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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고통, 그 높이와 깊이 - 남해 설흘산 산행기 ,
2013년 4월 2일, 경남 남해 설흘산으로 산우회 4월 첫 산행을 떠난다. 설흘산(雪屹山 481.7m)은 다랭이마을로 잘 알려진 남해군 남면 가천리 다랭이마을의 뒷산이다. 눈이 내린 듯(雪) 산이 높고 험하다(屹)는 뜻을 지니고 있다.
남으로 내려갈수록 비는 개고 하늘은 청청하다. 섬진강이 긴 여정을 마치고 남해 바다와 얼싸안는 광양만 주변에는 이미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남해대교, 노량해협의 사나운 물길이 벚꽃에 가려져 고요하게 느껴진다. 관음포 앞바다를 보며, 무술년 동짓달의 사나운 바다에서 순절한 충무공을 생각한다. 모항 없는 바다에서, 일본으로 퇴각하려는 고니시 유키나가의 전함을 가로막고 서 있는 한 사내의 비장한 표정을 떠올린다.
물결은 사나웠다 “노량의 . 치솟는 물기둥의 허리를 바람이 베고 지나갔다. 적들은 바다를 뒤덮고 달려들었다. 검은 깃발의 선단이 서쪽 수평선을 넘어왔다. 물보라에 뒤덮여, 적선의 숫자는 헤아릴 수 없었다. 광양만을 떠난 순천의 적들이었다. 적들은 노량 수로를 향하고 있었다. (……) 관음포는 보살의 포구인가. 배는 격렬하게 흔들렸고 마지막 고비를 넘기는 싸움이 시작되고 있었다. 선창 너머로 싸움은 문득 고요해 보였다. / 세상의 끝이…… 이처럼…… 가볍고…… 또 ……고요할 수 있다는 것이……. 칼로 베어지지 않는 적들을…… 이 세상에 남겨놓고…… 내가 먼저……, 관음포의 노을이…… 적들 쪽으로…….” (김훈 “칼의 노래)
관음포 이충무공전몰유허지를 지난 버스는 19번 국도를 따라 고현 - 도마 - 남해군청 - 이동면 무림리 화계리를 지나 두곡(斗谷)해수욕장에 이른다. 남면을 서쪽으로 가로질러 1024번 지방도를 따라 오리마을 평산마을을 거쳐 목적지인 선구마을에 도착했다.
산행은 선구마을 느티나무에서 시작한다. 수령이 360년이나 되었다 하는 팽나무 옆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산을 오르기 시작한다. 서북쪽으로 시선을 돌리니 남해 바래길 제1코스 다랭이지겟길의 기점인 사촌해수욕장의 바다 풍광이 펼쳐진다. 그 길을 따라 서남쪽으로 걸으면 선구리 몽돌해변이 이어진다. 첨봉에서 매봉(응봉鷹峰412.7m)에 이르는 길은 암릉지대다. 남쪽으로는 남해 바다가 보이고, 북으로는 관미산(222m) 능선이 이어지고 있다.
산의 초입에 들어서자 높이는 사라지고 구역이 된다. 방향과 경사, 그리고 넓이로 다가온다. 동양인들이 입산(入山)이라 말하듯, 산은 바라볼 어떤 것이 아니라 들어가 안길 대상이 된다. 태고(太古)의 무시간성을 살갗으로 느끼고 호흡하다 보면 산은 평지에서 토막 난 상처를 어루만져 주기 시작한다. 더 빨리 더 높은 곳에 도달해서 넓은 시야를 즐겨보고 싶은 욕망도 잊게 된다. 산이 주는 형이상학적 의미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등산의 의미는 반감되리라. 이성복의 시 ‘산’이다.
“세상에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가장 더러운 진창과 사람들의 손이 닿지 않는 가장 정결한 나무들이 있다 세상에는 그것들이 모두 다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함께 있지 않아서 일부러 찾아가야 한다 그것들 사이에 찾아야 할 길이 있고 시간이 있다”
매봉과 설흘산을 향하는 바위 골짝마다 진달래가 화사하게 피어나 있다. 설흘산 9부능선에는 연보라 얼레지꽃이 만발해 있다. 문득 조현연 선생의 시구가 생각난다. ‘진달래는 먹는 꽃, 먹을수록 배고픈 꽃.’ 전후 보릿고개 봄날에 허기진 배를 채우려 뒷산 진달래를 우적우적 뜯어먹고 꽃보다 붉은 울음을 울었던 흰옷 입은 백성들을 생각해 본다. 그러자 회원 한 분이 아버님이 매를 잡아온 추억이며,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마을에 살다 6학년 때 전주로 전학 온 이야기를 들려준다. 꼬옥꼭 싸둔 유년의 기억을 펼치면 다랭이마을 사람이 삶이 결국 우리네 삶과 다르지 않으리라. 시간은 상처와 고통을 꽃으로 피워내고, 아련한 추억으로 바꾸어 놓는다. 척박했던 설흘산 산자락을 일구고, 남해 바다에서 먹거리를 구하던(바래) 그들의 삶의 흔적이 산과 바다보다 감동으로 다가오는 것은 이 때문이리라.
점심을 하기 전, 설흘산 정상인 봉수대에서 사방을 둘러본다. 동으로 남해금산과 남동으로 노도, 삼각형 모양으로 조그맣게 떠 있는 세존도(世尊島)가 보이고, 서남으로 육조바위가 우뚝우뚝 솟아있다. 금산 보리암의 해수관음보살상이 석가세존을 영접하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보며, 고뇌의 바다에서 중생의 고통을 어루만지고 있는 자비의 부처를 생각해 본다. 육조(六祖)바위 또한 세존도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중국 선종의 1대 달마조사, 2대 혜가로부터 육조 혜능에 이르기까지 여섯 분의 조사들의 선적 경지를 대하는 듯하다.
