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길 일시: 2017년 11월 9일(목) 장소: 홍콩반점 참석(9명): 최광훈(회장), 고광호, 권정덕, 김종준, 박정길, 임유홍, 정인건, 최상대, 최흥표
11월은 만추의 여정이 가득한 달이다. 억새들의 쓸쓸한 연가는 한 편의 시를 담은 바람이 되어 깊은 울림을 전해주고 억새꽃의 순수한 은빛 몸짓은 가을의 진한 정한을 더 느끼게 한다. 만추는 억새처럼 심연의 고독에 흔들리면서, 내면에 자금우의 빨간 열매처럼 흔들리지 않는 열정을 품고 있다.
November, 달이 바뀌면서 하루가 다르게 가을이 한층 더 깊어지고 있다. 겨울에 버틸 수 있는 것만 남고, 나머지는 모두 사라지게 될 것이다. 느티나무, 은행나무들은 급하게 잎을 떨어뜨리고 벚나무, 플라타너스들은 비교적 천천히 잎을 떨어뜨리고 있다. 입동이 지나가도 단풍조차 들지 않은 완고한 나무들도 있다. 보리수나무, 모과나무, 버드나무...
' 좋은 친구란 너와 나를 보고 하는 말이다. ' 화엄경에 나오는 하늘그물, 인드라망이란 서로를 그물처럼 엮으면서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존재의미를 갖는다는 철학이다. 합정구락부는 씨줄과 날줄로 잘 짜여진 그물망이다. 나는 회원들을 자주 만나지 못하는 상황이지만, 대부분 필연적으로 가깝다. 팀 닥터인 최상대 원장은 중학교 2학년 시절에 충래와 함께 단짝이 되었다. 반백년이 한참 지난 후에도, 그 시절의 소중한 추억을 공유하고 있는 친구가 곁에 있다는 건 행운이고 기적같은 일이다. 이영희는 강원도 속초를 비롯한 전국 명소로 여행 다닐때, 동행하였던 莫逆之友의 사이다.
강화도에서 종준, 광훈, 영희, 유홍이와 함께 갯벌과 철새를 바라보며, 자연산 회를 즐기곤 하였다. 광훈 건물 ' 이상 '의 옥상 정원에 모두 모여 예쁜 꽃들을 감상하고, 팝송을 들으며 맥주와 차를 마시던 때가 그립다. 광훈아, 마실나와 맥주 한 잔 마시자. 고광호와 광훈이의 인연은 동신초등학교 때부터 시작되었다. 흥표와 영희는 노상 티격태격하지만 그들의 우정이 얼마나 돈독한지는 말하지 않아도 안다. 광훈, 유홍, 인건 3명은 현재 북악회 회원이기도 하다. 유홍이와 인건이는 내가 북악회에 참여하고 있었을 때, 회식 후 3차까지 함께 어울리는 패거리였는데, 일택이의 혜안으로 그 선한 영혼들을 이 곳으로 스카웃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종준, 광훈, 흥표, 유홍, 덕영이는 당구를 좋아하는 멤버들이다. 회원들이 일택이를 병문안하기 위해 울산으로 갔을 때, 그 곳에서 정덕이의 우정어린 환대를 받았다고 한다. 덕영이가 강남삼성병원 입원실에서 문병 온 친구들에게 자기나름의 코멘트를 하였다. ' 합정구락부 회원들은 진국이야. ' 회원 상호간 내가 모르는 진한 인연들이 더 많이 있을 것이다. ' 진정한 우정에는 상대에 대한 존중이 기본으로 깔려 있어야 한다. '
회식장소에 일찍 도착하여, 먼저 당구장을 찾았다. 종준, 광훈, 정덕, 흥표는 3시간 전부터 당구치고 있다고 하며, 광호는 관전을 하고 있었다. 시간이 거슬러 흐른듯 그들의 靑心은 그대로이다. ' 때로는 스무살 청년보다 일흔살 노인이 더 청춘일 수도 있네. ' ' 잘 쳤다. ' 공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는데, 누군가 고마움을 표시하는 말을 한다. 너의 실수가 나에게 기회가 될 수도 있으니, 그런 말도 나올 법하다. 당구공과 일체가 되려는 진지한 순간이 아름답다. 건배는 북경 고량주(도수 50도)로 하였다. 오늘의 주역은 오래간만에 참석한 광호가 맡았다. 역시 교수답게 두루 하는 이야기가 진지하고, 해박한 지식과 전문성이 돋보인다. 정덕이의 투병중인 부인에 대한 순애보가, 오헨리의 마지막 잎새만큼 애절한 감동을 준다. 상대는 부인의 상태를 충분히 이해하고, 상황에 따른 완벽한 가이드를 해준다. 외면당한 고량주병들은 정덕이가 있는 테이블 위에 애주가를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다. 흥표는 나날이 계속되는 음주에, 컨디션의 난조를 보이며 자제하는 모습이다. 정덕이 혼자 시동을 걸고 있는데, 마침 유홍이가 늦게 들어오면서, 한편에서 술판이 벌어지게 되었다. 유홍이는 첫 잔을 원샷으로 마신다. 결국 인건이도 합세한다. ' 이과두주(56도)맛도 좀 보아야지 ' 그들 세 명은 酒神의 유혹에 반색하였으나 비주류의 기세에 눌려 고량주 네 병, 이과두주 두 병에 만족해야만 했다. 회식 후 일부는 카페를 찾는 것 같았다. 상대가 변함없이 상암동 집까지 태워주었다.
