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일관에서
초겨울이긴 하지만 아직은 따뜻한 햇볕이 온 세상을 감싸주는 지난 금요일 아침이다.
우리 모임의 이 재선 회장이 느닷없이 전화를 하여 수저를 들다가 받으니 지금 무엇을 하느냐고 묻는다.
“지금 막 조반을 먹는 중이여.”
그러자 허허 웃으면서 내일 12시 반까지 종로 3가에 있는 국일관 1층 이 대감 식당으로 오라고 하였다.
요즘이야말로 수저통에 열대어모양 집 주위에서나 빙빙 도는 사람을 갑자기 오라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하자 와보면 알거야 하면서 전화를 끊는다.
왜 자세하게 말을 하지 못하느냐고 재차 할 참인데 다시 전화벨이 울린다.
“이번에 모처럼 장편소설집을 냈다고 해서 축하파티 해주려고 하니 그런 줄 알고 나와. 알았지.”
나는 그제야 그의 말뜻을 알아들을 수가 있었다.
사실 나는 이번에 일제강점기와 6.25를 테마로 한 “아버지의 발자국”이라는 소설집을 내고 아는 사람들에게 보낸바 친구들이 이 거사에 대해서 축하를 해준단다.
다음날 한나절이 가까워 질 무렵에 청량리에서 인천행 전철을 타고 종로 3가 역에서 내려 국일관에 도착을 하였다.
이 식당은 위치가 좋아서 그렇기도 하지만 고기며 탕류의 음식이 맛깔스러워서인지 갈 때마다 좌석이 손님들로 가득하여 자리 잡기가 쉽지 않을 정도다.
더구나 이 댁의 종업원들은 한 결같이 지극정성으로 손님 접대를 잘 하기도 하지만 매니저 되는 분 또한 친절미가 넘쳐서 누구라도 좋은 분위기를 느낄 수가 있다.
지금은 시대도 많이 변하여 음식점도 옛날의 풍습이 남아 있는 곳이 드물지만 우리가 젊었을 때만 해도 식당에서 저녁이라도 먹고 난 후에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패거리가 되어 2차 3차에 걸쳐서 여러 집을 다녔는데 주로 발길을 옮기는 술집은 주인이 최고의 서비스로 손님들을 대해주는 집이었다.
아무튼 이날 나는 친구들 덕에 오래간만에 구름을 타고 하늘을 나는 듯한 축하를 받았는데 그 중에도 바쁘게 음식을 나르던 매니저가 책의 표지를 보더니 그림이 제목과 잘 어울려 마음에 든다고 하였다.
그는 바쁜 중에도 책의 순서를 훑어보고 나서 청소년은 물론 많은 사람들이 읽어야 할 역사서라면서 열 권 만사서 주변 분들에게 나누어 주겠다고 하였다.
뜻밖에 소리를 듣는 순간 나는 기분이 몹시 좋았지만 한편으로 생각을 하니 우리나라에서 글을 쓰는 작가들이 심혈을 기울여서 발행하는 책들이 전혀 팔리지를 않고 있는 현실이 개탄스럽기도 하였다.
우리는 지금 책이 서점을 가득 메워도 읽을 독자가 없는 세상에 살고 있는가 하면 시군이나 읍 소재지에는 당초에 있던 서점들마저 문을 닫아야할 형편에 놓여 있으니 참으로 안타깝지만 세상 돌아가는 추세가 그러니 어째볼 수가 없다.
메니저가 책을 산다는 말에 회장이 한 마디를 하였다.
“ 오늘 이 댁에 오기를 참 잘 하였네. 이 분이 그런 결단을 내리다니 어떻게 인사를 해야 하나요.”
“ 회장님. 제가 이래봬도 책을 무척 좋아하는 사람이에요. 저도 학창시절에는 소설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거든요. 오늘 축하 받으시는 소설을 읽어보지 않아서 모르지만 제목만 보아도 일제 강점기 하면 36년간이란 긴 세월을 일본 사람들에게 갖은 핍박을 받으면서 살아온 것이 우리민족이 아닙니까. 그야말로 철권정치를 받으면서 살아야 했던 우리 동포들이 얼마나 가여운 처지였어요. 농사를 지어도 공출로 빼앗겨 엄동설한에도 굶으면서 날을 보내야 했고 일본 순사들에게 죄 없이 끌려가서 구타를 당하고 재산을 빼앗기기도 했던 우리의 조상님들! 지금 우리는 지구상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가 되었지만 결코 지나간 역사를 잊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6.25에 대한 이야기도 수록이 되었다는데 6.25야말로 공산주의자들로 인해 우리나라가 송두리째 없어질 뻔 한 전쟁이 아닙니까. 세계평화를 위해 참전한 유엔군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우리가 살아난 생각을 하면 우리는 영원히 그분들을 잊지 않아야 하고 어렵게 살고 있는 그 후손들에게 도움을 주어야 합니다. 게다가 북한은 핵과 미사일로 한국을 공격하려 하는데 과연 우리나라는 이에 대한 대비를 철저히 하고 있나요. 얼마 전에 휴전선의 사선을 넘어 북한의 민간인이 탈북을 해온 것을 미처 발견하지 못하였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과연 우리의 최전방이 이렇게 뚫려도 되나 하는 생각을 하며 어느 때보다도 정신을 바짝 차려야 살아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였어요.”
“ 참으로 옳으신 지론을 펼치시네요. 나는 매니저가 그렇게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인 줄을 미처 몰랐는데 장하십니다.”
“ 회장님. 그건 과분한 말씀이구요. 나라가 잘 되어야 우리도 편안하게 살 수 있는 것 아니에요.”
그는 덧붙이기를 작가님들이 좋은 책을 써도 그 책을 사서 읽는 사람들이 없다고 하니 우리 나라의 미래가 걱정된다면서 자라나는 청소년들의 독서력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학교 교육이 바르게 나가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나는 그 분의 말을 들으면서 참으로 훌륭한 생각을 가지신 분이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꼈다.
사실 하루 종일 손님을 대하면서 음식을 나르고 각종 심부름을 다 하게 되면 피로가 쌓여 때로는 쉬고 싶을 때도 있을 것이지만 그분은 손님 앞에서는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이 자기의 본분을 다하는 것이 눈에 보이고 있었으니 이 식당에 손님들이 몰리는 것이 다 이유가 있었다.
이날 나는 친구들의 분에 넘치는 축하를 받기는 하였지만 책에 대해서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는 매니저 박 주영씨를 다시 보았다.
지금 우리는 코로나로 모두가 어려운 처지에 있지만 하루 빨리 이 난국이 수습되어 어느 가정이나 불안하던 얼굴에 환한 웃음꽃이 피어나기를 바라고 싶은 하루였다.
金 斗 洙
※ 약력에 첨부
‣ 아버지의 발자국 (장편소설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