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포 청은 푸를 청(靑). 바다가 푸르고 바다에 물든 갯바위가 푸르다. 들여다보진 않았지만 그 속은 왜 아니 푸를 것인가. 보이는 것도 푸르고 보이지 않는 것도 푸른 바다, 청사포. 새도 물들어 청사포에서는 눈동자 푸른 갈매기가 푸른 울음을 운다.
방파제 선착장에 정박한 배도 하나같이 푸르다. 배는 통발이니 자망이니 하는 고만고만한 연안어선과 낚싯배. 하나같이 푸르게 도색한 배들이 물결 따라 바람 따라 한쪽으로 쏠려간다. 쏠려가다간 배와 배 난간을 감은 밧줄이 팽팽해지면 일제히 반대쪽으로 쏠려간다.
두터운 구름장을 이고도
전혀 휘지 않는 수평선
수평선을 눌러대지 않는
구름이 대단하고
구름을 이고도 휘지 않는
수평선이 대단하다
같은 쪽으로 쏠려가는 배들. 쏠려가는 방향이 한 방향이기에 부딪치지 않고 부딪쳐도 충격이 덜하다. 정박한 배에게서 배우는 처세술이다. 내년이나 내후년 어느 해에는 저 처세술을 본받으리라. 수첩 앞장에 적어두고 잊을 만하면 들춰보리라.
정초 무렵이면 각오랄지 목표를 세우곤 한다. 신묘년 올해 각오는 '적게 말하고 늦게 말하기.' 대화 상대에게 말할 기회를 더 주고 상대가 말한 다음에 말하자는 다짐이다. 그럴싸하지만 지켜질지는 글쎄다. 새해 새 각오는 언제나 작심삼일이었으니. 말을 나누다 보면 내가 더 말이 많아지고 먼저 말하곤 했으니.
수평선은 희한하다. 반듯하면서 완만하다. 세상 잣대론 긋지 못할 선이다. 직선인 것 같으면서 완만한 곡선이고 곡선인 것 같으면서 반듯한 직선을 세상 어느 잣대로 긋는다 말인가. 수평선 부근에 구름장이 두텁다. 두꺼운 구름장을 이고도 전혀 휘지 않는 수평선. 수평선을 눌러대지 않는 구름이 대단하고 구름을 이고도 휘지 않는 수평선이 대단하다.
방파제 등대는 흰 등대 빨간 등대. 생긴 게 위가 뾰족한 종탑 같기도 하고 불을 붙인 촛불 같기도 하다. 등대가 무적을 울리면 땡그랑땡그랑 종소리가 나리라. 등불을 밝히면 촛농이 뚝뚝 떨어지리라. 둘 다 희거나 둘 다 빨갛지 않는 건 등대 색깔을 보고 배가 나가고 들어오기 때문. 나가는 배는 흰 등대를 보고 나가고 들어오는 배는 빨간 등대를 보고 들어온다. 배도 자동차와 마찬가지로 우측통행을 해 육지에서 보면 흰 등대는 우측에 있고 빨간 등대는 좌측에 있다.
'자기야, 군생활 힘들지? 지금은 혼자 오지만 2년 뒤에 같이 오자. 사랑해요.' 등대 벽면에는 두 줄 세 줄 낙서가 가득하다. 시 삼백이 따로 없다. 연인끼리 친구끼리 하트 모양 언약이고, 가족이 잘되기를 바라는 소망이고, 홀로 온 사람 내밀한 독백이다. 애인을 군대 보내고 여기 등대에다 속마음을 토로한 사람. 애인이 남 같지 않고 애인을 보낸 사람이 남 같지 않다. 애인이여! 애인을 보낸 사람이여! 오래 전에 겪은 일이지만 그리 오래 된 일 같지 않다.
방파제에 달라붙은 낚시꾼은 손놀림이 바쁘다. 입질이 잦아 연방 낚싯대를 채고 연방 미끼를 갈아 끼운다. 세 번 네 번 헛챔질을 하고서야 고기가 올라온다. '학꽁치'다. 어른 손바닥 길이만 한 물고기가 은빛 비늘을 파닥대면서 끌려온다. 옆자리 낚시꾼도 같은 고기를 낚아낸다. 미끼는 크릴새우. 새우를 가운데 두고 낚시꾼도 학꽁치도 방파제에 달라붙어 있다. 어떤 고기가 잡히나, 구경꾼인 나도 방파제에 달라붙어 있다.
