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026년 5월 3일 주일 메시지
제목: 고치시고 고치게 하시는 하나님
본문: 로마서 11:33
https://youtu.be/jURd8s2_oX4?si=LziqjB-0P4ZKBUdc
설교 개요
1. 39년 만에 다시 펼친 ‘인생의 신명기’ (서론: 은퇴 후의 소망이었던 헬라어 공부가 유배지 같은 일상 속에서 일찍 찾아온 사연)
2. Ἰατρὸς τῶν πόνων ἐστὶν ὁ χρόνος: 시간은 고통의 의사이다 (고전 헬라어 문장을 통해 돌아본 인생의 진리와 고통의 세월들)
3. 트라우마: 영혼에 뚫린 구멍을 수선하시는 하나님의 손길 (대학 졸업의 트라우마와 사임의 아픔이 어떻게 신학적 자산과 치유의 통로가 되었는가)
4. 예배당을 잃고 발견한 더 큰 성전, ‘하나님의 발등상’ (운전석과 꽃길, 일상의 모든 현장이 하나님의 임재가 가득한 지성소가 된 고백)
5. 바벨론 유배지에서 기록된 ‘수선받은 자들의 노래’ (성경의 기록자들이 고통 속에서 자신들의 역사를 어떻게 하나님의 경륜으로 재해석했는가)
6. 아브라함부터 예수까지: 고침받은 자를 통해 세상을 고치시는 역사 (결함 있는 자들을 불러 세상을 치유하는 복의 근원으로 삼으시는 성경의 일관된 주제)
7. 결론: 우리 인생에서 계속되는 하나님의 위대한 수선 이야기 (사도 바울의 감격처럼, 고통을 영광의 자유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는 지혜)
***
1. 39년 만에 다시 펼친 ‘인생의 신명기’
저에게는 오랫동안 품고 있는 소망이 있습니다. 그것은 은퇴 후에 하고 싶은 희망사항입니다. 제가 20대 때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고전어를 배운 것입니다. 1987년에 공과대학에 들어가서 대학 졸업 후에는 신학을 공부할 계획이었습니다. 그래서 공대생이 문과대 건물까지 무거운 책가방을 들고 뛰어가서 희랍어 강의를 들었습니다. 희랍어는 헬라어라고 부르는데 그리스어를 의미합니다. 제가 배운 과목은 고전헬라어였습니다. 공대생인 저에게는 버거웠던 과목인 그 헬라어를 은퇴한 후에 다시 공부해 보는 것이 저의 희망사항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희망은 뜻밖에 일찍 찾아왔습니다. 제가 갑자기 오십대 후반에 교회를 사임하고 나서 일년을 보내는 동안에 찾아온 일입니다. 저는 교회를 사임하고도 여전히 신학자들의 책을 읽으면서 저의 신학과 신앙을 수련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지난 10년 동안 집중적으로 공부한 톰 라이트를 지나, 지난 일년 동안 제가 읽은 신학서적들의 저자는 마커스 보그, 도미닉 크로산입니다. 그리고 최근에 에이미 필러의 히브리서 주석을 읽고 있습니다.
제가 어린이집 차량기사로 일을 하기에 오전 두 시간, 오후 한 시간 반 운전을 합니다. 그 중간에 다섯 시간 정도 저는 공부도 하고 산책도 하고 있습니다. 하루에 만보 걷는 날이 많아졌고, 자동차를 운전하는 대신에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출퇴근을 하기에 몸은 더 건강해진 것 같습니다. 저는 낮 공부 시간에 깨달은 것을 짧은 영상으로 만들면서 저의 연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던 중에 문득 제가 오랫동안 희망사항으로 생각하던 일을 지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이가 더 들면 시력도 더 약해질 것 같아서 지금 그 희망사항을 실천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렇게 39년 전에 공부한 헬라어 문법책을 다시 꺼내 들었습니다. 저에게는 화학공학과 관련된 전공서적은 한 권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 시절에 고통 중에 공부하던 헬라어 문법책만큼은 비닐로 표지를 씌워 소중히 간직해 왔습니다.