' 어느 산골에서 산책을 즐기던 한 남자가 짙은 안개에 갇혀 길을 잃었다. 앞에 있는 바위를 더듬으며 겨우 나아가는데, 갑자기 안개가 걷히면서 시야가 확 트였다. 남자는 자기가 벼랑 끝에 서 있다는걸 깨달았다. ' - 올라프 스태플든 나는 오년 전에 암선고를 받았다. 그것도 암이 다른 곳으로 전이된 상태였다. 거역할 수 병명에 그 당시부터 마음을 비웠다. 나에게 인생은 단 하루다. 병든 노년의 일과는 주식거래, 영화, 산책, 인터넷(신문, 음악 등)으로 짜여있으며 항상 바쁘게 지낸다. 주식거래는 주식의 생동감이 흥미롭고, 다른 사람보다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에 선택하게 되었다. Game처럼 즐기면서 그 결과에는 그리 연연하지 않는다. ( 나는 1990년 전후 주식발행 시장이 최고의 전성기였을 때 증권회사 공모심사부장을 하였다. ) 주식이 매번 나를 속일지라도,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거니까 행복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유럽의 전설적인 투자자인 앙드레 코스톨라니의 ' 80세 경험을 황금과도 안 바꾼다. ' 라는 말을 특히 좋아한다. 영화를 일년에 오백~육백편정도 보고 있다. 산책과 운동( 야외운동기구 8종류 )은 일상이다. 오후에 한 시간 삼십분 정도하며, 이때 초목들을 만난다. 나무들은 언제나 생명을 주는 빛 자체와 마주하고 있다.
찬 서리가 내린 후에도 작은 꽃을 피우는, 가을의 끝자락을 장식하는 들꽃들이 있다. 국화과에 속하는 민들레, 사데풀, 씀바귀풀(속)들의 노란 꽃들. 그리고 노란 꽃잎이 넉장인, 철지난 달맞이꽃(야래향, 석양의 벚꽃)과 애기똥풀들이 참으로 적미하고 꿋꿋하다. 계란꽃이라고도 불리우는 개망초(꽃잎이 실처럼 가늘다)와 미국쑥부쟁이는 떼를 지어피고, 꽃모양새도 비슷하다. 그런데 그 작은 흰꽃들이 숨바꼭질하듯 관목사이에 피어있으니 헷갈리지 않겠는가?
산국은 양지에 주로 서식하며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지만, 감국은 반그늘에서도 잘 자라는데 귀하다 보니 보기가 쉽지 않다. 우연히 가까운 곳에서 감국무리를 발견하였다. 산국과 감국은 전체모습이 닮은 꽃이다. 다만 감국은 산국보다 키가 작지만, 꽃이 크며 잎이 두텁고 잎자루가 길다. 들국화의 대표인 산국과 감국은 겨울어귀가 건너보이는 삭연한 길목에서도 절개를 지키는 군자의 모습이다. 조락하는 나무들의 가장자리를 노랗게 물들이며, 가까이 가면 그 향기가 은은하다.
자투리 화단에 금송화가 여름부터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피고 있다. 황금색이 섞인 붉은색의 화려한 꽃이 이색적이고 매혹적이다.
올해 과일농사가 예년에 비해 잘 된 것 같다. 매실나무, 살구나무, 보리수나무도 그러하였고, 모과나무, 감나무도 너무 큰 과일들이 달려 몸살을 앓고 있는듯하다. 모과나무 예닐곱그루에 천연방향제인 노란 모과 70여개 달려 있고, 키가 낮은 감나무 한 그루에 가을의 꽃인 주황색감 11개가 달려 있다. 성숙한 열매들은, 그 결실을 수확할 때가 되었음을 색깔로 알려준다.
애틋한 가을빛이 정감있게 다가온다. 단풍의 마지막 남은 불꽃 그리고 낙엽의 슬픈 송가. 靜中有動의 고요한 순간에 스스로 마음을 返照한다. 回光返照 빛을 돌이켜 거꾸로 비추다. 내 마음속 지혜의 밝은 빛으로 내 마음속을 비추어본다.
