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쿠비(애칭)는 이번달에도 조용히 넘어가지 않았다. 첫달 잡소리 문제로 앞유리 몰딩을 교환하고 두 번째 달에는 엔진오일이 조금씩 새서 수리를 했다. 이번달은 더 황당하게 운전 중 클러치 계통의 트러블로 길가에 서버렸다.
2월 15일 일요일 저녁, 집안의 저녁 모임에 가는 중이었다. USB를 통해 음악을 들으며 운전 중이었고 완만한 언덕에 접어들면서 속도가 줄었다. 본능적으로 클러치를 밟고 4단에서 3단으로 내리며 오른발로 살짝 rpm을 보정하며 클러치를 붙이고 다시 액셀레이터 페달을 밟아 가속을 하는 순간이었다.
예상대로라면 “부웅” 하는 배기음을 듣고 터빈이 만드는 토크감을 등뒤에서 느끼며 언덕을 가뿐히 넘어야 했다. 하지만 부웅거리며 타코미터 바늘만 4천~5천rpm까지 치솟을 뿐 속도가 점점 떨어지는 게 아닌가.
‘이거 왜 이러지?’ 움직이던 속도에 맞게 기어를 바꿔도 힘이 나지 않는 건 마찬가지다. 회전수만 올라가고 차가 나가지 않는다. 탄력으로 겨우 언덕을 넘어가 길가에 정차했다. 시동을 끄고 1분 정도 마음을 가다듬었다.
다시 클러치를 밟고 스타트 버튼을 눌러 시동을 걸었다. 왼발로 전해오는 클러치 페달의 답력이 평소와는 다르게 끝부분이 굳어 있는 느낌이었다. 1단 기어를 넣고 rpm을 5천까지 올려야만 마치 소가 끄는 달구지처럼 슬금슬금 움직였다.
차를 안전한 곳에 세우고 나름대로 원인을 분석해보았다. 전에 주행거리 16만km가 넘은 오래된 수동차(닛산 240SX)를 타던 중 클러치가 나간 경우가 있었다. ‘클러치가 붙었다’고 하는 상황이었는데, 그때는 클러치 페달이 쑥 들어가 나오지 않고 기어도 넣기 힘들었지만 이건 다른 상황이다. 기어는 잘 들어가는데 엔진 토크가 클러치를 통해 기어로 전달되지 않고 계속 헛돌았다.
움직일 수 없다고 판단하고 현대자동차 긴급출동서비스센터에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20분 후 현대차 엔지니어가 베르나를 타고 도착했다. 그가 시운전을 하는데 아까보다는 상태가 조금 나았다. 즉, 2천~3천rpm으로 올리니 차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움직이는 rpm 시점만 낮아졌을 뿐 여전히 클러치가 슬립하는 상태. 짧게 한 바퀴를 돌고 나서 엔지니어도 엔진과 트랜스미션을 연결하는 클러치와 플라이휠 부분에 이상이 있다는 진단을 내렸다. 그리고 공장에 들어가야 한다며 견인차를 불렀다. 제네시스 쿠페는 뒷바퀴굴림이어서 차 전체를 싣는 세이프티 로더 견인차를 이용했다.
저녁 모임에 참석도 못하고 저녁도 굶은 채 서울 원효로 현대 서비스센터에 젠쿠비를 입고시켰다. 그 와중에 긴급서비스센터 담당자는 클러치 계통은 소모품이이어서 운전자 과실로 고장날 가능성도 있고, 그럴 경우 무상 서비스가 안된다고 조심스레 이야기했다.
“수동운전 16년에 넉 대째 수동차를 타고 있는데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고요! 이전 차들은 더 오래 타도 아무 문제 없었다고요!” 출고한 지 석 달 그리고 주행거리 6천km도 안된 새차가 길에서 퍼진다는 건 이해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그리고 다음날부터 회사에 나가야 하고 차 없이는 움직이기 힘든 사정을 이야기했다. 참고로 <카비전> 기자나 롱텀(long-term)에 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제네시스 쿠페도 제네시스급의 프리미엄 서비스를 받는다고 매뉴얼에 써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우긴 덕분인지 젠쿠비를 입고한 현대 서비스센터에서 은색 제네시스 세단(BH330)을 내주었다. 결국 AS센터에서의 일을 마무리하고 제네시스 세단으로 황급히 모임에 나갔으나 저녁 식사는 끝난 후였다.
오랜만에 만난 친척들은 한마디씩 했다. “새차가 왜 벌써 고장이 나냐?”, “진상부리면 새차로 바꿔준다던데”, “대차로 받은 제네시스 세단 좋으냐?”, “카비전 롱텀 기사거리 생겼네!”, “고속도로에서 그랬으면 위험할 뻔했네” 등등.
한바탕 난리법석을 떨며 일요일 저녁에 입고시킨 젠쿠비는 이틀 후 수리가 완료되었다. 황당한 것은 수리를 담당했던 엔지니어는 확실한 원인을 알 수 없다고 했다. 분해했던 클러치와 플라이휠의 상태도 육안으로 멀쩡했다며 직접 보여주었다. 결국 운전 미숙으로 클러치를 과도하게 태우지 않았다는 것은 일단 증명됐다.
문제가 되었던 클러치와 플라이휠 부분의 부품은 모두 새것으로 교체했다. 클러치의 답력과 깊이가 살짝 변한 듯하지만 어쨌든 차의 상태는 정상으로 돌아왔다. 이제는 마음을 비우기로 했다. ‘그래, 똑같은 고장이 계속되지만 않는다면 계속 무상서비스로 고치면서 타자!’고 좋게 마음먹기로 했다.
인터넷 자동차 쇼핑몰에 서서히 제네시스 쿠페(젠쿱) 튜닝용품이 나오고 있다. 또한 젠쿱 동호회에서도 매일같이 튜닝 용품을 공동구매하거나 구입 후기가 올라와 지름신을 압박하고 있다.
날씨가 풀리면 순정상태 젠쿠비의 성능을 와인딩과 서킷에서 확인해볼 계획이어서 엔진이나 섀시 튜닝은 당분간은 하지 않기로 마음 먹고 그분(지름신)의 유혹을 물리치고 있다. 그리고 혹시나 엔진 쪽에 문제가 생길 경우 순정 상태를 유지해야만 무상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것도 늘 생각하고 있다.
그러던 중 지난달 젠쿱 동호회 공동구매란에 올려진 스포일러를 본 순간 마음을 빼앗겨 덥석 구입해 달아버렸다. 시퀀스라는 국산 제품으로 2007년 LA 오토쇼에 선보인 주황색 제네시스 쿠페 컨셉트카 스타일의 트렁크 리드 일체형 스포일러다. 공동구매가 9만9천 원에 도색 비용 4만 원이 추가되었다. 장착은 직접 지하주차장에서 했다.
카비전, 2009년 0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