거의 40년이 지나 다시 보는 문법책에는 스무살 청년이 헤매면서 공부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모세가 두번째 명령을 백성에게 전달한 책이 있습니다. 그것은 신명기입니다. 신명기는 영어로는 Deuteronomy인데 이는 두 번째 법이라는 의미입니다. 첫번째 법이 출애굽 초기에 받은 것이라면, 두번째 법은 광야 시대를 마감하고 가나안 입성을 앞둔 시점에 받은 것입니다. 그렇기에 제가 39년 전의 헬라어 문법책을 다시 공부하는 일은 제 인생의 신명기, 곧 제2의 헬라어 인생 문법을 정리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2. Ἰατρὸς τῶν πόνων ἐστὶν ὁ χρόνος: 시간은 고통의 의사이다
이번 주간에 여러 문장을 공부했는데 그 중에서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Ἰατρὸς τῶν πόνων ἐστὶν ὁ χρόνος:
시간은 고통의 의사이다
우리말에 ‘세월이 약이다’라는 말이 이것과 비슷한 의미입니다. 그러고 보면 인생의 진리에 대한 깨달음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보편적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세계인들이 공감하는 문학작품도 나오고 영화도 나오는 것 아니겠습니까?
3. 트라우마: 영혼에 뚫린 구멍을 수선하시는 하나님의 손길
인생을 살다 보면 우리의 뇌리에 깊이 새겨진 고통이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초등학교 시절의 많은 선생님들이 계시지만 그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선생님은 가장 무서웠던 선생님입니다. 다른 선생님들의 이름은 잊었어도 그 선생님의 이름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군대 고참의 이름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장 무서웠던 고참, 가장 많이 고통을 준 고참의 이름은 뇌리에서 잘 지워지지 않습니다. 고통은 우리의 기억에 깊은 흔적을 남깁니다.
뇌리에 새겨진 고통의 흔적은 트라우마가 되어 우리의 꿈자리를 어지럽히기도 합니다. 트라우마는 뚫려서 생긴 자국이라는 뜻입니다. 얕은 찰과상이나 스크래치 정도가 아니라 아예 구멍이 난 것입니다. 우리들이 살다 보면 크고 작은 상처를 받지만 어떤 상처는 마치 마음에 구멍이 난 것처럼 깊은 흔적을 남깁니다. 저에게는 대학생활이 트라우마입니다. 공과대학에 다니면서 인생의 방황을 하던 시절, 저는 동기들보다 늦게 졸업했을 뿐 아니라 제가 졸업시험을 치를 때 감독관은 저의 후배였습니다.
그렇게 저의 대학졸업은 구사일생으로 천신만고 끝에 이루어진 일입니다. 그래서 대학졸업장을 받는 일 자체가 저에게는 그토록 힘들었던 과정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후로 십년이 넘게 저는 꿈에서 대학졸업을 위해서 허덕이는 모습을 보아야 했습니다. 그것은 정말 괴로운 일이었습니다.
4. 예배당을 잃고 발견한 더 큰 성전, ‘하나님의 발등상’
그런데 10년의 세월이 흘러갔습니다. 저는 신학대학원에 진학을 했고 목회자가 되었습니다. 대학시절에 힘들게 공부한 헬라어는 제가 신학대학원에서 공부할 때 무척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저는 동기들과 후배들의 헬라어 조교가 되기도 했습니다. 시간은 고통의 의사입니다. 하지만 그 고통이 아름다운 일로 바뀌는 이유는 그것을 고치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세월이 더 흘러갔습니다. 이제 신학대학원으로부터 20년이 지나갔습니다. 저는 그 동안에 목회자가 되었고 부교역자와 담임목사의 사역을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교회에서 사임을 하고 나서 다시 헬라어 문법책을 펼쳤습니다. 그리고 그 문장들을 다시 생각해 봅니다. 39년 전에는 문법에 집중했다면, 세월이 덧입혀진 안목으로 그 문장들을 볼 때 새로운 의미가 다가왔습니다.
위의 문장처럼 ‘시간은 고통의 의사이다’라는 문장을 보면서 제 인생을 다시금 돌아보았습니다. 나의 인생에 고통이 무엇이었던가, 그리고 그 고통이 어떻게 고침을 받았던가? 저는 단지 세월이 흘러 고통이 치유된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고통 중에 배운 것이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고통은 단지 치유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의미와 지혜를 깨닫게 함으로써 우리를 치유합니다.
