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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속의 가령 폭포
아침에 조반을 먹고 나서 달력을 들여다보다가 동짓달 초열흘이 지난 것을 보고는 친정집의 바로 밑의 동생 생일이 이달 스무이레라는 생각이 나는 것이다.
이 나이가 되도록 동생의 생일날이면 의례히 밥이나 먹고 사는지 하는 걱정을 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세월은 얼마나 많이 갔는지 그 동생의 나이도 어느덧 내년이면 환갑이 다 되는 것이다.
다른 동생들도 그렇지만 ‘이 정필’이 이 동생에 대해서 신경을 쓰는 것은 아렸을 때부터 몸이 약해서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기 때문이다.
엄마는 그래서 항용 하시는 말씀이 사람노릇을 하지 못하겠거든 일찌감치 죽기나 하던지 왜그리 속을 썩이는지 모른다면서 만날 울타리 밑에서 눈물을 흘리셨다.
그러면 할머니는 어머니를 야단을 치시면서 아이가 아프고 싶어서 아프냐면서 동생을 할머니 방으로 데리고 가셨다.
그러던 동생이 초등학교 입학을 하면서 어느 용한 의원을 만나서 한약 서너 첩을 달여 먹였는데 수암을 보고는 밥을 잘 먹기 시작을 한 것이다.
동생이 밥을 잘 먹고 뛰놀기 시작을 하자 누구보다도 기뻐하신 분이 할머니였다.
“ 그것 보아라,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하였지, 느 어멈이 그래도 별 약을 다해도 낫지를 않자 부처님이 그 정성을 가상히 여기시고 용하신 의원을 보내 주신 게 아니냐.”
어머니는 할머니가 그런 말씀을 하시자 시머니에게 그 공을 돌리셨다.
“ 다 어머님이 손녀에 대해서 불면 꺼질까봐 밤낮없이 걱정을 하신 덕이에요 .”
그런 동생이기에 지금도 그를 생각하면 왠지 모르게 치근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출가 후에 옛날처럼 밥술은 굶지를 않는다고 하지만 교통도 좋지 않은 오지에 가서 고생을 하면서 사는 것이 안쓰럽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니 곁으로 나와서 같이 살자고 몇 번이나 말을 하였지만 어디 모든 일이 호락호락한 것이 아니다 보니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이 늘 마음에 걸리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동생네 집에를 가본지도 1년이 지난 것 같아서 ‘정필’은 이번 생일날에는 동생에게 가겠노라 연락을 하기 위해서 전화를 들었던 것이다.
“ 언니 오래간만이네. 오늘은 어쩐 일로 전화를 다 한디야.”
“이년아. 모처럼 언니가 전화를 하면 반갑다는 소리는 못할망정 전화한 게 뭐이 잘못이냐.”
그런데 저 쪽에서는 한참동안이나 잠자코 있더니 전화가 끊어져다가 다시 신호가 오는 것이다.
“ 얘. 너 지금 뭐하는 짓이냐. 왜 전화를 받다가 말아.”
그러자 동생은 말을 하지 않더니 훌쩍거리는 것이다.
“ 언니 미안해. 언니가 하도 전화를 하지 않다가 목소리를 들으니까 갑자기 눈물이 나지 않아.”
동생은 그러더니 한참동안이나 말을 잇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고 생각을 해보니 그동안 언니가 동생에게 전화를 하지 않은 것은 동생이 언젠가 특별히 돈 쓸 일이 있어서 그러니 돈 백만 원만 꾸어달라는 것을 주지를 못한 것이다.
그때 ’정필‘은 수중에 가지고 있던 3백만원을 옆집의 경아 엄마가 급전이 필요하다면서 석
달간만 빌려주면 이자 5부를 준다는 소리에 생각 없이 주었는데 1년이 가도 되돌려 주지
를 않아서 속이 상한 판인데 동생이 빌려 달라고 하니 준다 소리를 할 수가 없어서 그냥 얼
버무리고만 것이 동생을 섭섭하게 하였고 지금까지 동생은 언니에게 전화를 하지 않았던 것
이다.
동생의 그런 전화를 받으니 마음이 여린 언니의 마음도 울적해졌지만 언니는 그런 마음에
서 벗어나서 동생에게 이번 생일날 간다고 통보를 하자 동생은 “정말 ” 하고는 반기는 기색
이었다.
그 후에 동생의 자세한 내막을 알아보니 가까운 사람끼리 계를 하였는데 중간에 깨지는 바
람에 동생이 백만 원을 물어주어야 할 처지가 되어서 언니에게 돈을 꾸어 달라고 하였다는
것이다.
‘정필’은 이번에 만나면 동생이 졌다는 빚을 갚아줄 생각으로 돈을 마련하고는 생일전날 동
생네 집으로 향하였다.
홍천읍 터미널에서 내촌 행 버스를 타고 출발을 하자 옛날에는 비포장도로로 먼지가 뽀얗
게 나서 앞차가 보이지를 않았는데 지금은 길이 얼마나 잘 정비가 되었는지 좌석이 조금도
불편하지를 않았다.