낚시에 끌려 다닌 적이 있다. 낚시가 나를 끌고 다닌 적이 있다. 삼십대 초반 무렵이다. 마라도에서 한겨울 보름간 두 차례, 울릉도에서 한 주일, 그리고 거제도 무슨 섬, 전라도 무슨무슨 섬. 조류가 세차게 흐르면서 짐승 울부짖는 소리를 내는 겨울밤. 무슨 사연으로 길게는 보름을 짧게는 이삼일을 섬에서 혼자 지냈던가. 금방이라도 짐승이 달려들 것 같아 무섭고 그러면서 외로웠던 그 겨울밤 무슨 심보로 나를 몰아세웠던가.
그럴 만한 사연과 심보가 당시는 분명 선연했을 터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한창 일할 나이 그 연배가 치러야 하는 보편적 생활양식에서 그토록 벗어나진 않았으리라. 잡으나 안 잡으나 그게 그거인 고기를 찾아 섬을 떠돌지는 않았으리라. 이제는 아득하게 지나간 일. 기억도 까마득해서 기억나는 것보다 기억나지 않는 게 더 많다. 언젠가는 그 사연 그 심보를 아무렇지 않게 말할 수 있으리라. 내 생애에 그때도 좋았노라고 웃으면서 말할 수 있으리라.
배가 지나가면서 일으킨 파도가 해안까지 밀려온다. 어떤 파도는 해안에 널브러진 갯바위를 넘쳐서 오고 어떤 파도는 갯바위를 비켜서 온다. 넘쳐서 오는 파도나 비켜서 오는 파도나 밀려오는 기세만큼은 등등하다. 파도가 성가신지 수면에 옹그린 갈매기, 푸드덕 자리를 떠 옴팡진 갯바위에 내려앉는다. 한 마리가 뜨자 삼삼오오 무리지은 갈매기도 덩달아 수면을 뜨면서 바다는 빈 바다가 된다. 기세등등하던 파도만 무색해져 해안선에 닿지도 못하고 풀이 죽는다.
해안선에 서 있어 보면 알지
해안선은 바닷물이 밀려와서 생기는 게 아니라
바닷물이 밀려가면서 생긴다는 걸
밀려오는 힘으로 생기는 게 아니라
힘이 빠져 밀려가면서 생긴다는 걸
(중략)
사람도 저마다 해안선을 품고 살지
안 좋은 일 꾸역꾸역 밀려와
그만 맥을 놓으려는 순간
버텨낼 만큼 끌어당겨 손을 탁 놓는
통고무줄 같은 해안선
반짝이는 바다로 티잉티잉 퉁겨내는
고래심줄 같은 해안선
저마다 가슴속에 품고 살지
- 동길산 시 '해안선'-
청사포엔 해안을 따라 좀 높거나 나지막한 턱이 있다. 육지와 바다 경계인 셈이다. 나지막한 턱에 올라서서 사진을 찍어대거나 바다를 바라보는 사람들. 나도 올라서서 사람들 틈에 끼인다. 저들 중에는 마음이 무거워서 바다를 찾은 사람이 있으리라. 되는 것 없어 해 놓은 것 없어 딱하고 답답한 심사. 그 심사를 잠시나마 풀어보려고 잠깐이나마 달래보려고 겨울바다를 찾은 사람이 있으리라.
삶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다. 흔히들 겪는 바이다. 잘 풀리다가 한순간에 꼬이는 게 삶이고 늘 꼬이다가 한순간에 풀리는 게 삶이다. 마음이 무거운 그대. 청사포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한참을 서 보시라. 갈매기가 앉은 옴팡진 갯바위처럼 눈높이를 바꾸면 기댈 언덕이 있으려니. 바닷게가 파 둔 깊숙한 갯벌처럼 생각을 바꾸면 솟아날 구멍이 있으려니. 삶은 고해. 바다의 파도가 밀려오다간 밀려가듯이 고해의 파도 역시 밀려가다간 밀려온다.
