일을 대만 여행에서 겪었다.
그날 저녁 타이페이 101 타워를 올라갔다.
이 빌딩엔 지진과 강풍으로부터 건물을 보호하는 '특별한 장치'가 있다.
이 건물 87층과 92층 사이에 걸려있는 '댐퍼보이'라고 불리는 황금색의 660t 무게의 강철 구체다.
약 13cm 두께의 단단한 철판을 41겹 용접한 것으로 강철 케이블 93개에 매달려 있다.
이 구체는 건물이 움직이는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흔들려 건물 전체의 균형을 유지한다고 한다.
지진이나 바람의 힘이 건물을 오른쪽으로 밀 경우 이 구체는 즉각 같은 힘을 왼쪽으로 가하는 것이다.
건물이 흔들리더라도 주저앉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댐퍼보이'를 눈으로 직접 보니 그 흔들림 속에서도 침착하게 자기 할 일을 하던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타이베이 단수이에 있는 진리대학과 중정 기념관을 갔다.
내가 본 대만의 건물과 거리는 회색빛이었다. 비가 많이 오는 곳이라선지 분위기도 우울해보였다.
사람들의 옷차림도 무채색으로 우중충하고 얼굴도 무표정으로 활기찬 도시는 아닌 것 같았다.
그 이유를 화교 출신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이해가 되었다.
17세기 네덜란드와 스페인이 차례로 대만을 식민지화했고 반청 항쟁기를 지나 청나라의 통치를 받다가,
19세기 말 청일전쟁 후 일본이 대만을 식민지로 통치하며 문화와 정체성을 억압하는 정책을 펼쳤다.
2차 세계 대전 후 일본이 패망하자 중화민국의 통치하에 들어갔고, 1949년 중국 내전 이후 국민당 정부가
대만으로 이동하면서 오늘날의 정치적 분단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역사적인 아픔이 많은 나라라 민족성도 진취적이기보다는 수긍적이며 수용적이라고 한다.
<대만 산책>이란 책에서 보면 대만을 한마디로 '절도와 포용으로 정의하며 인정과 원칙이 공존하고 넉넉하지만
치밀한 나라'라고 묘사했다. 같은 식민지 국가였던 우리나라와는 차별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또한 대만의 문화와 전통은 원주민의 전통, 한족의 문화, 네덜란드, 스페인, 일본 식민지 시대의 유산 등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대만의 역사를 듣고 회색빛 거리를 보다가 단수이의 진리 대학교를 보니 화사하고 생동감이 있었다.
1882년에 캐나다 장로교 선교사인 마카아 목사가 교육과 선교를 위해 세운 최초의 영국 캠퍼스 양식의 대학이다.
당시 이름은 '옥스퍼드 칼리지였기 때문에 지금도 그 이름의 명판이 달려있다.
식민지의 잔재가 아닌 서구식 학문이 시작되던 곳이라선지 자유롭고 평화로운 분위기였다.
현대적인 건축물과 전통적인 고딕 양식이 어우러져 있어 참으로 아름다운 캠퍼스였다.
영화 '말 할 수 없는 비밀'의 촬영지였던 이곳은 분수와 연못, 푸른 잔디와 색색의 꽃들로 꾸며진 정원이 있고,
얼키설키 얽혀진 나무들이 신비롭기까지 해 우리들도 많은 사진을 찍으며 자연의 풍광을 즐겼다.
대학을 나와 내려오는 비탈길 골목 벽에 진리대학의 역사를 볼 수 있는 그림들이 붙어 있었다.
벽에 기대어 벽화들과 찍은 사진들이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중정 기념관의 정식 명칭은 국립 중정 기념당이다.
이름은 우리가 장개석이라 불렀던 장제스의 본명인 장중정에서 따왔다고 한다.
혁명가로 알려진 장제스는 대만 안에서는 대만 독립파를 철저히 탄압한 독재자이자 학살자로 중정기념당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않다고 한다.
관광객으로서 가장 볼 만 했던 것은 장제스 동상 앞에서 행해지는 의장대 교대식이었다.