더구나 옛날에는 버스만 타고 출발을 하게 되면 앞뒤에서 한 두 사람씩은 차멀미를 하여
그 역한 냄새로 인해 비위가 약한 아이들이며 어른들은 따라서 멀미를 하게 되니 차안은
내릴 때까지 그 냄새 때문에 고역이었는데 지금은 무슨 차를 타도 차멀미를 하는 사람이 없
으니 세상이 변해도 너무 많이 변한 것이다.
버스가 마침내 홍천 내촌의 도관리 마을을 지나게 되자 옛날에 이곳으로 시집을 와서 겪
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다.
상남에서 나고 자란 ‘정필’이가 초등학교 4학년 때에 처음으로 내촌의 고모 댁에 엄마를 따
라서 왔을 때에 고등학교를 다닌다는 고모오빠는 모처럼 동생이 왔다면서 구경시켜 줄 곳이
있다면서 데리고 간 곳은 가련 폭포라는 곳이다.
아홉싸리 고개 밑에 자리한 가련 폭포는 내촌에서 시오리는 떨어져 있는 곳으로 높이가 30
m 쯤 되는 폭포로 한길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기 때문에 봄철이면 내촌 사람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소풍을 자주 간다고 하였다.
이날은 날씨도 좋고 장마가 진 다음이라서 그런지 짚더미 같은 폭포물이 쏟아져 내리는
데 그 밑으로 바짝 다가가니까 가랑비처럼 빗방울이 무지개를 타고 내려오는 바람에 금방
시원한 비바람이 부는 것 같더니 이내 몸이 떨릴 정도로 추워지는 것이었다.
그러자 오빠는 입고 있던 윗옷을 얼른 입혀 주었는데 이날 이후 ‘정필’이는 고모 오빠가 늘
보고 싶었다.
외아들인 고모오빠는 동생들이 가까이 있으면 얼마나 좋겠느냐고 하더니 뜬금없는 말을 하
는 것이었다.
“ 정필아, 너 이다음에 크면 내촌으로 시집을 오너라. 한 부락에서 같이 살면 좋지 않니.”
그때 ‘정필’이는 무어라고 대답을 하였는지 생각이 나지 않지만 그러던 오빠가 몇 년 후에
서울에 올라가서 공부를 하다가 공군에 입대를 하였는데 어느 날 비행기에서 낙하 훈련 중
에 낙하산이 펼쳐지지를 않아서 순직을 하였다는 소식이 온 것이다.
그 소리를 들은 ‘정필’은 며칠 동안을 울면서 지났는데 지금 생각하면 오빠가 내촌으로 와
서 같이 살자고 한 것은 외롭게 살다 보니 동생이라도 가까이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었을 것
이다.
그런데 ‘정필’이가 자란 후에 생각지도 않은 내촌으로 오빠말대로 시집을 왔던 것이니 그
때 오빠가 한 말이 씨가 될 줄을 누가 알았으랴!
‘정필’이는 사실 시골학교를 다니긴 하였지만 나름대로 꿈이 있었는데 그것은 도회지로 나
가서 대학을 마치고 선생님이 되고자 한 것이다.
그래서 초등학교 졸업을 하고 나서 바로 서울의 친척 댁에 가서 직물 공장엘 다니면서 공부
를 하려고 하였으나 그것이 뜻대로 되지를 않는 바람에 장사를 배워서 돈이나 벌겠다고 생
각을 바꿔 들어간 곳이 평화시장의 옷가게 점원이었다.
평화시장은 그때 한참 새로운 디자인의 중심지라고 할만치 새로운 옷들이 만들어져서 전국
으로 팔려 나가던 시절이었다.
그러다 보니 새벽이면 전국에서 몰려온 장사꾼들로 해서 시장의 활기는 넘쳐나고 상점마다
돈을 많이 벌게 되자 종업원들의 대우도 괜찮은 편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버지가 급한 일이 있으니 고향으로 내려오라는 연락이 왔던 것이다.
‘정필’은 아버지가 무슨 일로 부르시는지 궁금한 중에 혹시 어머니가 병환이라도 나신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가지고 쉬는 날 집으로 내려와 보니 아버지는 마땅한 혼처가 생겼으
니 시집을 가라는 것이었다.
그때 ‘정필’의 나이는 스물한 살로 시골에서는 그때쯤이면 처녀들을 시집을 보낼 때이긴 하
지만 지금 한참 여러 가지 기술이라도 배우려는 참인데 시집을 가라고 하니 한 번도 부모
의 말을 거역해 본 적이 없는 ‘정필’은 지금까지의 꿈을 접기로 하고는 부모님의 말씀을 듣
기로 한 것이다.
