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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백대영
원래 사람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존재로 창조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정원의 나무의 모두로부터 먹을 것이고. 너는 좋고 나쁜 지식의 나무로부터 그것으로부터 절대로 먹지 말 것이니 왜냐하면 그것으로부터 너의 먹는 날에는 너는 반드시 죽을 것임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창 2:16-17).
사람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고 또한 악마의 음성도 들을 수 있습니다. 악마는 하와에게 “‘하나님이 모든 나무로부터 먹지 말라’고 하셨느냐”고 물었습니다.
창세기 3장 4-5절에 “너희가 확실히(surely) 죽지 아니하겠으니. 너희의 눈이 눈을 엶을 받고 하나님과 같이 선과 악의 아는 자가 될 것을 하나님께서 아심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도 말씀하시고 악마도 말합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고 악마의 말을 듣고서 먹었습니다. 그 결과, 모든 사람은 죽은 후에 악마의 나라에서 살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들은 악마의 말을 듣고 삽니다. 왜냐하면 악마의 입은 꿀처럼 달콤하여서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이 너무나 유혹적입니다.
이렇게 모든 사람이 악마의 말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싶어 하지 않은 때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을 부르셨습니다. 아브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서 가리키시는 땅으로 갔습니다.
아브라함은 100세에 아들을 낳았습니다. 십여 년이 지나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그의 아들을 모리아 산에서 번제로 제물로 바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였습니다.
그 결과, 모든 민족들이 아브라함의 씨(seed) 안에 복을 받게 되었으니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obey) 결과입니다(창 22:18).
“듣다”라는 단어(샤마)에는 귀로 “듣다”(hear)라는 뜻만이 아니라 들은 것에 “복종하다”(obey), “순종하다”라는 뜻도 그 속에 들어 있는데, “복종(服從)”이라는 한자어는 “의복을 입고 좇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자”고 하시면 말을 잘 듣고 옷을 입고 좇는다는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서 “명령을 그대로 따라서 좇는 것”이 복종입니다. 다른 말로 “순종(順從)하다”로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순종(順從)”은 “순하게 좇다”는 뜻이며, 독(毒)하지 않다는 뜻입니다. “독”은 “건강이나 생명에 해가 되는 성분”인데 마음도 독하면 안 됩니다. 마음이 독하면, 손해(損害)를 보고 해(害)를 보고 사람을 해치게 됩니다. 마음이 독하면, 자기 자신을 해치게 되고 다른 사람들도 해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이 굳세어 고집을 피우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시면 하고 “하지 말라”고 하시면 안 해야 하며, “먹지 말라”고 하시면 안 먹어야 되고 “먹어라”고 하시면 먹어야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내 고집대로 하는 일이 없어야만 하겠으며 이것이 바로 “듣다”, “복종하다”, “순종하다”가 뜻하는 바입니다.
아들이 둘이어도 소중하지만, 하나뿐이라면 얼마나 소중할 것입니까? 아브라함은 아들이 하나뿐이었고 그것도 100살에 낳은 아들이었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그 아들을 바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그때에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의 말씀에 복종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라고 말씀하시면 내가 하기 싫어도 하는 것이 복종입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면 그의 노염이 타오릅니다.
신명기 11장 13-17절에 “내가 명령하는 나의 계명들에 너희가 들으면. 내가 너희의 땅의 비를 그것의 시간 안에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줄 것이고 너는 너의 곡식과 너의 포도주와 너의 신선한 기름을 모으겠으며. 내가 풀을 너의 들 안에 너의 짐승에게 주고 너는 먹고 너는 만족하였고. 너희의 마음이 넓혀져 너희가 떠나고 다른 신(神)들을 섬기고 예배하고. 야훼의 노염(anger)이 너희 가운데 타오를 것이고(be kindled) 그가 하늘을 제지하셔서 비가 있지 아니하고 흙이 산물을 주지 아니하고 너희가 빠름에 그 좋은 땅 위에서 멸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고.”라고 하였습니다.
