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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성경은 히브리어로 기록되었다. 구약 성경에서 족보 또는 계보라는 단어는 [תֹולְדֹ֧ות (톨레도트), generations]라는 단어이다. [תֹולְדֹ֧ות (톨레도트)]라는 단어는 낳다, 출산하다, 해산하다, 생기게하다(bring forth), (열매를) 맺다, 만들다 등의 뜻을 가진 [ילד (얄라드)]에서 유래되었고, '족보(族譜), 계보(系譜), 가계(家系), 후손(後孫), 출생(出生), 생성(生成), 내력(來歷), 결과(結果), 어떤 사건(事件)이나 사람의 역사(歷史)'를 의미한다. 한글 성경들은 이 톨레도트라는 히브리어 단어를 내력(개역개정-창2:4), 족보, 계보, 약전(개역한글-창37:2), 후예(개역한글-창10:1, 11:10, 11:27, 25:12, 25:19), 대략(개역한글-창2:4), 순서(공동번역-창2:4), 세대, 자손, 사적, 일(표준새번역-창2:4) 등으로 번역했다. 영어 성경들은 generation, origin, history, story, account, descendant 등으로 번역했다.
이 단어는 항상 복수형으로만 쓰이며 구문 상태로만 나오거나 대명사적 접미사를 취하여 나온다. KJV에서 이 단어는 '출생' birth으로 번역되는 한 구절(RSV에는 두 경우)을 제외하고, 언제나 '세대' generations로 번역된다. 개정표준역(Revised Standard Version)에서는 이 단어를 「세대(generations)」로 번역하지만 때로는 「계보(genealogy)」라는 말을 사용하기도 한다. 이 단어는 「후손(descendants)」으로 여섯 번 번역되고, 한 번은 「역사(history)」로 번역되었다. 대부분의 번역본에서 사용한 단어들인 족보, 계보, 세대(generations) 등 하나의 단어로는 [תֹולְדֹ֧ות (톨레도트), generations]라는 이 단어의 전체적인 의미를 정확하게 전달해 주기가 어렵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40회 정도 나온다. 창세기는 10개의 족보 즉 톨레도트로 골격을 이루고 있다.
천지(하늘들과 땅)의 톨레도트(창2:4-4:6), 아담의 톨레도트(창5:1-6:8), 노아의 톨레도트(창6:9-9:29), 셈, 함, 야벳의 톨레도트(창10:1-11:9), 셈의 톨레도트(창11:10-26), 데라의 톨레도트(창11:27-25:11), 이스마엘의 톨레도트(창25:12-18), 이삭의 톨레도트(창25:19-35:29),에서 곧 에돔의 톨레도트(창36:1-8, 9-37:1), 야곱의 톨레도트(창37:2,-50:26) 등 창세기는 10개의 톨레도트(족보, 계보)로 구성된다.
히브리어 ‘톨레도트’와 같은 의미의 헬라어 단어인 ‘게네시스’는 기본적으로 “낳다”라는 뜻이다. 이 기본 의미가 확장되어 톨레도트는 한 개인의 역사, 나아가서 한 가문의 역사를 족보라는 형식으로 간추린 것이며, 더 나아가서 성경 전체에 내재적으로 흐르는 하나님의 역사 가운데 내재된 하나님의 경륜의 목적을 계시한다. 세계 역사는 메시아인 그리스도의 구속의 역사를 중심으로 하나님께서 그분의 계획을 역사하시고 이루어 가신다는 것을 톨레도트를 통해서 성경의 사실성, 인물들의 정체성, 근원 등을 계시해 주고 있다.
구약 성경에서 족보나 가계, 내력을 말해주는 대부분의 구절들에서 사용되는 히브리어 단어는 (תֹולְדֹ֧ות, 톨레도트, generations)이다. 그중에서 유일하게 창세기 5장 1절에서만 [ספר (쎄페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ספר (쎄페르)]는 계보, 책, 생명책, 생명의 책(시69:29, 계20:12, 15), 두루마리 책(사29:18), 거룩한 책(단9:2), 기록된 것, 쓴 것, 글, 집필, 저술, 저서 등의 뜻을 가지고 있으며, 기록하다(왕상8:5, 대하5:6), 쓰다, 계수하다(레25:8, 시56:8, 스1:8), 세다(창15:5, 레23:15, 시139:18), 계산하다(레15:13, 15:18, 사33:18, 욥38:37, 시40:6)), 계산되다(창16:10, 32:13), 조사하다(삼하24:10, 대하2:17), 자백하다(겔12:16), 보고하다(민13:27), 설명하다(욥12:8, 15:17), 변론하다(시73:15, 사43:26) 등의 뜻을 가진 동사 [ספר (싸파르)]에서 유래되었다.
특별히 창세기 5장 1절에서 「아담의 계보」라고 말할 때 사용한 『계보』라는 단어는 [תֹולְדֹ֧ות (톨레도트)]가 아니라, [ספר (쎄페르)]이다.
로마서 14장 7절부터 12절까지에서는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V7).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V8).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V9).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비판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V10). 기록되었으되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하였느니라(V11). 이러므로 우리 각 사람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V12)고 말한다.
고린도후서 5장 1절부터 10절까지에서는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V1). 참으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V2). 이렇게 입음은 우리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V3). 참으로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진 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히려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 삼킨 바 되게 하려 함이라(V4).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V5). 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으로 있을 때에는 주와 따로 있는 줄을 아노니(V6),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V7).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V8).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V9).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V10)」고 말한다.
시편 기자는 시편 56편 8절에서 「나의 유리함을 주께서 계수하셨사오니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이것이 주의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나이까」라고 말하고, 모세는 시편 90편 12절에서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라고 말했다.