그때 주인을 이른 이는 내촌에 사는 고모님이셨는데 고모님의 말씀으로는 신랑이 농사를 짓
긴 하지만 성실한 사람이라고 하여 한편으로는 어떤 사람일까 하는 기대를 하면서 잔칫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시집을 와서 보니 신랑에게는 형이 하나 있는데 5촌 당숙네 집으로 양자를 가는 바
람에 신랑이 이 집의 맏이 노릇을 해야 하고 살고 있는 집은 양자인 형이 차지를 한다고 하
여 신랑 신부는 세간을 나가야 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할 수없이 시집 온지 사흘 만에 세간을 나가지 않을 수가 없어서 집을 찾던 중에 강
건너 야산 응달 밑에 있는 오막살이 사랑방을 얻게 된 것이다.
세간을 나갈 때에 보태준 것은 아무것도 없고 좁쌀 한말에 수저 두 개 양은 밥그릇 두개와
무명이불 한 채가 전부였던 것이니 이렇게 기가 막힌 일이 어디 있단 말인가.
‘정필’이 생각을 하니 고모가 소개를 할 때에는 밥은 굶지 않는 집이라고 하여서 나름대로
희망을 가지고 시집이라고 왔는데 세상에 집도 절도 없는 가난뱅이에게 시집을 오다니 ‘정
필’은 생각 할수록 분하여 날마다 눈물로 세월을 보내야 했다.
더구나 부모님을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은 고모님을 아무리 믿는다고 할지라도 딸을 시집
을 보내려면 신랑의 내막을 자세히 알아보아야 하는데 그것도 알지 못하고 시집을 덜컹 보
낸 아버지가 너무도 원망스러웠다.
이사를 간 집에는 할머니가 혼자 사셨는데 그 분에게는 외아들이 있긴 하지만 집이 워낙 가
난하다보니 돈을 벌기 위해서 정선 탄광으로 보냈다는 것이다.
할머니는 새 색시가 시집 온지 며칠 만에 이런 누추한 집으로 이사를 오는 것을 보고 마음
이 아팠다면서 집에는 찬밥이지만 먹을 것이 있으니 아무 때라도 부엌에 와서 찾아 먹으라
고 하셔서 그 말씀이 얼마나 고마운지 몰랐다.
할머니는 앞으로 살아갈 방도는 우선은 농사를 짓는 집에 가서 품이라도 팔면 밥은 굶지를
않을 테니 내일부터 할머니를 따라다니라는 것이었다.
신랑이라는 사람은 사정이 이런데도 아무 말도 없이 조밥을 해서 받치면 꾸역꾸역 먹기만
할 뿐 아무 대책이 없는 사람인 것 같아서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었다.
‘정필’은 고모가 신랑에 대해서 소개를 할 때에는 매우 똑똑하고 형제간의 우애도 좋아서
사람이 괜찮은 사람일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을 하였는데 며칠을 지나다 보니 이것은 당초
에 기대했던 사람이 아니었다.
더구나 신랑의 집이 잘 사는 줄 알았는데 땅 한 평도 없는 순 가난뱅이 집에다가 춘궁기가
되면 끼닛거리가 없어서 매년 장리쌀을 내서 먹는다고 하였다.
신랑은 그때까지 아무 일도 하지를 않고 동네에서 빈들거리기만 하여 동네사람들도 그를 좋
게 보는 사람이 없다고 하였다.
그래서 하루는 신랑을 앉히고는 부드럽게 말을 한 것이다.
“ 앞으로 우리가 살아나가려면 돈이 있어야 하는데 그 방도를 찾아 보아야 하지 않아요. 당
장 내일부터 아궁이에 넣을 땔감이 없으니 나무부터 해 오셔요.“
그런데 신랑의 반응이라는 것은 전혀 없고 눈만 멀뚱멀뚱 한 채 아무 대답도 없이 슬며시
밖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신랑은 저녁때가 되어도 어디로 갔는지 집에 돌아오지를 않고 있어서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그날 늦은 밤의 일이었다.
신부가 낮에 먹던 조밥덩이 하나를 먹는 둥 마는 둥 저녁을 때우고 고단해서 일찌감치 잠
자리에 들었는데 신랑이 언제 집으로 돌아왔는지 모르게 방문을 열더니 누워 있는 신부의
머리끄덩이를 잡아채면서 일어나라는 것이어서 무슨 일인가 하고 일어나자 신랑은 다짜고짜
신부의 따귀를 그것도 턱이 이리 왔다 저리 가도록 후려치는 바람에 일어날 수가 없었다.
“ 이년아. 이집의 어른이 누군데 네가 나에게 명령을 내리냐. 이 집이 네 세상인줄 알아, 어
디서 배워 처먹지 못한 짓을 하는 게야. “
신랑은 다시 눈두덩을 후려치는데 눈에서 불이 번쩍 나는 것을 억지로 참으면서 할머니가
계시는 안방으로 쫓겨 들어가면서 “할머니 사람 살려주세요.” 하며 소리를 지른 것이다.
그런데 그때 신랑이 할머니 방까지 쫓아 들어오는 것이었으니 그 순간 신랑의 눈에는 뵈는
것이 없었던 모양이었다.
