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왕씨 선계(先系)에 대하여
(03.08 중앙종친회 총회 결의 내용)
개성왕씨세보에는
차류씨종보사(황제연원설)의 내용을 인용한 왕씨원파기와
[고려사(高麗史)]에 기재된 [편년통록]에 근거하여 3대 추존을 한 왕씨원파기 기록 두 종류가 실려 내려왔다.
전자는
전설상의 국가인 중국의 하나라로부터 출발한 [황제연원설]의 내용 속에 개성왕씨가 중국황제의 후손이며
왕. 차. 류씨 성은 하나의 계보에서 출발한다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18세기 초간무오보의 서두인 [성원록]에 기록되어 있다.
비역사적인 사료문제(史料問題)로 논란이 되어왔던 [황제연원설]이 뜻 있는 류씨종중 학자의 노력과 수 많은 문헌 고증을 통해
위서(僞書)로 밝혀졌고 역사학계의 의식 또한 동일하게 10여년 전에 이루어짐에 따라 [원파기] 파기가 불가피하게 되었고, 17세기
모화(慕華)사상의 영향으로 각 문중의 족보기록에 영향을 미친 해악(害惡)을 정리하며 인터넷족보(을사세보)의 발간에 따라 비역사적인 내용에 대하여 체계적 정리가 당면과제로 대두되었다.
후자는
고려개국으로부터 약230여년이 지난 시점인 고려의종황제 때 김관의에 의해 만들어진 [왕대종록]과 [편년통록]에 근거하여
[고려사]에 그 내용이 기재되어 전승되고 있으며 [편년통록]에는 고려개국으로부터 12세기 중엽 이전까지의 고려왕조역사를 연대순으로 편찬하고 태조의 선계에 관한 글 2천여자가 수록되어 내려오고 있다.
[편년통록]의 내용을 살펴보면, 선계에 첫 등장하는 인물인 호경을 성골이라 하여 신라골품제의 최상위 왕족으로 과장하였고 신선과 범, 용, 여우 등의 동물을 등장시켜 초인(超人)으로 표현한 점이나 당나라 황제(천자)의 후손으로 신성화하는 등 쉽게 납득하지 못하는 부분이 존재한다.
그러나 모든 나라의 개국(開國) 시 선계에 대한 신성화(神聖化)와 미화(美化)는 신라의 박혁거세나 가락국 김수로왕의 탄생신화
그리고 조선 용비어천가의 내용 등을 감안할 때 항상 있어 온 사안으로 이 사료의 가치에 대하여 사학자 이익주 교수는 “편년통록의 내용속에는 고려황실의 신성화가 다분하지만 개성왕씨의 선계는 해상무역업을 하는 개성의 호족임을 유추할 수 있으니 그 존재 가치가 크다”라고 평가하고 있다.
의종의 선왕(先王)인 인종 때 송나라인 서긍이 국신사로 개성을 방문하여 지은 책 ‘선화봉사고려도경’에는 개성왕씨 선계를 ‘고구려 대족의 후예’로 기록하였고 역사학계의 시선 또한 ‘백두산에서 개성으로 이주한 고구려 유민의 후손으로서 대당무역을 통하여 부(富)를 축적한 개성호족’으로 보고 있다.
이상의 내용을 종합하여 개성왕씨중앙종친회에서는 총회에서 다음과 같이 결의하였다.
첫째는 조상의 연원이 중국의 황제로부터 이어오고 왕. 차. 류씨는 동성(同姓)에서 출발한다는
[황제연원설]을 부정하며 이를 인용한 성원록 내의 왕씨원파기도 삭제한다.
둘째는 [편년통록]에 전해오는 당나라 황실(황제)의 아들을 의미하는 ‘당귀성자(唐貴姓子)’ 문구를 삭제한다.
셋째는 국조(國祖/고려태조의 증조)의 성씨가 왕씨라는 문구를 삭제하여
개성왕씨의 시조는 고려태조(왕건)부터 시작됨을 재삼 밝힌다.
★근거자료-고려사, 왕대종록, 편년통록, 고려도경, 역사학계 의견, 고려 성원록 등 (끝)
2025.03월
개성왕씨중앙종친회장 왕봉식(王鳳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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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 후에는 고려기원1108년 숭의전춘계대제가 봉행된다.
집사의 직책으로 음지에서 묵묵히 헌신하는 종친들의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신성황제여!
그들에게 무한한 복을 내리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