살아오면서 나를 힘들게 한 건 무얼까. 열 가지를 추려 본다. 내가 미워한 사람. 상실 내지는 부재. 변명. 빚보증. 속과 겉이 다른 이중인격. 분명하지 않은 발음. 초등학교부터 앓는 중이염. 돈 부족. 술김에 저지른 실수. 마지막으로 지키지 못한 약속. 어떤 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해결된 문제고 어떤 것은 시간이 지나가도 해결되지 않을 문제다. 해결된 문제나 해결되지 않은 문제나 나를 곤두서게 했던 것들이고 곤두서게 하는 것들이다.
열 가지를 끝에서부터 되짚어본다. 나를 힘들게 할 만큼 가치가 있는지 따져서 없다고 여겨지는 건 하나씩 지워나간다. 지키지 못한 약속. 이제 와서 어쩔 텐가. 반면교사로 삼자며 지운다. 술 실수. 역시 반면교사다. 지운다. 돈이야 없다가도 있는 것. 돈 부족도 지운다. 만성이 된 중이염은 덕분에 현역 대신 보충역 판정을 받았으니 탓할 것만은 아니다. 짧은 발음은 나를 상징하는 브랜드가 될지도 모를 일이고 이중인격은 누군들 그러지 않을까. 지우다 보니 지워지지 않는 게 없다. 바다가 배 지나간 자국을 모조리 지우듯 지워지지 않는 게 없다.
"청사포가 기장미역 원산지 아닌교." 청사포 앞바다는 바둑판이다. 미역발을 뜨게 하는 부표가 빈집을 꽉 메운 바둑돌처럼 빼꼭하다. 해운대에서 출발하는 2번 마을버스 종점은 청사포 빨간 등대 방파제. 종점에 해녀 탈의실 겸 쉼터가 있다. 재작년인가 포구기행을 하면서 만난 청사포 토박이 해녀가 했던 말이 탈의실을 보자 새삼 선하다. 징검다리처럼 놓였다 해서 다릿돌이라 불리는 청사포 앞바다 다섯 암초에 달라붙어 자라는 돌미역이 미역 중의 미역이고 기장을 대표하는 미역이란 얘기다. 미역 가공공장 터엔 6층짜리 호텔이 들어섰고 호텔 옆으로 조개구이 장어구이 식당이 즐비하다.
비닐천막을 친 구이집 연통에서 하얀 김이 핀다. 냉기가 서린 손바닥을 대고 녹이면 좋으련만 연통이 내 키보다 훨씬 높다. 보는 것으로 바다 찬바람에 언 몸을 달랜다. 해물 굽는 냄새가 진동한다. 조개는 가리비가 쫀득하고 장어는 껍질부터 구워야 제대로 굽힌다! 조개 생각에 장어 생각에 군침이 돈다. 고양이도 군침이 도는지 구이집으로 살금살금 다가간다. 주황색 얼룩고양이다. 새끼인 듯 같은 색깔 몸집 작은 고양이는 멀찍이 떨어져선 다가가는 고양이 일거수일투족을 놓치지 않는다.
구이집을 빠져나오면 제당이 있다. 제당 바로 뒤에는 삼백 년 된 노송 두 그루가 해로한 부부 같다. 뱃일 나간 지아비를 기다리다 일생을 보낸 여인 전설이 서린 당산이고 망부송이다. 솔가지는 낮고도 높다. 낮은 가지는 손에 닿을 정도로 낮고 높은 가지는 고개를 완전히 젖혀 쳐다보아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낮은 가지도 높은 가지도 한 나무에서 나온 가지.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낮은 가지는 낮아도 높은 가지는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았으면 좋겠다.
오후 다섯 시가 조금 넘은 시간. 등대에 불이 들어온다. 빨간 등대는 빨간 등불이 한 번 켜졌다간 꺼지고 흰 등대는 녹색 등불이 한 번 켜졌다간 꺼진다. 이른바 홍등이고 녹등이다. 어두워지면 등불 빛깔을 보고서 나가는 배는 나가고 들어오는 배는 들어오리라. 내가 지금 선 이 자리. 그리고 오십을 갓 넘긴 이 나이. 나갈 것인가. 들어갈 것인가. 눈길이 홍등으로 가다간 녹등으로 가고 녹등으로 가다간 홍등으로 간다. 속도 모르고 등불은 꺼졌다간 켜지고 꺼졌다간 켜진다.
동 길 산 시인
◇약력=1989년 무크지 '지평' 등단. 시집 '뻐꾸기 트럭' '무화과 한 그루' 외. 산문집 '길에게 묻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