졸지에 할머니는 신부가 쫓겨 들어오면서 사람 살리라고 하자 도둑놈이 들어온 줄 알았는지
다듬이 방망이를 들고는 문턱으로 가다가 색시의 신랑이 뒤따라 들어오는 것을 보자 할머니
는 방망이를 높이 들면서 벽력같이 소리를 지르신 것이다.
“ 이놈이 미쳐도 보통 미친놈이 아니구나. 잔치한지 며칠 됐다고 벌써부터 색시에게 손찌검
을 하다니 썩 물러가지 못하겠느냐 이 잡놈아. “
워낙 할머니가 세게 나가시자 신랑은 멈칫 하더니 방문을 꽝 닫고는 나가면서 횡설수설하는
데 술이 잔뜩 취해 있었다.
“ 이년. 나오기만 해봐. 가만히 둘 줄 알아. 나는 네년의 가장이란 말이야 .“
이날 정필은 할머니 댁에서 날을 새우고 새벽이 되자 살며시 일어나서는 방으로 들어갔더니
신랑은 그때까지 한 밤중이었다.
정필은 한참동안 방구석에 쪼그리고 앉았다가 그래도 오늘 품팔이를 나가려면 밥을 해야
하겠어서 항아리에 바가지를 넣고 보니 밑바닥이 긁히면서 남은 것은 보리쌀 한 됫박이 채
되지를 않았다.
이웃집에서 보리방아를 찧게 되면 보리쌀 닷되를 품값으로 받기로 되어서 당분간은 마음을
놓겠다 싶었는데 술을 먹고 들어온 신랑이 손찌검까지 하는 바람에 장차 이 노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도무지 막막하기만 하였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친정으로 도망을 가고도 싶었지만 시집오기 전날 어머니의 하신
말씀이 생각이 나서 그렇게 할 수도 없다는 생각이 머리를 아프게 하였다.
"시집을 가게 되면 그 집의 귀신이 되는 날이라는 것을 잊지 말거라, 앞으로 네가 잘 살고
못사는 것은 순전히 너에게 달린 것이야. 옛날부터 시집을 가게 되면 귀머거리 3년 벙어리
3년 장님 3년이란 말도 있듯이 너는 그것을 명심하고 살거라. “
그리고 생각을 하니 아버지가 부르실 때에 내려오지 말고 그 내막부터 알았어야 하는 것을
하고 후회가 되는 것이었다.
처음으로 서울에 올라갈 때만 해도 시골 처녀가 서울에 가서 배겨낼 수가 있을까 하고 두려
움을 가지고 올라갔는데 막상 닥치고 보니 서울 아이들이나 저나 하기에 따라 돈을 벌수 있
겠다는 자신을 갖게 되고 얼마동안을 지나다 보니 서울이야말로 정필이가 능력을 제대로 발
휘를 한다면 못할 것이 없다는 자신감이 생기는 것이었다.
게다가 앞집의 점원으로 있는 총각의 눈초리가 날마다 다르더니 어느 일요일에는 한강으로
놀러 가자고 까지 하는 바람에 가슴은 마냥 부풀어 오르는 것이었다,
그 후에 일과가 늦게 끝이 나면 그 총각과 한강을 걸으면서 몇 번의 데이트도 하였는데 그
총각은 경상도가 고향이고 지금 이모부 댁에 와서 일을 하지만 군대를 갔다 오게 되면 대학
진학을 할 것이라는 포부까지 들려주었다.
총각과의 접촉이 잦아지는 사이 이 사람이 점점 좋아지자 장차 이 사람과 결혼을 해야겠다
는 마음을 먹고 있는데 갑자기 아버지의 부름을 받게 되고 생각지도 않게 결혼까지 하게 되
었으니 그때에 아버지의 말씀을 거역하지 못한 것이 여간 후회가 되는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신랑이라는 사람이 예상 밖의 행동을 하는 것이니 옴치고 뛸 수도 없는 처지가 된
정필은 자신을 생각해 봐도 너무도 한심하였다.
생각 같아서는 이 번 기회에 아주 헤어질 결심도 해보지만 아! 그러나 뱃속에는 생명이 들
어 있으니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데 신랑은 한 번의 손찌검으로 가정의 주도권을 잡은 양 저녁이면 날마다 술까지 받아
오라고 심부름을 시켜 얼른 말을 듣지 않으면 가차 없이 손발이 닿는 대로 때리고 차는 것
이었으니 거울을 볼 사이도 없이 얼굴은 날마다 푸르둥둥하게 상처가 나는 것이어서 창피해
서 밖을 나갈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 새댁의 얼굴이 왜 그렇게 멍이 들었어, 혹시 신랑 말을 안 들어서 그런 것 아니여. 기왕
에 맺은 인연인데 아까울 게 무어가 있어. 무엇이건 달래면 있는 대로 다 주라고 그러면 퍼
데 하고 나가자빠질 것이여. “
“ 내가 보건대는 사랑싸움이 아닌 것 같구먼 . 혹시 신랑이 술 많이 먹는 사람 아니여.”
