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어붙이지 않기(2)
에베레스트 산의 정상에는 산소가 해수면의 3분의1밖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7,800미터 이상 올라가면 '죽음의 구역'에 다다르게 된다. 그곳에서는 공기가 희박해서 뇌 세포가 급속히 손상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상에 이르려면 산소를 공급받아야 한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의 정상에 오르기 위해서는 압축 공기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하다. 감정적인 고양 또한 필요한 것이다. 심지어 목표, 프로젝트 그리고 도전 상황과 같은 인생의 은유적인 산들의 정상을 정복하는 데에도 감정적인 고양, 심리적인 자극, 정열의 불길 등이 필요하다.
하지만 사하라 사막에서 부딛치는 문제는 공기 부족이 아니라 공기 과잉 현상이다. 네 바퀴가 달린 자동차조차 매가리없이 구덩이에 처박혀 버린다. 이 상태에서 페달을 밟으면 더 깊이 박힐 뿐이다.
사하라에도 죽음의 구역이 있다. 이 죽음의 구역은 도로가 끝나는 곳에서 시작된다. 기온이 52도 이상 되는 곳에서 모래를 치우고 랜드로버 차량을 미는 일은 목숨까지 앗아갈 수 있을 정도로 위험하다. 차량을 구덩이에서 빼내려고 하다가 12시간 만에 탈수 현상으로 목숨을 잃는 사람들도 있다.
변화의 사막에서 우리 안의 일부가 죽어 벌릴 수도 있다. 우리가 너무 오랫동안 정체되어 있거나 너무 심하게 밀어붙이면 열정,진지함, 약속, 이 모든 것이 시들거나 죽어 버릴 수 있다. 쥐었던 것을 놓고 변화하지 못하면 생동감도 죽는다. 인생의 사막에서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에 오래 머물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정체된 상황은 바로 우리의 자신만만한 자아에서 공기를 조금 빼내어야 다시 움직일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 따라서 여기에 또 다른 역설이 존재한다. 타이어에서 공기를 빼고 차의 높이를 낮춰라. 그러면 차가 모래 위로 올라설 수 있다. 우리도 우리의 자아에서 언제 그리고 어떻게 공기를 빼야 할지 알게 되면 굉장한 상승을 맛볼 수 있다. 우리의 자아에서 공기를 조금 빼면 현실 세상과 좀더 가까워지고 좀더 인간적이 될 수 있다. 장뤽이 그렇게도 소중히 여기는 자기의 미슐랭 바퀴에서 공기를 빼기 전에 먼저 한 일은 자아에서 공기를 빼는 일이었다. 자기의 계획대로 일이 돌아가지 않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자기의 고집 때문에 일행의 안전이 위협 받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 Saturday Night Live>라는 프로그램에서 방송한, 동기 부여 연설을 패러디한 토막극이 생각난다. 그 연사가 쓴 베스트셀러와 매진이 된 세미나의 제목은 바로 '너는 아무짝에도 쓸모없어'였다. 세미나가 끝난 후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뭔가 새로운 것을 깨달은 듯한 청중과 인터뷰를 했다. 무슨 증언식 광고와 같은 양식으로 그는 카메라를 쳐다보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패배자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 이유를 알게 되었어요. 바로 나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 코미디가 마음에 들었다. 그것은 산을 오르는 데에만 집착하여, 성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성공하는 것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정신 자세를 꼬집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신감, 자아를 유지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한다. 항상 고양된 느낌, 기분 좋은 느낌을 원한다. 이런 문화에서 살다 보면 자아에서 공기를 빼고 겸허해지는 것이 무척 어렵다. 우리 사회는 승자를 좋아한다. 우리는 약함을 거부하고 패배를 승리의 이야기로 바꾸어 버리곤 한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우리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건전한 자존심을 키워야 한다. 특히 젊었을때 그렇다. 엄마를 따라서 바닷가로 이사를 간 후 내 딸아이는 처음으로 공립 학교에 들어갔다. 그때 클로에는 열세 살이었다. 딸아이는 자기가 운동에 소질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학교 대표 선수로 활약하면서 수십 개의 상을 받았다.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던 딸애로서는 자신감을 키울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딸아이는 나와 여름을보내기 위해 산골에 찾아왔을 때도 상을 가져왔다. 그리고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기분 나쁜 일이 생기면 이 상을 봐요. 그러면 기분이 좋아지거든요."
젊은 사람에게 절대로 해서는 안 될 말이 바로 "너는 아무짝에도 쓸모없어"라는 말이다. 아이들은 등산가와 같은 본능을 가지고 태어난다. 아이들이 목표를 세우도록 격려하고, 목표를 달성하고 자신감을 키울 수 있도록 도와 주어야 한다. 젊은 날에 이룬 것이 인생의 절반이기도 하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강한 자아(큰자아와는 다르다)를 키워 나가야 하다. 이는 나중에 사막을 건널 때에 필요한,공기를 빼는 작업을 견딜 수 있게 해준다.