갈잎은 시간이 더디가길 바라는 것처럼 시간차를 두고 잎을 물들이면서 점점 더 눈부신 가을서정을 보여준다. 한 그루의 단풍나무가 물들어가는 도중에, 초록색 잎, 노란색 잎, 주홍색 잎들이 순간 어우러지며 조화로운 배색을 만들어내고 있다. 느티나무의 경우, 마치 마술처럼 노란색 느티나무, 주홍색 느티나무 등으로 각각 다른 색 단풍나무가 되는 경이로움을 보여준다. 높이를 가늠할 수 없을만큼 곧게 솟은 메타세콰이어의 환상적인 주황색 단풍이 이국적인 정취를 느끼게 한다. 삶의 모든 순간을 사랑하라. ' 인간은 나날을 기억하지 않는다. 순간을 기억할 뿐이다. ' - 체사레 파베세 We do not remember days, we remember moments.
빨간색, 주황색 단풍: 화살나무, 단풍나무, 중국단풍, 복자기, 담쟁이덩굴, 벚나무, 산딸나무, 메타세콰이어(낙엽침엽수) 노란색, 갈색 단풍: 은행나무, 자작나무, 사시나무, 박태기나무, 팥배나무, 상수리나무, 대왕참나무
나무들이 사뭇 쌀쌀해진 날씨에 처연해 보인다. 소슬바람에 단풍이 우루루 떨어지고 낙엽들은 메마른 땅 위를 덮는다. 이 나무, 저 나무, 이제 남은 잎마저 떨어져 나목들로 변하고, 잎진 나무들은 묵묵히 동안거(음력 시월보름~이듬해 정월보름)에 들어간다.
The falling Leaves drift by window. The Autumn Leaves of red and gold. 떨어지는 낙엽들이 창문곁으로 스쳐 지나갑니다. 적색과 황금색으로 물든 가을낙엽들.
땅 위에 떨어진 낙엽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같은 나뭇잎일지라도 다른 색감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 낙엽의 고결한 영혼은 찰나의 순간에도, 형언할 수 없는 빛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한 겨울 추위를 견디며 더러는 늦은 봄까지 달려있는 빨갛고 작은 열매들. 겨우내 그 열매들은 새들의 먹이가 되어준다. 자연속 식물과 동물의 공존지혜는 신비스런 자연의 섭리다.
낙엽수열매 : 산수유, 멀구슬나무, 꽃사과, 산사나무, 팥배나무, 가막살나무, 찔레나무, 매자나무, 좀작살나무(보라색), 맥문동(검은 자주색) 상록수열매 : 사철나무, 주목, 자금우
멀구슬나무, 꽃사과, 팥배나무의 열매들이 무리지어 성좌를 이루고 있다. 주목은 '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 ' 이라는 말처럼 영원을 상징하는 나무다. 원추형 주목의 진한 녹색 잎과 붉은 열매가 동화속 크리스마스 트리를 연상케 한다.
紫金牛 열매는 홍보석처럼 빛나며 붉은 색으로 익는다. 다음해 꽃이 필 때도 달려 있다. 紫金은 불상에서 나오는 신비한 빛이며, 紫金牛는 ' 붉은 색깔의 황금소 ' 란 뜻이다. 자금우과 열매(산호수, 백량금)가 이웃돕기 운동을 의미하는 ' 사랑의 열매 ' 의 원형이라고 한다. 사실 사랑의 열매 형태는 야생에 자생하는 산열매를 형상화한 것이라고 한다. 호랑가시나무, 백당나무, 앵두, 먼나무, 팥배나무, 산수유 등의 열매도 산열매와 비슷하다.
11월 빛이 내뿜는 오묘한 아우라가 깊은 묵상으로 이끈다. 억새의 군무, 들국화의 향기, 중국단풍, 복자기 메타세콰이어의 단풍, 모과나무, 꽃사과, 멀구슬나무의 열매 그리고 금송화, 사데풀 등이 너무 고맙고 또 고맙다. 그들은 내가 원하던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을 주었다.
' 자연은 바로 나를 통해서, 자연의 아름다움과 성스러움을 알게 되는 것이다. ' - 에코하르트 톨레
전나무는 이듬해 죽음을 예상하거나 열악한 환경에 처하면 유난히 화려한 꽃을 피운다. 임학용어로 앙스트블뤼테라고 한다. 앙스트블뤼테, 극한 고통과 고난을 견뎌내고 불안 속에서 피어나는 꽃, 그것이 바로 절정의 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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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 感動 感銘 입니다 ! 康寧하시기를. . .
정길아!
참 잘 썼구나.
당신은 감수성이 뛰어나서 글쓰는 재주가
뛰어난 것을 전에서부터 간파했다.
꾸준히 정진하면 좋은 작품을남길
수 있을 것 같아.
정말 문외한인 내가 읽어봐도 참 잘썼다고 느껴진다. 작가의 능력을 가진것 같다. 난 회원은 아니지만 동경만 하고 있다. 건강히 잘 지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