“ 옛날부터 술 잘 처먹는 남정네 만난 여자는 일찌감치 헤어져야 팔자가 편다고 하였어. 술
처먹고 주정부리지 않는 놈 없고 주정부린 놈치고 색시 사랑하는 놈 못 보았어. 뭣하면 일
찌감치 헤어져뻐려 알겠어. “
“ 술꾼들이 거시기는 좋아한다던데 그것은 어때여. 그것도 없다면 무슨 재미로 산다는 기
여. 여자 팔자 뒤엉박 팔자라는 소리도 못들었어 .“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정필의 마음은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지는 것이었지만 그로서는
어떻게 할 여력조차 없었다.
정필은 워낙 마음이 여리기도 하지만 아버지의 그런 모습을 한 번도 보지 않다가 신랑의 술
주정하는 모습을 사흘이 멀다 하고 보게 되는데다가 상처가 난 얼굴이 낫지를 않자 사람들
은 어림짐작으로 신랑이 손찌검을 매일 한다는 사실을 안 다음부터는 동네 사람들이 모두가
정필이를 불쌍하게 취급을 하는 것이었다.
봄이 가고 여름으로 접어들던 어느 날의 일이다.
신랑이 하는 말이 고모님 네가 집을 한 채 지을 땅을 주신다고 하여 그렇게 하기로 하였다
는 말을 하여서 긴가민가하였는데 정말 어느 날 부터 일을 시작한다는 것이다
사실 그때마만 해도 시골에서 웬만큼 손재주가 있는 사람이면 집을 짓는 것은 보통 있는 일
이었다.
시집을 오자마자 좋은 집은커녕 남의 집 사랑방에서 신접살림이라고 시작하여 고생만 직사
하게 하는 판인데 집이나마 짓는다고 하니 속으로는 반가웠지만 겉으로는 달다 쓰다 말을
하지 않고 거동만 보기로 한 것이다.
정필 이는 그동안 신랑이 하도 집을 돌보지 않는데다가 돈이라고는 한 푼도 벌어오지를 않
아서 혼자 힘으로 품을 팔아가면서 쌀 됫박을 얻어오고 보리방아를 찧고 나서 보리쌀을 얻
어다가 쌀독에다가 붓다 보니 일을 한 보람이 있어 끼니거리가 떨어지지 않는 것만 다행으
로 생각하였다.
그런데 집을 짓는다고 한지 한 달 만에 새로 지은 집으로 이사를 간다면서 짐을 싸라는 것
이다.
짐이래야 세간나올 때는 아무것도 없이 나왔으나 그래도 한두 가지 살림에 보탬이 될 만한
물건을 사다 보니 지게로 두어 번은 나를 만큼 짐이 되었다.
멀리서 새로 지었다는 집을 바라보니 정필이의 눈에서는 눈물이 나오는 것이었다.
고모님의 말씀대로 사람이나 좋았다면 얼마나 좋았을 까만은 이건 날이면 날마다 어디 가서
누구를 만나서 술을 먹는지 집으로 돌아와서는 무슨 트집이라도 한 가지씩 잡고는 마누라에
게 손찌검을 하지 않는 날이 없었는데 그런 사람이 집을 짓고 별반 없는 이삿짐이나마 싸지
고 앞장을 서서 가니 한편으로는 대견스러워야 하지만 서글프기만 하였다.
이사를 하던 날은 동네 어르신들이 오셔서 치하를 해주시기에 정필이는 막걸리를 사오고 붓
치미를 붙여서 대접을 하자 고모님이 하시는 말씀이 정필이에게 미안하다는 말씀을 처음으
로 하셨다.
그 소리를 들으니 새삼스럽게 서울에 있을 때에 만나지 못해서 안달을 하던 총각 생각이 나
고 그 사람을 놓진 것이 너무도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사람과는 인연이 거기까지였
다는 생각에 한숨이 나오는 것이었다.
집을 짓고 나자 소나무 생가지로 울타리를 하고 장독대도 만들어 장항아리를 구해서 놓으니
집이 아담하게 보이기까지 하였다.
지금까지 신랑은 집을 짓느라 매일 쫓아다니다 보니 피곤해서 그런지 저녁만 먹으면 고단해
서 떨어져 자는 바람에 당분간은 손찌검을 하지를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였다.
막상 이사를 하고 나자 정필이도 지금까지의 생활방식을 바꿔보기로 한 것이니 그것은 소작
을 얻어서라도 직접 농사를 짓고 싶었던 것이다.
농산물 중에도 값이 나간다는 콩을 심으면 돈이 된다고 하여 그렇게 하기로 하고 6백 평을
얻어서 콩을 심었다.
콩을 심은 후에 싹은 잘 나왔지만 풀이 너무 무성해서 어느 날 정필이 혼자서 김을 매면서
집게를 바라보니 웬 연기가 나기에 의아해하고 있었는데 동네의 친척 아주머니가 뛰어 오시
더니 자네네 집에 불이 났으니 어서 가보라는 것이었다.