자연의 복도 하나님을 계명들에 복종하는 것에 따릅니다(신 11:13).1)
하나님께서 그 땅의 비를 그것의 시간에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주시고, 그는 그 곡식과 그 포도주와 그 신선한 기름을 모을 것입니다(신 11:14).
이른 비는 여름 가뭄에 메마른 땅을 적셔서 경작할 수 있게 만듭니다. 늦은 비는 곡식이나 과일을 자라게 만듭니다.2) 비가 제때에 하늘에서 내려야지 농사를 짓고 먹고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들판에 그의 짐승에게 풀을 주시고(신 11:15), 그는 먹고 만족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짐승을 위해 들판에 싱싱한 풀을 주십니다.3)
그들의 마음이 넓혀져 그들이 다른 신(神)을 섬기게 됩니다(신 11:16). 그들이 가나안의 풍요 제의에 물들어 다른 신(神)들을 섬기는 때입니다.
16절은 그 땅의 문화와 생활 습성에 같게 되면 안 됨을 말씀합니다.4)
하나님의 노염이 그 안에(against) 타오를 것이고 그가 하늘을 제지하셔서 비가 있지 아니하고 흙이 산물을 주지 아니하고 그들이 빠르게 그 좋은 땅 위에서 멸망하게 됩니다(신 11:17).
곡식이 자라지 않아 흉년이 된 결과 그들은 굶어 죽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명들을 듣고 지키는 일과 물질적인 복은 관계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연의 요소를 통하여 역사의 목적을 이루시는 것입니다.5)
판사기 2장 14-15절에 “야훼의 노염이 이스라엘 가운데에 타올랐으며 그가 그들을 노략질하는 자들의 손 안에 주셨고 그들이 그들을 수탈하고 그가 그들을 주변으로부터 그들의 원수들의 손 안에 파시고 그들이 더 이상 그들의 원수들의 앞에 서 있을 수 있지 않고. 그들이 나가는 모두에 야훼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고 맹세하신 것과 같이 야훼의 손이 그들 안에 악(惡)에 되었으며 그들에게 대단히 맨지라”라고 기록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노염이 타오르다(burn)”라는 표현으로 쓰입니다(출 32:11). 하나님의 노염이 이스라엘 안에 타올랐습니다(판 2:14).
하나님께서 그들을 노략질을 하는 자들의 손 안에 주셨으며(판 2:14),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자손들을 노략질하는 사람들의 손에 주셨으므로 노략질하는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자손들을 수탈하였습니다.
그들이 악을 행하여 하나님의 손이 그들에 악에 되었습니다(판 2:15). 성경에 반복된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이 행한 것대로 갚으시는 것입니다. 그들이 악(evil)을 행하여 하나님의 손이 그들에 악(calamity)에 됩니다.
판사기 2장 20-22절에 “이 민족이 나의 음성에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나도 그 민족들로부터 그 앞으로부터 사람을 붙잡게 더하지 아니하리니. 그것들 안에 가기에 야훼의 길을 그들이 지키는지 지키지 아니하는지를, 이스라엘을 그들 안에 시험하기 위해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행위들과 그들의 완고한 길로부터 떨어지게 되지 않고, 그래서 하나님의 노염이 이스라엘 가운데에 타올랐습니다(판 2:19-20). 왜냐하면 이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면 저주가 따라붙게 됩니다.
