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유록(東京遊錄)」은 이덕홍(李德弘 ; 1541~1596)의 문집인 『간재선생문집(艮齋先生文集)』 권 7의 잡저에 수록되어 있다. 신라의 도읍지였던 경주를 유람한 내용을 적은 것이다. 일반적으로 동경은 경주의 옛 명칭이고, 서경은 평양이라 일컫고 있다. 동래에 임무를 부여받고 한번 가려고 하였으나 8개월 동안 가지 못해서 청화절(淸和節) 재생백(哉生魄)후 1일에 선사(仙槎) 장운거(將雲擧)와 하남(河南) 정중립(鄭中立)과 유람하기로 약속하였으나 장운거는 병 때문에 사양하여 정중립과 떠나기로 하였다. 이덕홍은 본관이 영천(永川)이고, 자는 굉중(宏仲)이다. 충량(忠樑)의 넷째 아들이며 퇴계 이황(李滉)의 문인이다. 30세에 오계정사(迃溪精舍)를 짓고 위기지학에 힘썼다. 이황의 명으로 선기옥형(璇璣玉衡)을 제작하였으며 스승 임종시 명으로 서적을 관리하였다. 학행으로 천거되어 집경전 참봉과 종묘직장을 역임하였다. 종묘방화사건으로 평은역에 유배되었다가 임진년 사옹서직장으로 복직되었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세자익위사부솔로 임명되어 피난 중, 노모가 걱정되어 고향으로 돌아왔다가 다시 서행길에 나서 용강과 의주 행재소에서 세자와 선조에게 왜적방어책을 상소하였다. 영춘현감을 역임할 때 많은 백성을 기근에서 구출하기도 하였다. 모친상에 시묘살이를 하던 중에 졸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