사람은 고통을 잊기 어렵습니다. 그것은 깊은 상처를 낸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고통 중에 사람은 새로운 것을 깨닫습니다. 젊어서는 고통 중에 헬라어라는 고전어를 배웠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서는 고통 중에 인생의 지혜를 배웠습니다. 지난 1년 동안 사임한 목회자로서 저는 예배당도 없고 목회지도 잃었지만, 이제 보니 가장 큰 예배당을 발견했습니다. 시편에 하늘은 하나님의 보좌요 땅은 하나님의 발등상이라고 선포한 말씀이 있습니다(사 66:1, 행 7:49). 하늘과 땅은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의미가 되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이 계시는 곳을 찾았습니다. 하나님은 운전하는 저의 운전석에 계시고, 어린이들의 귀여운 얼굴과 걸음걸이 속에 계시며, 어린이들을 맞이하는 부모와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얼굴에 계십니다. 하나님은 또한 봄날에 흐드러지게 핀 꽃길에서 빛나시고, 봄꽃이 진 후에 파릇파릇 돋아나는 연한 잎사귀 안에 강력한 생명으로 충만하십니다. 그리고 제가 만든 영상들은 한달에 10만명의 사람들에게 전달되며, 1,449명의 구독자들 덕분에 저는 제가 걸어가는 길이 틀리지 않았다고 확신합니다. 어떻게 보면, 저의 사역지는 더 넓어지고 많아졌습니다.
20대에 헬라어 문장을 이해하는 것과 이제 60이 가까운 나이에 이해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것은 인생의 시간이라는 의사를 통해서 고통을 고침을 받은 후에 생긴 지혜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고통 속에서 인간은 지혜를 배웁니다. 그리고 그 지혜를 통해서 인생과 세상을 새롭게 해석합니다. 새로운 해석은 새로운 삶으로 인도하는 길잡이가 됩니다. 주님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라고 할 때, 그것은 삶의 길잡이가 될 해석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5. 바벨론 유배지에서 기록된 ‘수선받은 자들의 노래’
성경은 고통 속에서 기록된 지혜의 산물입니다. 구약성경에는 천지창조와 아브라함의 이야기에서 출애굽과 이스라엘의 왕들의 이야기, 그리고 이스라엘의 멸망과 유배, 그리고 귀환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약성경은 바벨론 포로 시대를 경험한 사람들이 기록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제가 저의 인생 이야기를 기록할 때 어린이집 차량 기사를 한 대목을 기록했다면, 그것은 그 기록이 저의 나이 예순이 가까운 시점에 완성된 것임을 보여주는 것과 같습니다.
성경은 바벨론 유배를 경험한 사람들의 기록입니다. 그들은 유배의 고통 속에서 하나님을 찾았고 고침을 받았으며 그 결과 지혜를 발견했습니다. 구약성경을 읽을 때 이런 기준을 가지고 읽을 때 우리는 매우 큰 유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어떤 책이 언제 어떤 사람의 기록인지를 아는 것은 그 책을 이해하는데 필수적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기준을 가지고 성경을 다시 생각해 보면,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비롯해서 이스라엘의 출애굽 이야기들은 모두 유배지에 끌려온 자신들의 이야기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고통 중에 있는 백성을 만나주시고 그들을 치료하시고 고치신 후에 그들을 통해서 주님의 뜻을 펼치시는 분임을 그들은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그 고통의 시기는 하나님의 섭리 아래 있음을 발견한 것입니다.
6. 아브라함부터 예수까지: 고침받은 자를 통해 세상을 고치시는 역사
아브라함은 불임부부로서 대를 이을 자식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아브라함을 고통 중에서 불러내어 고치시고 아들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큰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 결과 온 세계 만민의 복이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가뭄을 만나 애굽으로 피난을 가서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는 비굴함을 보이며 치욕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손자 야곱이 가솔을 이끌고 애굽에 내려가서 파라오를 축복했습니다(창 47:7, 10). 요셉도 종으로 끌려간 애굽에서 파라오와 그 나라를 멸망의 재앙에서 건져주었습니다.
이처럼 아브라함과 그 자손들은 허물과 흠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고통 중에 괴로워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들을 건져 내시고 고치시고 마침내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을 건지게 하셨습니다. 구약성경의 모든 이야기는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흠 많고 허물 많은 자신들을 불러내어 하나님의 제사장 나라로 세워주신 하나님의 언약 백성의 이야기이며, 곧 자신들의 이야기임을 알 수 있습니다. 구약성경의 주제는 허물 많은 사람을 하나님이 고통 중에서 건져 내시고 그들을 통해서 열방을 고치신다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대리인으로 열방에 빛을 비추게 하시는 계획에 동참하는 것을 말합니다.