신명기 28장 15-19절에 “그의 계명과 그의 법규를 행하기에 지키기에 너의 하나님 야훼의 음성 안에 듣지(obey) 아니할 것이면 모든 이 저주들이 너 위에 올 것이고 너를 따라붙노라(overtake). 너는 그 성읍 안에 저주함을 받으며 너는 그 들판 안에 저주함을 받으며. 너의 광주리와 너의 반죽 사발이 저주함을 받겠으며. 너의 배의 열매와 너의 토지의 열매 너의 떼의 암양들이 저주함을 받고. 너의 들어올 때 저주함을 받고 너의 나갈 때 저주함을 줌을 받노라”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신명기 28장 14절까지는 복에 대한 것이고 15절부터는 저주에 대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그의 하나님 야훼의 음성 안에 듣지(obey) 아니할 것이면, 모든 이 저주들이 그 위에 올 것이고 그를 따라붙을 것입니다(신 28:15). 저주가 항상 그 사람에게 따라붙는 것입니다.
그는 성읍 안에 저주될 것이며 들판 안에 저주될 것입니다(신 28:16). 곧 성읍 안에 복을 받고 들판 안에 복을 받는 것과 반대입니다(신 28:3).
그의 광주리와 그의 반죽 사발이 저주될 것입니다(신 28:17). 그의 광주리와 그의 반죽 사발이 복을 받는 것과 반대입니다(신 28:5).
그 배의 열매와 흙의 열매 떼의 암양들이 저주될 것입니다(신 28:18). 그 배의 열매와 흙의 열매 암양이 복을 받은 것과 반대입니다(신 28:4).
배의 열매가 저주를 받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면 내 자녀도 저주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암양들이 저주된다는 것은 암양들이 새끼를 못 낳는다는 것입니다. 저주가 그에게 달라붙어 있기 때문에 그의 가축도 저주를 받습니다.
그의 들어올 때 저주되고 그의 나가는 때 저주될 것입니다(신 28:19). 그 들어올 때 복을 받고 나가는 때 복을 받는 것과 반대입니다(신 28:6).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면 복이나 그의 음성을 듣지 아니하면 저주입니다.
1) 역병, 기근, 질병의 저주를 받습니다.6)
(1) 행하지 아니하면 저주와 혼란과 비난을 받게 됩니다.7)
신명기 28장 20절에 “야훼께서 저주와 혼란과 비난을 보내시니 너의 행할 너의 손의 모든 보냄 안에 그렇게 하실 것이니, 나를 버린 너의 행실들의 악함의 앞으로부터 너의 멸망하기까지라”라고 하였습니다.
야훼께서 저주와 혼란과 비난(rebuke)을 보내실 것입니다(신 28:20). “저주”(므에라), “혼란”(므후마), “비난”(미그에레트)은 히브리어로 “m”음으로 시작되는 용어들입니다. 시구 첫머리에 같은 음을 되풀이하여 쓰는 수사법인 두운이 쓰였습니다. 일종의 말놀이를 통하여 말씀을 기억하기 쉽게 하신 것입니다.
“재앙”이라는 말은 “뜻하지 않게 생긴 불행한 변고”를 뜻합니다. 또는 “천재지변으로 인한 불행한 사고”를 뜻합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께서 이집트에 내리신 10가지 재앙입니다. 이집트는 불행한 일을 10가지나 당하게 되었습니다.
“불행”은 “행복이 아님”을 뜻합니다. “불”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행복이 아닌 것”, “행복”의 반대말이 “불행”입니다.
“저주”는 “재앙이나 불행이 일어나게 빌고 바라는 것”을 뜻하며, 또는 “그렇게 하여서 일어난 재앙이나 불행”을 뜻합니다.
본문에 하나님께서 사람 안에 3가지를 보내실 것이라고 기록되었는데 하나님께서 사람 안에(on) 보내실(send) 첫째 내용이 “저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불복종하는 자에 저주를 보내시는 분이십니다(신 28:20).
하나님의 계명들로부터 빗나가는 자들은 저주함을 받는데(시 119:21), 그들이 하나님의 계명들로부터 빗나갈 때 그가 저주를 보내실 것입니다.
“혼란(confusion)”은 “소란”, “파멸”을 의미하며 “당황”(confusion), “패배”(defeat), “파멸”(destruction)로 번역됩니다.
