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로 지은 길고양이 집
고양이 집을 세 번째로 만들었다. 집이라고 해보아야 스티로폼에 구멍을 내서 테이프를 부치고 그 안에 방석을 깔아주는 정도이지만 밖에서 노숙하는 것보다는 훨씬 따뜻할 것 같아 정성을 들여 만들었다. 한겨울에는 영하 20도 밑으로 내려가는 이곳 연천의 추위를 견디기 위해서는 충분하지는 않지만, 길고양이들의 보금자리가 되어 줄 것이다.
처음 집을 만들 때는 어미 바래미와 아깽이 네 자매가 모두 함께 들어가서 잠을 잤는데, 1년이 지나가니 아깽이들 덩치가 엄마보다 더 커서 하나 가지고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런데다가 나름대로 서열이 있어서 어미가 차지한 집을 새끼들이 들어가지 않고 그 주변에서 그냥 밤을 새웠다.
봄에 두 번째로 지어준 집은 안나가 차지하고 있다. 아마 어미 다음으로 서열이 높은 모양이다. 모아이와 파타는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여전히 밖에서 잠을 잔다. 자매지간이지만 녀석들은 나름대로 서열을 지키는 것 같다.
첫 번째 집에는 방안에 두꺼운 방석을 깔아주었다. 이 집에서 어미가 잠을 자더니 두 번째로 지은 새집에 군인 담요를 깔아주었더니 어미가 거처를 새집으로 옮겼다. 아마 군인 담요가 더 따뜻하게 느껴졌을까?, 그리고 두 번째 집에는 안나가 독차지를 하고 있다.
세 번째 집은 아내가 캐시밀론 담요를 깔아주라고 했다. 이 담요는 우리가 2007년도에 인도 카슈미르 지방을 여행할 때 스리나가르 호수에서 기념으로 산 귀한 것이다. 그런데 13년이 지나니 닿고 헤져서 털이 일어나 더 이상 사용할 수가 없게 되었다며 고양이 이부자리나 해주라고 아내가 선뜻 내주었다. 캐시밀론으로 꾸며 놓으니 제법 아방궁처럼 보인다.
세 번째로 지은 집을 누가 차지할까? 어미가 다시 이사를 할지, 아니면 모아이가 차지할지, 파타가 차지할지 두고 보아야 할 것 같다. 내 생각으로는 모아이가 안나 다음으로 서열이 높은 것 같은데 오늘 밤을 지내며 지켜보아야 할 것 같다. 바램으로는 모아이와 파타가 공동으로 사용했으면 좋겠는데 어찌 될지 모르겠다.
아직까지는 바래미 가족의 관계는 매우 끈끈하다. 새끼들이 버릇없이 굴면 어미 바래미는 앞발로 자식들을 가볍게 두들겨 제압한다. 그러면 새끼들은 절대로 대들지 않고 고개를 땅에 엎디어 순종한다. 반면에 어미는 밥을 먹을 때도 새끼들이 먼저 먹기를 기다려준다. 새끼들이 어느 정도 밥을 먹고 자리를 피해 주면 그때서야 어미는 밥을 먹는다.
새끼들은 밥을 먹기 전에 어미에게 다가가 얼굴을 비비거나 나름대로 인사를 하는 것 같다. 그러면 어미는 새끼들의 머리와 몸을 혀로 가볍게 핥아주기도 한다. 이렇게 성년이 되어서도 모자지간의 정을 나누고 있는 것을 보면 참으로 기특하기도 하다.
이제 네 녀석 모두 집사를 따르고 응석을 부릴 정도가 되었다. 파타가 항상 낯을 가리고 밥을 먹을 때도 자리를 피해주어야 겨우 와서 먹곤 했는데, 이젠 대담하게 내 가랑이 사이로 끼어들어 밥을 먹는다. 등을 긁어주어도 놀라지 않고 가만히 있을 정도가 되었다.
고양이를 고양이로 보지 않고 사람의 눈 높이로 보아주는 것이 필요한데 아직 나는 그수준까지 가지는 못한다. 그렇게 하려면 한 집안에서 함께살아야 할텐데~ 코로나로 언텍트(비대면) 시대에 나는 고양이들로부터 큰 위안을 받는다.
여행을 갈 수도 없고, 면역이 어린아이처럼 아내때문에 남이 찾아오는 것도 두렵다. 절간 같은 연천 최전방의 집에서 아내와 대화를 하는 기산외에 나는 고양이들과 대화를 하고 지낸다. 거의 하루종일 교감을 하고 지내다 보니 어느 정도 고양이들이 내는 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게 되었다. 고양이들의 소리는 상황과 시간에 따라 달라진다. 화를 낼때는 하악하악 거리고, 배가고플 때는 아이 우는 소리를 낸다. 밥을 주러 갈 때는 닭이 알을 품고 있는 것처럼, 목에 구슬을 굴리는 소리처럼 즐거운 소리를 낸다.
"고맙다! 내 유일한 친구들아~."
집사 처지에서는 아무튼 정이 듬뿍 든 바래미 가족이 올겨울에도 튼튼하게 지내기를 바랄 뿐이다.
첫댓글 바래미가족이 호강하는군요. 캐시밀론 담요를 깔고 자면 올겨울 따뜻하겠어요.
저도 바닷가 테트라포트 아래 사는 길냥이 집을 하나 만들어 주고 싶은데
여러번 둘러보아도 놓아줄 곳을 못찾았어요.
사람들이 워낙 많이 오가고 구청에서 관리하는 곳이라...
테트라포트 사이사이에 공간은 많은데 적당한 공간 찾으려면 들여다 봐야 하는디 위험하니 올라가볼 수도 없고...
이제 추워지는데 넘 마음 쓰이네요.
중간크기 스티로폼 박스 한개면 되는데..아무래도 누가 치워버릴것 같아서 그렇네요.
테트라포트는 위험해요. 조심하세요. 해연님의 따뜻한 마음으로 지어주시는 정성을 길냥이들이 알고 있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