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조
시편 8편 1절에서 3절은 하나님의 창조능력을 찬양한다. 4절은 분위기 전환을 하는 지점이며, 인간에 관하여 이야기한다. 5절에서부터 인간은 발전을 한다. 1절에서 3절까지 높으신 하나님을 이야기 하다가, 4절을 정점으로 반대되는 인간의 연약함이 부각된다. 시편 8편이 사용하는 시적 수사법은 히브리 시구의 그 배열구조를 통해서 볼 때 시의 첫 부분(1절)과 그리고 정확하게 이 시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는 그 중간 부분(4절)과 그리고 그 끝 부분(9절)에서 세 번 반복해서 나타나고 있는 “마-” 문장, 즉 “무엇입니까”라는 말로 시작되는 문장의 그 구조적 배열은 괄목할 만큼 눈에 띈다. 수사적 구조가 말하고 있는 그 첫 번 째 의미는 이 시인의 인간학이 철저히 하나님의 창조행위를 찬양하는 찬양의 틀 안에 들어 와 있다는 것과 그리고 그 두 번 째 의미는 하나님의 위대한 창조업적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위엄과 존귀에 비하여 인간의 연약함과 비천함이 매우 대비적으로 대조되고 있다는 점이다.
◈ 배경
시편 8편의 지은이는 고대의 문서로 알려진 창세기 1장에 나오는 “이마고․데이” 창조론을 전혀 모르는 기원전 9세기만큼이나 먼 고대의 야비스트 문서의 인간학(창세기 2, 3장)과 바빌로니아 포로 후기의 제사문서 기자(P)의 인간학(창세기 1장)을 모두 수렴하고 종합함으로써 구약적 인간학의 역설적 양면성, 즉 “먼지”로 표현되는 허약하고 허무한 피조성을 지닌 인간성과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최고 최대의 존엄성 사이의 역설적 총화를 수립함으로써 구약적 인간학을 집대성하여 완결 지은 자이다. 그러나, 이 역설적으로 종합된 인간학을 시편 8편 지은이는 철저히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하는 찬양시의 장르 안에서 소개함으로써 소위 “신학적 인간학”(神學的 人間學)을 수립하였다.
◈ 나름의 어설픈 주석
1. 시편8편 4절이 말하고 있는 “에노쉬”와 “벤 아담”은, 언어학적으로 살펴보면, 허약한 존재
에노쉬와 벤 아담은 하나님의 기억과 보살핌 없이는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연약한 존재를 지칭한다. 히브리어 “에노쉬”는 “연약한”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 아카드어 enēšu, “병약(病弱)한”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 성서 히브리어 “아나쉬”, 그리고 “불치의 병을 가진”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 “아나쉬”의 수동형 등과 같은 어의(語義)를 갖고 있어서 이 “에노쉬”라는 말은 구약성서는 사멸할 존재, 병약하여 풀처럼 소멸 되어가는 존재를 가리키는 말을 쓸 때 사용되는 하나의 대명사적 언어가 되었으며 이 말과 대표적인 시적 평행어는 구약에서는 전적으로 “벤 아담”이라는 말로서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2. 시편8편 5절 “와우”(wāw) 반어문장에 의하여 시의 분위기가 바뀐 시편 8편 후반부에 나타나는 이마고 데이(Imago Dei) 신학
시편 8편 후반부의 인간학은 전반부의 어두운 분위기로부터 현격한 전환과 발전을 한다. 이것은 신학적 연구의 주목을 받는 부분이다. 그런데 이 시에 나타나는 그 전환에 대한 예고 표시는 “와우” (wāw)라는 히브리어 접속사의 특수기능에서 나타난다. 이 “와우” 접속사가 단순히 “그리고”라는 의미만을 갖고 있지 않고 아카드어의 전접어 “-마”(-ma)에서와 같이 “주제전이”를 알리는 기능을 한다. 5절의 첫머리에 나오는 “와우”(wāw)는 J문서적 인간학으로부터 P문서적 “이마고․데이” 인간학에로의 주제전이를 나타내는 지시적 기능의 접속사이다.
◈ 신학
“인간은 무엇이냐?”라는 시편 8편 기자의 질문은 창조주 하나님의 찬양이라는 문학적 틀 안에 들어와 있다. 그 질문이 전혀 철학적이지 않고 신학적 성격의 물음이다. 시인은 이러한 물음을 하나님의 창조업적 속에 나타난 창조주 하나님의 높고 위엄 하심에 대한 놀라움과 과장법적 경탄에 날카롭게 대조시키면서 “인간이란 도대체 무엇입니까?”라고 묻고 있다.
이러한 표현의 그 문맥은 창조자의 높으신 위엄과 피조적인 인간의 연약성, 즉 창조자와 그에 대한 인간의 의존성을 날카롭게 대비시키고 있다. 이러한 대비법을 통한 인간의 연약성과 의존성에 대한 강조는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인간의 존엄성을 강조하는 창세기 제1장의 P신학보다는 오히려 창세기 2장과 3장의 J의 신학에 훨씬 더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창세기 2장7절과 3장19절의 흙은 먼지로 된 것이다. 이 “먼지”(앗팔)는 “땅”(아다마)이라는 말의 한 변형으로 간주될 수 있다. 시편 8편이 말하고 있는 연약한 피조물로서의 인간, “에노쉬”와 그리고 낮고 비천한 존재라는 의미의 “사람의 아들”, 즉 “벤 아담”의 개념은 창조주 하나님과 그가 지으신 땅에 예속된 “허약하고 연약한 사멸의 존재”라는 의미를 가지며 그것은 전적으로 P보다는 J의 신학과 더 긴밀하게 상응한다고 볼 수 있다.
※ 시편 8편의 신학을 요약하면, 하나님을 찬양하는 시로서, 하나님 중심의 인간학(theocentric anthropology)을 노래하고 있다.
(참고문헌)
김이곤, “시편 8편에 나타난 신학적 인간학”
김이곤, “와우(wāw) 형태소에 관한 한 고찰”, 『신학연구』(21집).
첫댓글
본문도 병기해주시면 이해에 더 도움이 될 것 같아요.
네, 알겠습니다.
다시 천천히 읽어 보니 내용이 아주 깊네요. 신학적 인간학이란 표현 참 좋습니다.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