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감람나무 가지들의 역할
본 문 / 로마서 11장 11∼18절 (로마서 51)
주 제 / 이스라엘의 실족이 이방인 구원의 계기가 되고, 이방인 구원은 이스라엘의 자극제가 된다.
작성일 / 2026년 5월 17일. (№ 26-20)
11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그들이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 나게 함이니라. / 12 그들의 넘어짐이 세상의 풍성함이 되며 그들의 실패가 이방인의 풍성함이 되거든 하물며 그들의 충만함이리요. / 13 내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라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 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 / 14 이는 혹 내 골육을 아무쪼록 시기하게 하여 그들 중에서 얼마를 구원하려 함이라 / 15 그들을 버리는 것이 세상의 화목이 되거든 그 받아들이는 것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리요 / 16 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 가루가 거룩한즉 떡덩이도 그러하고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니라. / 17 또한, 가지 얼마가 꺾이었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가 되었은즉 / 18 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랑하지 말라 자랑할지라도 네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니라. (롬 11:11∼18)
Ⅰ 남은 자를 통한 이스라엘 구원 (롬 11:1∼10)
로마서 9∼11장은 이스라엘을 샘플로 제시하면서 ‘하나님의 미리 정하심’을 가르친다. 로마서 9장은 ‘이스라엘 구원 문제’에 대한 가르침이라고 했다. 믿음을 의지하지 않고 행위를 의지하는 것이 문제라는 가르침이다. 로마서 10장은 ‘이스라엘의 불순종’에 대한 가르침이라고 했다. 복음에 순종해야 의롭다하심을 얻을 것인데, 이스라엘은 오히려 복음을 배척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로마서 11장은 ‘하나님의 이스라엘 구원 계획’에 대한 가르침이라고 했다. 이스라엘은 믿음 대신 행위를 의지하고, 복음에 불순종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미 ‘이스라엘 구원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는 가르침이다. 로마서 11장 1∼6절은 ‘선택받은 남은 자’를 통해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것임을 가르쳤다. 로마서 11장 7∼10절은 이스라엘이 선택에서 제외된 이유는 마음이 굳어졌기 때문이라고 가르쳤다. 오늘은 ‘이스라엘 구원 계획’에 대한 세 번째 가르침이다.
Ⅱ 이방인 구원과 이스라엘 구원의 상호작용 (롬 11:11)
로마서 11장 11절을 보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그들이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 나게 함이니라.”(롬 11:11).
“… 그들이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냐? …” “이스라엘의 실족이 하나님과의 완전한 단절을 불러왔느냐?”라는 질문이다. 바울은 “결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이스라엘이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복음을 거부하고, 교회를 박해하고, 성도들을 죽인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관계가 완전히 단절된 것은 아니라고 가르친다.
그러면, ‘이스라엘의 실족’은 구속사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졌을까? “… 그들이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 ‘이스라엘의 실족’은 ‘이방인 구원의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실족’을 ‘이스라엘과의 단절의 계기’로 삼지 않으시고, ‘이방인 구원의 계기’로 삼으셨다는 가르침이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오직 이스라엘만이 하나님을 알고, 메시아사상을 가지고 있었을 때부터 하나님은 이미 이방인 구원을 계획하고 계셨다는 뜻이다. 이방인 구원을 계획하고 계셨는데, 이스라엘이 실족하니, 이를 계기로 이방인 구원에 집중하셨다는 뜻이다. 사도행전 8장 1절을 보라. “사울은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행 8:1). 스데반이 순교하자 예루살렘 성도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고 한다. 이스라엘은 복음을 미워하고, 교회를 박해하고, 성도들을 죽였다. 크게 실족한 상태이다. 그러자 하나님은 이 사건을 ‘이스라엘과의 단절의 계기’로 삼지 않으시고, ‘이방인 구원의 계기’로 삼으셨다는 이야기이다. 하나님은 모든 것이 합력하게 선을 이루게 하신다(롬 8:28).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실족’을 ‘이방인 구원의 계기’로 삼으셨다. 그러면 ‘이방인 구원’은 어떤 계기로 삼으셨을까? “… 이스라엘로 시기 나게 함이니라.” 하나님은 ‘이방인 구원’을 ‘이스라엘이 질투하는 계기’로 삼으셨다. 사도행전 13장 44∼48절을 보니, 회심한 바울이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십자가와 부활 즉 구원의 복음을 가르친다(행 13:14). 그러자 수많은 이방인들이 그 복음을 믿었다. 창조주 하나님을 부르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품에 안겼다. 구원의 확신을 얻고 기쁨이 충만해졌다. 그러자 이를 본 이스라엘 사람들이 시기한다(행 13:45). 자기들이 입기 싫다고 버린 옷인데, 이방인들이 그 옷을 주워 입으니 그렇게 잘 어울릴 수가 없다. 그렇게 행복해 보일 수가 없다. 그 모습을 보니, 시기가 나고 질투가 난다. 하나님이 의도하신 대로 된 것이다.
