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에 손을 얹고 길을 묻다
양상태
새삼스레, 인생이란 참 묘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쩔 수 없이 살아가야 하는지, 살아가게 되는 것인지, 살아주는 것인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을 때가 있다. 아주 오래된 대중가요 가사처럼 ‘인생은 나그네 길’이라면 나는 영원한 ‘하숙생’이란 말인가?
새해가 밝아 어쩔 수없이 나이를 한 살 더 먹게 되어 나잇값을 해야겠다고 다짐을 해보았다. 내 삶의 의미 있는 일에 가치를 불어 넣어, 말년에 스스로 크게 후회하지 않고 적어도 억울해하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어디에, 누구에게 약속이나 맹세도 하지 않았지만 ‘죄를 짓고 살지는 말자’는 마음으로 나름 바르게 살려고 노력해 왔다. 때로는 중용의 미덕으로 원만한 삶을 추구해 보기로 한다.
독서량이 많은 것도 아니고 글을 거의 써보지 않았던 내가 수필이라는 문학 장르에 올라타서 내 속마음을 여는 게 쉽지는 않을 것이다. 국문학을 전공하신 선친과 누님의 핏줄 탓인지 가끔은 스멀스멀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이 마냥 부러웠다.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을 새기며 용기를 내보려 한다. 이제 가슴이 뛰기 시작했으니 이미 반은 된 것이 아닌가 싶다.
나의 유소년 시절, 우리 집 서가엔 국어 대사전을 비롯해 문학전집 수백 권 등 제법 많은 책이 가득했다. 거의 매일 드시는 술값과 수시로 구입하는 월부 책 대금으로 아버지의 월급봉투는 늘 얄팍해서 어머니의 살림살이는 팍팍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또 하나, 아버지는 수년간 매일 아침 집안에 시 낭송 엘피판을 틀었다. 가족들 모두가 어쩔 수 없이 일방적으로 명시 낭송을 들어야 했으니, 나중에는 저절로 암기되어서 시의 구절을 잠꼬대로도 중얼거리게 되었다.
“중고교 시절 국어 공부는 안 해도 점수가 잘 나왔다”라는 막냇동생의 말을 얼마 전에 듣는 순간, 우리 삼 형제가 모두 이과 출신인데도 문학적 감성만큼은 아직도 살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타깝게도 일찍 작고하신 아버지의 아름다운 유산이라고 생각하고 감사하는 마음이다.
그동안 여러 가지 취미생활도 해보았다. 악기를 배워보려고 악기점에 갔다가 그 자리에서 포기하기도 했고 헬스장, 수영장, 요가학원, 사진학원에도 기웃거리며 수강해 보았으나 두세 달 넘기기가 힘들었다. 여러 해 동안 그림 공부는 하고 있으나 여러 가지가 부족한 탓에 아직도 성취도가 바닥에서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시력이 좋지 않고 쉽게 피로를 느끼지만, 여행을 갈 때도 책은 빠트리지 않는다. 우연한 기회에 도서관에 들러 서고에서 책을 고르다가 문득 ‘글을 써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쳐 나름대로 장고長考의 시간을 가졌었다. 글을 써서 세상에 선보이게 된다면 누군가 의해 읽힐 것이라는 두려움이 우선 앞섰다. 중요한 입시를 앞둔 학생의 조마조마한 심정이랄까. 그저 송연悚然할 따름이다. 그러나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아주 부족하지만 앞으로 나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차근차근 글로 엮어나가고 싶다.
많은 책을 읽고 생각에 깊이를 더하여 글을 많이 써보아야 하겠다. 마트에 가서 진열장에 놓인 상품을 바구니에 주워 담는 일보다는 서고를 지나며 보고 싶은 책을 만나고 읽는 것이 얼마나 뜻있고 즐거운 일인가? 보고 싶어 했던 몇 권의 책을 들고 도서관을 나설 때 이미 마음의 양식을 가득 품은 부자가 된 듯이 뿌듯한 기분을 무엇에 비유하겠는가?
나중에 저승에 갈 때, 잠시라도 연옥에 머무를 시간이 주어진다면 거기에서도 한 줄의 글이라도 더 읽어 머릿속에 소중히 담아 가고 싶다. 그래서 앞으로 부지런히 읽고 또 쓸 것이다. 책을 가까이할 수 있는 여유와 환경을 마련해 준 아내가 가까이 있어 요즈음엔 하루하루가 더욱 고맙고 든든하다.
글쓰기와 독서를 통해 지난날을 되돌아보고 깊게 성찰하면서 보람 있게 하루하루를 이어 나가야 하겠다. 지나가는 것도 오는 것도 쉽사리 움켜쥘 수 없는 무기력한 존재이지만 작은 것이라도 크게 얻어서 소소한 행복을 느낄 수 있다면, 지금부터라도 반드시 그리해야 할 것이다.
불현듯 예전에 암송했던 시구가 떠오른다. 밝고 낙천적인 여유를 닮고 싶다.
『강냉이가 익걸랑
함께 와 자셔도 좋소
왜 사냐 건
웃지요』
* 김상용, 『남으로 창을 내겠소』 중에서
첫댓글 좋은 DNA를 물려받으셨네요.
그리고 그 결의 참 좋습니다.
어떤 분이 수필을 써도 잘 쓰겠다는 말이 좋아서 글쓰기를 시작했지만 부끄러운 일이었어요.
갈증을 해소할 수 없는 긴 싸움이기도 하구요.
시나 수필이나 주관적 사유를 뒤집어 보는 일이기에 조심스럽기도 하구요.
뚱글마치님의 타고 난 글성을 응원합니다.
왜 글을 쓰냐 건 그냥 웃을 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