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초한지(楚漢志) -제20화, 효문왕은 등극 사흘 만에 죽고, 자초가 장양왕으로 등극하다. 소양왕이 서고하고 태자 안국군이 왕위에 올랐다. 그가 바로 진나라 29대 효문황(孝文王)이다. 안국군이 왕위에 오르자 자연스럽게 자초가 태자에 책봉되었다. 여불위의 입장에서는 권세의 길이 훤히 내다보이고 있었다. 여불위의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여불위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일이 계획대로 잘 되어 가는구나. ” 그러나 그에게는 더 큰 행운이 곧 다가오고 있었다. 새로 등극한 효문왕은 워낙 건강이 좋지 않아 왕위에 오른 지 불과 사흘 만에 세상을 떠나버렸다. 사흘 만에 두 명의 왕이 서거하고 또다시 왕이 옹립되어야 했다. 이제 자초가 왕위에 오를 차례였다. 주변에서는 왕위는 한시라도 비워둘 수 없는 자리기에 빨리 등극할 것을 재촉하였다. 그러나 자초는 연이은 초상에 어찌할 바를 몰라 쩔쩔매고 있었다 특히나 그는 타국에 불모로 잡혀갔던 경험이 있어 큰일이 있을 때는 조심스러운 면도 있었다. 특히 불모의 처지에서 도망쳐 왔는데도 자기를 태자로 옹립해 준 선왕들에 대한 정이 깊어 가슴이 미어지는 듯했다. “ 지금 두 분의 선왕께서 연거푸 돌아가신 이 판국에, 내 어찌 당장 왕위에 오를 수 있단 말이오. 그것은 효도의 길에 어긋나는 일이니, 상이나 치르고 난 후에 등극하겠소” 자초는 등극을 미루며 고집을 부리고 있었다. 그는 실제로 효심이 지극하기도 했다. 이에 중신들은 자초의 그 의견에 “효성이 지극하신 말씀이시옵니다.”라고 말하며 허리를 굽혀 절할뿐 자초의 그 말에 아무도 반론을 제기하지 않았다, 분위기상 자초의 등극이 미뤄질 판국이었다. 동궁국승 여불위(东宫局丞 吕不韋)는 마음이 초조해졌다. ‘왕위를 오래 비워 두면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 여불위는 정면으로 나서서 반론을 제기하였다 “ 지금 천하의 정세가 분분한 이 판국에 보위(寶位)는 하루도 비워둘 수 없는 상황이옵니다. 그것은 법도에 어긋나는 일이며 나라를 위태롭게 하는 일이기도 하옵니다. 진정으로 효도를 하시려거든, 마땅히 오늘로 등극하시어, 국기(國基)를 튼튼하게 만들어 주시옵소서. 지금 전하께서 효도하는 길은 두 분의 상에 슬퍼할 일이 아니라 발리 보위에 올라 두 분의 뜻을 이어가는 것입니다” 옳은 말이었다. 여불위가 그렇게 강력히 주장하는 나름대로 다른 이유가 있었다. 모든 일에는 기회가 있는 법이다. 자초처럼 감상적 슬픔에 사로잡혀서 등극을 미루다가는, 왕위를 다른 이에게 빼앗겨 버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자초 주변에는 32명이나 되는 배 다른 왕자가 있어 그들은 저마다 왕위를 넘겨다 보고 있었다. 그들 중에는 이미 중신들과 손을 잡고, 왕위를 가로채려는 책동도 보이고 있었다. 눈치 빠른 여불위가 그런 것을 눈치채지 못할 일이 아니었다. 자초가 등극을 미루겠다고 말했을 때, 중신들이 침묵을 지켜 온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더군다나 자초는 타국에 불모로 잡혀 갔기에 국내의 정치 기반이 아직 탄탄하지 않았다. 그런데 자초는 아둔하게도 그런 낌새를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계속 등극을 망설이고 있지 않는가? 여불위는 참다 못해, 중신들을 노여운 눈초리로 둘러보며, 엄포라도 하듯 말을 이었다. “나라를 올바로 인도해 나가야 할 중신들은, 무슨 생각으로 침묵을 지키고 계시오. 왕위를 오래도록 비워 두어도 괜찮다는 생각들이오. 그렇지 않으면, 태자를 제쳐놓고, 다른 왕자를 등극시키려는 생각이라도 있으신가요. 만약 그런 생각이 있거든 이 자리에서 숨김없이 털어내 보시오.” 대단한 엄포였다. 사실 둥궁국승(東宫局丞)이라는 지위가 아무리 높아도 중신에 비하면 낮은 자리였다. 그러기에 여불위가 중신들을 노려보며 호통을 쳤다는 것도 사실 법도에 어긋나는 망동이었다. 필시 이는 나라의 기강을 문란하게 하는 월권이며 하극상이었다. 그러나 중신들은 자초와 여불위의 특별한 관계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여불위의 말에 모두 몸을 떨었다. 자초가 등극하는 날이면, 여불위가 모든 권력을 한 손에 거머쥐게 될 것이 너무도 뻔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이에 중신들은 몸을 떨며 입을 모아 말하였다. “동궁국승의 말씀은 지당하신 말씀인 줄로 아뢰옵니다. 보위는 하루도 비워 둘 수 없는 일이옵니다. 전하께서는 오늘로 즉위해 주시옵기를 청합니다” “어흠, .. 진정 경들의 의견이 그러시다면 그리하리다.” 자초는 마침내 왕위에 올랐다. 그가 바로 30대 장양왕(庄襄王)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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