Ⅲ 하물며 그들의 충만함이리요. (롬 15:12∼15)
그런데, 하나님은 이스라엘 배 아프라고 이방인을 구원하신 것은 아니다.
로마서 11장 12절을 보라. “그들의 넘어짐이 세상의 풍성함이 되며 그들의 실패가 이방인의 풍성함이 되거든 하물며 그들의 충만함이리요.”(롬 11:12) 이스라엘의 넘어짐과 실패가 이방인이 구원받는 계기가 되었다면, 이스라엘이 구원의 복음에 순종하여서 그리스도의 품에 안겼을 때에는 그야말로 온 세상이 복음에 순종하여서 구원받는 역사가 나타나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로마서 11장 15절을 보라. “그들을 버리는 것이 세상의 화목이 되거든 그 받아들이는 것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리요”(롬 11:15). 하나님께서 마음이 완악한 이스라엘을 선택에서 제외시키심으로써 이방인들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는데, 만약 이스라엘이 마음을 열고 복음에 순종하고 그래서 하나님이 그들을 받아주신다면 그야말로 죽었던 모든 영혼들이 되살아나는 ‘온 우주의 부활’이 실현되지 않겠냐고 말한다.
이와 같은 바울의 가르침을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이 있다. ‘이방인 구원’은 이스라엘 배 아프라고 하신 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방인 구원’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시기하여서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오게 하는 하나님의 전략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실족’을 ‘이방인 구원의 계기’로 삼으셨고, ‘이방인 구원’을 ‘이스라엘 회심의 계기’로 삼으셨다.
사도 바울은 이와 같은 하나님의 마음을 잘 이해했다. 그래서 자신도 그 마음으로 사역했다. 로마서 11장 13∼14절을 보라. “내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라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 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 이는 혹 내 골육을 아무쪼록 시기하게 하여 그들 중에서 얼마를 구원하려 함이라”(롬 11:13∼14). 바울은 하나님과 같은 마음을 품고, 하나님과 같은 생각으로 사역한 사람이다. 이방인 전도에 전념하였지만 이스라엘 구원을 포기한 적이 없다. 이방인들이 복음에 순종하여 구원 받고, 구원의 즐거움으로 산다면, 이를 본 이스라엘이 시기하여서 복음에 순종하는 길로 돌아오게 될 것이라고 기대하면서 사역했다.
Ⅳ 돌감람나무 가지들의 역할 (롬 11:16∼18)
로마서 11장 16절을 보라. “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 가루가 거룩한즉 떡덩이도 그러하고,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니라.”(롬 11:16) 하나님께 드리는 ‘떡’이 거룩한 이유는 그 떡을 만든 ‘처음 익은 곡식가루’가 거룩하기 때문이고, ‘나뭇가지’가 거룩한 이유는 ‘나무뿌리’가 거룩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무엇을 말하려는 것일까? 로마서 11장 17절을 보라. “또한, 가지 얼마가 꺾이었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가 되었은즉”(롬 11:17). 바울은 ‘구원의 복음’을 ‘참감람나무 뿌리’에 비유한다. 본래 그 뿌리에는 ‘참감람나무 가지들’이 자라고 있었다. 그런데 뿌리의 진액을 거부하는 가지들이 있어 잘라내고, 그 자리에 ‘돌감람나무 가지들을’ 접붙였다. 남아 있는 ‘참감람나무 가지들’과 접붙임 받은 ‘돌감람나무 가지들’이 같은 뿌리가 주는 진액으로 살게 된 것이다.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과 ‘이방인 성도들’은 구원의 복음으로 거룩한 생명을 누리게 되었다는 가르침이다.
로마서 11장 18절을 보라. “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랑하지 말라 자랑할지라도 네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니라.”(롬 11:18). 접붙임 받은 ‘이방인 성도들’은 잘려나가 ‘이스라엘’ 앞에서 우쭐대지 말라고 한다. 왜일까? 자기가 잘나서 거룩한 생명을 얻은 것이 아니라, 뿌리가 주는 진액으로 즉 그리스도의 은혜로써 거룩한 생명을 얻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구원 받은 이방인 성도들이 해야 할 일은 ‘자랑’이 아니다. ‘구원의 즐거움’을 이스라엘에 보여주는 일이다. 그래야 시기하여 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전도가 그래야 한다. 천국을 얻은 그리스도인들은 은혜로 얻은 천국이니 자랑할 이유가 없다. 다만 천국 얻는 자의 즐거움이 일상에서 배어나게 해야 한다. 그래야 구원을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찾아온다.
<기도>
하나님 우리 영광교회 성도들, ‘구원의 즐거움’이 일상에서 배어나게 하소서. 그리고 우리의 이웃들은 ‘구원의 즐거움’을 부러워하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