“집에 불이 나다니요.”
가슴이 후당당 울리는 것을 억지로 참고 집께로 달려가 보니 이게 웬일인가 새로 지은 집
이 불이 다 타서 폭삭 내려앉고 있는 중이었다.
집안일이라고는 전혀 돌려다 보지도 않던 사람이 나름대로는 정성을 다 해서 지은 집인데
지은 지 1년도 되지를 않아서 불에 다 탄 것이니 정필이는 울고 싶어도 눈물이 나오지를
않았다.
나중에서야 알고 보니 집을 짓고 나서 이엉을 해 잇고 나머지 짚단을 마당 한쪽에 모아 놓
았는데 아이들이 장난삼아서 마당 가운데에 있는 짚가리에서 놀다가 어느 애가 갑자기 성냥
을 그어대는 바람에 짚단에 불이 붙고 나중에는 울타리와 집에까지 붙어서 홀랑 다 타버렸
던 것이다.
정필이는 지금까지 모든 일은 뜻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는 절망감에서 집까지 타 없어
진 동네에서 다시 살고 싶지를 않아서 신랑이 가지 않으면 혼자만이라도 다른 곳으로 떠나
기로 마음을 먹었다.
콩을 털고 나서 콩을 팔러 장엘 갔다가 우연히 수산 리에 산다는 아저씨를 만나서 이야기를
하다 보니 거기엘 가면 화전을 일굴 수가 있고 옥수수를 얼마든지 심을 수가 있다는 말에
정필이는 이쪽으로 이사를 가야겠다는 생각에서 아저씨에게 수산리 가서 살고 싶으니 알선
을 좀 해달라고 하자 그는 쾌히 승낙을 하는 것이었다.
정필이가 집이 탄 부락이 싫어서 수산리로 살러 가겠다고 하자 남편은 이번에는 순순히 따
라가겠다고 하였다.
겨울이 오기 전에 수산리로 이삿짐을 싸들고 향하니 자기의 처지가 초라하기 짝이 없었지만
정필이의 마음만은 홀가분하였다,
수산리는 지금은 소양댐이 되어 물을 가두었지만 당시에는 소양강의 상류로서 공기가 좋고
곡식들이 잘 되는 곳이기도 하지만 여름철에는 사람들이 피서를 많이 오기도 하는 곳이다.
이듬해에 화전을 일구고 옥수수를 몇 말 심고 나니 마침 제때에 비가 내려서 옥수수는 여
봐란 듯이 잘 자라고 알이 들기 시작을 하자 산돼지가 나타나서 이것을 잘라먹기 시작을 하
는 것이었다.
옥수수가 하도 잘 되어서 그런지 산돼지가 먹고 남은 수확량이 엄청나자 정필이는 스스로
감탄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몇 년간만 이렇게 하면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돈의 맛을 본 신랑이 가만히 있지를
않았다.
경기도 덕소에다가 보일라 가게를 하고 싶으니 돈을 달라면서 하는 말이 시골에 와서 살아
보니 도저히 갑갑해서 못살겠어서 도회지로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도회지로 가자는 것은 신랑이 꿍꿍이가 있어서 하는 이야기로 정필이는 너무도 그 내막을
잘 알고 있었다.
옥수수를 겨우 3년을 하고는 다시 이사를 가자니 정필이는 속이 상하였지만 돈을 주지 않
을 수도 없어서 돈을 털어서 상점을 내라고 하고는 이사를 간 것이다.
지금까지 남편은 무슨 장사를 한다면서 어떤 때는 한 달 동안을 장돌뱅이로 돌아다닌다고
하였지만 돈이란 것은 한 푼도 집에 내놓지를 않았다.
객지에 가서 돈이라도 벌게 되면 그 돈은 술집에 오입질에 다 녹아났던 것이다.
큰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을 하고 둘째가 여섯 살에 그 밑으로 아이 셋을 더 낳아서 돌이
되었지만 돌잡이 옷 한 벌 사준 배가 없고 마누라가 애를 낳았지만 미역 한 오리 사온 배가
없는 사람이 저 유명한 신랑이었다.
그동안 아내가 돈을 벌어 놓으면 빌려 달라 하고는 얼마 있다가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
싶게 천연스럽게 손을 다시 내미는 것이 그의 버릇 중에도 못된 버릇이었다.
그래서 어떤 때에는 죽어도 돈을 못주겠다고 하면 미친 듯이 장롱을 때려 부수고 그렇지
않으면 마누라의 면상을 주먹으로 때려서 눈두덩을 시퍼렇게 해놓기를 수도 없이 하였다.
평소에 누가 보면 아주 점잖을 것 같으면서도 술이 한잔 들어가면 미친 개뼉따귀가 마술을
부리는지 눈을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미쳐서 날뛴다고 하는 말이 맞을 것이다.