주님은 요한계시록 3장 5절에서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고 말씀하셨다.
요한계시록 13장 8절은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고 말하고, 17장 8절은 「네가 본 짐승은 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없으나 장차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와 멸망으로 들어갈 자니 땅에 사는 자들로서 창세 이후로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들이 이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없으나 장차 나올 짐승을 보고 놀랍게 여기리라」고 말하며, 20장 12절과 15절은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계20:12),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계20:15)」고 말하고, 21장 27절은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고 말하고 있으며, 22장 19절에서는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계22:19)」고 경고한다.
구약 성경에서 족보나 가계, 내력을 말해주는 대부분의 구절들에서 사용되는 히브리어 단어는 (תֹולְדֹ֧ות, 톨레도트, generations)이다. 그러나 유일하게 창세기 5장 1절에서만 (תֹולְדֹ֧ות, 톨레도트, generations) [ספר (쎄페르)]라는 단어 대신 [ספר (쎄페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이것은 창세기 5장에 나오는 아담의 계보에 이름이 나오는 자들은 요한계시록에서 말하는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이라는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장차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모든 사람이 심판대[하나님의 심판대(롬14:10), 그리스도의 심판대(고후5:10)]에서 각각 자신들의 혀로 하나님께 자백하며 자신의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고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심판을 받으려 함이라(V10)」고 말하는 대로, 창세기 5장에 나오는 아담의 계보에 이름이 나오는 자들은 요한계시록에서 말하는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로서 심판대의 심판을 통과하여, 천년왕국에서 【천국】의 나타남에 참여할 자들이며, 영원한 새 얘루살렘에 들어가는 자들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요한계시록 3장 5절, 13장 8절, 17장 8절에 의하면 창세 이후로 모든 사람은 자기 행위를 따라 두 종류의 책들 중에서 한 종류의 책에 기록되고 있는데, 하나는 【책들】이라 불리는 책으로서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들의 이름이 그 책에 기록되고 있고, 또 하나의 책은 【또 다른 책】 곧 【생명책】이라고 불리는 책으로서 이기는 자들(계3:5)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고 있다(계20:12). 모든 죽은 자들의 이름이 이미 기록되어 있고, 오늘날 살아 있는 사람들의 이름이 기록되고 있으며, 앞으로 태어날 사람들의 이름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모든 사람의 이름이 두 책 중에서 한 권의 책에 기록될 것이다. 【생명책 】을 【또 다른 책】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생명책】이 믿지 않는 많은 사람들을 기록하는 일반적인 책이 아니라, 좁은 길을 걸어가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적은 소수의 특별한 사람들, 믿음의 사람들을 기록하는 책이라는 것을 가리킨다.
요한계시록 21장 8절은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불)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계21:8)」고 말하고, 요한계시록 20장 14절과 15절은 「누구든지 창세 이후로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들은 사망과 음부와 함께 둘째 사망 곧 불못에 던져지더라(계20:14-15)」고 말한다.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새 예루살렘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갈 것이다(계21:27).
당신은 어느 책에 기록되기를 원하는가? 믿지 않는 자들,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들의 이름이 기록되는 【책들】이라 불리는 책에 기록되기를 원하는가? 아니면 이기는 믿는 자들의 이름이 기록되는 【또 다른 책】 곧 【생명책】에 기록되기를 원하는가? 그 결정은 지금 당신의 선택에 달려 있다. 최종 목적지가 새 예루살렘에 이르는 《믿음》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지옥의 불못에 이르는 <불신>을 선택할 것인가?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2장 31절과 32절에서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에 대한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시고, 요한복음 16장 9절에서는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모든 죄는 사하심을 얻을 수 있지만, 『믿지 않는 죄』는 사함을 받을 수 없다(마12:31-32). 그러므로 예수님은 유일한 죄는 『믿지 않는 죄』라고 말씀하셨다(요16:9).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셨을 때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마7:13-14, 눅13:24)」고 말씀하셨다. 선악 지식나무의 길(창2:9), 세상과 타협하며 세상적이고 세속적인 불신의 길, 죄악의 길, 악한 길(렘23:22, 26:3, 36:3, 겔13:22, 33:11, 36:31, 욘3:8, 슥1:4), 악인의 길(잠4:19, 15:9), 여로보암의 길(왕상15:34, 16:19), 발람의 길(벧후2:15, 유1:11), 굽은 길, 넓은 길, 멸망으로 향하는 길을 걸어갈 때,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하고, 그 많은 사람들의 이름은 【책들】이라 불리는 책에 기록될 것이고, 그 최종 종착지는 지옥 불(마5:22, 18:9, 막9:43, 약3:6), 꺼지지 않는 불(막9:43), 곧 지옥의 불못이다. 그러나 믿음의 길, 생명나무의 길(창2:9, 3:24), 마땅히 행할 길(사48:17), 마땅히 갈 길(렘42:3), 여호와의 길(렘5:4), 바른 길(대하27:6, 행13:10, 벧후2:15), 곧은 길(시77:19, 렘31:9, 히12:3), 의의 길(시23:3), 평강의 길(눅1:79, 롬3:17), 구원의 길(행16:17), 하나님의 길(행18:26), 주의 길(계15:3), 영원한 길(시139:24), 그 길(신28:9, 사2:3)을 걸어갈 때, 그 사람의 이름이 【또 다른 책】, [ספר (쎄페르)] 곧 【생명책】에 기록될 것이고, [ספר (쎄페르)] 곧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의 최종 종착지는 새 예루살렘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