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오시마(Naoshima)
치추미술관이 위치한 일본 나오시마에 대한 이야기가 먼저 언급되어야 할 것 같다. 일본 혼슈와 시코쿠 사이에 있는 섬, 나오시마는 199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인구 3000명밖에 되지 않는 어업중심의 작은 섬마을에 불과했다. 더구나 당시 지역 내의 구리제련소에서 배출되는 유독가스로 환경이 매우 열악했다.
 치추미술관 외부전경 |
그러나 1989년부터 몇 가지 프로젝트의 시행 이후 매년 30만여 명의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명소로 탈바꿈했다. 베넷세라는 출판사 사장 후쿠다케 소이치로는 창업주였던 선친의 유지를 받들어 어린이 캠프장건립을 시작으로 이곳을 세계최고의 문화의 섬으로 만들어보겠다는 야심 찬 포부를 펼쳤다. 그는 건축가 안도 다다오와 협력하여 현대미술과 자연 그리고 역사가 어우러진 프로젝트를 구상하여 낙후되어 있는 작은 섬을 발전시킬 계획을 만들었다. 1989년 국제캠프장, 1992년 베넷세 하우스완공을 비롯하여 그 후 지속적으로 오발, 치추미술관, 파크와 비치, 그리고 아트하우스 등이 준공되었고 아직껏 후속 계획들이 진행되고 있다.
 베넷세 하우스 진입통로 |
2004년에 완공된 치추미술관은 안도 다다오가 월터 디 마리아, 제임스 터렐 등의 예술가들과 함께 건축설계와 예술 설치 작업을 진행하였다. 나오시마 현대미술관에서 서쪽으로 약 600미터 떨어진 염전이 남아있는 언덕에 지어진 이 미술관은 산 정상을 5층 높이로 절개하여 그 속에 모든 기능을 다 집어넣고 치주(地中)미술관의 이름대로 다시 흙을 덮어 ‘일본의 지중해’라고 칭송되는 세토 내해의 경관을 훼손치 않고 그대로 살렸다 내부 각 영역의 중심부에 위치한 삼각형, 사각형 모양 천창의 윤곽만으로 들어날 뿐이다.
 베넷세 하우스 전시장 내부 |
미술관 진입부터 입장객의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노출 콘크리트의 엄격함이다. 좁고 어두운 통로를 길게 따라 가다 보면 콘크리트 벽면에 둘러싸인 파란 들판이 나온다. 이곳은 안도가 디자인한 사각형의 하늘이 뚫린, 인간이 자연과 만나는 중정이다.
 안도 카운티야드 |
이곳을 지니면 큰 계단으로 만들어진 방으로 안내된다. 미술적 시각을 대지를 통해 표현하는 작가인 월터 디 마리아가 직접 내부의 건축까지 관장한 그의 방이다. 중앙에 대리석의 큰 구(求)가 눈길을 끈다. 그리고 다양한 다각형 기둥 형태의 조각물들이 3개씩 짝을 지어 벽면에 서있다. 천정에서 들어오는 빛과 어우러져 금빛을 내뿜는 나지막한 기둥들과 짙은 색깔의 대리석은 밝은 콘크리트 벽면의 실내에서 서로 얘기하듯, 서로 도와주듯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방안의 분위기와 형태를 다르게 연출한다.
 디 마리아 공간 |
다음 방에서는 모네의 수련이 자태를 뽐내고 있다. 많은 미술관들이 모네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지만 여기처럼 소수의 작품으로 큰 효과를 내는 곳은 드물다. 빛의 화가라 불리는 모네의 작품은 그의 붓 터치가 성급해 보일 수 있을 정도로 순간의 빛을 잡아내는데, 이곳에서 만나는 그의 작품은 이곳에서 그만의 빛을 유감없이 발하고 있다. 특히 매표소와 미술관 사이에 만들어진 정원은 프랑스의 지베르니(Giverny)에 있는 모네의 집 정원을 재현해 모네의 수련정원이라 이름 붙여졌다.
 모네 공간 |
다음 공간은 삼각형의 대리석 조각을 흩뿌려놓은 중정이다. 특히 이 중정을 감싸는 노출 콘크리트 벽은 좁은 틈을 찢어 긴장감을 자아내게 한다. 반대편으로 보이는 틈새로 기대감을 깊이 갖게 하고 그 사이로 흐르는 빛은 극적인 콘트라스트를 만든다. 안도가 자연광을 이용하여 공간을 연출 한다면 살아있는 최고의 빛의 마술사라 불리는 제임스 터렐은 인공조명으로 색다른 공간을 연출한다. 터렐은 빛을 사물을 조명하기 위한 단순함으로써가 아닌 비물질적 존재에서 공간을 표현하기 위한 창조적인 장치로 물질화시킨다. 얼마 전 토탈미술관의 초청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선보인바 있는 터렐은 빛에 대한 놀라운 재미와 감동을 동시에 선사한다.
 제임스 터렐의 오픈 스카이 |
치추미술관에서의 대미는 성수기에는 주3회, 비수기에는 주2회 금, 일요일 밤에 하는 스페셜 체험이다. 30명 내외의 관람객을 한정하여 터렐의 전시 끝 방에서 빛의 변화를 자연과 더불어 치밀한 계산 하에 경험하도록 만든 것이다. 어둠이 깊어 감에 따라 칠흑같이 어두워지는 하늘과 방안의 벽의 색은 환상적인 조화를 이룬다. 특히 기온이 내려감에 따라 변하는 온도를 체감하는 것과 일렁이는 바람을 피부 코끝으로 느낄 때 감동은 배가 된다. 숨소리까지 느껴지는 적막은 어떤 아름다운 음악보다 더 크게 가슴을 울린다.