사실 정필이가 시골에서 끼니거리가 없을 때의 소원은 옥수수쌀이라도 한가마니 머리맡에다
가 놓고 자면 소원이 없겠다고 할 정도로 참으로 어려웠던 시기가 있었던 것이다.
덕소를 간지 3년 정도 되었을까 그러던 어느 날 낯선 여자가 찾아왔는데 신랑의 이름을
아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내가 그 사람의 마누라 되는 사람인데요.” 하자 이 여자는 “ 예” 하고 놀라더니 “ 이런
잡놈이 어디 있어 뭐 지금 홀아비로 산다고“ 하더니 ” 이 놈의 모가지를 비틀어 버릴꺼야“
하더니 신랑을 찾아가는지 휭하게 내빼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정필이는 신랑이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지만 아직까지 한
마디도 하지 않은 것은 언젠가 뉘우치겠지 하였는데 제 버릇 개주지 못하고 지금까지도 그
버릇은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여자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정필이가 간혹 장마당에 가서 보면 하루 종일을 술집
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이가 신랑이었다.
집에서는 별 말이 없는 사람이지만 한번은 우전마당에 가서 소를 사오겠다고 해서 쫓아갔는
데 중개인은 저리가라 할만치 소에 대해서 흥정을 붙이는데 얼마나 잘하는지 몰랐다.
“ 여기 등가죽이 허옇게 벗겨진 암소 임자. 어서 와서 소 팔아요. 그런데 한참 있어도 임자
가 나타나지를 않자 어찌 된거여. 오라 그러고 보니 어디 낮 걸이라도 하러 가신 모양이군
그래.“
그 때에 저만치서 웬 사람이 하나 뛰어오는 것이다.
“소를 사시려구요.“
“그게 아니라 흥정 좀 붙이려고 하였는데 어딜 갔다 오는거요.”
“ 조반을 안 먹어서 .”
“ 밥이야 만날 먹는 건데. 딴짓 하러 갔다 온 게 뻔한데 무슨 조반 타령이야.”
“ 그게 아니고. 그래 얼마를 받아줄 건데 말이나 해봐요 .”
“ 말 하나마나 어디 냄새가 나서 흥정이나 하겠어. 오늘 장이 굿바이인데 집에 가서 마나님
한테 경치게 생겼어 알아요. 하하. “
이날 정필이는 신랑의 흥정술이 대단하다는 것을 느꼈지만 신랑은 그 다음에는 어디로 살
아졌는지, 이날 흥정 값을 단단히 받았을 텐데 마누라에게는 국밥 한 그릇을 사주지를 않아
서 쫄쫄 굶고 돌아왔던 것이다.
덕소에 가서 보일라 장사를 한다고 하였지만 경험이 스승이라는데 남의 말만 듣고 시작한
이 영업은 밑천만 홀라당 날리고 3년 만에 문을 닫은 것이다.
이리 되자 신랑은 다시 성남으로 이사를 가자는 것이었으니 거기에 가게 되면 초등학교에서
가장 친하던 친구가 중소기업을 하는데 취직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줄줄이 학교 다니고 지금까지 정필이가 벌어서 식구들을 겨우 먹여 살리는 것도
모르고 신랑은 어디 가서 자리를 잡기도 전에 자주 이사를 하게 되니 도저히 그의 비위를
맞출 수가 없어서 이제는 신랑 혼자 마음대로 다니라 하고는 이사를 따라가지 않겠다고 한
것이다.
그러자 신랑은 다시 술주정을 일삼고 폭력을 가하기 시작을 하는 것이었으니 할 수없이 지
겹지만 다시 이사를 가자는 곳으로 따라간 것이가.
그런데 웬걸 여기서도 1년을 벋히지 못하고 다시 군포로 이사를 가자는 것이었으니 이런
환장할 일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뿐인가 군포에서 다시 성남으로 안산으로 시흥으로 반포로 인제로 양구로 화천으로 홍천
양덕원으로 이렇게 이사를 한 것이 헤아려 보면 무려 서른 번도 넘었으니 군인가족들이 이
사를 많이 한다고 하지만 정필네 만큼 이삿짐을 싼 사람은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
본의 아니게 이삿짐을 쌀 때마다 눈물을 펑펑 쏟아야 했던 날이 그 얼마나 많았던가.
이사를 갈 때마다 아이들은 친구들과 헤어지는 것이 아쉬워서 눈물을 흘렸고 정필이는 정든
이웃과 짧은 이별이 슬퍼서 울기도 많이 울었다.
가는 곳마다 얼마 있다 보면 정필이가 얼굴에 붕대를 감거나 눈가에 시퍼런 멍이 드는 것
이었으니 그 모습을 보는 이웃사람들은 그것이 가정불화로 인한 폭력에서 기인된 것을 알고
는 깊은 동정을 하는 사람이 많았다.
우리나라 사람처럼 깊은 정을 느끼는 민족이 없다고 하듯이 없으면 나누어먹고 이웃의 아픔
을 서로 나누어 가지려고 하는 따뜻한 인심은 정필이로 하여금 더 많은 인내심을 갖게 하
는 용기를 갖게 하였던 것이다.
