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존 머레이 {구속} 장호준 역 (서울: 도서출판 복 있는 사람, 2011)’ 155쪽에서 옮깁니다.
거듭남의 우선성을 말하면, 사람이 거듭나도 아직 회심하지 않았을 수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하지만 요한일서 이 본문들은 이런 오해를 불식한다.
우리 대다수는 ‘말 못 하는 젖먹이는 하나님을 찬미할 수 없다.’는 사고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사고를 따른 개혁파, ‘아브라함 카이퍼→ 헤르만 바빙크→ 루이스 벌콥’로 이어지는 화란 개혁파 신학 이론이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난 언약의 자손이 어릴 때 중생하면 복음(하나님 말씀)을 이해할 수 있는 지능(언어)이 자란 뒤에 회심한다.”는 이론입니다. ‘중생했으나 복음을 이해해 회심할 때까지는 불신자다.’는 이론, 간격 이론입니다.
다음은 ‘리차드 개핀 {안식, 종말, 성신에 대한 성경 신학적 교훈: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서울: 성약출판사, 2007)’ 159쪽에서 옮깁니다. (회심하지 않고)는 제가 넣습니다.
몇몇 개혁파 선생들과 목사들에게 알려있는 한 가지 현저한 예로는, 다 자란 아이나 성인이 신자가 되기 전 얼마 동안 (회심하지 않고) 중생한 채로 있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존 머레이는 명쾌한 수업에서 이 점에 관해 논평한다. ㅡ기억을 더듬어 보자면ㅡ 성경으로 고찰할 때 ‘중생한 불신자’라는 개념은 “기괴한 것”이다.
예장 합신 송인규 목사님 말씀에 따르면 “안토니 후크마 목사님이 존 머레이 목사님이 확립하신 확정 성화 교리에 굉장히 감동하셨다.”는데, 안토니 후크마 목사님께서는 {개혁주의 구원론}에서 ‘거룩한 불신자: 하나님의 거룩한 씨로 중생했으나 회심하지 않은 불신자’ 개념을 가진 ‘아브라함 카이퍼 목사님 가정假定중생론’을 ‘확정 성화’를 뜻하는 성령의 검劍, 요한 사도 구절들로 단칼에 베어 버리십니다. 다음은 ‘안토니 후크마 {개혁주의 구원론} 류호준 역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2008)’ 168에서 옮깁니다.
“중생이 회개와 믿음으로 연결되기 전에 여러 해 동안 중생이 한 사람 속에서 활동하지 않고 가만히 머물러 있을 수 있다.”고 아브라함 카이퍼가 말한 바 있다. ···(중략)··· 그러나 이 가능성은 우리가 방금 살펴본 요한의 구절들에 의해 받아들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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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아이 중생
존 머레이
‘중생의 선행성’과 ‘중생이 믿음과 분리돼서는 안 된다.’는 사실은 중생한 어린아이들 경우에도 기억돼야 한다. 본질상 어린아이는 우리가 ‘믿음과 회개’라고 규정하는 회심, 그런 의식적이고 지적인 행위를 할 수 없다. 그러나 어린아이 경우 중생이 일어나는 곳에는 ‘어두움의 나라’에서 ‘하나님의 나라’로 즉각 이전되며, 비록 지적인 믿음이 작용하고 있지 않다 할지라도 ‘믿음의 싹’은 존재한다. 중생이 어린아이 초보적 의식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는지를 우리가 결정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죄와 마찬가지로 중생은 어린아이 초보 의식에 근본적으로 영향을 미침에 틀림없다. 어린아이들이 타락돼 있다면 그들은 또한 거룩해질 수 있다. 중생한 어린아이는 이 점에서 근본적으로 중생하지 못한 어린아이와 다르다. 중생한 어린아이는 죄의 지배 아래 있지 않고, 진노의 자녀가 아닌 하나님의 자녀이며 하나님 나라의 성원이다. 그는 이 용어의 가장 고귀한 의미로서 주님의 양육으로 성장한다. 물론, 당해 어린아이가 자신의 중생과 그것이 수반하는 구원의 의미들을 명확히 의식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러나 그 어린아이 의식 발전과 전개에 근본적인 차이를 가져온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중생한 어린아이를 유아 단계에서 중생하고 이후 그가 이해력과 분별력을 갖는 나이가 될 때 회심하는 것으로 인식해서는 안 된다. 결코 아니다! 어린아이가 중생할 때 어린아이 마음속에 초보적 영역에서 회심과 일치하는 어떤 것이 일어난다는 의미에서 그 어린아이는 회심한다. 말하자면, 비록 초보적이고 싹에 지나지 않지만 그 마음과 뜻이 향해 있는 방향은 ‘하나님’과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순종’이다. 그 어린아이가 내주하시는 성령의 거룩케 하시는 힘 아래 자라감에 따라 그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에 합당한 방식으로 확장된 경험과 증가된 지식으로 응답한다. ‘끊임없이 지도하고 통제하는 분으로서 성령’의 내주에 합치하는 방식으로 그는 죄를 미워하고 의를 사랑하도록 성장한다. 우리가 중생하지 못한 어린아이들을 두고 “그들은 모태로부터 거짓을 말하며 어그러진 길로 간다.”고 말한다면, 중생한 어린아이들에 두고서는 “그들은 중생 시점부터 원칙적으로 진리를 말하며 거룩한 길로 행한다.”고 말해야 한다. 한 마디로 말하면, 다른 이들이 거룩하지 못한 것처럼 그들은 거룩하다.
물론, 유아 단계에서 중생한 사람들은 그들이 커 갈 때 ‘회심 체험’과 아주 유사한 체험을 겪고, 스스로 ‘그 사건 이전에는 그들이 죄의 지배 아래에 있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 그러한 체험은 단지 이전에 일어났던 중생이 그들 의식 속에 명확히 표출되면서 그들 지적 체험에 초점이 모아지는 고비(crisis)이다. 하지만 다른 많은 경우 특정한 시기에 그러한 결정적이고 격한 체험이 없어서 “그때 하나님 없이, 하나님을 향한 소망 없이 살았다.”고 말할 수 있는 시기를 기억하지 못하는 지적인 기독교인들이 많다. 그들은 어린아이 때 중생했을 뿐만 아니라 기독교 교훈 속에서 양육됐음으로 예수님에 관한 단순한 믿음은 기억이 미칠 수 있는 한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 존 머레이 {조직신학 제2권} 박문재 옮김 (고양: 크리스찬 다이제스트, 2008) 211쪽~2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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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하시는 이상한 일과 또 성전에서 소리 질러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 어린이들을 보고 노해 예수께 말하되 “그들이 하는 말을 듣느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렇다.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하게 하셨나이다.’ 함을 너희가 읽어 본 일이 없느냐?” 하시고,(마 21:15~16)
첫댓글 즐거운 주말과 기쁜 주일 되세요. 좋은 글 나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중생했으나 복음을 이해해 회심할 때까지는 불신자다.’는 이론, 간격 이론입니다.
공감합니다.
확정 성화, 좋습니다. 결정적 성화로 번역한 책도 있는데, 둘 다 좋은 것 같습니다.
오늘 제가 검색한 결과를 올렸는데, 결정적 성화로도 번역이 되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