성공으로 가는 길은 성공으로 덮여 있지 않다. 때로는 전혀 포장되어 있지 않은 도로도 달려야 한다. 성공적인 삶으로 가는 길에서 만난 사막에 잡힌 발목을 풀기 위해서는 자아가 한 번쯤은 패배를 겪도록 놓아 둘 필요가 있다. 그것은 내가 틀렸다고 인정하는 것일수도 있고, 상실을 받아 들이는 것일 수도 있으며, 사과를 하거나 용서를 하고, 도움을 요청하고 또는 약점을 인정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렇게 공기를 빼고 나면 자아는 패자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나는 출판 알선 에이전트에게 2주 안에 내 책에 대한 제안서를 보내 주겠다고 약속했었다. 그런데 한 달이 지나도록 나는 제안서를 끝내지 못하고 있었다. 더 이상 밀어붙이지 않기로 마음을 먹자 공기를 빼는작업이 남아 있었다. 나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며 나 혼자서는 편집을 해낼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래서 나는 굉장히 직설적이고 때로는 퉁명스럽기로 유명한 편집자를 선택했다.
자기 생각을 아주 솔직하게 말하며 저자의 문장에서 약점을 찾아내는 데 귀신이고, 의미가 애매모호하거나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을 족집게처럼 찾아내는 사람, 바로 나의 전처였다. 그녀는 빈틈없는 편집자로서, 내가 쓴 제안서를 매끄럽게 다듬어 주고 아주 좋은 출판사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 주었다.
기대하지 않았던 선물도 따라 왔다. 나는 전처와 일 때문에 만남으로써, 우리 결혼에서 항상 문제가 되었던 비평의 좋은 측면을 볼 수 있게 된 것이 무척 기뻤다. 나는 이제 우리가 서로 사고 방식이 다른 것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또한 그녀의 안목을 높이 사게 되었다. 우리가 함께 살 때는 어떻게 해서든 피하고 싶었던 비평을 들으며 나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 대가를 치렀다. 겸허해지면 우리를 가두어 두었던 모래에서 벗어나는 동시에 뜻하지 않았던 선물도 받게 된다. 우리의 자아는 우리가 모든 해답을 가지고 있지 않단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 익숙하지 않다. 하지만 우리 스스로 겸허해지지 않으면 절대 답을 찾을 수 없다. 문제는 스스로 자아에서 공기를 빼내기 전에는 겸허해지는 것의 장점을 보지도 못하고 상상도 못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가장 겸허해질 때는 바로 죽음과 가까워졌을 때이다. 죽음은 관념이 아닌 현실로 다가온다. 요즈음한창 잘 나가는 소설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 Tuesdays with Morrie>>에서 소설가는 죽음의 문턱에선 남자가 마지막 몇 달 동안 다른 사람들에게 무한한 기쁨을 선사하는 모습을 그린다. 몸이 점점 더 망가져 가는 동안 이 남자의 자아는 성공적으로 허물어지고, 그 결과 아주 인간적인 남자, 모든 순간을 사랑하는 그런 남자의 모습만이 남았다. 자아가 겸허해지면 정신의 승리를 맛불 수 있다.
그러나 어떻게 하면 겸허해질 수 있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꾸로 간다. 누군가에게 칭찬을 받으면 "별거 아냐"라는 말로 엇나간다. 쓸데없이 겸허해지는 것이다. 그러다가 정말 모래 속에 갇히는 상황이 되면 핑계를 찾거나 누군가를 탓하고 자아를 부풀려서 겸허해질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하고 만다.
말리도마 소매 Malidoma some 는 서아프리카 출신 작가이자 박사 학위를 두 개나 받은 강연가이기도 하다. 그는 사하라 사막 이남의 내륙국가인 부르키나파소 Burkina faso 에서 태어났다. 그 나라에 사는 다가라 종족은 아직도 인생의 중요한 단계에는 의식을 치른다고 한다. 말리도마는 사십대 초반에 원로로 들어서는 의식을 치러야 할 때가 되자 북미 지역에 있던 집을 떠나 자기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 때 그는 수많은 초가집들로 둘러싸인 구역의 한가운데에 이틀 동안 앉아 있으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 이틀 동안 마을 사람들은 때때로 그에게 와서 모욕적인 말을 하곤 했다. 사람들은 그가 살아 오면서 실수했거나 잘못했던 부분을 들추어 내어 그 일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실망했었는지를 상기시켰다. 그들은 말리도마를 비난하고, 꾸짖고, 평가절하했다. 그는 이러한 비난에 대해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하게 되어 있었다. 다가리족은 한껏 부풀어 오른 자아를 단번에 처리할 필요가 있다고 믿었다. 그것이 바로 아프리카판 '너는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였다. 그들은 리더로서의 책임을 맡기 전에 원로들이 먼저 겸혀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첫댓글 우리의 자아에서 언제 그리고 어떻게 공기를 빼야 할지 알게 되면 굉장한 상승을 맛볼 수 있다.....항상 관찰하면서 지혜로와야 되겠지요...
잘 읽었습니다.~♥
정말 모래속에 갇히게 되면 겸허해 질 수 있는 기회를 잃고만다.. 이 말에 공감이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