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벌써 어둠을 밀어내고 스멀스멀 밝아 오고 있다. 전조등 켜기는 빠르고 안 켜자니 어둠의 그림자가 길다. 괄목상대刮目相對하듯 눈여겨 보는 새아침은 상큼하다. 하늘은 맑아 샛별이 눈 웃음 치고, 서리 맞은 소나무는 청푸르게 미소 짖는다. 2023 검은 토끼는 낭만스럽게 왔다. 조금은 북적대고 약간은 야단스럽게 존재감을 알리고 오는가했는데 너무 평온하다. 왜들 이렇게 아무도 없지? 도로가 한산하다. 세상살이 힘들어 집에 콕 박혀 있나. 매년 새 기운을 받으러 분주한 해돋이가 아니었던가.
황매산 입구 두심 삼거리에 접어들자 오르막 끝자락에 차량 한대가 숨 가쁘게 오르고 있다. 캄캄한 곳에서 홀로 있다가 누구를 만난 듯 반가워 엑셀을 밟는다. 요금소를 통과하고 구부정한 길을 휘이 돌아, 법연사 입구 오르막 길에서 잡았다. 오랜만에 보는 황매산이 반갑기는 하여도 동반자 찾느라 예를 갖추지 못했다. 지난 동지 때 많이 내렸다는 눈은 우릴 기다렸는지, 숲에 누워 등불처럼 온후하게 웃는다. 아름다움에 눈을 뗄 수가 없다.
아직도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황매산과 정감을 나누고 있다. 은행나무 주차장을 지나 마지막 까끌막에 오르려는데 내려오는 차들이 보인다. “아니, 일출도 안보고 왜 내려오지?” 연이어 내려오자 “주차할 곳이 없어 오나 보다.”라고 말하는 순간, 이미 늦은 것이다. 아차 큰일이다. 우격다짐으로 그냥 올라갔다. 죽이 되던 밥이 되던 부딪쳐 보는 수밖에. 정초부터 뜻하는 바를 포기할 수는 없지 않은가.
대형 주차장이 보이는 곳에 오르니 피난길 같이 제멋대로 주차된 차량들이 길가에 즐비하다. 앞이 캄캄했다. 겨우 겨우 올라왔는데 돌아가라고 유도봉을 삿대질 하듯 휘두른다. 이판사판 공사판이다. 될 돼로 되라는 식이다. 어차피 일출보고 함께 갈 것 아닌가. 약간의 틈새만 남기고 주차해버렸다.
차량에 놀라고 인파에 놀랐다. 왜 사람들이 없지 하고 룰루랄라 여유로웠던 마음이 한참 부끄러웠다. 세상 사람들이 다 나와 같을까? 정말 부지런하고 날렵한 사람들이 많다. 6시 20분 아내 깨웠을 때 왔으면, 좋았을 것이다. 가당찮게 7시면 충분하다는 아집 때문에 이런 사태를 맞았다.
차에서 내리니 이번엔 강한 바람에 놀랍다. 앙상한 나뭇가지가 사시나무도 아닌데 떨고 있다. 개점 앞에서 춤추는 꺽다리 풍선 인형의 춤사위를 보는 듯하다. 차량 때문에 멀리도 못가고 황매광장 전망대에 오르니 매서운 바람과 추위에 맞서야 했다. 이미 여명은 산허리에 걸쳐있고, 그 빛에 사람의 모습이 여울진다. 와~ 산꼭대기에 있는 사람이 부럽다. 산으로 갈 수도 없다. 이미 해돋이는 시작되었고, 늦게 나마 남들이 다 가지고 간 찌꺼기라도 건져야 할 판이다.
그래도 조각구름이 여명에 쌓여 아름다운 자태를 보여줘 위로가 된다. 산에서 해돋이를 본 사람들은 하나둘 내려와 떠났는데, 아직도 높은 산허리에 막혀 얼굴을 내밀지 않는다. 위치 선정이 잘못 되어도 한 참 잘못됐다. 7시 40분 쯤 일출인데 8시가 넘도록 떨고 있다. 약간의 미세먼지로 불그스레 하게 보이는 하늘, 정말 어디로 숨어버린 것은 아닐는지.
드디어 새빨간 솜사탕을 머리에 두르고 붉은 해가 솟는다. 사람들이 떠나 횡한 가운데 솟아 오르는 해는 몽땅 내 차지다. 일출을 보자마자 나도 모르게 합장하고 중얼거린다. 올해 소원이 많나 보다. 곁에 있는 아내도 알 수 없는 말들을 거미줄 나오듯 쏟아 낸다. 가족의 건강은 엄마에서 부터 하나하나 떠올리고, 먹고 살려니 일자리 보존토록 해 달라 빈다.
한번으론 정성이 부족하다 할까봐 또 다소곳이 두 손 모아 염원한다. 금새 떠 오른 태양은 사방을 붉게 물들이고 차가운 냉기를 밀어낸다. 그러나 고집 센 바람은 강한 햇살에도 누그러들지 않는다. 마음이 따뜻해야 몸도 따스하다. 활활 타오르는 해를 보니 마음도 녹고 몸도 녹는다. 내년에도 오늘과 같이 건강한 몸으로 다시 찾을 수만 있으면 그것으로 족한 것 아닌가! 뭘 그리 욕심을 낼까? 건강 잃으면 다 잃는다고 하지 않았는가. 이 만고의 진리를 깨달지 못하고 무얼 그리 집착하는지.
하루 기분은 아침에 있고, 한 달 기운은 초하루에 있으며, 일 년 운세는 정월에 있다. 이와 같은 연유로 새해가 열리는 정월, 초하루, 아침 해돋이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기운을 얻고자 해돋이 명당자리를 찾는다. 오늘 약간 느슨한 행동으로 일을 망칠 뻔 했다. 올핸 좀 더 여유롭게 대처하면서, 건강을 챙겨야겠다. Happy New Year! 새해 福 많이 받으시고 건강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