어떤 지역에서는 정필이와 동갑내기끼리 계모임을 갖기도 하였는데 정필이가 갑자기 이사
를 하게 되자 눈물을 흘리면서 이별을 아쉬워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이제 세월이 많이 흘러 과거의 아름다운 추억도 없이 나이가 들어가는 정필이는 아이들이
학교를 졸업하고 쉽게 취직을 하자 한시름을 놓은 것 같았다.
그동안 하던 일을 말해 보라면 이 나라에서 허드렛일이라고 하는 것은 안 해 본 일이 없을
정도로 고생을 한 것이 정필이다.
식당에서 설거지하는 일은 약과요. 집을 지을 때에 벽돌을 하루 종일 등짐으로 지고 높은
층까지 올라 다니는 일이야말로 가장 힘든 일중의 하나였다.
벽돌 지는 일이야말로 한 조가 편성이 되면 힘이 든다고 쉴 수도 없는 일이고 어디가 아프
다고해서 누구하나 대신해 줄 수도 없는 일이다.
인부 중에는 어딜 가나 정필이가 가장 나이가 많았지만 지금까지 나이 자랑을 한 배도 없고
오로지 일을 할 때에는 젊은 사람 못지않게 앞장서서 일을 하였다.
“ 언니 나이가 많으면 좀 쉬기라도 하시소. 일 하기가 얼마나 힘이 드는데 그 나이까지 일
을 하신대요. 듣자 하니 영감도 있다고 하더만. 이제 부터는 그 영감보고 돈 벌어오라고 하
시소. 언니가 일을 너무 열심히 하시는 것을 보니 나이 젊은 우리가 미안해서 그라요. 언니
오늘 저녁에 집에 가서 세수하고 거울 좀 가만히 보시소. 그리고 말을 하시소. “ 야야 내가
일을 너무 많이 한다고 흉들을 보는 사람이 있네. 이제 고만 쉬어볼까.“
정필이는 아우들이 해주는 말이 너무 고마워서 한참동안이나 그들의 얼굴들을 훑어보다가
는 다가가서 얼굴을 쓰다듬어주다가 울기도 자주 하였다.
가장 무거운 벽돌을 지고 갈 때에 해주던 말들이 지금도 뇌리에 남아서 정필이를 다독여주
고 있는 것이다.
날씨가 몹시 추울 때에 겨울옷이라고 하지만 워낙 남루하다 보니 황소바람이 소매 속으로
들어올 때에 바닷가에 나가서 해물을 손질할 때에 손이 곱아서 쩔쩔매자 어느 결에 돌을 달
궈서 곱은 손을 녹여주던 연안 부두의 안산 친구 애희는 지금도 날이 춥기만 하면 생각이
나는 친구이다.
해물 손질을 하다 보면 친구들은 싱싱한 해물 중에도 민어와 같이 연한 고기는 회를 쳐서
새빨간 초고추장에 찍어서는 누가 한 저름 더 먹을까봐서 닐늠 닐늠 잘도 집어서 먹어 정필
이도 먹고는 싶었지만 제비세끼들처럼 엄마만 기다리고 있을 자식들이 눈에 밟혀서 그 고기
한 저름을 입에 넣지를 못하였다.
정필이는 지금도 그런 저런 사유로 해서 먹을 기회를 갖지 않다 보니 지금까지도 생선회를
먹지 않지만 그 대신 매운탕은 맛있게 먹는데 그것도 먹은 지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런데 양덕원으로 와서 얼마 안 있다가 남편은 그렇게도 좋아하던 술을 먹지 못하고 시름
시름 앓기 시작을 하더니 곡기를 끊은 지 사흘 만에 홀연히 잠자는 듯이 운명을 하는 것이
었으니 인간의 팔자가 그것으로 끝이 나는 것도 모르고 한평생을 마누라를 제대로 사랑 한
번해주지 못하고 들볶기만 하다가 생을 마감한 것이니 불쌍한 존재로 끝을 맺은 것이다.
이제 정필네 아이들은 모두가 출가를 하였으니 그것만 해도 큰 짐을 내려놓은 것이다.
아이들은 이제 엄마는 일은 하지 말고 쉬라고 하지만 아직도 그냥 놀고 있기에는 시간
이 아까워서 노인정이나 다른 복지관에 나가서 봉사활동을 하는 것이다.
“ 일만 타고난 팔자인데 어떻게 내가 일에서 벗어난단 말이냐.”
어쩌면 일생동안을 중이 바랑을 걸머지듯이 일만 타고난 사람이기에 지금도 그는 아침에
눈을 뜨게 되면 훤하게 비춰지는 창문을 바라보며 오늘은 무슨 일이 기다리고 있을까 하는
생각부터 하는 것이다,
金 斗 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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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韓日親善(日本돗도리현)西伯郡 靑少年蹴球交流協會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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