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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성폭력상담소 25주년 기념 허핑턴포스트코리아 공동기획 | 우리가 성폭력에 대해 알아야 할 8가지
2) 성폭력 피해자의 삶은 영화와 다르다
글 | 강지희 (성폭력피해자, 그리고 몇 가지 단점과 장점을 지닌 평범한 사람)
저는 성폭력피해자입니다. 성폭력피해자라고 소개할 때 독자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세요?
적어도 저는 예전에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성폭력피해자' 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제 머릿속에서는 어느 스릴러영화에서 피해자들의 도망가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인적 없는 드문 길, 뒤따라오는 신원미상의 싸이코패스에게서 필사적으로 도망치느라 찢어지고 벗겨진 옷매무새를 정리하지 못한 채 맨발로 뛰어다니는 피해자. 사건 이후, 정신적 신체적 충격으로 온전한 사람으로서의 삶을 평생 살지 못하는 피해자.
제 마음 바닥 깊이 있는 성폭력피해자에 대한 고정관념은 그랬습니다.
어떤 단어, 어떤 사람에 대해 고정관념을 가진다는 것은 참 무서운 일입니다. 자신이 생각했던 관념의 틀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으니까요. 제가 가지고 있던 성폭력피해자에 대한 고정관념이 주변사람들을 통해 그대로 돌아올 때, 전 그 무서움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전 남자친구를 사칭한 사람에게 1년간 협박, 스토킹 및 음란전화 피해를 입었습니다. 경찰 조사 결과 범인은 단둘이 본 적도 연락처를 교환한 적도 없는, 절친한 지인의 남자친구였습니다.
감당할 수 없는 일을 접했을 때 우리의 첫 반응은 무엇일까요? 제 피해를 알게 되었을 때, 대다수 사람들의 첫 반응은 경직과 침묵 그리고 회피였습니다. 그 후에 '힘드셨겠네요. 그렇게 안 보여서 몰랐어요, 미안해요' 같은, 위로도 사과도 못하는 어색한 대화가 오갑니다. 저는 어색한 사람의 장례식에 온 것처럼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표정으로 '어떻게 보여야 하는지' 고민하게 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제가 웃으면 구체적으로 어떤 피해를 당했기에 저럴까 호기심 어린 눈으로 물어보고 피해에 따른 충격을 예측합니다. 슬픈 표정을 지으면 상대방은 온갖 엄청난 범죄를 상상하며 그 후로 저와의 만남을 회피하게 됩니다. 둘 다 달가운 상황은 아닙니다.
가끔은 프로파일러가 된 것처럼 상세히 제 사건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평가하는 분들도 만나게 됩니다. '(내가 생각한 것보다) 별 거 아니네'라고 쉽게 치부해버리거나, 제가 그렇게 '(내가 생각한, 피해를 당한 사람처럼) 보이지 않아서' 그리고 가해자가 '(내가 아는) 그 사람이 그럴 리가 없는데'라고 생각해서 놀랍니다.
왜 '내가 생각한 것보다'라는 생각을 하게 될까요? 앞선 제 머릿속 이미지가 그 분들에게도 들어있지는 않았을까요?
우리는 성폭력피해라고 하면 흔히 강간만을 생각합니다. 가해자는 일면식도 없는 싸이코패스 수준의 모르는 사람이고, 피해자는 사건 이후로 정신적 붕괴를 표출할 것이라는 생각도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이 생각의 틀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사람들은 엄청난 의구심을 품게 됩니다. 그 생각은 때론 '별로 심적 타격이 없는 것을 보니 꽃뱀은 아닐까?'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 리 없잖아?' '그러게 사람을 잘 골라 만나야지' 등으로 발전하게 되기도 합니다.
조금만 바꾸어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어떤 사건에 직면하게 되었을 때, 우리는 사람마다 다 다른 반응을 보입니다. 아주 작은 예를 들자면, 공포영화를 볼 때 어떤 사람은 희열을 느끼며 화면을 음미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무미건조하게 시청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눈과 귀를 막기도 하며, 어떤 사람은 아예 공포영화를 보려고 시도하지 않습니다. 사람마다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과 느끼는 감정이 다릅니다.
그런데 왜 유독 성폭력피해자에게는 그 감정과 표현을 정하여 가치판단을 하는 걸까요? 그 '내가 생각했던 거랑 다른데?'로 시작되는 질문들로 인해 피해자들은 어떤 생각과 행동을 하게 될까요? 이런 가치판단들이 성폭력 사건해결에 도움이 될까요?
적에도 저 개인에겐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저의 필사적인 저항과 노력들은 '내가 생각한 피해자의 반응과 달라',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 라는 의견들 속에 잠식되고, 피해 해결보다 저를 재단하는 것이 더 큰 화제였습니다.
요즘 성폭력 기사의 댓글들을 보면서 저는 많은 상처를 받습니다. 오랜 고민 끝에 피해를 드러내고 법적대응을 하기로 한 피해자를 두고 '왜 이제야 고소하는 거지? 피해를 당했으면 바로 고소했어야지. 꽃뱀 아니야?' 등으로 재단하는 댓글들. 그 댓글들을 읽을 피해자의 마음이 공감되고 아파왔습니다. 더 나아가 '내 주변만이 아니라 사회구성원 모두가 나 또한 이렇게 고정관념으로 바라보겠구나' 하는 생각이 더 구체적으로 다가옵니다.
특히 최근 연예기획사 대표에 의한 성폭력 사건의 판례처럼 피해자가 '가해자의 보복이 두려워 가해자의 지시대로 한, 애정 있어 보이는 행동'들을 '사랑의 표현'으로 쉽게 판단해버리는 법을 보면서, 사회가 성폭력피해자에게 가지고 있는 잣대가 굉장히 엄격하고 고정되어 있다는 제 생각은 더 굳어졌습니다.
피해자가 성폭력피해자에 대한 고정관념으로 위축된다면 사건에 대해 제대로 말할 수 없게 되고 사건해결은 멀어집니다. 성폭력피해자가 피해자의 관점에서 사건을 이야기하는 것은 사건해결의 주체가 되는 과정이고, 이를 통해 공감과 지지를 받으며 피해를 치유하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성폭력피해자에게는 피해사실을 인정받는 만큼 피해 이후 한 인격체로서 존중받고 자신의 삶을 유지하는 것 또한 중요한 일입니다. 피해를 받았다고 해서 내 삶을 포기할 수 없으니까요.
저의 경우도 피해만큼 저를 힘들게 했던 건 사건을 대하는 주변사람들의 태도였습니다. 그러나 침묵하지 않고 제 피해 사실을 적극적으로 말하고 사건해결의 주체로 노력하게 되면서, 공감하는 다른 피해자들을 만나 지지 받게 되면서 오늘 이 글을 쓸 힘을 얻었습니다.
영화는 결말이 있지만, 성폭력피해자의 영화는 아직 결말이 지어지지 않았습니다. 성폭력피해자들이 다시 삶을 이어갈 수 있도록, 조금 더 유연하고 다양한 관점으로 성폭력피해자를 바라봐 주시기를 진심으로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어디선가, 재단되기 두려워 침묵하고 힘겨운 삶을 보내는 다른 피해자 분들께 이 글이 작은 응원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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