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주 토요일에는 합제사가 있다고 친정오빠로부터 문자가 왔다. 이번에는 딸 역할을 해야 할 차례이다. 아니 유가네 가족의 일원으로 잘 살고 있는 자손의 역할을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라는 사람에게 주어진 무수한 역할들이 있다. 아내, 엄마, 동생, 언니, 시누, 올케, 이모, 고모, 조카, 친구, 선생님 등등 때와 장소, 상황과 관계에 따라 주어진 역할의 비중을 조절해야 한다.
지난주 토요일에는 서울에서 학회가 있어서 학회 끝나고 난생 처음으로 서울 사는 고모집을 갔다. 갑작스런 조카의 방문 요청에 고모는 당황하고 놀라는 음색으로 오라고 하시면서 "뭐를 해줄 꺼나!", "뭣이 뭣고 싶냐?" 하셨다. 고모가 해 주는 집밥이면 된다고 하여도 기여코 묻는 고모에게 제가 나물을 좋아한다고 했더니 집에 준비된 나물을 없다고 하셨다. 그래 '그게 고모지!' 싶다.
조카가 간다고 하면 밥상에 반찬 걱정을 하실 고모를 짐작하고 간장게장과 구이김, 생김 그리고 고모부가 좋아하실 청주를 한 병 사들고 학회까지 들고 다니며 준비해간 보따리를 내밀었다. 남편과 함께 가지 않는다는 말에 한 숨을 덜었던 고모는 맛있는 밥상을 앞에 놓고 고모부가 첫 술 잔을 마시기도 전에 이말저말 하지 말라며 술이며 말이며 주의를 주셨다. '여전 하시구나!'
오랜만에 만난 처조카에게 당부도 하소연도 할 수 없는 고모부는 오래 전에 충남 아산 바닷가에서 주워 온 검은 돌을 선물로 주셨다. 더 좋아하는 사람이 약자이고 자존심이 센 사람이 강자처럼 보이는 구조이다. 어쩐 일로 고모집에 올 생각을 했느냐고 거푸 물으셨다. 내가 경험한 만큼 내 인생이라는 생각을 하고 사는 터라. 나도 어떤 고모로 늙어가야 하는 지 생각할 꺼리가 될 것 같아 큰 맘 먹고 시간을 낸 터었다. 그래 ' 고모가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어야지!'
문득, 할머니 생각이 나서 고모가 보고 싶었다고 하였더니 고모는 납득을 하셨다. 니네 할머니 고생하셨다. 니네들 키우느라 고생하셨다 나도 고생하며 살았다. 고모의 하소연은 그나마 길지 않았다. 젊은 나이에 일찍 돌아가신 친정아버지 때문에 모두가 고생한 인생이었다. 번거롭기는 하였지만 고모네를 방문하며 나도 이제 유가네 고모로서 조카들이 방문하면 어떻게 해야 할 지를 생각하였다.
'자기야, 괜찮으니까 하고 싶은 이야기 있으면 그냥 하세요. 조카야, 너도 하고 싶은 이야기 있으면 고모한테 이말저말 다 해 주고...'라고 말하는 고모이자 아내가 되면 좋겠다. 그런데 DNA에 지병처럼 박힌 자존심이 뽑혀질 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