신약성경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같은 주제가 반복됩니다. 하나님은 고통 중에 있는 작고 연약한 사람을 불러내어 그를 고치시고 그를 통해서 세상을 고치십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보십시요. 그들은 보잘것없고 허물이 많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예수님을 만나 고침을 받고 새 사람이 되어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는 사도들이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이 일하시는 신비와 역설을 고린도전서에서 이렇게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고린도전서 1:27~28
예수님 자신도 이스라엘의 변두리인 나사렛 출신으로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심으로 만민을 구원하는 구주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로 볼 때 하나님은 고통 가운데 있는 사람에게 다가가셔서 그를 건져 내시고 고치시며 그를 통해서 세상을 고치시는 분입니다. 이것은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주제입니다. 하나님은 고통 중에서 사람을 수선하시고 그를 통해서 세상을 수선하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저는 성경의 이야기가 ‘수선하시는 하나님’의 이야기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 사실을 가장 명확하게 드러낸 사람은 사도 바울입니다. 그가 로마서 8장에서 수선하시는 하나님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19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20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21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피조물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서 썩어짐의 종노릇 한데서 해방시켜 주는 것을 바라고 있습니다. 즉, 고통 중에서 신음하는 자신을 구해주기를 피조물이 바라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세상이 고침을 받기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들을 기다린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 아들들과 함께 영광의 자유에 이르기를 바랍니다. 영광의 자유는 포로로 끌려간 유배생활을 끝내고 하나님이 처음부터 계획하신 참 인간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영광의 사역을 펼치기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들은 먼저 고통을 겪고 그 고통에서 건짐을 받습니다. 그리고 다시 고통 가운데 들어가 고통받는 이들을 고치며 그들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게 합니다. 이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지 사도 바울은 로마서 8장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16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17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18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여기서 사도 바울은 우리가 전에는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노예의 생활이며 유배의 고통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우리들이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아 이제 양자의 영을 받았고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셔서 우리를 하나님의 양자가 되게 하셔서 하나님의 유업을 물려받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의 이야기이며 이스라엘의 이야기를 요약한 것입니다. 그들이 어떻게 고통 속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 언약을 맺어 제사장의 나라가 되게 하셨는가를 요약한 것입니다.
그처럼 고침을 받은 사람들은 일찍이 고통 속에 죽임을 당하시고 하나님이 다시 살리신 주님과 함께 고난에 동참합니다. 이 고난은 세상을 고치는 고난입니다. 그렇게 해서 피조물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도록 인도하는 고난입니다. 그때 우리는 만물과 더불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새롭게 된 세상을 물려받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어제 저는 우리 대통령이 국무회의를 주재하는 가운데 어떤 사람들에게 받은 문자를 소개하는 영상을 보았습니다. 칭찬과 격려의 문자도 있지만 비난과 조롱의 문자도 있다고 합니다. ‘당신이 그렇게 뭔가를 해보려고 하지만, 그래봐야 별수없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우리 대통령은 조금이라도 더 나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노력을 포기할 수 없다는 말을 했습니다. 모든 선한 노력에는 거기에 합당한 고난이 뒤따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은 자신에게 합당한 십자가를 짊어져야 합니다. 그 십자가를 통해서 자신과 세상은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 있습니다.
7. 결론: 우리 인생에서 계속되는 하나님의 위대한 수선 이야기
저는 오늘 39년 전에 대학교에서 배운 헬라어 문법책을 다시 펼친 이야기로 이 설교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겪은 고통과 실수에 대하여 말씀드렸습니다. 대학교를 너무 늦게 졸업한 이야기와 교회에서 예기치 않게 사임한 이야기, 그리고 그것으로 고통을 겪은 이야기, 그런데 그 고통 속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한 이야기를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보니 세월이 흘러 옛날의 문법책이 새롭게 이해되었다는 이야기와 성경의 기록자들이 바로 그처럼 고통 중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세상과 자신을 새롭게 해석하게 되었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 결과 성경은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새롭게 창조하신다는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그 방법은 고통 가운데 있는 사람을 먼저 고치시고 그를 통해서 고통 가운데 신음하는 세상을 고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고치시고 고치게 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사람과 세상을 수선하시는 분입니다. 성경의 지혜는 바로 그런 고통과 수선을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수선은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수선이 완성되는 날 우리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볼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이 들려주는 하나님의 수선 이야기가 저의 인생과 여러분의 인생에서 계속되고 있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묵상할 때, 먼저 자신의 삶을 돌이켜 보십시요.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 자신을 고통 가운데서 부르시고 고치셨는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이 성경에서 동일한 일을 하셨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성경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고 성경의 이야기는 우리의 삶에서 재현됩니다. 이천년이 넘는 세월 동안 세상에서 성경의 이야기가 사랑받는 이유는 고통 가운데 있는 사람들이 성경에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발견했기 때문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성경은 사람과 세상을 수선하시는 하나님의 이야기이며, 동시에 그 이야기는 지금 우리와 온 세상 가운데 만민과 만물 가운데서 이루어지고 있는 다채로운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를 깨달은 사도 바울은 이렇게 감탄했습니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로마서 11:33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