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의 대치
30여 년 전 일이다. 제대하고 복학을 기다리는 동안 무료하였던지 밤이면 어디론가 나가서는 새벽녘에야 들어오는 아들을 보고 물었다. 너는 밤마다 어디를 그렇게 다니느냐? 어머니는 말씀을 드려도 잘 이해를 못 할 거란다.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같은 일상들이 이어지고 있다.
군대에 가기 전에 친하게 지내던 아들 친구가 생각나서 전화를 걸었다. ‘예’ 어머니 무슨 일입니까? 아들에겐 비밀로, 둘만 만나서 궁금한 점을 물어보았다. “어머니, 친구가 요즈음 고민이 많나 봅니다. PC방에 있을 겁니다.” 그날 밤부터 동네PC방을 모두 뒤지고 다녔다. 안으로 들어가니, 난생처음 보는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단 불에 콩을 볶듯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가 통통 튄다. 모두 들 핼쑥한 얼굴에 눈들은 충혈된 채로 모니터를 뚫고 나갈 기세다. 두어 바퀴 돌아도 찾을 수가 없다.
다시 친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같이 온 걸 비밀에 부칠 것을 약속하고, PC방 탐방에 나섰다. 세 번째로 찾아간 곳에서 모자를 푹 눌러쓰고 몇 바퀴 돌던 친구가 나에게 수신호를 보내고는 재빠르게 빠져나간다. 나는 살며시 다가가, 아무 말 않고 곁에 섰다. 이상한 낌새를 느꼈음인지 고개를 들어 나를 보았다. 빙긋이 웃으며 아들과 눈만 맞춘 다음 집으로 와 기다리고 있었다.
한 시간쯤 후에 들어온 아들에게선 술 냄새가 풍겼다. 배고프니 밥을 달라고 한다. 밥상을 차려주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TV만 보고 있으니 아들이 말문을 열었다. 어머니, 죄송합니다. 앞으로 PC방엔 가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곳까지 찾아갔던 어미가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다행인 것은 그 이후로 PC방에 가서 밤을 새우는 일은 없었다. 컴퓨터 수리점을 하는 친구의 아들에게 물었더니, 컴퓨터가 오래된 거라 안되는 게 많을 겁니다. 이참에 하나 바꿔 주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한다. 남편은 나보다도 더 컴퓨터와는 먼 거리에 있는 사람이다. 한바탕 시끄러울 것을 감안 하고, 컴퓨터를 바꿔 주었다. 그리고 아들이 쓰던 컴퓨터는 내방으로 가져다 놓았다.
하루는 아들 방을 들여다보니 무언가를 그리고 있는데 신기하고 재미도 있어 보였다. 뭐냐고 물으니 그래픽을 공부 중이라고 한다. 더 있어 봐야 방해만 될 것 같아 나오려다, ‘그래픽’이 어떻게 하는 것이냐, 멋있구나, 어미도 좀 배우면 안 될까, 하니 눈이 동그래서 쳐다본다. 어머니도 참, 이런 건 전문가들이나 하는 거지 재미로 하는 게 아니에요. 일단 문자판부터 부지런히 익히세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야속했다. 목소리가 어찌나 퉁명스러운지 두 번 다시 말을 붙일 수가 없었다. 전문가 운운하며, 안 된다고 딱 잘라 말하니, 아들에게 무시당한다는 생각이 들어. 섭섭하고 민망했다. 컴퓨터 세상이 그렇게 광범위 한 줄도, 그래픽의 용도에 대해서도. 몰랐기에 아무 말도 못 한 채 나오고 말았다.
오냐. 이 잘난 녀석아. 퉁명스러운 건 꼭 네 아비 같구나. 어디 한번 해보자. ‘내가 지금은 비록 우물 안에서 개구리헤엄을 치고 있다만, 머지않아 반드시 배영으로 태평양을 건너다닐 것이다.’라고 쪽지에 적어 모니터 옆에 붙여놓았다. 지금 생각하면 참 어처구니없고 우스운 일이지만 그때의 심정으론, 아들이 나의 경쟁대상일 뿐이었다.
컴퓨터에 관한 서적이 한 권 두 권 쌓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독학으로 풀기에는 난해한 점이 많았다. 내 나이에도 컴퓨터를 배울 수 있는 곳을 알아보았고, 바로 그곳을 찾아갔다. 건물 3층에 있는 교육장으로 들어가니, 중 장년층의 남녀가 강의실을 꽉 채우고 앉아 있다. 아! 세상이 이렇게 변하는구나. 나는 그동안 무얼 했지? 문 앞에서 우물거리고 서있는 나를 발견하고 어떻게 왔느냐고 물었다.