 ‘아트 하우스 프로젝트’에 의해 관광자원으로 재탄생한 고 슈린 |
아트 하우스 프로젝트(Art House Project)
치주미술관 말고도 나오시마에서는 ‘문화의 섬’ 프로젝트에 의해 마을들이 어떻게 변할 수 있는가를 곳곳에서 체험할 수 있다. 아트하우스 프로젝트(Art House Project)로 카도야, 미나미데라, 고 슈린, 이시바시, 고카이쇼, 하이샤 등 마을에 있는 오래된 집들을 예술가들의 작업으로 복원하고 변모시켜 관광자원화 했다.
 이시바시(왼쪽)와 하이샤 |
나오시마는 예술 프로젝트를 통해 열악한 환경을 새로운 가치를 지닌 장소로 탈바꿈시킨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굳이 빌바오 구겐하임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예술가와 건축가의 협업은 인간환경의 가치를 바꾸어 놓는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치추미술관의 중앙, 커다란 전시실에는 단 4점의 작품이 걸려있다. 인상파 화가 클로드 모네의 연꽃을 주제로 한 작품들. 모네가 살아있을 때 비평가들은 모네의 거친 및그림과 강렬한 색채에 대해 회화의 기초도 모르는 초보자라고 비난하기도 했다고 한다. 실제로 최대한 자연스러운 조광을 유도했다고 하는 전시실에서 직접 모네의 작품을 가까이서 보자, 웃음이 나오긴 했다. 거대한 캔버스의 구석은 제대로 물감이 입혀지지 않은 부분도 있었기 때문이다. 꽤 성격이 급한 사람이었나보다...라고 생각을 했지만, 사실 모네의 화풍에는 몇 가지 특색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빛의 화가라고 칭송받는 그가, 자신이 육안으로 본 빛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빨리 그릴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빠르고 굵은 터치를 이용해서 그 때 그 때 달라보이는 빛의 색을 표현하기 위해 팔레트도 사용하지 않고 캔버스위에서 색을 섞어 표현하기도 했다고.

살아있는 최고의 거장, 빛의 마술사라는 수식이 따라다니는 제임스 터렐은 로스엔젤레스에서 태어나,심리학을 비롯하여 화학, 물리학, 천문학, 지리학, 미술사학 등 다양한 분야를 탐구하였고, 졸업 후에 캘리포니아대학교와 클레어몬트 대학원에서 미술사를 공부했다. 침묵의 예배와 내면의 빛으로 대표되는 퀘이커 교도인 그는 조종사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비행을 통해 대기변화와 그에 따른 하늘의 색채 변화 및 대자연의 장엄함을 체험했으며, 이는 전 작품을 통해 드러나는 빛과 공간에 대한 인식의 바탕이 되었다.
터렐은 빛을 단지 사물을 조명하기 위한 소극적 장치가 아닌, 공간을 표현하기 위한 창조적인 매체로서 제시하는데, 대학 시절, 미술사 수업 중에 슬라이드 필름에 담겨 화면에 투사된 이미지을 본 후 슬라이드 프로젝터에서 나오는 빛에 주목하게 되었고, 그 이후로 40여 년간 빛을 소재로 삼아 작업을 해왔다.
터렐은 비물질적 존재인 빛을 물질화하고, 그것을 매개로 착시현상을 이끌어낸다. 관객은 작품 안에서 그 물질화된 빛을 체험하게 되는데, 이러한 초월적인 경험을 선사하기 위해 작가는 관객에게 짧게는 5분, 길게는 30분에서 1시간 이상 작품 안에 머물러 줄 것을 요청한다. 시간의 지속과 함께 관객은 내적 성찰에 이르게 된다고.
“My work is about space and the light that inhabits it. It is about how you can confront that space and plumb it.
It is about your seeing, like the wordless thought that comes from looking in a fire.” - James Turrell
치추미술관의 제임스터렐의 작품 중 '오픈 스카이'라는 작품 안에서 30분 이상 있었다. 이 작품은 머리 위의 하늘을 거대한 프레임에 가둔 작품으로 계속해서 구름도 흘러가고, 비행기도 보이고, 새도 날라가고 해도 도저히 금방 일어날 수가 없었다. 별을 봐야하는데..라는 생각을 했는데, 당시엔 몰랐으나 찾아보니 야간 오픈에 대한 안내가 사이트에 나와있다. 다음에 가는 사람들은 반드시 이용해보시길. https://www.chichu.jp/forms/?mode=sky&lang=j

월터 드 마리아는 1935년 태어나, 역사와 예술을 전공하고 미니멀 아트 그리고 개념 미술의 맥락에서 대지미술 작업을 한 작가이다. 월터 드 마리아의 유명한 작품은 <번개치는 평원 Lightning Field>
치추미술관에 전시된 작품 'Time / Timeless / No Time' 은 서늘한 지하 공간에 그것도 계단의 중간에
놓인 거대한 구와 27개의 다각형 기둥, 천장에 뚫린 창에서 들어오는 빛으로 이루어진 작품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미묘하게 변화하는 빛에 의해 방 전체의 분위기와 형태가 변한다.
안도타다오는 제임스 타렐, 모네, 월터 드 마리아 이 세 작가의 작품을 미리 선정해 놓고 전시관의 기획에 들어갔다고 한다. 그래서 이 작품들은 이 나오시마의 치추미술관에만 볼 수 있는 영구 전시품이다.
단 3명의 작가의 10개도 안되는 작품을 영구 전시하면서, 이 미술관은 연간입장권을 1만엔에 판매하고있다. 똑같은 작품을 또 보러 사람들이 1년에 몇 번씩 오겠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람들은 온다. 이 미술관의 진짜 주인공은 한순간도 똑같은 모습을 보이지 않는 빛이라는 4번째 작품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