설흘산과 금산 사이, 가천 정동쪽에 외로이 떠 있는 노도를 보며 서포 김만중선생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병자호란 직후 유복자로 태어나 입신양명했으나 장희빈의 아들을 원자로 책봉한 숙종의 처사에 반대하다 서인들이 대거 숙청된 기사사화로 인해 절해 고도에서 4년 동안 유배 생활을 하다 56세의 일기로 생을 마친 인물이다. 그의 삶은 남해의 파랑처럼 차고 설흘산처럼 험했지만, 그는 삶의 아픔을 예술로 승화시켜 이곳 노도에서 ‘구운몽’ ‘사씨남정기’같은 소설과 ‘서포만필’ 등의 문집을 집필했다. 복되고 아름답다, 삶의 아픔을 예술로 승화시킨 이는.
망산(406.9m)에 들르기를 단념하고 서둘러 산을 내려온다. 여유롭게 꽃과 나무를 보고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탓이다. 그로 인해 다랭이마을 바래길 트래킹도 다음 기회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인생이 그러하듯이 당위와 현실이 어긋나는 경우도 더러 있는 법. 생의 미완이 남아 있을수록 그곳은 아름답고 그리운 법. 미완성의 연가가 다시 이곳을 찾게 하리라. 언젠가 벚꽃이 하롱하롱 날리기 시작하는 날, 개복숭아꽃 유채꽃 핀 쪽빛 바래길을 걸어 상주 해수욕장에 이르리라. 미조 포구에서 잠들고, 미명의 새벽에 보리암을 오르리라.
애기똥풀꽃이 앙증맞게 피어 있는 가천 마을 돌담길을 돌아 내려온다. 남자의 성기, 만삭 여성의 모습을 지닌 암수바위를 보며 풍요와 다산을 기원했던 마음 사람들의 간절한 소망을 상상해 본다. 종교학적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삶이 고통스러울수록 인간은 ‘호모 렐리기오스(종교인)’의 성향을 지닌다. 자신의 능력과 지혜로 해결할 수 없다는 유한성을 자각한 인간은 하늘을 우러르게 된다.
다랭이마을 사람들은 설흘산의 바위와 남해의 파도, 그리고 바람을 달래면서 고단한 삶을 살아냈다. 그들은 108번뇌인 듯, 108층의 다랭이 논밭을 일구어 쌀과 곡식 채소를 길렀고, 이랑이랑 밀려오는 파도 속에서 해산물을 구했다. 남해 한가운데 떠 있는 석가세존께 빌고, 마을 옆산 6조 선승들과 이심전심 교감하며 살았다. 그도 부족해서 선돌을 암미륵 수미륵으로 섬기며 살아왔다. ‘제주사람이 아니고는 진짜 제주바다를 알 수가 없다’고 노래한 문충성 시인처럼 남해 바다 깊이 뿌리를 박은 설흘산, 설흘산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남해바다 그 언저리에서 살았던 이들의 시린 삶을 나그네가 어찌 다 알겠는가?
다랭이마을에서 언어는 길을 잃는다. 삶이 저토록 엄숙하거늘, 어찌 이성의 언어로 분별할 수 있겠는가? 페루의 마추피추 공중도시보다 정교하지 않다며 다랭이마을 사람들을 잉카 인디언과 비교해도 안 될 것이며, 중국 윈난(雲南) 산간마을보다 다랭이 논밭이 작다고 실망해서도 아니 되리라. 나를 짓누르는 절망과 고통의 돌을 골라내어 삶의 지평을 조금씩 넓혀 온 그들에게 경의를 표하며 다랭이마을을 떠난다.
남해대교에서 잠시 머문 버스는 지리산 생태과학관 앞에서 하산주를 하기 위해 다시 멈춘다. 회장 사모님이 마련해 주신 호박죽 등으로 힘을 얻은 후 북상하여 화개 장터에 들른다. 바람이 제법 쌀쌀한 화개 장터를 어슬렁거리며 걷는다. 백운산 지리산에서 나온 약재며 산나물이 가득한 장터가 관광객로 붐빈다.
김동리 소설 ‘역마’를 소재로 한 조형물들이 눈에 띤다. 이 소설은 신성일 남정임 주연의 영화 ‘역마’로 1967년에 제작되기도 했다. 역마살을 지닌 인물이 섬진강물이 하동으로 흐르듯 운명에 순응해 편안해진 모습에서 볼 수 있듯이 동양의 운명론적 세계관을 담고 있다. 또 이곳 하동은 백의종군로의 출발점이자 도착점으로서 이순신 장군이 원균의 모함을 받아 벼슬을 박탈당한 후 옥에서 풀려나 백의종군하기 위해 정유년(1597년) 합천으로 향하던 길이기도 하다.
흥성거리는 장터를 뒤로 하고 다시 귀로에 오른다. 벚꽃 가로수 사이로 저무는 섬진강 물빛이 번득인다. 집이 가까워질수록 햇빛은 강을 따라 어두워져간다. 해가 설핏한 강을 거슬러 오면서 마른 조팝꽃처럼 야윈 다랭이마을 할머니의 뒷모습을 잠시 떠올린다. 그리고 눈 감고 기도한다. 저무는 풍경 한가운데서 오후의 햇빛처럼 머물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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