“당황(唐慌)”이라는 한자어는 놀라거나 다급하여 어찌할 바를 모름인데, 당나라 군대가 다급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던 상태가 바로 “당황”입니다. 하나님께서 파괴될 때까지 큰 혼란에 의해 당황하게 하십니다(신 7:23).
“혼란(混亂)”이라는 한자어는 “섞이고 어지럽다”라는 뜻이며, “뒤죽박죽이 되어 어지럽고 질서(秩序)가 없음”을 뜻합니다.
“질서”는 혼란 없이 순조롭게 이루어지게 하는 사물의 순서나 차례며, “순서 있게 구분하여 벌여 나가는 관계”가 없으면 혼란스러운 것입니다.
사람들이 평소에는 차례를 지켜서 혼란 없이 질서가 있는 모습이어도, 두려운 일이 일어나면 많이 급하여서 어찌할 바를 모르면서 당황합니다. 그들이 불복종할 때 이런 큰 혼란이 그들에게 향하게 됩니다(신 28:20).
하나님께서 그 안에 그 저주와 그 혼란과 그 비난을 보내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3가지를 그의 손의 모든 사업 가운데 보내실 것입니다.
그가 그의 손을 보내는 모든 곳 안에 하나님께서 이 3가지를 보내셔서 그가 그의 손을 보내는 모든 곳 안에 저주와 혼란과 비난을 있게 됩니다.
우리의 손의 모든 보냄 안에 우리와 우리의 집이 기뻐한다면, 우리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신 것입니다(신 12:7).
그러나 오늘의 본문은 복이 아니라 저주와 혼란과 비난을 말씀합니다. 그가 행할 그의 손의 모든 사업 안데 저주와 혼란과 비난이 있게 됩니다.
빨리 그의 파괴함을 받기까지와 그의 멸망하기까지 그렇게 될 것인데, 그가 하나님을 떠난 그의 행실들의 악함의 앞으로부터 그러할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버리고 떠날 때에 그의 행실들이 악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서도 하나님을 버리고 떠나면 악한 사람이 됩니다.
이런 사람은 고의로 하나님을 버리고 떠났기 때문에 회개하기 힘들며, 영원히 파괴되고 멸망하는 불쌍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떠날 때에 육체가 파괴되어 죽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하나님이 없는 곳에서 영원히 파괴된 상태로 살아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영원히 멸망한 상태로 살아가는 불행한 사람이 되기로 선택한 것인데, 하나님을 버리고 떠나는 사람은 이러한 불행을 스스로 선택한 것입니다.
사람의 인생이 죽는 것으로 끝난다면 불행하게 살다가 죽으면 되지만, 영원히 이러한 불행과 고통 속에서 살아가야만 하기에 불쌍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신 그 사랑을 맛보고 난 후에 하나님을 버리고 떠난 사람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보다 더 불쌍합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영원히 멸망하는 불쌍한 사람이 되지 않아야만 합니다.
(2) 전염병으로부터 오는 7가지 고통입니다(신 28:21-22).8)
신명기 28장 21-22절에 “야훼께서 염병을 너에 결합하게 하실 것이니 그것을 소유하러 들어가는 그 땅 위에로부터 너를 그의 끝내시기까지며. 그가 폐병과 열병과 염증과 열기와 칼과 마름병과 깜부깃병에 치시겠고, 그것들이 너의 멸망하기까지 너를 뒤따를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하나님을 섬기고 그 안에 결합하여야 합니다(신 13:4). 신명기는 이렇게 하나님 안에 결합하라고 여러 번 반복하여 강조합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하나님 안에 결합하지 아니하고 불복종하며 살면,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염병을 결합하게 하실 것입니다(신 28:21).
22절에는 7개의 저주들이 언급되고 있습니다(신 28:22).9) 성경에서 “7”은 완전수입니다.