일단 기가 죽기는 하였으나 ‘에라 모르겠다.’ 여기까지 왔으니 되든 안 되든 말이나 해보자 싶어 교육장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갔다, 강사님 앞에 서서 컴퓨터를 배우러 왔노라고 말했다. “컴퓨터 기초는 떼고 오셨지요.” ‘아니요’ 그럼 컴퓨터 기초부터 배워서 다시 오라고 한다. 이곳은 스위시(swish)와 포토샵(Photoshop)을 공부하는 곳입니다.
스위시, 포토샵에 대해 잘 알지를 못했다. 30여 명의 수강생이 딱하다는 듯이 나를 쳐다본다. 아무 말도 못 하고 돌아서 나오는데 눈물이 났다. 아들한테서 무시당하고, 이곳에서 창피를 당하니 주저앉아 울고 싶었다. 어떻게 그곳을 빠져나왔는지도 모르게 건물 밖으로 나왔다. 자존심이 상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하였던가.’ 숨을 크게 한번 들이쉬고는 다시 올라갔다. 강의하고 있던 선생님이 나를 보더니, 또 무슨 일입니까? 수강생들의 시선도 모두 나를 향해 집중되었다. 뚜벅뚜벅 강의실로 걸어 들어갔다. "선생님, 가다가 생각해 봤는데, 왜 가르쳐 보지도 않고 안 된다고 잘라 말씀하십니까? 되고 안 되고는 해 봐야 아는 것 아닌가요?"
약이 올라서, 나보다 사오 년은 더 연장자로 보이는 강사님께 대어 들었다. 어처구니가 없다는 얼굴로 빤히 쳐다보더니, 그냥 물러서진 않을 것 같았는지 입맛을 쩝쩝 다시며, ‘허허 참’ “그럼 어디 한번 해봅시다. 어이 총무 이분께 한자리 내드려.” 힐끔 그리는 눈초리들을 모른 척하고 제일 뒷자리에 앉았다.
6개월이 지났다. 어느 날 선생님이, “축하합니다. 포토샵 중급반으로 올라가도 되겠습니다. 처음 왔을 때, 뭐 저런 생떼가 다 있나 하고 내심 못마땅해하였는데, 되고 안 되고는 해 봐야 안다는 그 말 잊지 않겠습니다.” “아닙니다. 제가 너무 버릇없이 굴어 정말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팝송 100곡이 저장된 CD를 상으로 주었다.
그 후로 컴퓨터에 관한 서적이 다시 쌓이고 여러 가지 분야에서 공부를 계속하면서 사진을 찍어 편집도 하며 포토샵에 열을 올렸다. NAVER에 들어가 포토 갤러리에 과감히 사진들을 올려보았다. 목적은 사진작가들의 평을 들어보는 거였다. 오늘의 포토에도, 베스트 포토에도 여러 번 선정이 되었었다.
사진을 올리기 시작한 지 3년 정도 지난 후, 외국 인테리어업체에서 메일이 왔다. 모두가 영문으로 되어있어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기에 나의 실력은 한계가 있었다. 아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네들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샅샅이 살펴본 아들이, 믿어도 되겠습니다.
내용인즉 자신들의 사업에 꼭 걸맞은 사진이 있으니 가져가 써도 되겠냐고 한다. 가지산 등반 을 갔다 하산하는 길에 석양이 너무나 아름다워 카메라에 담았다. 원본과 편집된 사진을 올린 것이었는데 그 사진이 필요하다고 한다. 허락해 주면 수입에서 10%로를 보내어 주겠다고 한다.
아들이 “어머니 대단하십니다, 드디어 태평양을 건너셨네요.” 하며 웃는다. “아직 아니야, 준비단계야,” 컴퓨터 모니터에 붙여놓은 메모지를 보았던 모양이다. 눈으로 보면서도 나는 믿을 수가 없었다. 계약서 사본도 첨부되어있었다. 간단한 답장을 보냈다. 나는 사진작가도 아니고, 그 사진이 꼭 필요하다면 돈은 필요 없으니 가져다 쓰라고......내친김에 자격증에도 도전하여(ITQ한글, 엑셀, PPT, GTQ포토샵)모두 결실을 보았다.
나이에 굴하지 않고 무어든 배우려고 하는 어미가 자랑스럽다고 말해주는 아이들이 있어 더욱 용기가 난다. 손녀, 손자 역시 할머니를 매우 자랑스러워하니, 나는 지금도 열공 중............
“아들아, 어미에게 자극을 주어 고맙구나. 네가 그때 면박을 제대로 준 덕분이란다.”
첫댓글 뼈있는 성격이네요. 아들을 라이벌로 생각하시다니....대단하십니다. 파이팅!
안녕 하세요?
지금 생각하면 좀 부끄럽기도 하지만, 그 당시에는 아들이 얄미웠답니다.
뼈가 있는 성격이긴 한데, 지금은 그 뼈가 상처를 많이 입어 힘을 쓰지 못한답니다.
다시 우물안에 갖혀버렸답니다.