각이 잡힌 자세로 교대식 동안 눈 조차 깜박이지 않을 정도로 정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빨간색의 제복을 입은 영국 버킹검 궁 앞의 의장대나 오타와 국회 의사당 앞의 의장대 교대식보다,
검은색 제복을 입은 중정 기념당 동상 앞의 의장대가 더 절도가 있었다.
마지막 날은 예류지질공원과 고궁 기념관을 가고 쇼핑을 했다.
예류지질공원은 타이완 북부 중화민국 신베이시 완리 구에 위치해 있다.
해저 지층의 지각 변동에 의해 형성된 곳으로 자연적인 침식과 풍화, 해식 등이 지속되면서,
버섯 모양의 기이한 바위들을 만들어 낸 곳이다
여왕머리 바위, 선녀신발 바위, 촛대바위, 아이스크림 바위, 벌집바위, 생강바위, 땅콩바위등 이름과 똑같은 바위들이
바다를 따라 길게 늘어져 있었다. 지금도 해식 침식 작용이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가장 유명한 바위는 '여왕 머리'인데 긴 목에 올림머리한 머리가 얹혀져 있는 형상이다.
이 여왕의 목이 점점 가늘지고 있단다. 몇 년 안에는 못보게 될 수도 있다고 한다.
1949년 중화인민 공화국이 성립될 때 장제스는 대만으로 쫓겨가는 신세가 된다.
'나라가 없어도 살 수는 있지만 문물 없이는 살 수 없다'라고 생각한 장제스는 1948년 자금성에 있던 수많은 희귀한
유물들을 대만으로 옮기라고 명령했다. 그리고 1949년 5월 18일 고궁 박물관이 정식 개관되었다.
타이베이의 국립 고궁 박물관은 세계 4대 박물관 중 하나로 손꼽힌다.
고궁 박물관은 중국 황제들이 자금성에 모아 놓았던 수집품을 중심으로 중국 송,원, 명, 청대 등 네 왕조에 걸쳐 내려온
국보급 유물 약 70만 점을 소장하고 있다. 이곳에 소장된 보물들은 중국 본토보다 수준 높은 유물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고궁 박물관의 가장 사랑받는 대표적인 유물로는 옥을 사용해, 배추를 완벽하게 똑같이 만들어낸 비취배추 '취옥백채'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치와 메뚜기가 숨겨져 있는 배추를 정말 놀랍도록 정교하게, 사실감있게 옥으로 표현해 놓았다.
또 하나의 유명한 작품은 천연석을 가공해서 돼지고기의 질감을 표현한 '육형석'이다.
작은 돌에 새겨진 돼지비계와 살코기를 멀리서 보니 진짜 고기라는 착각이 들 정도로 극사실적이었다.
인간의 손으로는 결코 만들 수 없을 것 같은 정교함과 아름다움이었다.
황홀감에 취해 2시간은 넘게 구경하고 여정의 꽃인 쇼핑 센타로 갔다.
쇼핑센타를 그닥 좋아하지 않는 우리들은 가이드에게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을 열심히 구경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그래도 우리의 사모님 규자가 우리 몫까지 매상을 올려줘서 눈치보지 않고 재밌게 아이쇼핑을 했다.
긴머리 소녀에서 모두들 흰머리 소녀가 되었지만,
같이 깔깔대며 웃고 얘기하며 사진 찍던 우리들의 마음은 50년 전의 풋풋했던 대학생활로 돌아가 있었다
우리를 항상 깨어있게 만들던 정의롭고 바른 글을 쓰던, 먼저 간 우리 친구 부연이랑 이 여행의 기쁨을 나누고 싶었다.
첫댓글 대학 동기들이랑 다녀 온
기행문이네요.
저도 이달에 딸과 함께 같은
코스로 다녀 온답니다.
캘거리 친구는 98세 엄마를 보러 대만에 석달 다녀온다고 해요.
*글로벌 세상이에요.
엄마와 딸의 여행 얼마나 좋은지 잘 알지요^^
토닥토닥 티키타카하면 더 재밌고요 ~ㅎㅎ
엄마 보러 고향 가는 친구분은 얼마나 설렐까요?
맘껏 누리고 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