우리의 제한된 지식으로 7개의 용어들 중 어떤 것은 불분명합니다.10) 4가지는 사람의 질병이고 뒤에 3가지는 식물과 관련된 질병입니다.11)
“마름병”과 “깜부깃병”은 바로 뒤에 23-24절의 설명과 연결됩니다.12) 식물은 사막에서 부는 열풍(sirocco)에 수분이 증발되어 죽습니다.13) 이 재앙들이 이스라엘이 멸망할 때까지 이스라엘을 따를 것입니다.14)
(3) 행실들의 악함으로부터 기근과 칼로 인한 멸망을 받습니다.
신명기 28장 23-26절에 “너의 하늘은 청동이 되고 땅은 철이 되겠고. 야훼께서 너의 땅의 비를 티끌과 먼지로 주실 것이며 그 하늘로부터 그것이 너의 위에 너의 파괴되기까지 내려올 것이라. 하나의 길로 너는 너의 적들에 나가겠고 길들의 일곱으로 달아날 것이고 너는 그 땅의 모든 왕국들에게 공포(terror)에 될 것이고. 너의 시체가 그 하늘의 모든 새와 그 땅의 짐승을 위해 양식에 될 것이고 떨게 하는 자가 없노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하늘은 청동이 되어 비가 거의 내리지 않았습니다(신 28:23).
야훼께서 그 땅의 비를 티끌과 먼지로 주실 것이며 하늘에서부터 그것이 그에게 파괴되기까지 내려올 것입니다(신 28:24).
그는 하나의 길로 그의 적들에 나가고 길들의 일곱으로 달아날 것이고 그는 그 땅의 모든 왕국들에게 공포심에 될 것입니다(신 28:25).
이것은 7절의 순종하였을 때의 그의 승리와 정반대되는 일입니다.15)
그의 시체가 그 하늘의 모든 새와 그 땅의 짐승을 위해 양식에 되겠고 떨게 하는 자가 없습니다(신 28:26). 그의 시체를 묻어 줄 사람이 없어, 그의 시체를 독수리가 뜯어 먹고 하이에나가 뜯어 먹는 것입니다.
구원영생교회 성도 여러분!
오늘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면 저주를 받게 된다는 말씀을 살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앞에 복과 저주를 놓으셨습니다. 사람은 항상 자기가 선택하며 삶을 사는 것입니다. 복을 선택할 수도 있고 저주를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복을 선택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것이 저주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쪽을 선택하는 복된 구원영생교회 성도들이 다 됩시다!
1) 장일선, 『신명기』, 대한기독교서회 창립 100주년 기념 성서주석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93), 233.
2) 장일선, 『신명기』, 대한기독교서회 창립 100주년 기념 성서주석, 233.
3) 장일선, 『신명기』, 대한기독교서회 창립 100주년 기념 성서주석, 233.
4) 장일선, 『신명기』, 대한기독교서회 창립 100주년 기념 성서주석, 233.
5) 장일선, 『신명기』, 대한기독교서회 창립 100주년 기념 성서주석, 234.
6) Christensen, 『신명기 21:10-34:12』, WBC 성경주석, 366.
7) Christensen, 『신명기 21:10-34:12』, WBC 성경주석, 366.
8) Christensen, 『신명기 21:10-34:12』, WBC 성경주석, 388.
9) 최종원, “레위기 26장 14-33절에 나타난 숫자 칠의 의미에 대한 연구”, 『구약논단』 제19권 제1호 (2013): 22.
10) Christensen, 『신명기 21:10-34:12』, WBC 성경주석, 394.
11) 송병현, 『엑스포지멘터리 신명기』 (서울: 사랑플러스, 2014), 577.
12) 최종원, “레위기 26장 14-33절에 나타난 숫자 칠의 의미”: 23.
13) 장일선, 『신명기』, 대한기독교서회 창립 100주년 기념 성서주석, 418.
14) 김회권, 『신명기』, 한국장로교총회창립 100주년기념 표준주석, 409.
15) 장일선, 『신명기』, 대한기독교서회 창립 100주년 기념 성서주석, 4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